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그래 연애해서 애국해라! (3)
“햐아. 어떻게 이게 안 먹히지.”
현대 한국에서도 극찬을 들었던 카페 알바 결혼법의 필살기인 벌레든 음료 먹기였는데, 이게 이렇게 꼬일 줄은 몰랐다.
현대 한국과는 달리 조선 시대에는 날 파리나 하루살이들이 음식에 붙어있는 빈도가 높았고, 도시에서 곱게 자란 현대 여자와 조선 여자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필살기가 실패한 것이었다.
“도련님 그 무조건 된다는 백퍼 라면서요?”
“녀석아, 사랑을 만드는 것에는 백퍼였잖느냐.”
“그렇네요. 곡식 상 오 씨가 채월이의 화끈한 성격에 반해서 상사병에 걸렸다고 난리입니다요.”
“오 씨에겐 입을 잘못 놀리거나 엉뚱한 짓을 해서 채월이에게 찝쩍거리면 거래를 끊어 버리고 경을 치겠다고 경고하듯이 전하거라.”
“네. 단단히 타이르겠습니다요. 그럼, 이제 어떻게 합니까요? 금산이 장가보내기는 이제 끝입니까요?”
“끝은 아니다. 내가 장가보내주겠다고 약속을 했으니 보내주어야지.”
사실, 벌레 마시기 작전이 통하지 않았기에 이제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난감하긴 했다.
러브 액츄얼리처럼 스케치북 넘기는 거?
그건 어느 정도 교감이 먼저 있어야 통하는 거니깐 패스. 그리고, 이 시대 종이는 스케치북처럼 돌리기 힘들어.
그럼 우선 둘을 같은 탁자에 앉혀서 뭔가를 먹게 하는 것부터 해볼까.
“희재야. 옛날 방식으로 이번엔 해본다.”
“옛날 방식이라면... 아! 보쌈입니까요? 하긴, 금산이가 힘이 강해서 보쌈은 잘할 것 같긴 합니다요.”
“이놈아. 보쌈은 무슨. 남자가 여자에게 뭔가 먹을 것을 주고 같이 먹으며 정이 붙는 ‘밥정’으로 간다는 거다. 같이 밥을 먹고 이야길 하다 보면 정분이 나지 않겠느냐?”
“에? 그걸 어떻게 하시려고요. 가패 점원들도 밥을 먹을 때는 남녀가 분리되어서 먹지 않습니까요?”
아차, 그러고 보니 서로 마주 보고 밥을 먹다 밥정이 붙는 이야기는 독상 문화인 조선에선 불가능할 것 같긴 했다.
남자는 다들 독상으로 밥을 먹었고, 여자들은 따로 자리를 펴고 다 같이 먹었기에 뭘 같이 먹으며 정이 들 수가 없었다.
밥정을 붙이는 걸 쉽게 생각했는데, 남녀를 마주 보고 앉히는 것 자체가 난이도 높은 일이었다.
***
근 하루를 고민해서 어떻게든 둘을 마주 앉히는 방법을 찾아내었다.
“자 가패 신메뉴를 만들려고 하는데, 맛을 보고 품평해줄 사람이 어디 보자. 음. 지금 한가해 보이는 사람은 채월이와 금산이 밖에 없구나. 둘은 나를 따라오거라.”
아주 자연스럽게 둘을 데리고, 송목 거리의 집으로 움직였다.
“신메뉴로 생각하고 있는 것은 이 찻잔을 활용한 음식이다. 가장 인기 있는 어매일가노와 미인초는 각각의 전용 잔이 있기에, 본래 차를 마시는 이 잔들이 사용되지 않고 방치되고 있는 것이 아까워 활용해 보고자 하는 것이다.”
가패를 만들 때 차와 간식을 판매한다는 생각에 말차를 마시는데 필요한 찻사발과 녹차(엽차)를 마시는 찻잔도 구비를 해두었었다.
