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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04화 (104/327)

104. 약속하기로 해요. (3)

“저, 그것이...”

나중에 사기 치다 사사(賜死)되는 님은 불합격입니다! 나가주세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우선은 진짜 관상을 보듯이 신숙주의 아들들을 살폈다.

그러면서 신숙주의 자식들에 대한 기억이 떠올렸다.

‘공주의 남자’라는 사극 드라마가 있었는데, 거기에 신숙주의 둘째 아들 신면이 나왔었다.

함경도 관찰사로 이시애의 반란군과 싸우다 장렬히 전사 하는 게 원 역사인데, 드라마에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악역으로 신면을 묘사하여 고령 신씨 후손들이 방송국에 항의 방문하고 난리가 났었다.

그때 신숙주의 아들들에 관한 내용이 연예계 기사로 올라왔었기에 대충이나마 기억하고 있었다.

신숙주는 무려 아들을 8명 두었는데, 첫째인 신주는 일찍 죽었고, 둘째부터 넷째까지 모두 다 관찰사까지 지내며 승승장구했었다.

일찍 죽은 신주를 제외하고 아들 7명이 다들 과거를 통해 당상관에 올랐을 정도로 신숙주의 자식 농사는 성공적이었다.

물론, 아버지인 신숙주의 이름이 음(陰)으로 작용했을 터이지만, 사사되는 신정을 제외하고는 다들 괜찮은 말년을 보내었다.

한마디로 신숙주의 손녀와 혼인하는 것만으로도 조정에서 자신을 도와줄 수 있는 많은 우군을 얻게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대인의 관점으로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얼굴도 보지 않고 결혼하는 것이라 쉽게 마음이 굳어지지 않았다.

또, 신숙주는 물론이고 이 집안사람들은 모두 다 말술을 마시는 사람들이었는데, 사위가 되면 꽃길 대신 말술 길이 펼쳐질 것이라는 게 눈에 보였다. 그래서 더 마음의 결정이 힘들었다.

우선 신정처럼 가문에 똥칠하는 인간의 리스크를 줄여야 했다.

“소인이 알기로는 대감님의 장남과 차남에게도 딸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인이 생기면 왠지 말술도 먹어야 할 것 같았고, 윗사람으로서 내가 하는 일에 간섭도 할 것 같았기에 아예 말술 먹일 장인이 없는 첫째 신주와 둘째 신면의 딸들이 배필로 좋을 거라는 판단이 섰다.

“후후후. 자네 싫은 척하더니 이미 내 손녀가 몇이 있는지 다 알아보고 왔구만.”

신숙주는 죽은 아들들이 남기고 간 딸 둘의 이름과 사주가 적힌 종이를 보여주었다.

얼굴 그림도 없고, 이름, 사주, 모친에 대한 정보만 있는 종이였는데, 웃기게도 이 정보만 보고도 바로 ‘이 애다’ 하는 확신이 섰다.

“결정하였습니다.”

“응? 벌써? 미래의 장인들과 이야길 해봐야 좋지 않겠나?”

“송구하오나, 소생은 이 종이를 보고 선택을 하였사옵니다.”

종이만 보고 결정했다는 말에 미래 장인이 될뻔한 이들의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종희? 음하하하. 그래. 첫째의 딸이 먼저 가는 것이 순리에 맞는 것이겠지. 그래 혼처가 결정되었으니 너희들은 이만 물러가거라.”

이제 볼일이 없어진 아들들이 물러나는데, 가장 끝에 나가던 신정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다.

“영악한 놈.”

신숙주도 신정이 하는 말을 들었지만, 꾸짖지 않았다.

그리고 비난에 가까운 말을 들은 나도 기분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영악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선택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래, 정이가 한 말처럼 영악한 것일 수도 있고, 현명한 것일 수도 있겠지. 종희의 어미가 누구인지 보고 결정한 것이냐?”

“네. 부인하지 않겠습니다. 장모님이 청주 한씨. 한명회 대감의 장녀라는 걸 알아보고 종희를 선택하였습니다.”

“좋다. 모름지기 사내라면 그리 당당해야지. 죽은 첫째를 대신해서 내가 사주단자를 문경으로 보내지. 종희가 초경을 하면 그때 날을 잡는 것으로 하고, 가내 풍습에 민며느리를 들여야 한다거나 하는 풍습이 따로 있나? 그런 가내 풍습이 있으면 말하게.”

이젠 내가 손녀사위가 되었다는 것이 확정되어서 그런지 신숙주의 말투가 은연중에 달라졌다.

“없사옵니다. 아, 생각하고 따로 드릴 말이 있습니다. 제가 넓은 이마를 별로 안 좋아해서 이마의 잔털을 뽑지 않았으면 좋겠고, 키 큰 여자가 좋으니 많이 먹으라고 전해 주십시오.”

