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14화 (114/327)

114. 명문가를 만들어라! (2)

분원에서는 늘 만드는 것만 만들어 수량을 맞춰 사옹원에 보내기만 하면 끝이 나는 일이었기에 새로운 도자기에 대한 연구나 개발을 할 이유가 없었다.

그저 얼른 부역을 끝내고 돌아갈 생각만 하는 것이었다.

더구나, 납품해야 하는 수량이 매년 늘어나고 있었지만, 부역에 따른 혜택은 전혀 없었고, 먹고살기 힘들어 도망치는 도공이 늘어나자 남아 있는 도공들은 그저 숫자를 채워내기에만 급급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이 이렇게 도공들의 피를 짜내며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을 때, 중국과 일본에서 생산된 도자기들은 대항해시대 배를 타고 유럽으로 흘러 들어갔고, 차 문화와 함께 유럽의 도자기 붐을 만들어 냈다.

그러다 영국 스포드(Spode)사에서 본차이나 기법을 만들어 내면서 선사시대 이후 그릇을 구워내는 기술을 선도하던 동북아 3국을 젖히고 유럽이 최고의 기술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1700년대 이후로 도자기의 브랜드화가 유럽에서 일어나며, 영국의 웨지우드(Wedgwood)나 덴마크의 로얄 코펜하겐(Royal Copenhagen) 같은 명품 브랜드가 세상에 나왔고, 이제 최고급 도자기는 유럽산이라는 말이 생겨났다.

1800년 말 미국의 레녹스(Lenox)가 만들어지고, 일본도 아리타(有田)나 니코트(NICOTT) 같은 그들만의 정체성을 가진 도자기 브랜드들이 만들어지며 대중화도 끌어냈지만, 한국과 중국의 도자기 산업은 전체주의의 침략에 따른 사회의 혼란으로 아예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

해방 후 1940년대 들어 행남자기나 한국도자기가 만들어져 기업화가 되기 시작했지만, 한국의 도자기는 세계 명품 도자기와 경쟁하기보다는 저가 도자기와 경쟁해야 하는 아쉬운 위치에 있을 뿐이었다.

원종은 이러한 사실들을 떠올리며 눈앞의 삐쩍 마르고 일에 지친 도공들을 보니 가슴이 갑갑했다.

요리를 내는 데 있어, 그 요리를 빛내주는 마무리 꾸밈은 결국 요리와 식기의 조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식기는 요리의 부가 재료나 마찬가지이자 동반자였다.

조선의 식기 제작 현실이 이렇다면 바꿔야 했다.

나야 주먹구구식으로 도공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고 머그잔을 만들어도 되었지만, 지금 바꾸지 않는다면 내가 알던 그 미래 그대로 조선의 도자기 사업은 바닥을 전전할 터였다.

지금 조선의 도자기 업계를 바꾸기 위해서는 현대화의 아버지라 불리는 ‘헨리 포드(Henry Ford)’가 필요했다.

***

“분원의 책임자가 되고 싶다는 말입니까?”

사옹원 재부(宰夫)인 이철희는 갑자기 찾아온 전원종이 사옹원 정(正)과 첨정(僉正)을 들러 잡직인 자신에게까지 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그가 가진 제조(提調)란 직위는 실무직이 아니라 자문을 위한 문관을 위한 벼슬이었고, 지금 이 어린 제조는 가수저라와 여러 요리를 자문하였기에 벼락출세한 양반일 뿐이었다.

그런 양반이 갑자기 실무를 맡고 싶다고 하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었다.

보통 도제조, 제조 같은 벼슬은 청요직을 거친 이들이 들렀다가 가는 벼슬이었기에 사옹원의 일에 사실 관여하는 이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옹원의 실무는 부제조와 잡직인 재부(宰夫), 선부(膳夫) 등이 책임을 졌는데, 갑자기 당상관이 분원을 직접 맡겠다고 하니 머리가 아파져 왔다.

‘이래서 정과 첨정도 내게 넘겨 버린 것이겠지. 그렇다면 어떻게 한다.’

