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18화 (118/327)

118. 국영기업을 윤허해 주시옵소서. (2)

좌찬성 김국광의 말이 내수사라서 법도에 맞지 않아 안 된다고 하는 말 같았지만, 그 행간에 숨은 뜻은 내수사가 부유해지면 왕권도 강해지는 것이기에 안된다는 말이었다.

‘역시 손녀사위가 했던 말 그대로 구나. 양성지가 내수사의 기책을 내면 왕권이 강화되는 것을 반대하는 신료가 나올 것이라더니 정확하구나.’

신숙주는 그런 신료들의 행동까지 내다보는 똘똘한 녀석을 손녀사위로 삼았다는 것에 기뻤다.

보통은 중종반정(中宗反正) 이후 권력을 잡은 훈구세력들이 득세하며 이후 왕권과 신권의 대립이 심해지기 시작했다고 알고 있지만, 실제로는 예종 때부터 왕권과 신권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고 봐야 했다.

정통성이 없는 세조가 왕이 되며, 자신을 도운 공신을 우대해준 결과 한명회를 필두로 하는 훈구세력의 결집이 이루어졌었다.

세조가 말년이 되어 그러한 노신들이 아들인 예종에게 부담이 되리라 생각하여 구성군 이준과 남이 같은 종친들을 신경 써서 키웠다.

허나, 세조의 그러한 노력은 예종의 질투심과 종친의 반란에 대한 두려움으로 예종이 즉위하자마자 종친 세력을 없애버렸다.

예종 또한 남이를 죽이고, 구성군 이준을 귀양 보내고 나서야 궐에서 자신의 세력이 되어줄 사람이 없다는 걸 깨닫고는 자신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좌찬성 김국광은 예종의 이러한 행동들을 잘 알고 있었기에 더 이상 왕권의 힘이 강해지는 것을 우려하여 반대하는 것이었다.

이 행간에 숨은 뜻은 신숙주도 알아들었고, 미리 언질을 듣지 못한 한명회나 홍윤성, 윤자운 등도 알아들었다.

하지만, 신숙주는 이에 대한 대응책도 이미 원종에게 들어 알고 있었기에 마음 편히 있었다.

“신 양성지이옵니다. 내수사에서 전적으로 모든 것을 다 맡아 하는 것이 문제라면, 내수사에서 절반을 맡아주고, 나머지 절반은 궐 밖에서 절반을 모아 새로운 조직을 만드는 것은 어떠한지요?”

“궐 밖에서?”

한명회는 왕의 사조직이나 마찬가지인 내수사가 궐 밖에서 다른 세력과 합쳐서 뭔가를 한다는 게 말이 되는 일인가 싶었다.

그리고, 양성지의 말에 뭔가 떠오를 것 같았지만, 명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러다 양성지의 말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며 신숙주가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눈치챌 수 있었다.

‘옳거니. 신숙주가 늘 이야기한 상업 진흥 세력을 내수사와 붙이려고 하는구나. 그렇다면 손녀사위인 그 녀석이 참여하게 되겠군. 어디보자...’

한명회는 양성지의 말처럼 밖에서 구한 절반의 세력에 자신의 것을 넣을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봤다.

그리고, 이 새로 만들어지는 조직이 잘된다면 그 이득의 반은 왕이, 나머지 이득의 반은 신료들이 나눠 가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결론을 내렸다.

“공조의 양성지 대감의 말이 참으로 기책이구랴.”

영의정 한명회가 나서서 이야기하자, 신숙주는 자신이 나서기로 한 순서를 놓쳐 난감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한명회의 말을 듣고는 그냥 웃으면서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내수사가 만든 조직에 궐 밖의 송상과 같은 상업조직들을 참여시키게 되면 그들이 들여오는 사치품까지도 내수사에서 조정을 할 수 있게 되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사무역을 막는 명분이었던 조선의 재물이 유출되는 것도 막을 수 있는 기책이옵니다.”