“미친놈! 크흐흐 확실히 네놈은 특이하구나. 마누라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놈이라니. 내 그대로 종희에게 전해주마. 살아생전 혼례식을 하기도 전에 요구 사항을 말하는 놈을 보게 될 줄이야.”

“이마 잔털을 뽑아서 이마를 넓게 만들지 않겠다고 꼭 약속하기로 해주십시오.”

“오냐! 그렇게 약속하마.”

***

“참으로 특이한 놈이지 않으냐? 다른 이와는 다른 심미안을 가진 사람이다. 다들 좋아하는 이마 넓은 여자가 싫고, 머리는 작을수록 좋다고 하고, 눈이 컸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이것 외에도 계속 주절주절 떠들어 대어서 집에서 내쫓았다.”

“호호호. 아마도 어디선가 희야를 한번 보았던 게지요. 그래서 비위를 맞춰주기 위해 희야의 지금 외모를 언급하고 꾸미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래. 아마도 그렇겠지. 여튼 희야의 혼처가 정해졌고, 압구(한명회의 호)도 잘 아는 아이이니 특별한 일이 없다면 초경 후 날을 잡도록 할 것이다. 그러니 미리 준비시키고 있거라.”

할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누는 이야기를 건넛방에서 들은 신종희는 마음이 착잡했다.

언젠가는 시집을 가야 할 터였기에 마음의 준비는 했었으나 막상 혼처가 정해지고 보니 마음을 싱숭생숭한 것이 마음을 바로잡을 수가 없었다.

“아씨. 사랑에서 일하는 아이들에게 이야길 들어보니 도련님이 아주 잘생긴 분이었다고 합니다요. 나이에 비해 기골도 장대하여 몇 년 후에는 훤칠할 것 같다던데요. 잘생긴 낭군님과 이어지신 것을 축하드려요. 아씨!”

몸종인 정월이는 혼처가 정해지고, 잘생긴 외모라는 말에 축하한다고 했지만, 까탈스럽게 자신의 외모에 대해 이것저것 따지듯 이야길 했다는 것 때문에 마냥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

“형수님 어서 오십시오.”

송목거리에 있는 조청 작업장 겸 집으로 문경에서 형수가 올라왔다.

큰형이 의주로 올라갔기에 형수와 가복(家僕)들이 형님을 따라 올라가는 중에 들린 것이었다.

“가수저라와 파파빵이란 명물을 먹을 수 있는 가패가 한양에 생겼다고 화제랍니다.”

“미리 형수님께 대접했어야 했는데, 미처 신경 쓰지 못했습니다. 송구합니다. 대신 오늘 마음껏 드실 수 있사오니 가패로 가시지요.”

형수에게 한양에서 이루어낸 것을 보여주고자 육조거리의 춘봉가패로 이끌었다.

“음... 도련님. 저 안에서 같이 있어야 한다는 말인가요?”

뭔가 뾰족하게 이야길 하는 형수의 말에 뭐가 문제지? 하는 생각을 했다.

“아무리 사람이 많은 저잣거리라고는 하나, 너무 밀접한 것이 아닌지...”

무슨 밀접을 따지는 거지 생각하다 아차 싶었다.

그리고, 실내공간과 밖의 테라스 좌석을 확인하고는 뭐가 문제인지 바로 확인했다.

가패에서 여자 손님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첫날 오픈할 때부터 지금까지 다양한 신분과 노소가 왔었지만, 여자는 한 명도 본 적이 없다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며칠에 한 번 장이 서는 시골 장터 국밥집이라면 사람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남녀가 한 공간에 섞여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장터를 제외하고 남녀가 한 공간에서 뒤섞여 먹고 마시고 할 수 있는 곳은 기방 밖에 없었다.

멀찍이 떨어진 다른 탁자에 앉아 어매일가노를 마시더라도, 외간 남자들과 한 공간에 있었다는 그 자체만으로 정절을 의심받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조선이었다.

현대의 카페처럼 생각하고, 규중처자들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치명적이었다.

“형수님 제가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가 음료와 빵을 챙겨서 가겠습니다. 먼저 가 계십시오.”

“가수저라도 좋지만, 가패에서 거리를 걷는 이들을 구경하는 그 여유가 좋다고 하던데, 그건 느끼기 힘들겠군요.”

형수는 실망한 듯이 송목거리 집으로 돌아갔는데, 원종은 그제야 가패에 포장 손님이 이상스레 많았던 이유를 뒤늦게 이해했다.

