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3. 명문가를 만들어라! (1)
달걀찜 속에 넣어둔 옥가락지를 채월이가 삼켜버린 것 같자, 처음에는 채월이가 작업 치는 것을 다 알고 그걸 피하려고 일부러 삼킨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련님. 왜 먹는 달걀찜에 먹지도 못하는 옥가락지를 넣은 것인가요? 저는 산딸기의 과실인지 알고 그냥 삼켰는데, 먹다가 제 목에 걸렸으면 큰일 날뻔하지 않았습니까요.”
큰일 날뻔했다고 토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는 채월이를 보니 내 연애 작업을 미리 알았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날벌레 마시기 작전도 그렇고, 지금 옥가락지도 그렇고 둘을 붙여주려고 해도 누군가가 방해하듯이 상황이 돌아가니 금산이와 채월이는 붙을 인연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그냥 사실대로 이야기해주는 게 맞을 것 같았다.
“어매일가노에 벌레 일도 그렇고, 옥가락지도 그렇고, 금산이와 너를 연결해주기 위해 한 일이다.”
“네? 설마, 그 날벌레가 들어간 어매일가노의 일을 도련님이 획책하신 거라고요?”
“그래, 채월이 네게는 미안하구나. 내 나름대로는 너와 금산이를 연결해 주기 위해 한일이었는데 헌데 잘 안되었고, 지금 옥가락지도 보니 둘이 연이 아닌 것 같구나.”
금산이도 연이 아닌 것 같다는 내 말에 쭈구리처럼 옆에 앉아서는 고개만 숙이고 있었다.
사실, 채월이도 관기생활을 하며 쌓인 눈치로 어느 정도는 알아채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섭게 생긴 금산이 부담스러웠지만, 신메뉴를 같이 먹고 품평을 나누고, 같이 오가며 대화를 해보니 금산이 무섭게 생긴 외형과는 달리 순수한 사람이라는 것도 알아차렸다.
실속 없이 거들먹거리는 남자들에 비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근래 참렬이와 자청이의 꿀 떨어지는 부부생활을 보며 내심 부럽기도 했었다. 채월이는 마음속으로 결정을 내렸다.
“사실 저도 이상스레 금산 씨와 저를 같이 불러 신메뉴를 먹이시는 도련님의 행동이 약간은 의심스러웠답니다. 그래도 이렇게 신메뉴를 먼저 맛보고 품평을 하고 하는 재미가 있었어요. 나쁘지 않았어요. 금산 씨 숙인 고개 드세요. 아직 끝난 거 아니에요.”
채월이의 말에 금산이의 목이 부러질 것처럼 들려졌다.
“혼인식 날짜를 잡는 것 같은 것은 아니라도, 도련님의 마음 씀씀이나 금산 씨의 순수한 마음을 보았기에 한 번 정도는 정분이 날 수도 있을 것 같네요.”
“네?”
금산이는 채월이의 말에 놀라 벌떡 일어났고, 자신도 모르게 채월이의 손을 덥석 잡아버렸다.
채월이도 금산이에게 갑자기 손이 잡히자 놀랐지만 잡힌 손을 빼지는 않았다.
“흠흠. 이거, 이러면 난 그만 빠져줘야겠구만. 둘이 저거 다 정리하고, 청소까지 하거라. 그러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 가패에는 천천히 돌아와도 되니 깔끔하게 청소하거라. 어흠!”
자리를 뜨며 다른 일꾼들에게도 저 둘을 방해하지 말라고 귀띔하며 물러나는데, 그때까지도 손을 마주 잡은 채 한참이나 서로 웃으며 보고 있었다.
“오! 도련님 저러면 잘 된 겁니까요? 옥가락지가 성공한 겁니까요?”
희재 녀석도 궁금했는지 와 있었는데, 둘의 잘된 모습을 보자, 저러면 쳇바퀴가 장난 아니게 돌겠는데를 연발했다.
“옥가락지는 실패였어. 그런데, 사랑에는 그런 작업이 필요 없는 것 같구나. 그저 진실하게 그 사람을 좋아한다면 그 마음이 전해져서 결실을 보는 것이었어.”
“도련님. 그럼 우리는 뭐를 한 겁니까요?”
“뭐하긴, 가패의 신메뉴 달걀찜은 건졌잖느냐. 하나 남았는데 이거나 먹거라.”
그리고 사흘 후 채월이는 내게 보란 듯이 왼손을 들어 보여주었는데, 검지에 옥가락지가 끼워져 있었다.
“오호, 금산이랑 잘되어 가고 있구나. 그런데, 채월아 너 주방에서 일할 때는 그 반지 꼭 빼야 한다. 그 덩과 함께 나온 거잖느냐.”
