119. 걸리는 게 많다. (1)
“정녕 그렇게 해도 되는 것이옵니까? 아, 혹시 다른 이들도 되는 것입니까? 갑조가 아니라도 되는 것이옵니까?”
“갑조나 을조에 따라 되고 안 되고가 어디 있겠느냐. 누구든지 가족을 데리고 와도 좋다. 다만, 부역을 할 때는 다 같이 먹고 자지만, 가족이 오면 살아야 하는 집이 있어야 할 터인데, 집은 어찌할 것이냐.”
“집은 움막을 짓던지 수를 내겠습니다요. 저뿐만 아니라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어 하는 이들이 많으니 따로 집을 짓는 것도 알아보겠습니다요.”
“그래?”
이주하겠다는 이들이 많다면 아예 이 근방에 마을을 만들어 도자기 촌을 만드는 것이 이득이었다.
부역이 끝나고 나면 도공들을 끌고 와서 강제로 일을 시키는 부역 자체를 없앨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 인력수급이나 준비를 위해 3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었는데, 도공들이 먼저 가족들을 데리고 이주하겠다고 하니 그 시간을 줄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박복이와 언년이는 칠복이를 따라가 가족들을 데려오고 싶어 하는 도공들이 몇이나 있는지 알아보거라. 데리고 와야 하는 가족들이 많다면 각 조를 짠 것처럼 각 지방마다 사람을 보내 한 번에 데려오는 것으로 할 것이다.”
“금산이는 이 근방에도 집주름(부동산업자)이 있는지 알아보고 마을을 세울만한 땅과 전답이 있는지를 알아보거라. 가족들이 자급자족하며 먹고 살려면 전답이 있어야 하니 살 수 있는 전답도 알아보거라.”
“저, 제조 어른. 가족들을 옮겨 오는 것은 가호를 옮기는 것이온데, 이때는 호적(戶籍)도 정리해야 하옵니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따라와 있던 화공 장덕수의 말에 이게 단순하게 이사시켜 사는 문제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
“흠. 부역하는 이들의 가족들을 옮겨와 같이 사는 것이라면야 괜찮긴 한데, 호적까지 다 정리해서 옮기려는 이유가 뭔가?”
호조판서 구치관은 부역으로 오는 이들의 가족을 이사시키고 호적까지 만들겠다고 하는 원종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본자기의 제작법이 유출되지 않게 하려면 이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부역이 끝이 나서 도공들이 돌아가다 보면 입을 놀리는 자들이 분명히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아예 분원 인근에 마을을 만들어 그들을 모여 살게 할 작정입니다.”
“흠. 하긴, 그렇게 하는 것이 관리가 쉽겠구만. 허면 일일이 이주해 올 때마다 호적을 정리하기 힘드니, 서리를 아예 분원에 보내주겠네. 거기서 상주해서 호적을 새로 만드는 게 빠를 거야.”
화공 장덕수가 충고했듯이 조선 시대에는 이 호적을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적(籍)을 옮기는 호주(戶主)가 4대 위 조상들의 이름까지 넣어 호구단자(戶口單子)를 2부를 써서 관에 올리면, 아전들이 예전의 호구단자와 비교하여 착오 여부를 확인하는데, 이때 재산이나 소유 노비 같은 세세한 것도 다 기록을 확인하였다.
그렇게 비교한 후 맞으면 1부는 다시 호주에게 돌려주고 1부는 관아에서 보관을 했다.
이 호구단자들을 모은 것이 호적대장이며 이 호적대장은 3부를 만들어 1부는 본도, 1부는 본읍, 나머지 한 부는 호조에서 보관을 했다.
본도, 본읍이 없는 한양의 경우에는 2부만 만들어 호조와 한성부에 각각 보관을 했는데, 이러한 호적대장의 작성은 전란이 없다면 3년마다 실시 되었다.
이사를 할 때도 이런 복잡한 호적 정리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호조판서 구치관은 아예 새로 만드는 게 빠르다고 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편의를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그래그래. 그런데, 자네가 똑똑하다고 하여 물어보는 겸 충고를 하나 더 해주지. 자네 형 이름으로 공랑점포가 있던데 맞나?”
“네. 형의 이름으로 계약을 하여 잔잔한 물건들을 팔고 있습니다.”
“거기서 본자기도 팔았다지?”
“네 맞습니다. 본자기를 판매한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인지요? 진상했던 물건들을 만들며 나온 차등품들이라 대감들께 드렸던 물건들과는 차이가 있는 물건들이옵니다.”
원종은 본자기를 공랑점포에서 팔았다는 것 때문에 태클을 거는 건가 싶었다.
이제 10개를 팔았을 뿐인데, 벌써 이런 말이 나온다면 본자기로 수익을 보는 게 힘들 터였다.