이철희는 전원종이 온다는 말을 듣고 대충이나마 궐내의 내시나 사인들에게 물어보니 실세 중의 실세인 좌의정 신숙주의 손녀사위가 될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괜히 안된다고 하기보다는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는 게 좋을 듯했다.

“제조 어른. 그렇다면 서류 하나만 써주시지요.”

“무슨 서류인가?”

“사옹원에서 왕실에 쓰는 그릇과 자기를 확보하는 것에는 분원도 있사오나, 전국에 흩어져 있는 여러 관요에서도 공납과 진상으로도 받고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크고 직접 관리하는 곳이 분원인 것입니다. 가장 크고 중요한 분원을 제조 어른이 관리, 감독하게 되었는데, 공납으로 올려야 하는 숫자를 못 맞추게 되거나 하게 되면 큰 사단이 일어나게 됩니다. 해서...”

“사고가 나더라도 자네들이 안 다치고 내가 책임지겠다는 서류를 써달라는 것이로군.”

“송구스럽습니다.”

“그럼, 공납으로 올려야 하는 수량만 채우면 다른 건이 다 된다는 말이기도 하겠구만.”

“네. 땔감이 부족하여 분원을 옮기거나 백토를 들고 와야 하는 것은 소인들이 책임지겠사옵니다.”

“좋네. 책임과 권한을 확실히 하기에는 서류를 쓰는 것이 좋겠지.”

공증해줄 관원도 불러 서류를 썼고, 올해 만들어 공납해야 하는 목록도 받아왔다.

***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조를 만들라니요.”

“분원의 작업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 그런 것이니라. 내가 너희들을 보니 일이 분업화되어 있음에도, 일하는 사람만 일하고 있더군.”

“네? 그게 무슨 말인지.”

“옮겨온 백토의 불순물을 거르는 수비장, 그른 흙을 반죽하는 연장, 그리고 물레를 돌려 모양을 만드는 조기장과 수정을 하는 참역. 그리고 건조를 시키는 건화장, 그림을 그리는 화청장, 유약을 바르는 착수장, 불을 관리하는 화장과 감화장, 최종 확인을 하는 파기장까지 도자기를 한번 구워내는데, 10명이 필요하던데, 맞나?”

“네. 맞습니다.”

“헌데, 각각의 일을 맡은 사람들이 10여 명 있으면 일을 열심히 하는 자는 3~4명뿐이고, 다른 이들은 그저 눈치만 보고 어설프게 일을 하더구만.”

“저, 그것이... 가마에 불을 넣고 나면 쉬는 시간도 있고...”

“핑계 댈 필요 없네. 다 아네. 공정의 문제도 있다지만, 부역으로 온 것이기에 일을 해도 정당한 대가를 받지 못한다는 것도 알고 있네. 돈이 안 생기는 일에 열의가 생길 리 만무하지. 다 이해하네. 그것들로 자네들을 탓하려는 게 아니네.”

“아랫것들의 사정을 알아주셔서 감사합니다요.”

“그래서 조를 짜라는 것이네. 분원에 있는 가마는 9곳이네. 이걸 공동으로 운영하여 되는대로 자기를 넣어 구웠지만, 이제는 9개의 조를 만들어 각 조에서 몇 개가 생산되는지를 확인하려고 하네. 물론, 가장 많이 생산한 조에게는 그만큼 혜택이 있을걸세.”

말을 하며 뒤를 가리키자 곡식과 석탄을 실은 수레들이 줄을 지어 분원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우선 다들 소고기 곰탕으로 배불리 먹고, 각 조를 구성해 보지. 그리고 이건 내가 장담하지. 자기를 많이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부역을 끝내고 집에 돌아갈 때 백미 한 섬씩은 들고 갈 수 있을 것이네.”

***

조를 짜는 것은 의외로 쉬웠는데, 각 지방에서 온 자들이 고향에 맞춰 자연스레 뭉쳐진 것이었다.

조끼리 인원수가 맞지 않는 문제가 있었지만, 가장 작은 조를 기준으로 사람을 덜어내어 별도의 9조를 만들었다.