“아니! 도련님! 이거 깨끗하게 몇 번이나 씻었다구요!”
***
“멈추시오! 춘하추동 가패는 여인들만이 출입 가능한 곳으로 남자는 출입하지 못하오. 이곳에서 일하는 자들도 모두 여인일 정도로 철저하게 관리하니 물러나시오.”
의금부에서 평범하게 차와 식사를 준비하던 다모 청송댁은 이제는 각이 선 모습으로 남자 둘을 가패 입구에서 막아섰다.
여자 전용 가패라고 알려지지 않았을 때는 이런 일이 많았으나, 이제는 꽤 알려진 이후라 오랜만에 남자들을 막아선 것이었다.
더구나 오늘은 종친들만이 출입이 가능한 날이었기에 좀 더 엄격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남자가 아니외다.”
단, 세 마디의 말이었음에도 청송댁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분명 남자가 이야기하고 있는데 목소리가 가냘픈 것이 마치 변성기가 오지 않은 소년이 이야기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 그럼, 환관이시오?”
청송댁의 물음에 내시로 보이는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시오. 이제껏 환관이 가패에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들은 게 없다 보니.”
“우리는 괜찮으나 숙원(淑媛 후궁에게 내리던 종사품 내명부의 품계)께서 오신지라...”
“숙원 부인께서는 들어가시지요. 허나, 이 두 환관은 확인하여야 입장을 하실 수 있사옵니다.”
“오호호. 정녕 환관인지 확인한다라. 그럼, 어찌 확인하겠다는 건가? 바지라도 벗겨볼 것인가? 그리고, 안에서 기미는 누가 할 것인가?”
“기미는 따로 점원들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저희도 이렇게 환관분들이 오시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주인님께 물어보고 출입 여부를 확인해야 하옵니다. 사정을 봐주시옵소서.”
“흠. 처음이라니 어쩔 수 없겠지. 그럼 둘은 저 건너 탁자에 대기하게 할 터이니 저 둘에게 미인초나 내어주거라.”
“사정을 봐주셔서 감사드리옵니다.”
처음 환관을 보고 난처했는데, 다행히 문제없이 일이 풀린 것 같았다.
그리고, 숙원 이 씨는 물론이고 품계가 더 높은 공빈(恭嬪) 최 씨도 환관들을 대동해서 가패로 왔다.
이미 한 번의 경험이 있기에 청송댁은 모든 환관들을 길 건너 탁자에 앉혔다.
***
“머루 미인초 두 잔에 오미자 미인초 세잔. 가수저라 세 개!”
“미인초 잔이 없는데, 씻는 담당은 어디 간 거야?”
“잔이 없어요. 미인초 잔이 모두 다 나갔어요.”
“뭐? 잔이 없다고?”
다희는 미인초를 담아 나가는 손잡이 잔이 없다는 말에 깜짝 놀랐다.
얼른 채월이를 시켜 가게를 살펴보게 하니, 진짜였다. 종친들만 오는 종친의 날이었기에 비싼 미인초를 시키는 여자들이 많았고, 밖에서 대기하는 환관들도 다 미인초를 시켜 마시다 보니 잔이 부족했다.
더구나 한번 탁자에 앉은 여자들이 두 시진이 지나도 떠나지 않으니 30개의 손잡이 잔이 주방으로 돌아오지를 못했다.
어매일가노에 쓰이는 유기로 된 잔은 식초 성분인 미인초가 들어가면 색이 변했기에 대체할 수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찻사발에 미인초를 내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잔이 다르게 나오니 당연하게도 채월이 같은 서빙 담당들에게 불만이 쏟아졌고, 책임자인 다희가 나서서 수습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찻사발이지 않으냐? 여기에 미인초를 주다니 왜 나는 다른 잔인 것이냐?”
“죄송합니다. 잔이 모두 떨어지다 보니 어찌할 방도가 없었사옵니다. 마마님들의 불만에 사죄드리고자 새로 준비하고 있는 달걀찜을 올리겠사옵니다. 부디 이걸 드시고 화를 풀어주시옵소서.”
다희는 종친 여인들에게 채월이가 연습으로 만든 달걀찜을 내어주며 겨우겨우 무마를 시켰다.
생일이나 특별한 일이 있을 때 별도로 만들어 판매하려고 했는데, 서비스 음식으로 먼저 얼굴을 알린 것이었다.
대부분의 종친들은 신상 메뉴인 달걀찜의 부드러운 맛에 감탄하며 넘어가 주었지만, 내시와 함께 온 숙원 이 씨와 공빈 최 씨가 문제였다.