“흠. 내수사가 주체가 되어 만드는 상단이기에 관에서 조절을 할 수 있다는 것이로군. 사신단을 통하지는 않지만, 내수사를 통하는 무역이니 중국에 이야기하기도 좋겠군. 참으로 기책이로다. 내수사를 통한 관무역 조직을 만드는 것으로 하겠다. 이런 제안을 한 양 판서는 조선의 제갈량이라 불릴 만하오.”

“망극하옵니다.”

양성지는 자신이 만든 생각이 아니었기에 진짜 망극했다.

“중국인들 말에 능통하고, 많이 다녀온 좌의정이 이 일을 맡아주시오.”

“네 전하. 모두에게 이익이 생길 수 있게 상행단을 준비해 보겠사옵니다.”

모두에게 이익이 생길 수 있게 준비하겠다는 신숙주의 말을 듣고는 그제야 신료들도 한명회의 말을 곱씹어 봤다.

그리고 이 상행단의 절반을 이루는 궐 외부의 조직에 자신들도 끼어들 수 있겠다는 것을 깨달았다.

좌찬성 김국광도 아둔한 이가 아니었기에 왕권의 힘이 강해지는 만큼 신료들의 부도 늘어날 수 있는 일이라 더 이상 반대하지 않았다.

그렇게 왕권과 신권 서로 이익이 되는 상행단 조직을 만드는 것이라 일은 금세 진행되기 시작했다.

***

“영성군 최항 대감과 창녕군 조문석 대감도 내수사 상행단에 참여하고 싶다고 찾아왔었사옵니다.”

신숙주의 심복인 곽정효는 며칠 동안 찾아오는 양반들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뛰어난 도자기를 중국에 공식적으로 팔고 물건을 사 올 수 있는 상행단이 생긴다는 소문이 금세 퍼진 것이었다.

“송상의 대방 박석주가 어르신을 만나 뵙고 싶다고 저화(楮貨)로 천 냥을 두고 갔습니다. 독대를 요청해 왔습니다. 육의전의 상인들도 어떻게든 끼어들고 싶은지 어르신과 만나게 해달라고 매일 방문하고 있습니다.”

“허허. 돈 좀 있다는 신료들은 물론이고 상인들도 다 뛰어들었구먼. 돈 냄새를 맡았어.”

“전 제조가 진상한 본자기를 직접 본 자들이라면 모두 같은 생각을 할 것이옵니다요. 그런 귀물이라면 중국에 가져가기만 해도 큰 이익을 볼 수 있으니 내수사의 상행단에 끼고 싶어 하는 것이옵니다요.”

“그럼, 송상 대방 박석주는 이틀 후에 보자고 하거라.”

신숙주는 이렇게 상행단에 끼고 싶어 하는 자가 많아질수록 기분이 좋았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이 일을 기획한 손녀사위가 상행단에 끼고 싶다고 아예 이야기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책임자이기에 알아서 챙겨주겠지 하는 생각인가 싶어 원종을 불러들였지만, 전혀 뜻밖의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나왔다.

“저는 내수사의 상행단에 낄 생각이 없사옵니다.”

“아니 왜? 그렇게 되면 저 귀물을 만들고, 상행단을 만들게 한 것에 대해 이익이 없지 않은가?”

“그렇게도 볼 수 있지만, 가장 큰 이익은 제가 볼 것입니다.”

“그게 무슨... 아! 본자기를 만들어 내는 것이 너였으니 가장 큰 이익을 가지는 것도 너이겠구나. 아하하.”

신숙주는 그제야 다들 내수사 상행단에만 정신이 팔려있지, 그 본자기를 만들어 내는 분원에 대해서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다들 본자기를 중국에 들고 가 이익을 취할 생각만 하고 있사온데, 상행단도 팔 물건이 없으면 기존의 사신단을 따라가는 행상과 별 차이가 없는 것이옵니다.”

“맞다. 하지만, 그걸 다른 이들도 조만간에 깨닫게 될 것이다. 그걸 지켜낼 수 있겠느냐?”

“사옹원 분원을 제가 계속 책임질 수 있게만 해주시면 되옵니다. 3년만 지켜낼 수 있으면 도공들의 부역이 끝이 나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분원을 다른 이들에게 넘겨 주어도 됩니다.”

