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11화 (111/327)

111. 그래 연애해서 애국해라! (2)

금산이와 약속한 것이 있다 보니 내가 사랑의 큐피드가 되어 나서줘야 했다.

사실 이 시대의 특성상 ‘채월이 너는 금산이와 같이 살거라!’ 하고 명을 내리면 채월이는 싫더라도 내 말에 따라 금산이를 지아비로 삼을 터였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동물의 짝 붙이기와 다를 바 없다는 생각에 차마 그렇게 강요할 수는 없었다.

채월이가 금산이를 특별하게 보게 되고, 그러다 둘이 자연스레 정분이 나서 연을 이었으면 하는 게 내 마음이었다.

금산이가 채월이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다 채월이가 지금 춘봉 가패의 홀 담당이었기에 쓸 수 있는 방법을 한번 써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방법에는 반드시 조력자가 필요했다.

“박복아, 언년아. 지금 일하는 이들 중에서 가장 한가한 사람이 누구냐?”

“일을 다 해놓고 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까요?”

“그래. 일을 다 하고 한가한 사람.”

“그렇다면, 희재입니다요.”

박복이는 가장 한가한 사람이 희재라고 이야길 했는데,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희재? 희재는 조청을 만들고 반죽에 쓰이는 곡물가루를 만드는 것을 하는데, 어떻게 희재가 한가할 수가 있느냐? 제일 바쁠 것이다.”

“네 도련님 말처럼 원래라면 가장 힘들고 바빠야 하는 사람일 겁니다요. 헌데, 요근래 보니 이상한 물건도 만들고 개를 이용해서 곡식을 가루로 찧고 하면서 그냥 앉아서 보고 있기만 하던데요.”

“이상한 물건? 개를 이용한다고? 어디 한번 가보자꾸나.”

송목거리의 작업장 겸 집에 오니 박복이의 말처럼 한창 일하고 있어야 할 희재가 앉아서 손목만 까딱거리고 있었고, 다른 이들도 손에 나무 봉을 들고 앉아서는 손만 까딱이고 있었다.

아무리 뺀질이라고 해도 박복이의 말처럼 진짜 한가하게 앉아 있을까 싶었는데, 직접 보니 기가 찼다.

설탕과 꿀이 없는 상황에서 제빵이나 다른 요리에 단맛을 내는 유일한 재료가 조청이었고, 그런 조청을 만드는 일은 가패의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곡식으로 식혜를 만들고 그 식혜 물을 솥에서 졸여야 조청이 만들어지는데, 솥에서 식혜 물이 졸아드는 두 시진 동안 눌어붙지 않게 계속 나무 주걱을 놀려주는 것이 가장 힘들면서도 중요한 일이었다.

한데 그 힘든 일에 희재는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멀찍이 앉아 그저 손만 까딱거리고 있으니 속이 탔다.

“아, 도련님 오셨습니까요?”

여유 있게 맞이하는 희재와 일꾼들을 보며 한바탕 경을 치려는데, 졸이고 있는 솥들 위에서 혼자 돌아가고 있는 주걱들이 보였다.

희재와 다른 이들의 인사도 대충 들으며 솥에 다가가 보니 솥 위로 나무 원판이 달려있고 그 나무 원판 밑으로 주걱들이 붙어 돌아가고 있었다.

나무 원판의 위로는 톱니바퀴가 달려있었는데, 그 톱니바퀴와 맞물려 연결된 끝에는 다리 짧은 강아지가 헥헥 거리며 쳇바퀴를 달리고 있었다.

나무로 만들긴 했지만, 쳇바퀴가 돌아가는 회전력을 톱니바퀴로 바꾸어 주걱을 돌리게 하는 자동설비였다.

아니 개가 돌리고 있으니 견동설비였다.

“이 나무 톱니바퀴는 누가 만든 것이냐?”

“아... 저, 그게... 그러니깐...”

희재는 원종이 다른 말 없이 만든이부터 물어보자 이거 큰일 났구나 싶어 말을 하지 못했고, 그저 어떻게든 빠져나갈 궁리를 했다.

“잘못되었다고 탓하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칭찬해주고 싶어서 누가 만든 것인지 묻는 것이다.”

“아! 그런 것이였습니까요? 그렇다면, 헤헤헤. 저걸 만든 것이 저입니다요. 제가 만든 겁니다요. 물론, 나무 톱니바퀴는 목장이 오동나무로 만들어 주었습니다요.”

그제야 칭찬하는 거라는 걸 알고는 희재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어났다.

“그럼, 너는 이 톱니바퀴의 원리를 어찌 아는 것이냐? 누구에게 배운 것이냐?”

“그것이, 밥을 빌어먹으며 다니다 보니 물레방아 간을 수리하는 일에도 품삯을 받고 갔었습니다. 그때 물레방아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알았습니다요. 물레방아가 돌아가며 만들어 내는 회전력을 방아 찍는 수직 방향으로 바꿀 수가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걸 응용해서 이 주걱 돌아가는 장치를 만들었습니다요.”

희재는 솥 안에서 돌아가는 4개의 주걱이 빈틈없이 휘저어 준다며 자랑을 시작했다.