하지만, 가루차인 말차를 마시는 사람도 몇 없었고, 녹차를 잘 마시던 이들도 자연스레 어매일가노의 구수한 맛에 길들여져 마시다 보니 찻사발과 찻잔은 절반 넘게 방치가 되는 상황이었다.
“도련님. 찻잔에 달걀을 꺼내시는 것이면, 쌍화차와 비슷한 신메뉴입니까요?”
“아니, 음료가 아니라 찜 요리다.”
쓰이지 않는 찻사발과 찻잔으로 찜 요리를 한다고 하니 금산은 물론이고, 관기로 요리깨나 먹어본 채월이도 이게 뭐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인류 역사에서 우유와 함께 완전식품의 쌍벽을 이루는 달걀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디에나 쓰이고 자주 먹는 재료였다.
하지만, 달걀로 만들어 먹는 달걀찜은 의외로 동북아시아 3국이 거의 유일했는데, 이는 식기(食器)에 따른 이유였다.
달걀찜은 중탕이나 김으로 쪄서 만드는데, 이에 사용하는 그릇이 흙으로 구운 자기, 뚝배기여야 했기 때문이었다.
찻사발이나 찻잔은 도자기로 만들어진 것이라 달걀찜을 하기에 알맞았다.
물론, 가패에서는 뜨겁게 조리해서 내놓기가 힘들었기에 식혀서 낼 수도 있는 일본식 챠완무시(茶碗蒸し)를 하기로 했다.
“먼저 다시마를 우려서 국물을 내어야 한다. 이후 이 국물에 간장과 소금을 넣어 간을 하고, 달걀 두 개를 넣어 휘저어 주거라.”
주방을 맡고 있는 참렬이와 다희에 비해서는 조금 부족했지만, 채월이도 야무지게 내가 하는 것을 따라 했다.
“흰 거품이 날 때까지 골고루 풀어서 휘저었다곤 하지만, 그래도 달걀의 점막이나 찌꺼기가 남아있을 수도 있으니 고운 채에 한 번 걸러야 하니라. 그래야 찜이 예쁘고 부드럽게 나온다.”
채에 걸러 달걀 물처럼 되자, 그대로 찻사발에 달걀 물을 부었다.
“넓은 찻사발의 3분의 2 정도를 채우고, 그 위로 찻잔을 뒤집어 뚜껑처럼 씌우면 요리가 끝이 난다.”
“네에? 이리 간단한 것인가요?”
“뭐, 여기에 우유를 넣어 더 부드럽게 할 수도 있고, 다시 물을 우려내고 남은 다시마를 잘게 썰어 넣기도 하지. 갖은 채소나 해산물을 넣기도 하고. 하지만, 그렇게 하면 순수한 달걀찜의 맛은 사라져 버린다. 추가되는 재료의 맛에 달걀의 담백함이 사라져 버리는 것이지.”
맛의 비교와 두 사람이 서로 바꿔 먹고 할 수 있게 파와 다시마를 잘게 썰어 넣은 달걀찜도 추가로 만들었다.
큰 가마솥 안에 찜기 받침대를 놓고, 찻사발을 줄을 세워 넣었다.
“찔 때도 미리 강한 불로 달궈둬야 한다. 그래야 강한 열에 찻사발 안 달걀의 겉 형태가 먼저 익으며 모양이 잡힌다. 숫자를 1부터 100까지 셀 시간이 지나면 가마솥의 뚜껑을 반 정도 열어 열기를 빼고 약한 열로 반 각을 찌면 된다.”
가스 불이었다면 강한 불로 2분을 찌고, 다시 약한 불로 7분을 찌면 되었지만, 불 조절이 분 단위로는 거의 불가능했기에 솥뚜껑을 여닫는 것으로 열기를 조정하는 방법을 만들었다.
“솥뚜껑으로 온도를 조절하는 이유는 강한 불로 계속 찌개 되면 달걀이 부풀어 오르게 되고, 속에서 공기가 올라와 모양이 예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 온도와 시간을 잘 지켜야 한다.”