단순히 가족에게 맛보여주기 위해 포장해간다고 생각했는데, 외부의 공간에서 여인들이 마음 놓고 먹고 마실 수 없으니 포장해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가패에서 여유를 즐기는 이들이 남자만 있었음에도 이상함을 느끼지 못한 것이 문제였다.

“자청이는 참렬이에게 빵을 만드는 것을 많이 배웠느냐?”

혼례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어느새 같이 사는 부부 사이가 되어 버린 둘을 불러 물었다.

“난로를 만들어 주면 자청이 혼자서 빵을 만들 수 있겠느냐?”

“혼자서 말입니까? 서, 설마 자청이를 매매하겠다는 사람이 나선 것입니까요?”

“매매는 무슨. 자청이를 관기에서 뺄 때 양민이 되었다고 하지 않았느냐. 양민을 어떻게 판다는 말이냐.”

참렬이는 매매가 아니라는 말에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춘봉가패를 여자들이 이용하지 못하기에 따로 여자들이 이용할 수 있는 가패를 만들려고 하는 것이다. 거기에서 일하는 이들도 모두 여자로 채울 것인데, 자청이를 거기서 일하게 할 생각이다. 혼자서 빵을 굽고 할 수 있겠느냐?”

“저으기... 도련님. 빵은 혼자 구울 수도 있사온데. 일을 하면서도 저이와 떨어지기는 싫사옵니다앙.”

자청은 말을 하면서도 몸을 배배 꼬며 이야길 했는데, 그 모습도 좋은지 참렬이는 헤헤거리며 좋아했다.

내 입에서는 지랄염병한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계속 둘이 같이 일하고 싶다면 빵 굽는 일을 맡길 수 있는 자를 책임지고 가르치도록 하거라.”

“저 도련님. 빵을 만드는 일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한 명 있긴 있습니다. 도와주는 이만 있다면 혼자서도 될 겁니다.”

“오! 그런 이가 있다고? 누구지?”

“그게... 문경에서 오신 다희님입니다요.”

“다희?”

다희가 누구인지 번뜩 생각이 나지 않았지만, 문경이라는 소리에 기억이 났다.

“아버지의 첩 말인가? 바느질을 잘해서 나이기온 만드는 일을 하고 있을 터인데.”

“네네. 맞습니다. 헌데 이제 시기도 봄이고 옷을 만드는 것은 송상에게 거의 넘어간 것이라 지금은 가패의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참렬이의 말에 그동안 다희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았다.

배다른 동생 둘을 속신시켜 양민으로 만들어 주긴 했으나, 일이 바빠 제대로 챙겨주지 못한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아직 어리지만, 이복동생들을 위해 가게를 하나 차려주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 참렬이가 다희에게 혼자서도 빵을 구워낼 수 있게 다시 한번 가르쳐 주도록 해라. 가게 터를 찾고 하다 보면 한 달 정도의 시간이 있을 것이다.”

“네. 미리 난로와 불판 같은 것은 제가 준비해 두겠습니다요.”

***

“형수님도 사람 구경하는 여유 있는 일상을 즐기실 수 있게 해드려야 하는데, 제 준비가 미흡했습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여인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가패를 만들어 모시겠습니다. 그런데 입에는 좀 맞으십니까?”

“달아서 아주 마음에 듭니다. 왜 문경에 있을 때는 이런 단음식을 해주지 않으셨습니까?”

“그때는 재료가 없다 보니 하하하. 형수님과 함께 올라온 덕구 어멈에게 가수저라와 파파빵 만드는 법을 가르쳐 두겠으니 의주나 문경에서도 맛을 즐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그이가 말해서 문경에서 만든 도자기를 싣고 가고 있는데, 이게 돈이 되겠습니까?”

“네. 큰돈은 되지 않겠지만, 여진인들이 주로 수입하는 물품이긴 합니다. 면포와 종이도 챙겨 가시면 될 겝니다. 삼식이에게 따로 종이와 포를 수레에 실어라고 하겠습니다.”

가패에서 값으로 받은 오승포가 많았기에 이걸 중국이나 여진에 팔아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참. 혹시라도 형님이 물건들을 판 대가로 초피(貂皮)를 받는다고 하면 절대 초피는 받지 말라고 전해 주십시오.”

“초피라면 담비 가죽이라 비싼 고급품으로 아는데, 왜 받지 말라는 겁니까?”

“그게 분위기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

[작가의 말]

사실 신숙주의 장남인 신주에게는 신종호란 아들의 자료만 있지 형제자매에 대한 자료는 찾아도 없더군요. ㅠ.ㅠ

그리고 이 신종호란 인물이 최고의 빽을 가진 이였습니다.

신숙주의 적장손에 외할아버지가 한명회였으니깐요.

그리고, 신종희는 가상의 인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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