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17화 (117/327)

117. 국영기업을 윤허해 주시옵소서. (1)

“손잡이 잔도 백골토로 만드니 확실히 때깔이 좋구만. 그런데, 초벌구이 후에는 손잡이 잔은 따로 다 빼라고 했다고?”

“그 도화원에서 화공들이 와서 손잡이 잔에 그림을 그린다고 하더군. 총천연색을 써서 여기에 미인도도 그려 넣고, 산수화도 그려 넣는다고 하더군.”

“여기에? 이 작은 잔에 왜 그렇게 그림을 넣는데?”

“그야 모르지. 그 한양에 있는 가패라는 차를 팔고 빵이란 걸 파는 거기서 쓴다고 하던데.”

“허참, 별 희한한 걸 많이 만드는구먼.”

“난 불상에 붙이는 금, 은을 도자기에 입히는 게 더 신기하던데. 진짜 금으로 도자기를 만든 것 같아서 하나 훔쳐서 팔까도 생각했다니깐.”

“아서라. 그렇게 백골토로 만들고 금박, 은박을 붙인 도자기는 아래에 숫자도 써넣어 몇 번째 만들어진 것인지도 확인한다고 하더라고.”

“하긴, 귀한 것이니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

“대신에 서른 번째 이상으로 만들어진 것은 팔아서 우리들에게 나눠준다고 하던데.”

“정말? 그럼 이번엔 진짜 백미로 수익을 받는 거 아녀? 나 흰쌀만 들어간 밥은 한 번도 먹어 본 적이 없는데. 이번에는 기대하면 되는 것이여?”

“오! 그러고 보니 진짜 백미로 수익을 나눠주면 흰쌀로만 밥을 한번 해 먹어 보자.”

도공들은 일하면서 흰쌀밥을 먹을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일이 고된 것을 잊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힘들게 만들어낸 본자기(本瓷器)는 나무 상자에 담겨 궁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오! 이건...”

“어찌 이런 빛깔이 나는 것이지? 진짜 금을 넣은 것인가?”

예종이 집무를 보는 편전(便殿)으로 가기 전에 소주방(燒廚房 궁의 음식을 만들던 건물)으로 좌의정인 신숙주와 공조판서인 양성지를 불러 먼저 도자기들을 보여주었다.

현시대에서 가장 식견이 뛰어난 신숙주와 양성지도 이렇게 표면이 희고 금박을 넣은 문병이나 접시는 처음 보았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제가 사옹원 분원을 맡아 일하며 만들어낸 귀물(貴物)이옵니다.”

“이걸 만들었다고?”

공조판서인 양성지는 이런 물건을 만드는 것에도 관심이 많았기에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전하께 올릴 물건은 따로 있으니 만져보시고 들어서도 보셔도 됩니다.”

“어어? 이거 왜 이리 가벼운 것이지? 이런 문병이라면 훨씬 더 무거워야 하는데. 어떻게 이렇게 가볍지? 이 바닥에 글씨와 이건... 그 숫자라는 거로군.”

양성지는 가패에서 한번 보고 배웠기에 아라비아 숫자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번에 가벼운 백토를 찾아내어 만들었기에 기존의 도자기보다 가볍고, 잘 깨지지도 않습니다. 그 숫자는 몇 번째 생산되었는지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한 개의 모양으로는 서른 개 이상을 만들어내지 않을 것이옵니다.”

“아니 왜 더 이상 만들지 않는다는 건가? 이렇게 멋지고 좋은 것은 더 만들어야지. 아! 만들 재료가 부족한 것이로군. 하긴 이 금을 생각하면 한두 푼이 아니겠어.”

“판서님의 말도 맞지만, 그것보단 희소성을 위해서 그 이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옵니다.”

“희소성?”

“네. 무한정으로 같은 것이 있는 것보단 숫자가 정해진 한정 수량만 있어야 귀물을 가진 이가 더 즐겁지 않겠습니까?”