“그래그래. 알고 있네. 그걸 탓하려는 게 아니네. 내가 충고라고 하지 않았는가. 끝까지 들어보게. 보통 집안에서 쓰는 토기(土器)를 어디서 사는지 아는가?”
“토기라면, 장날에 가서 사거나 등짐장수인 부상(負商)이 짊어지고 와서... 아, 혹시 부보상(負褓商)들에게서 말이 나온 것이옵니까?”
“하하하. 역시 총명하이. 손녀사위로 자네를 맞은 신숙주 대감이 부럽구만. 맞네, 맞아. 태조대왕께서 개국하실 때 만들어진 임방이 지금은 유명무실하다고는 하나, 여전히 부보상(負褓商)들이 어염(魚鹽)·수철(水鐵)·토기(土器)·목물(木物) 등을 사고, 파는 것에 대한 전매 권한을 가지고 있네.”
설마, 그 토기와 본자기를 같이 여기는가 싶었지만, 토기(土器)라는 말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였다.
“자네가 만들었다는 본자기가 그런 토기들과는 비교하기 힘들만 한 귀물이지만, 그들이 조선 상관이 만들어진 이후 들려 분원에서 만들어지는 자기들을 자신들이 팔아야 한다고 땡깡을 부리고 갔네.”
호조판서 구치관의 말이 꺼낼 때는 관에서 압박이 들어오는 건가 싶었지만, 부보상들이 내게 태클을 거는 것이었다.
“흠. 부보상에 대한 것은 제가 직접 알아보고, 그들에게 위탁을 하거나 해서 달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그래. 자네가 잘 알아서 할 테지. 공랑점포에서 파는 것이야 아무 문제가 없지만, 그놈들이 어디 보통 놈들이래야지. 근일 분원으로 서리를 파견 낼 것이니 호적 일은 잊고, 부보상 일부터 처리하도록 하게나.”
호조를 나오면서 생각하다 보니, 조선의 유통이 제대로 되지 못하고 꽉 막혀 있었던 이유를 하나 더 알게 된 것 같았다.
조선의 상업이나 유통이 이상하게 꼬여 발전되지 못하게 만든 원인이 상업을 천시하는 풍조 때문이기도 했지만, 이 보부상들도 그 원인의 한 축이었다.
다들, 조선의 환경적 요인으로 인해 유통이 발달 되지 못했기에 보부상들이 전국을 누비며 재물의 유통을 했던 고마운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지만, 어찌 보면 그 반대였다.
보부상들이 난전을 막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티비 서프라이즈에서도 몇 번 나오고 여러 역사 관련 프로그램에서 보부상과 관련된 일화들이 몇 번 소개가 되었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말 여진족과의 싸움에서 크게 다쳤을 때 길을 지나던 등짐장수에게 목숨을 구함 받아 지형에 쓰였던 목화솜을 패랭이에 달고 다니게 해줬다는 일화는 아주 유명했다.
이성계는 자신을 구해준 등짐장수인 백달원에게 유아부보상지인장(唯我負褓商之印章)이라고 새긴 옥도장을 하사하며 부보상을 관리하는 임방이라는 조직을 만들게 해주었고, 그 임방을 통해 보부상이 조직화 되고, 조선 팔도의 물류를 담당하게 되었다는 아주 긍정적인 이야기들이 방송에서 여러 번 나왔었다.
하지만, 실제 그 안을 들여다보는 역사학자나 프로그램은 없었다.
태조 이성계와 성공한 상인 백달원의 에피소드에만 중점을 두었지, 그 이후 만들어진 보부상들의 폐악에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거기다 병자호란 시절에는 인조가 남한산성으로 들어갈 때 보부상들이 식량을 운반하고 성을 방어하는 병사의 역할도 해내었기에 호란 이후에 인조가 전매권을 부여하기도 하였다.
태조 이성계가 백달원에게 어염(魚鹽)·수철(水鐵)·토기(土器)·목물(木物)에 대한 전매를 주었고, 다시 인조가 전매권을 주었는데, 이 전매권으로 인한 문제가 조선의 유통 발전을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소금은 종친들이 전매를 하고 있었고, 젓갈인 어염과 도자기류인 토기, 나무로 만든 그릇들과 쇠로 만든 못이나 철괴를 보부상들이 전매하고 있었으니 그것들을 제외한 물건이 뭐가 있겠는가?
화폐의 역할을 하는 승포 같은 직물을 제외하고는 생활에 들어가는 거의 모든 물건을 이 보부상들이 전매하고 있다고 보면 되었다.