가마가 9개였기에 딱 맞았다.

“가져온 백토에서 불순물을 거르는 일에는 모든 조의 수비장이 나서야 하네. 흙을 반죽하는 단계부터는 각자의 요령이 있으니 안 되겠지만, 모든 이들이 같은 흙을 써야 하기에 수비장은 다 같이 일을 하는 걸세.”

양반이자 분원의 책임자인 내가 모범을 보인다고, 옷을 갈아입고 흙밭에 들어갔다.

가는 채로 백토를 몇 번이고 걸러 잔돌을 거두었고, 모판처럼 넓은 판에 백토를 길게 펴서 뭉치는 흙이 있는지를 확인했고, 불순물이나 크기가 큰 흙은 빼내었다.

그렇게 곱디고운 가루와 같은 백토만 남게 되자 흙을 반죽하는 연장들의 차례였다.

마치 떡처럼 뭉치게 백토를 만들어야 했는데, 손이 아닌 발로 둥근 원을 그리듯이 반죽을 했다.

그렇게 반죽으로 만들어진 백토는 발로 돌리는 물레 위에 올려져 조기장들이 그릇의 모양을 만들었고, 참역이 부족한 부분을 마무리했다.

이후 그늘로 옮겨져 건조하는 일을 건화장이 했고, 잘 마른 것들을 선별해 그림이나 글씨를 넣는 화청장에게 넘어왔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겼듯이 그릇 쟁이는 그릇을 남겨야 하는 법. 하지만, 이제까지는 자신이 만든 그릇을 다음에 봐도 자신이 만든 것인지 기억을 하지 못하는 일도 있으니, 아예 그릇의 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써넣게. 지금은 자신의 조 이름을 넣어야 하겠지.”

화청장은 그릇에 그림이나 시를 남기기는 했지만, 만든이의 이름을 넣는다는 것은 처음 보았다.

하지만,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법. 바닥에 ‘분원 경상’, ‘분원 충청’ 등의 조 이름이 새겨졌다.

이름이 새겨진 도자기는 유약을 바르는 착수장을 거쳐 다시 한번 건조되었고, 이제 가마로 들어가기 위한 모든 준비가 끝이 났다.

이 과정을 각 조끼리 진행을 했는데, 예전부터 고운 흙이 많이 나는 전라도 조의 경우에는 일주일 동안 300개를 만들었고, 함경도 조와 자투리 인원을 모아 만든 전국 조는 그 절반인 150개를 겨우 만들어 내었다.

숫자에서 차이가 나니 함경도와 전국 조 사람들이 침울해졌지만, 아직 그 결과를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분원을 옮기는 이유는 땔감이 고갈되어 옮겨가는 것인데, 이 옮겨가는 것에도 많은 물자가 쓰이네. 해서 이제는 땔감과 이 돌 숯을 같이 서서 불을 피울 것이네.”

가마의 불을 관리하는 화장, 감화장은 갑자기 돌 숯을 쓰게 되어 난감했지만, 땔감이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는 소리에 기꺼이 돌 숯을 사용해 불을 피웠다.

돌 숯을 써서 그런지 불 조절을 잘못해 도자기들이 터져 나가는 소리가 밤새 들렸지만, 이렇게 터져 나가는 불량은 현대에서도 생기는 일이었기에 터지는 숫자가 작기만을 빌었다.

“이번에 조를 짜고 구워진 도자기의 숫자를 세어 보니, 2천 개네. 조를 짜기 직전에 구워내었던 1,600개보다 숫자가 확연히 늘어난 것이네. 그래서 가장 많은 도자기를 구워낸 전라도 조에는 잡곡 다섯 섬을 내리겠네.”

“우오! 진짜 주는 겁니까?”

도공들은 잡곡 다섯 섬을 실제로 주자 깜짝 놀랐다.

“그리고, 많이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네. 다들 살펴서 가장 뛰어난 것들을 골라보게.”

아래 쓰인 이름은 못 보게 해서 가장 잘 만든 그릇을 선정하게 했는데, 의외로 평안도 조에서 최고의 품질이 나왔다.