“그렇지. 그래야 더 가치 있는 귀물이 되는 것이지. 범 가죽이 왜 가장 가치 있는 가죽이겠나? 잡히는 범이 몇 마리 없으니 그 가치가 상승하는 것이지. 산삼도 인삼과 달리 1년에 한두 뿌리만 나오기에 비싼 것이지.”

신숙주는 상업에 대한 지식이 있었기에 한정 수량 생산의 의미를 알고 있었다.

“네. 맞습니다. 똑같은 물건 없이 세상에 단 1개만 있다면 가장 가치가 높은 것이고, 10개가 있다면 그 1개의 가치가 10개로 나누어지는 것이니 세상에 단 1개만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 물건은 깨지면 큰일 나겠구만.”

“네. 전하께 올리는 도자기는 단 1개만 만들어진 것이옵니다. 지존(至尊)의 물건이라고 이름 붙였습니다.”

“지존의 물건이라. 당장 보고 싶구만. 어서 편전으로 가세. 상선은 들어와서 물건을 들게나.”

“편전으로 가기 전에 제가 두 분께 부탁이 있어 이리 먼저 뵙자고 한 것이옵니다.”

“부탁? 뭔가? 말해보게. 이런 귀물을 만들어내었으니 내 들어 주겠네.”

“네, 양 판서님. 이 도자기들과 관련된 문제이옵니다. 우선은 편전에서....”

신숙주와 양성지는 한참이나 내 이야길 들었고, 궁금한 것은 서로 되물어 가며 의견을 조율했다.

상업에 대해 긍정적인 신숙주는 내 아이디어에 흔쾌히 찬성했지만, 양성지는 한참이나 고민하다 조건을 내걸고 찬성해 주었다.

***

“오오! 이것이 세상에 단 하나만 있다는 지존의 물건이라고?”

예종은 문병을 보는데, 병 입구가 금박으로 둘려 있고, 그 아래로 금색 줄이 흘러 내리듯이 입혀져 있자 그 휘황찬란함에 놀랐다.

도자기의 색이 상앗빛처럼 희었기에 금색이 더 돋보이는 것 같았다.

나무 상자에 같이 들어 있는 그릇과 사발, 접시까지 일일이 꺼내 보니 이제까지 보았던 도자기들과는 비교하기 미안할 정도의 도자기였다.

“전하. 접시를 들고 해를 보시면 접시를 뚫고 해가 보이실 것입니다.”

“그래?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것이지?”

예종은 접시를 들고 편전 밖으로 나가 하늘의 해를 향해 접시를 들자, 진짜 접시를 통해 해가 보였다.

“허허. 얼마나 얇게 만들었기에 접시를 통해 해가 보이는 것이냐? 손으로 만져보니 종이처럼 얇은 것도 아닌데, 신기하구나. 상선. 이것을 만든 도공을 부르거라. 내 친히 상을 내리겠다.”

“전하 이미 앞에 있사옵나이다.”

“응? 그게 무슨 말이냐? 설마, 전 제조가 이걸 만들었다는 것이냐?”

“실제 손으로 만든 것은 사옹원 분원의 도공이오나, 도자기를 굽는 백토와 금을 입히는 방법은 제가 고안해 낸 방법이옵니다.”

“허허허. 전 제조가 재주가 많다는 것은 내 익히 알고 있었으나 이런 귀물까지 만들어 낼 줄이야. 저기 나무 상자를 보니 이런 것이 여러 개 있는 것인가?”

“네 전하. 대왕대비 마마와 대군마마, 그리고 정승, 판서에게 내릴 수량을 챙겨왔사옵니다.”