제대로 배우지 않고 눈썰미만으로 이런 장치를 만들었다는 희재의 말에 놀랐고, 뺀질거리기만 하는 희재에게 이런 재능이 있었는지 알아보지 못한 내가 아쉬웠다.

솥 안에서 돌아가는 주걱뿐만 아니라, 곡식을 가는 맷돌에도 나무로 된 장치가 설치되어 있었다.

맷돌 손잡이인 어이를 4개로 만들어 원판에 어이를 꽂았고, 그 원판에 축을 달아 개 두 마리가 원을 그리며 움직여 곡식을 갈 수 있게 만든 장치였다.

“본래라면 두 사람이 마주 앉아 맷돌을 돌리고, 한사람이 곡식을 넣는 일을 했지만, 저렇게 개를 매달아 돌게 하자 맷돌을 돌리는 사람이 필요 없게 되었습니다요. 그래서 이리 앉아 개가 움직일 수 있게 막대기로 조절만 해주고 있습니다.”

보통 소나 말을 이용해서 큰 맷돌을 돌리는 것은 보았지만, 개를 이용해서 맷돌을 돌리는 것은 처음 봤다.

“일에 들어가야 할 인력을 줄였으니 마땅히 네게 상을 주어야겠다. 오승포 다섯 포를 상으로 주마. 그리고 저 개들이 가장 고생하니 개들에게는 따로 닭발이라도 챙겨주거라.”

“다섯 포씩이나요?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오승포를 받게 되었다고 좋아하는 희재와 달리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일만 하는 강아지들에겐 내가 가지고 있던 주전부리를 주었다.

동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다리 짧은 땅개들이었는데, 일일이 한 번씩 쓰다듬어주었다.

그리고, 어쩌면 조선에서도 영국처럼 턴스피츠(TurnSpit)라고 부를 수 있는 개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5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의 부엌에서 꼬치 요리를 돌리는 용도로 쳇바퀴 돌리는 개를 사용했는데, 그런 개들을 턴스피츠라고 불렀다.

머리가 작고, 허리가 길며, 다리가 짧아 닥스훈트와 비슷하게 생긴 개였는데, 쳇바퀴를 연결해 화덕에 바람을 불어 넣는 일에 쓰이기도 했고, 쳇바퀴의 회전력을 응용할 수 있는 여러 단순 작업에 폭넓게 쓰이던 노동견이었다.

턴스피츠는 부엌일에 사람 인력이 아닌 다른 동물의 노동력을 사용했다는 것 자체로 주방의 역사에 의의가 있는 개였다.

그리고 이런 턴스피츠와 관련된 일을 전혀 모른 채 개의 노동력을 활용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든 희재가 인재로 보였다.

자기 일을 편하게 하려고 궁리하여 장치를 만들고, 실현했다는 것만으로도 희재는 칭찬받아 마땅했다.

그리고, 이런 행동력도 어떻게 보면 타고난 재능일지도 몰랐다.

“희재야. 너를 조청 만드는 일에 묶어두기엔 네 가진 재주가 아깝구나. 네 일을 맡길 후임을 뽑거라. 너는 나랑 새로운 일을 해보자.”

“네? 새로운 일요? 저는 이렇게 조청을 만들고 편하게 일하는 게 좋습...”

“편한 일을 하겠다는 것이니 오승포를 준다는 것을 취소해야겠구나. 그럴까?”

“아이고, 그건 아닙니다요! 이미 주신 것을 이리 다시 돌려 달라고 하시니... 예예 후임을 뽑아서 일을 맡기겠습니다요.”

“그렇지. 사람이 도전 정신이 있어야 하는 법이지. 네가 가진 재주를 펼칠 수 있는 일을 네게 줄 것이니 어서 조청 만드는 일의 후임을 뽑아 인수인계하도록 하거라.”

***

“저기, 그러니깐 도련님. 미리 섭외된 이가 가패에 와서 어매일가노 음료에 날벌레가 들어 있다며 채월이에게 협잡(挾雜)질을 하고, 그때 정의의 사도처럼 금산이가 나타나 협잡꾼을 내쫓는 그런 상황을 만들겠다는 것입니까요?”

“그래. 희재 네가 정확하게 이해했구나. 그렇게 채월이를 금산이가 구해주게 된다면 채월이가 금산이를 좋게 봐주지 않겠느냐.”

무려 춘봉 가패의 청결 상태에 오점이 될 수도 있는 일이었지만, 내 호위무사인 금산을 위해서 모두 다 감수하기로 했다.

“그렇게 해서 둘이 정분이 나고 백년해로하게 만드는 그런 작업이란 것이지요?

“그렇지.”

“흠. 이런 일에 제 재주가 필요하신 건지 미처 몰랐습니다. 저의 이 세 치 혀가 뛰어나긴 하지만, 톱니바퀴 연결 장치 만드는 걸 도련님이 더 높게 생각해주신다고 생각했는데...”

“녀석아. 이게 그 일이지 않느냐. 채월이란 톱니바퀴와 금산이란 톱니바퀴를 연결해 주는 일이지 않느냐.”