“그렇게 되면 기술을 가진 도공은 모두 네 휘하에 있겠구나. 음. 좋다. 아예 본자기를 만들어 낸 공(功)을 들어 분원을 사옹원에서 떼어내고 별직으로 만들도록 하겠다.”

“그렇게 해주시면 더 좋습니다.”

“양반들은 공(工)의 일이니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증을 느끼긴 하겠지만, 그렇게 따져 묻거나 찾아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송상 같은 상인들은 다를 것이야.”

“물론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관의 힘이 있으니 그들도 은근히 알아보기만 할 것입니다. 그것보다는 진상품보다 품질이 떨어지는 본자기들이 시중에 유통될 때, 그때 문제가 되지 않게 이야기를 잘해주십시오.”

“이미 거기에 대한 대책도 있겠지?”

“물론입니다.”

물음에 대한 대답이 시원시원하게 나오자 신숙주도 아주 만족스러웠다.

***

신숙주의 주도로 조선상관(朝鮮商館)이라는 현판이 건물에 내걸리게 되자, 그제야 일반 사람들도 사신단 외의 상행단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상인들은 사무역이 허용될지도 모른다는 말에 기대를 가졌으나 나라에서 인정한 일정 규모의 재물이 없으면 아예 상행단에 끼지도 못하고, 그 품목 또한 관에서 정해준다는 것이 알려지자 금세 기대를 접었다.

하지만, 문병과 접시, 잔이 한 조(組)로 되어 있는 본자기 세트가 시중에 풀리기 시작하자 그 화려함에 놀라고, 그 본자기를 전문으로 무역하는 상행단이 조선상관이라고 알려지자 다들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진상품에 비교해서 좀 떨어지는 제품이라지만, 한 조(組)에 백미 10섬인데도 놔두었던 10조 모두 판매되었습니다.”

얼떨결에 공랑 점포를 맡아 장사를 하고 있던 사냥꾼 출신 달유는 그릇 도자기가 이리 비싸게 팔릴 줄 몰랐기에 깜짝 놀랐다.

그리고, 그 값으로 받은 쌀이 곡식 창고에 가득 차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다음 본자기는 모두 팔지 말고 한 조를 남겨 점포에서 전시하게. 그래야 전시품을 보고 다른 이들도 가지고 싶다고 생각할 것이야.”

“네. 알겠습니다요. 그럼 다음 물건은 언제 오는 것입니까요? 벌써 자신이 먼저 사고 싶다고 예약하고 싶다는 양반들이 많습니다요.”

“다음 달에 10개가 들어 온다고 이야길 하게. 많이 파는 물건이 아니기에 늘 수량이 부족하다고 이야길 하고.”

양반들은 집에 찻잔이나 접시, 문병이 없는 게 아니었다.

백미 10섬을 써가며 본자기 세트를 구매하는 것은 결국 보여 주기와 허영심 때문이었다.

뭐, 그것이 명품의 수요이긴 했다.

궁에 먼저 진상한 30개의 세트가 당상관 중에서도 높은 이들에게만 진상되었기에 이 세트를 가지지 못한 자는 비싼 돈을 내더라도 본자기 세트를 가지고 싶어 할 수밖에 없었다.

백미 10섬의 비싼 가격이라는 것을 다들 알기에, 이 그릇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재력을 과시할 수 있었고 본자기를 사서 쓰는 것이 자신의 위신을 세우는 일이었다.

“도련님. 그럼 저 쌀은 어찌해야 하겠습니까요?”

“절반은 내가 분원으로 가져갈 것이네. 나머지 절반으로는 잡곡을 사고, 말린 해산물이나 바다나물을 사서 쟁여놓게. 그래도 남으면 거지들을 데려와 먹이고, 의주로 상행하는 삼식이에게 사람을 더 붙여주게나.”

***

“진짜다! 저것 봐! 흰쌀이 달구지 한 가득이야!”

소달구지가 줄을 지어 분원으로 들어오니 도공들은 일하다 말고 뛰쳐나왔다.