그릇과 세병, 항아리까지 다들 평안도 조가 만든 것을 최고로 뽑았다.

“많이 만든 것도 좋지만, 이렇게 최고의 품질을 가진 것도 상을 줄 만하다. 평안도 조에는 잡곡 세 섬이다.”

“우와아!”

아무것도 받지 못할 거라 여겼던 평안도 조원들은 이게 웬 횡재냐며 뛰쳐나와 곡식을 챙겼다.

“사흘간 휴식을 줄 터이니 다들 배불리 먹고 쉬어라. 그리고 가장 작은 수를 생산한 함경도 조와 전국 조는 이리 오게.”

“저희는 그럼 치도곤을 당하는 겁니까요? 한 번만 봐주십시오. 이렇듯 상벌이 확실한 것을 알았다면 저희도 정말 열심히 했을 겁니다요.”

도공들은 상을 줬으니 이제 벌이 주어질 차례라며 두려워했다.

사실 상벌을 명확히 해서 지역팀으로 만들어진 조끼리 경쟁시키는 것만으로도 공납해야 하는 숫자는 채우고도 남을 터였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건 그냥 단순한 생산 수량의 증가가 아니었다.

“치도곤은 무슨, 다음번을 위해 연습을 하자는 것이네. 이거 보이는가?”

두 조에게 완성된 머그잔과 나무로 만든 모양, 그리고 빗다 말은 반죽을 보여주었다.

“네. 제조 어른 기억하고 있습니다요. 손잡이 잔을 만드시러 오셨다가 분원을 맡으신 것은 소인들도 알고 있습니다요.”

“그래. 사흘 휴식 후에는 이 손잡이 잔을 만들 것인데, 많이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겠네. 연장이 반죽한 반죽 덩이를 나무로 만든 안 틀에 넣고 이렇게 바깥 틀을 눌러주는 것이야.”

“오! 잔의 모양으로 딱 만들어져 나오는군요. 이러면 모양을 만드는 조기장의 일이 확 줄어들 것입니다요.”

“그래. 이렇게 틀로 찍어낸 몸체에 미리 길게 뽑아둔 이 반죽을 손잡이 모양으로 붙이는걸세. 손잡이 반죽이 두껍다면 절대 떨어지지 않네.”

“아, 제조 어른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신 겁니까요? 몸통과 손잡이를 따로 만들어 붙인다니.”

솔선수범한다며 도자기를 만드는 모든 과정을 겪어 보았기에 다들 한 개의 반죽에서 한 개의 물건을 만들려고 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뚜껑이 있다면 그 뚜껑도 조기장이 위에 부분을 뜯어 다시 만들었지, 이렇게 아예 따로 부분별로 만들어 붙인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따로 만들어 붙이게 되면 조기장이 한 번에 만든다고 시간이 걸리지 않을 거야. 물론, 마무리하는 참역의 일은 늘어나겠지.”

“참역의 일이 늘어 난다고 해도 속도는 더 빨라질 것입니다요. 틀로 찍어내고, 손잡이를 붙이는 것이 빠르면서 월등할 것입니다요. 이러면 다음에는 우리 두 조가...”

“하하하 다음 작업에는 1등과 2등을 뽑도록 하지. 그런데 말일세. 이 손잡이 잔 말고, 다른 그릇이나 항아리도 틀을 만들어 찍어내면 더 빨라지지 않겠나?”

내 말에 두 조의 조장들은 눈을 반짝였다.

*

[작가의 말]

사옹원 분원에 가장 사람이 많았던 성종 때에는 1200명의 도공이 있었다고 합니다.

조선 말에는 700여 명이었다고 하는데, 성종 때나 조선 말이나 납품해야 하는 도자기의 숫자는 비슷했다고 합니다.

결국, 관요의 운영이 불가능해져 폐쇄가 되었고, 강제로나마 이어오던 조선 도자기의 명맥이 이후로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관요를 나온 자들이 민요나 사요를 세웠지만, 소규모로 된 작은 공방 형태들이라 관요에 비해 수준이 떨어지는 제품을 만들어 낼 수밖에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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