“오오! 그러고 보니 그렇군요. 채월이란 폭이 좁은 톱니바퀴와 금산이란 폭이 넓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갈 수 있게 연결해 주는 작업이군요. 도련님의 비유가 참으로 옳습니다요.”

“그렇지. 그래서 두 톱니바퀴 사이에 이어줄 수 있는 협잡꾼을 넣는 것이다.”

“헌데 도련님. 진짜 이렇게 하면 금산에게 채월이가 들러붙는 게 확실합니까요? 원래 금산이가 하는 일이 이런 자들을 쫓아내는 것 아니었습니까요? 할 일을 했을 뿐인데 되겠습니까요?”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이때까지 보면 손님을 힘으로 제압해서 쫓아내기만 했잖으냐. 그래서 이번에는 좀 다른 상황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협잡꾼이 ‘이걸 먹으라고 낸 거야? 네가 한번 먹어봐!’ 하면서 난리를 치고, 그 벌레가 든 것을 금산이가 마셔 버리는 것이지.”

“오! 채월이가 마실뻔한 벌레 든 어매일가노를 금산이가 대신 마셔주고 채월이에게 점수를 따는 그런 것이군요.”

“그렇지. 그렇게만 되면 이건 백퍼야 백퍼!”

“백퍼요?”

“100이면 100이라는 뜻이다. 무조건 된다는 말이지. 어느 현자가 여인의 마음을 뺏어 혼인도 하고 옥동자까지 낳아 행복하다며 남긴 글에 나와 있는 방법이다. 얼마나 자신을 사랑했기에 벌레까지 먹냐며 여자는 무조건 남자에게 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것이지.”

“진짜 그렇게 되면 백퍼인 거 같습니다요. 그럼, 제가 아는 이 중에서 싹수없게 말을 툭툭 뱉고 인상 더럽게 생긴 이를 시켜 내일 오후에 바로 작업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요.”

***

“아니, 이게 뭐야! 여기에 왜 날 벌레가 들어 있는 거야?”

양 볼에 심술이 가득해 보이는 양반은 가까이에서 탁자를 치우고 있던 채월이에게 따져 물었다.

“이것 봐! 여기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어매일가노에 날벌레가 들어가 있냐고!”

“어머, 죄송합니다. 바로 교환해 드리겠습니다.”

“됐어! 교환이고 나발이고 다 필요 없다고! 내가 이걸 먹었으면 어쩔뻔했겠어?! 어쩔뻔했겠냐고!”

희재가 섭외한 이는 우리에게 잡곡을 파는 곡식 상인 중 한 명이었는데, 평소에도 이런 행동을 하는지 연기가 아주 그냥 메소드연기였다.

“죄송합니다. 그럼 환불을 해드릴까요?”

채월이는 교육받은 대로 대응을 했다.

“됐어! 다 필요 없어! 난 이제 필요가 없으니깐 네가 다 먹든지 하라고!”

가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희재와 지켜보고 있으니 제대로 된 진상을 잘 데리고 온 것 같았다.

“금산아 지금! 그렇지! 지금 들어가야지.”

금산이에게는 가패 교육의 일환으로 진상 고객이 너희가 다 먹으라고 난동 부릴 때에는 아예 그 음료를 다 마셔 버리라고 교육을 겸해서 살짝 언질을 주었었다.

그렇게 언질도 주었지만, 지켜보는 입장에선 마치 대본 없는 리얼리티 방송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어 손에 땀을 쥐었다.

금산이 다가가 진상 양반이 내민 어매일가노를 뺏어 마시기만 하면 되었는데, 일이 꼬였다.

“네. 알겠습니다. 교환이나 환불도 필요 없다고 하시고, 저희더러 마시라고 하시니 제가 다 마시겠습니다.”

채월이는 진상 양반의 갑질에 욱해서 벌레가 든 어매일가노를 들고 그냥 마셔버렸다.

관기일 적에는 이보다 더한 수모도 겪어보았기에 겨우 날벌레 한 마리가 들어가 있는 음료를 마시는 것은 아무렇지 않았다.

“네. 양반 나리 제가 다 마셨습니다. 이러면 되었습니까요?”

“어, 어... 그래. 참으로 시원하게 잘 마시는구나. 어음. 어... 내가 잘못했다. 화통하게 음료를 마시는 모습이 참으로 곱구나. 흠흠. 그래 내일도 여기에 오면 너를 볼 수 있는 것이냐?”

“손만 뻗으면 꺾을 수 있는 노류장화(路柳墻花)는 아니 오나 가패의 일을 하는 매인 몸이기에 언제든 오시면 보실 수 있습니다.”

“허허허. 그러고 보니 참으로 절색이었구나. 허허허. 내가 어찌 이런 가인에게 몹쓸 짓을...”

“이제 그만하시고, 나가주시지요.”

금산은 그제야 난리를 치는 양반의 뒷덜미를 잡고 밖으로 끌어내었다.

“도련님 저거 암만 봐도 실패인 거 같지요?”

“아니, 왜 저놈이 채월이에게 반하고 난리인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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