오일장에 난전을 깔고 장사를 하려고 해도 보부상들이 전매하는 물품의 경우에는 아예 장사하지 못하게 막았고, 그러한 물건을 팔기 위해서는 그 지역을 담당하는 보부상회에 돈을 내고 허락을 받아야 난전을 깔 수가 있었다.
한마디로 보부상은 자신들 외에 서민 자본 층을 바탕으로 클 수 있는 상인들을 성장하지 못하게 막았던 것이었다.
현대로 치면 조선 반도를 가두리 양식장으로 여긴 것이었다.
다른 상인 세력이 크지 못하게 막고 조선의 유통을 흐르지 못하게 막아 이익을 얻는 양식장으로 조선을 여겼던 것이었다.
물론, 그들로 인해 강원도 산지나 함경도 일대의 변방까지 하삼도의 물건들이 올라갈 수 있었다는 공이 있지만, 그 공(公)보다는 다른 상업 세력을 발전하지 못 하게 한 과(過)도 무시 못 할 만큼 컸다.
실제 이들로 인해 조선의 상업자본이라 할만한 만상, 경상, 내상 같은 큰 상인 조직들은 전매에 포함되지 않는 홍삼 무역을 바탕으로 중국과 외국의 자본을 바탕으로 성장했던 것이었다.
만약, 이 보부상들에게 전매권이 없었다면, 누구나 오일장에서 난전을 펼쳐 상업을 할 수 있었을 것이고, 민족 자본이라고 할 수 있는 상인 세력들이 더 빨리 나왔을지도 몰랐다.
그리고, 그 보부상들이 돈이 될 것 같은 본자기도 자신들의 전매에 포함된 토기라며 한번 찔러본 것이었다.
“부보상은 쉽게 볼 수 있는 놈들이 아닙니다요.”
소금을 떼서 팔던 금산은 자신이 직접 등짐을 지고 부보상들과 함께했었기에 그들을 잘 알고 있었다.
“본자기가 돈이 되는 물건이라는 걸 알았으니 조만간에 상투가 찾아올지도 모릅니다.”
“상투?”
“보부상의 대가리, 우두머리를 말하는 것입니다요. 그 있잖습니까? 물건값을 가장 비싸게 사는 것을 상투 잡혔다 라고 하는 것처럼 가장 비싼 물건을 거래하는 부상(負商)을 상투라고 합니다요.”
“그렇다면 물건값을 상투 잡히는 건 싫어 하겠구만.”
“그렇습니다요. 아마도 가격을 엄청나게 후릴 것입니다요.”
“흠. 그런데 금산이 너는 왜 보부상이 되지 않고 소금 장수가 되었던 것이냐?”
“보부상들이 다루는 전매 물건을 사고, 팔려면 보부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채장이라는 것을 사야 하는데, 그게 비쌌습니다요. 제가 알아봤을 때는 거의 백미 한섬의 가격이라 보부상이 되고 싶어도 될 수가 없었습니다요.”
“보부상이 되려면 쌀 한 섬이나 필요했다고? 허허. 진입장벽을 정말 높게 쳐서 들어오지를 못 하게 한 것이구나.”
“네. 그래서 소인도 소금 장수로 돈을 벌어 보부상에 가입하려고 했었습니다요.”
보부상이 조선의 개국에 도움을 주었고, 그 이후 조직이 다져졌으니 그 조직의 힘이 상당할 수밖에 없을 것 같긴 했다.
문제는 이런 강한 조직이 태클을 걸면 헤쳐나갈 방법이 몇 가지 없다는 것이었다.
관리이기에 실세인 신숙주나 한명회를 움직여 방어를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이 보부상 놈들이 괜히 춘봉 가패나 나중에 문을 열 가게에 와서 행패를 부릴 것 같았다.
청계천 거지 놈들처럼 한번 뿌리를 뽑으면 되는 놈들이 아니라, 전국 팔도에 퍼져 있는 놈들이라 적으로 삼게 되면 그 뒷감당이 아주 귀찮을 것 같았다.
이놈들을 처리하려면 아예 뿌리를 뽑아야 했는데, 태조 이성계를 높게 치는 조선의 관료들이 이성계의 목숨을 구해주고 했던 임방과 척지지 않으려고 할 터였다.
호조판서 구치관만 해도 그들의 폐악을 알기에 네게 귀띔을 먼저 해준 것이었다.
이야 이거 산 넘어 산이 아니라, 산 넘어 양아치 조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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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보상(褓商)과 부상(負商)을 총칭해 보부상이라고 하는데, 보상은 주로 기술적으로 발달 된 정밀한 세공품이나 값이 비싼 사치품 등의 잡화를 취급한 데 반하여, 부상은 조잡하고 유치한 일용품 등 가내수공업품을 위주로 하였습니다.
그래서 보부상, 부보상 바꾸어 불러도 같은 말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