“이런 귀물을 이리 많이 만들었다면 거기에 든 재물이 상당하겠구나. 상선은 전 제조에게 소요된 재물을 확인해 보고 내탕금에서 챙겨주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허나, 전하의 소중한 내탕금은 종묘사직을 위해 쓰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옵니다. 그저, 분원에서 생산된 도자기들을 중국이나 왜국에 팔 수 있게 허락해주시옵소서. 중국과 왜국에 이와 비슷한 도자기를 만들어 팔게 된다면 물건을 만드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모두 충당이 가능할 것이옵니다.”

“사신단을 통한 것이 아니라 자유 무역을 허락해 달라는 말이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제가 고안해 낸 백토로 구운 이 물건은 도자기의 원조라고 하는 중국의 도공들도 만들어내지 못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사옵니다. 이 본자기(本瓷器)들이 중국으로 팔려나간다면, 중국으로 나가기만 하는 은을 다시 거두어들일 수 있을 것이옵니다.”

“흠.”

사실, 이때의 중국과 조선의 무역수지는 적자일 수밖에 없었다.

조선에서 중국으로 판매하는 물품 대부분이 인삼과 홍삼이었는데, 인삼이라는 작물이 1, 2년 재배해서 만들 수 있는 작물이 아니었다.

홍삼 또한 인삼을 쪄서 말리는 것이다 보니 전체적으로 그 수량이 한정되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인삼과 홍삼 다음으로 비싼 물건은 호피였는데, 이 호피도 잡을 수 있는 수량이 한계가 있었기에 수량이 부족했다.

꾸준히 생산해서 중국에 수량 제한 없이 판매할 수 있는 물건은 종이가 유일했는데, 문제는 몇만 장을 만들어 팔아도 그 금액이 인삼을 넘어설 수 없을 정도로 단가의 차이가 컸다.

조선 중기 이후 구증구포(九蒸九曝)의 대량 생산 기술이 만들어져 홍삼, 흑삼이 수출되며 한 번의 교역으로 은 9천 냥을 벌어오는 일도 있었다지만, 그전까지는 중국의 비단과 차(茶)를 수입해 오는 금액이 워낙 커 늘 적자였다.

물론, 명나라의 황제들이 진상품을 뿌려주었기에 어느 정도 만회는 되었지만, 중국과의 무역은 언제나 적자였다.

예종도 이 도자기를 중국에 판매한다면 중국으로 넘어가는 은을 어느 정도는 막아 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신단을 통한 무역이 아닌 사무역을 허락해 달라는 말에 골치가 아팠다.

“전하. 신 좌의정 신숙주가 아뢰옵니다. 선대왕들께선 중국이나 왜국, 여진과의 관무역만을 허용하고, 다른 사무역을 모두 막았던 것은 그 사무역으로 인해 조선의 재물이 외국으로 유출될까 싶어 막았던 것이옵니다.”

“좌의정의 말이 맞소. 사신단을 통한 공무역임에도 비단이나 옥 같은 사치품들이 엄청난 규모로 들어오니 막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오.”

“네. 맞사옵니다. 허나, 이 본자기라는 귀물은 그 반대의 경우와 같사옵니다. 중국에서 사치품으로 비단을 조선에 팔 듯이 본자기를 만들지 못하는 중국에서는 이 본자기를 사기 위해서 천만금을 쓸지도 모르는 일이옵니다.”

“천만금이라 너무 부풀리는 것이 아니오? 그리고, 이 본자기라는 것을 팔기 위해 사무역을 허용해 주면, 그 어떤 부작용이 일어날지 알 수 없다는 것이 내가 망설이는 이유요.”

“전하 맞사옵니다. 지금의 관 무역으로도 충분히 이득을 보고 있는데, 잘되고 있는 것을 바꾸어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사옵니다.”

좌찬성 김국광이 예종의 말이 맞다며 사무역을 허용해 주면 안 된다고 나섰다.

사실 김국광의 말이 맞았다.

관 무역에서도 사치품과 기호품의 수입으로 적자를 보는데, 이걸 열어주게 되면 얼마나 더 많은 재물이 빠져나갈지 알 수가 없는 것이었다.