시간이 흘러 솥뚜껑을 열어 약한 불로 찌개 되자 제대로 익어가는지 달걀의 담백한 향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시간이 되었으니 이제 면장갑을 끼고 하나씩 꺼내보거라.”
금산이 꺼낸 달걀찜의 뚜껑을 살짝 열어보자 노란 겉면이 찰랑찰랑 거리 는 것처럼 부드럽게 만들어져 있었다.
“자 둘이 여기에 앉아 보거라. 어떠냐?”
숟가락을 들어 달걀찜을 살짝 떠보자 몽실몽실하게 떠지다가 녹아내리는 푸딩처럼 갈라져 버렸다.
“숟가락으로 들어 올리는 힘만으로도 부드럽게 갈라져야 제대로 된 달걀찜이라 할 수 있다. 달걀 왜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것부터 맛을 보거라. 그리고, 다시마와 파가 들어간 것을 맛보거라. 채소가 들어간 것은 한 개밖에 없으니 나눠 먹도록 하거라.”
“어머, 도련님 달걀찜이 마치 녹는 것 같아요. 입에 넣고 씹어 보려는데, 씹기도 전에 혀의 움직임만으로도 스르륵 녹아버려요. 선녀님들이 먹는다는 천도가 입에 넣으면 바로 녹는다고 하던데 이게 그거 같아요.”
채월이는 이러한 부드러운 음식은 처음 먹어본다며 눈이 동그래지며 놀라워했다.
“제대로 입에 들어갔는지도 모를 정도로 부드러워서 마치 공기와 물을 삼키는 것 같습니다. 채월이의 말처럼 천도가 있다면 이런 맛일 것 같습니다.”
금산도 너무나 부드럽다며 조심스레 달걀찜을 떠서 먹었다.
그리고, 내가 의도한 채소가 들어간 달걀찜은 서로 마주 보며 나눠 먹었는데, 금산이는 제대로 얼굴을 못 들 정도로 수줍어했고, 채월이는 그런 금산의 순진한 모습에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이거야. 이렇게 서로 눈빛이 오고 가고 수줍어하면서 정분이 생기는 거지.
“아무것도 들어가지 않은 것과 채소가 들어간 것을 비교해보면 어떠하냐?”
“아아! 죄, 죄송합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금산이 녀석은 채월이와 마주 앉아 달걀찜을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머리에 과부하가 왔는지 맛을 봐야 한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급하게 다시 채소가 들어간 달걀찜을 먹어보려고 했지만, 찻사발에 절반 정도 있던 달걀찜은 이미 채월이가 다 먹고 없었다.
“도련님 말처럼 파를 넣은 달걀찜은 파의 강한 향이 나서 달걀의 담백한 맛이 가려졌습니다. 부드러워 그냥 넘어갈 것 같은 식감은 같은데, 맛에서 이리 차이가 나니 호불호가 있을 것 같사옵니다.”
“그렇다면, 말린 굴이나 고기를 이 달걀찜에 올린다면 어떻겠느냐?”
“음. 그것도 달걀의 맛을 가리지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우선 오늘은 여기까지 하고, 고기나 말린 굴을 넣은 것은 내일 다시 맛보고 품평을 해보기로 하자구나. 금산이 네가 채월이를 가패까지 데려다주거라. 나는 여기서 할 일이 있구나.”
사실 할 일이 없었지만, 둘만의 시간을 보내게 해주고 싶어서 둘만 보냈다.
그리고 다음 날에는 아예 가패에서 송목거리의 집으로 둘만 오게 만들었고, 데이트처럼 앞뒤로 나란히 걸어 오가서 그런지 금산이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미리 준비한 가수저라 조각을 위쪽에 올려서 한번 쪄보고 오이를 채를 썰어 올려서도 쪄보자.”
그 외에도 달걀찜 위에 후추도 치고, 번데기, 말린 굴, 육포, 심지어 인삼 뿌리도 잘게 다져 올려 달걀찜을 만들었다.
그리고, 둘이 나눠 먹게 하면서 품평을 시켰다.