“세상에! 진짜 갑조와 을조가 만든 그 본자기를 팔아서 저 쌀을 받아온 거라고? 못해도 50섬은 되겠는데.”

“오늘은 쌀밥이다! 쌀밥!”

도공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달구지에서 쌀을 내렸고, 자신의 몫이 얼마인지부터 따지며 쌀밥을 먹을 수 있다고 난리였다.

그날 저녁 이제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먹는 공탕이 나왔고, 도공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눈처럼 하얀 흰 쌀밥 밥상을 받았다.

가마의 불을 조절하는 화장(火匠) 칠복이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흰쌀 밥을 숟가락 가득 떠서 입 안에 넣었다.

방금 가마솥에서 떴기에 뜨거운 기운이 입안 가득 차는 느낌이 들었지만, 고소하면서 담백한 곡식의 기운이 열기와 같이 느껴졌기에 이 뜨거운 열기마저 좋았다.

그리고, 씹으면 쌀알이 뭉개지며 뿜어내는 끈끈한 찰기에 혀가 놀랐다.

그 찰기는 씹으면 씹을수록 입에 달라붙어 맛을 내었는데, 목구멍으로 삼키기가 싫을 정도였다.

이러한 쌀밥의 풍성한 느낌을 칠복이만 받는 게 아니었다.

“진짜 입에 착착 달라붙는구먼. 이래서 양반네들이 흰쌀밥 흰쌀밥 하는 거였어.”

“이러니 잡곡이 싸고 쌀이 비싼 것이겠지. 이제 난 죽어도 여한이 없다. 흰 쌀밥을 이리 고봉 가득히 먹었으니 죽어도 때깔이 좋을 거야.”

“쌀밥 먹고 배 터져 죽을 걱정하는 게 웃기구만. 우리가 이런 호사를 누릴 줄 어찌 알았나. 부역 와서 굶어 죽지나 않을까 걱정했는데.”

“하긴 부역 와서 고깃국물에 쌀밥을 먹는다니... 그런데, 이걸 나만 먹어도 되나...”

“우리 어매는 밥이나 드시고 있을랑가 그 짝에는 이제 보릿고개가 왔을 터 인디.”

처음 쌀밥을 먹을 때는 다들 처음 먹어보는 흰쌀밥에 기분이 좋았고, 이런 호사를 혀가 느낀다며 다들 웃어 대며 밥을 먹었었다.

하지만, 본인들의 입이 즐거운 만큼 고향에 있는 가족들의 입도 즐거운지 걱정이 되기 시작하자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금세 눈물 섞인 쌀밥을 먹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이제 여기에 먹을 것이 많고 한데, 가족들을 여기에 데리고 오면 안 되는가?”

“부역이 3년 넘게 남았는디, 내 새끼들 얼굴도 못 보고... 우씌...”

“우리 처지를 잘 생각해 주시는 저 어린 양반은 가족들을 데리고 올 수 있게 해주지 않으실까?”

“칠복이 너 갑조지? 갑조는 저 양반 나리와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게 있지? 그러면 한번 물어봐 주면 안 되냐? 너는 갑조니깐 건방지다고 해도 뺨이나 한 대 맞고 말지 쫓아내지는 않을 거 아녀.”

“그래, 그래. 화장으로 돌 숯 다루는 기예가 있으니 안 쫓아낼 거 아니냐. 한번 물어나 봐다오.”

칠복이는 사람들의 성화에 어쩔 수 없는 것도 있었지만, 집에 계시는 나이 든 노모에게 고깃국과 쌀밥을 드시게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부역 온 천한 놈이 기어오른다고 경을 칠 수도 있겠지만, 가진 기예를 믿고 한번 물어보기로 했다.

***

“응? 가족을 분원으로 데리고 오고 싶다고? 그럼 나야 좋지. 너 고향이 어디냐?”

“단양이 고향 이온데, 정녕 노모를 데리고 와도 되는 것이옵니까?”

“그럼. 아예 가족들 다 데리고 여기로 이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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