나라를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사무역을 허용해 주기보다는 지금처럼 관 무역만 허용해 주면 되는 일이었다.

“전하, 신 양성지이옵니다. 그렇다면 관 무역의 변형은 어떠하온지요.”

“관 무역의 변형? 그건 무슨 말인가?”

“상인들이 마음대로 물건을 사고팔 수 있는 사무역을 열어주게 되면 재물의 유출로 조선의 경제가 힘들어질 수도 있을 것이옵니다. 허나, 그렇게 되면 저런 귀물을 그저 놔두고 썩혀야 하니 이것 또한 손해이옵니다. 그래서 소신이 생각한 것은 관에서 운영하는 상단을 만들어 그 상단만이 거래를 할 수 있게 관 무역의 변형을 주는 것이옵니다.”

“관에서 운영하는 상단? 정확하게 이야길 해 보게.”

아버지인 세조에게 자신의 제갈공명이라는 칭찬을 들었을 정도인 양성지였기에 그가 이야기한 관에서 운영하는 상단이란 것이 왠지 기책(奇策)으로 느껴지는 예종이었다.

“쉽게 이야기해서, 왕실의 재정을 관리하는 내수사(內需司)에서 상단을 만들어 무역을 하는 것이옵니다.”

양성지의 말에 예종은 물론이고 다른 대신들도 이게 무슨 말인가 싶어 다들 생각에 잠겼다.

“좋은 생각이외다! 왕실의 재산을 관리하는 내수사에서 만든 상단이 사신단을 통하지 않는 무역을 한다면 그것은 사무역이 아니라, 관 무역이 될 것입니다.”

신숙주는 미리 이야기했던 것처럼 좋은 방법이라고 양성지의 의견에 동조했다.

한 명은 세조의 제갈공명이라 불리는 자였고, 한 명은 중국과 왜국을 여러 번 다녀와 타국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정승이었다.

이 두 명이 가진 위상으로 말미암아 내수사가 만든 상단으로 관 무역을 하는 것이 좋은 생각이라고 여겨졌다.

하지만, 다시 좌찬성 김국광이 반대하고 나섰다.

“사무역을 풀어주지 않고, 관에서 만든 상단으로 무역을 하는 방법은 좌의정 말처럼 관리가 되니 기책이라 할 수 있사옵니다. 허나, 내수사가 주축이 된다는 것이 문제이옵니다. 내수사가 공식 직제를 갖추고는 있으나, 본래 내수사가 만들어진 것은 전조(고려)의 재산과 태조대왕의 본궁(이씨들의 본관을 높여 부르는 말로 여기서는 함경도 함흥지역을 말한다) 재산을 관리하기 위한 곳이라. 그 성격에 문제가 있사옵니다.”

신숙주는 김국광의 이 반대가 무역을 반대하는 것이 아닌 다른 것을 반대하는 발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

[작가의 말]

재미있게도 본차이나 라는 이름은 중국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이름입니다.

소뼈를 쓴다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 이런 이름을 썼다는 썰이 있습니다.

소뼈를 섞는 방법도 1800년도 초까지 50년 넘게 비밀로 지켜졌고, 그 이후 구운 소뼈를 넣어 굽는다는 것이 도자기 회사들에게 알려지며 너도나도 뛰어들어 본차이나를 만들었습니다.

글에서는 그냥 단순히 구운 소뼈 가루를 섞어서 만든다고 본차이나 기법을 쉽게 이야기했지만, 상당히 손이 많이 가는 공정이 들어가는 자기입니다요.

그래서 가격도 그만큼 비싼 것이기도 하구요.

하지만, 요즘은 차이나 라는 이름이 고급보다 저급을 대표하는 이름이 되다 보니, 본차이나의 유래를 모르는 사람들은 중국산 저가 도자기라고 단어를 인식하기도 합니다.

해서 본차이나 생산 업체들이 요즘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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