“기분이 아주 나쁘구나. 그리고 그 말은 미인초를 마시던 잔을 여러 사람이 돌려가며 마신다는 이야기가 아니더냐. 어느 년이 입을 대었을지도 모르는 잔을 내게 올렸다는 말이냐?”
숙원 이 씨는 미인초 잔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자 그제야 자신이 마시던 잔을 여러 사람이 같이 쓰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기분이 나빴다.
특히나, 공빈 최 씨 같은 백여시 년이 입을 대었던 것을 같이 썼다고 생각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장안의 화제라고 하기에 한 번 와보았더니, 수준이 참으로 바닥이구나. 어떻게 종친들에게 남이 썼던 잔을 내준다는 말이냐.”
화가 난 숙원 이 씨는 가수저라를 채 반도 먹지 않았음에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예종의 사랑을 두고 경쟁하는 공빈 최 씨도 여럿이 잔을 돌려쓴다는 말에 기분이 상했는지 춘하추동 가패를 떠나갔다.
***
“말을 듣고 보니 큰 문제인 것 같긴 하오. 달걀찜으로 다른 이들에게 양해를 구한 것도 적절한 대응이었소이다.”
오늘 큰 문제가 있었다며, 손잡이가 달린 미인초 잔이 더 있어야 한다는 다희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현대였다면, 일회용 종이컵으로 대처가 가능했을 테지만, 지금은 뚜렷한 해결법이 없었다.
닥종이로 만드는 일회용 컵도 생각해봤지만, 배보다 배꼽이 더 클 것 같았다.
“왕실의 후궁들이 나가자 따라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기에 궁에서 말이 돌면 가패의 영업에도 영향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흠. 알았네. 여유 있게 손잡이 잔을 만들도록 하겠네.”
처음 가패를 준비하며 머그잔을 만들 때는 그림으로 컵 모양을 먼저 그리고, 목장이 먼저 나무를 깎아 머그잔을 만들었었다.
그리고, 그걸 들고 사옹원의 도기 담당 사령(使令)에게 가서 생산을 부탁했었다.
문경의 내 사람들에게 생산을 시켜도 되었지만, 거리라는 장애물이 있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이번에는 대량으로 몇백 개를 생산해야 했기에 경기도 광주에 있는 분원(分院)으로 향했다.
***
“이 손잡이 잔에 그림을 넣어 달라는 말입니까? 헌데, 이런 건 처음 보는데.”
얼굴이 흰 수염으로 뒤덮인 노인은 처음 보는 형태인 머그잔에 난감해했다.
그리고 그 앞에 마주 앉은 원종도 마찬가지로 난감했다.
분명 여기에서 생산된 머그 컵 잔인데, 직접 생산했다는 자들이 없었다.
“여기서 만들어 갔는데, 왜 아무도 모른다는 거요? 도통 이해할 수 없구랴.”
“제조 영감 의무 부역 3년이 끝나 사기장들이 다 교체가 되었습니다. 아마도, 저 손잡이 잔을 만들었던 이들은 다 고향으로 돌아간 듯싶습니다.”
분원에 있던 사령(使令)의 말에 속이 더 답답했다.
“그럼, 부역이 끝날 때마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말이오?”
“새로 짜는 것은 별로 없습니다. 그저 예전부터 늘 하던 일이라 사람만 바뀌는 것이옵니다. 그릇이라는 게 특별히 바뀌는 것은 없지 안 사 옵니까?”
“그럼 내가 만들었던 이건?”
“아, 그것은 새로 형태를 잡은 것이기도 하고, 당시 사기장들이 한번 만들고 말 것으로 생각해서... 그리고, 이 손잡이 잔이 사옹원에 쓰이는 것은 아니라고 들었습니다만... 아닙니까?”
사령은 은근히 네가 사기장들에게 잡곡 좀 주고 따로 만든 것까지 분원에서 책임져야 하는 거냐고 꼽을 주고 있었다.
화를 내지도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사실, 사령의 말이 맞긴 맞았다.
내 개인 일을 위해 만든 것이었으니깐 반발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일로 평상시 궁금해했던 조선 도자기에 대한 의문이 풀렸다.
중국과 조선은 근대 이전에는 도자기의 강국이었다.
하지만, 현대에선 이름만 대면 알아주는 그런 명품 도자기 메이커가 없는 나라였다.
중국은 문화대혁명으로 비싼 자기를 팔던 자들이 처리되었기에 대가 끊긴 것이었으니 예외로 치고.
조선은 왜란과 호란 그리고, 사옹원 분원의 이런 근무방식으로 인해 명맥이 끊겨 버렸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