“도련님 육포를 위에 올리니 주객이 전도된 것 같습니다. 육포에서 나온 고기의 향이 달걀찜에 입혀지니 뭔가 고기 보양식에 달걀이 추가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인삼도 마찬가지입니다. 소인이 이런 귀한 음식을 먹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인삼의 약 향이 가득합니다. 쉽게 먹어보기 힘든 약선 음식 같았습니다.”
“가수저라를 올린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건 진상을 올려도 충분할 것 같았습니다.”
“저도 동감입니다. 가수저라에서 나온 단맛이 달걀찜에 스며들어 아주 고급스러웠습니다.”
그렇게 사흘 동안 달걀찜 위에 올릴 수 있는 것은 다 올려서 둘에게 먹이고 품평을 하게 하다 보니 자연스레 둘이 이야기할 거리가 많아졌고, 둘 사이의 대화에도 막히는 것이 없게 되었다.
***
“금산아 이걸 받아라.”
“도련님. 이게 웬 옥가락지입니까요?”
“너를 위해서 산 것이지. 내일 이 가락지를 달걀찜 안에 넣어서 쪄줄 것이니. 자연스레 달걀찜을 먹다 옥가락지를 찾아서 채월이의 손가락에 끼워주거라. 이제는 채월이와 이야길 해도 말 더듬고 하는 건 없지? 이젠 친해졌지?”
“친해진 것은 잘 모르겠으나, 이제 떨리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헌데, 이걸 왜...”
“녀석아. 이 반지를 네가 산 것처럼 해서 정인의 증표로 삼고 싶다고 해야지. 가락지를 채월이가 받게 되면 공식적으로 너희 둘이 연인이 되는 것이지. 이것도 가르쳐 줘야 하는 것이냐?”
“아! 노리개를 주는 것만 알았지, 옥가락지를 준다는 건 몰랐습니다요.”
“이리 신경 써주는 주인이 어디 있느냐 진짜. 너는 채월이랑 혼인하게 되면 내게 매일 절해야 할 것이다.”
“절만 하겠습니까요? 제가 업고 다니겠습니다요.”
“그래. 산딸기를 올린 계란찜 속에 옥가락지를 넣어 둘 것이니 재주껏 잘하거라. 장가 좀 가자!”
***
“자 이것은 산딸기를 위에 올린 것이고, 이건 말린 머루를 올린 달걀찜이다.”
계란찜을 내주면서 눈짓하니 금산이가 얼른 채어서 숟가락으로 크게 달걀찜을 퍼 올렸다.
하지만 금산이가 갑자기 머뭇거렸다.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 달걀찜을 다 먹고 난 이후 옥가락지를 찾아야 할지, 아니면 아깝더라도 달걀찜을 탁자에 놔두고선 옥가락지를 찾아야 할지를 고민했다.
도련님이 자신을 위해 특별히 해준 달걀찜을 탁자에 두고 옥가락지를 찾는 건 도련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입안 가득 산딸기가 든 달걀찜을 넣어 조심스레 먹었다.
‘응? 왜 옥가락지가 없지?’
금산이는 분명 산딸기를 올린 계란찜이었고, 도련님이 눈짓까지 해줬으니 여기에 옥가락지가 당연히 있을 거로 생각했다.
‘아차! 옥가락지가 무거우니 찻사발 아래에 있겠구나.’
금산은 급히 숟가락을 놀려 달걀찜 아랫부분을 퍼오려고 했으나, 이제까지처럼 달걀찜을 나눠 먹어 온 채월이가 숟가락을 놀려 크게 한입 먹고 있었다.
“아... 안 돼!”
“응? 왜요?”
“아, 아니. 뭔가 건더기가 없었소?”
채월이가 이미 달걀찜을 삼킨 것 같자 금산이는 마음이 급해졌다.
“산딸기 건더기가 있는 거 같긴 했는데, 그냥 술술 넘어갔어요. 왜요?”
당황해하는 금산의 모습을 보자 이거 일이 또 꼬였다는 걸 알아차렸다.
이야, 안되는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더니 금산아 너 그냥 혼자 살자. 안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