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춘봉가패(春逢加貝). (5)
“그러니깐 대감의 집에 침입했던 도적들을 문경의 돌 숯 광산에 보내달라는 말입니까?”
“네. 도형(徒刑)을 받은 죄인들은 노역으로 소금을 굽거나 쇠를 내리거나, 숯 굽는 일에 동원된다 들었습니다. 돌 숯도 숯이니 문경의 돌 숯 광산에 제탄목 노역으로 보내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
원종의 이야길 들은 형조정랑은 생각에 잠겼다.
도형을 받는 자들이 숯을 굽는 제탄목 노역을 하는 건 맞았다. 다만, 광산은 그게 달랐는데, 이게 또 돌 숯 광산이다 보니 애매했다.
‘숯을 캐서 만드는 일이니 어떻게 보면 제탄목과 같기도 한데... 하지만, 광산이기도 하고... 애매하구나.’
형조정랑은 고민 끝에 그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나이가 어리긴 해도 영의정 한명회와 좌의정 신숙주의 줄을 잡은 자라고 알려져 있었기에 거절하는 것이 마땅치 않았다.
“대감의 명대로 따르리다. 그런데, 우리 같은 5품 벼슬인 정랑이나 좌랑은 가수저라를 먹어 보지를 못했는데, 맛이라도 어떻게 한번 볼 수 없겠소이까?”
“하하하. 노역으로 돌 숯을 많이 캐와야 가수저라를 만들기 편하니. 정랑께서 많이 도와주시면 저도 챙겨드려야지요.”
“그렇다면, 당분간 잡범들의 노역으로는 문경 제탄목으로 다 보내도록 하겠소이다. 그 관리는 어디 보자 참봉 전원상으로 해달라고... 으응? 성도 같고, 원자 돌림인데 형제나 친척이요?”
“작은형입니다. 이게 참 부끄럽습니다.”
편법적인 혜택으로 노역을 부리겠다는 거라 당당하지 못해 원종은 진짜 부끄러웠다.
“뭐 좋은 게 좋은 거 아니겠소이까.”
형조정랑은 이 정도는 일도 아니라며 서류를 처리했다.
원종은 이후 공조(工曹)에 들러 문경 석탄 광산에 기술자를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려 했지만, 그 일을 맡은 정랑(正郞)이 없어, 일단 일꾼들을 내려보내는 것에 만족했다.
***
“진짜 행순이 어멈도 그날 밤에 봤어야 했수. 나와 함덕이가 주인마님께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왕초에게 자진해서 나섰는데. 주인마님이 우릴 딱! 잡으시면서, ‘내 사람으로 거두었으니, 내가 책임지는 것이 당연하다. 너희들은 걱정말거라. 광을 열어 백미 50석을 내주어라!’ 이렇게 말씀하시는디. 캬!”
희재는 씻고 옷을 갈아입어 말끔해진 거지들을 앞에 두고 썰을 푸는데, 어느새 백미 20석은 백미 50석으로 부풀려 있었다.
“주인마님의 그 이야길 듣는데, 정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흘러내렸네. 그 누가 우리 같은 천한 놈의 몸값을 백미 10석이라고 생각하겠는가? 왕초 새끼는 두들겨 패기만 했지, 우리에게 밥이나 제대로 줬어? 우리가 얻어온 거 뺏어 먹기만 했지.”
“맞아. 맞아. 나도 비만 오면 왕초에게 맞은 곳이 쑤셔 온다니깐.”
“그래 밥을 주느냐, 주먹질하느냐! 바로 그 차이란 말이야! 너네 이때까지 흰 쌀밥 배불리 먹어봤어? 여기서 처음 먹어봤지?”
희재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식혜를 만들고 남은 삭힌 밥알이었지만, 쌀밥이 맞긴 맞았다.
“그럼 앞으로도 계속 쌀밥 먹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우리 주인님이 승승장구하시게 우리가 견마지로를 다해야 이 쌀밥도 계속 나온다 이 말이야! 맞아 아니야?”
“맞아! 열심히 해야지.”
“암. 배부르게 먹을 거 주고 옷도 줬으니 해야지.”
“그것만 있는 줄 알어? 분기마다 우리에게 따로 수고했다고 그 관리들이 받는 녹봉 비스므리한 것도 주신다고 했다는 거 아니냐. 야야 여기서 감탄사랑 박수!”
“와와와! 짝짝짝!”
“그래. 너희들이 아직 그걸 못 받아 봐서 모르는가 본데, 그러게 녹봉을 받아 돈을 모으면 그게 나중에 시집 장가갈 밑천이 되는 거라고. 그러니깐 다들 주인님 말 잘 듣고, 다들 이 겉옷을 걸치라고.”
“일할 때는 꼭 이 옷을 입고 일해야 한다고 하던데, 여기 이 글자는 뭐라고 쓰인 거야?”
“캬! 이 글자에 담긴 뜻도 너희가 들으면 놀랄 거다. 여기 두 글자는 ‘춘봉’이라고 쓰여 있는데, 이게 주인님의 호(號)란 말이야. 종놈에게 양반의 호가 쓰인 옷을 입힌다는 건 뭐다?”
“벼, 병사라는 그런 뜻이야? 삼국지에 보면 장수의 성(姓)이 쓰인 깃발 아래 모인다고 하더니만.”
“그, 그렇지. 그거랑 비슷하지, 만! 주인의 이름을 새긴 옷을 준다는 건 이 옷 입고 빌어먹을 짓 하지 말고, 주인님 이름 더럽히지 말라는 말이여. 그러니 이 옷을 입었을 때는 늘 그 공자왈 맹자왈 하시는 유명하신 분들 말씀처럼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어. 알겠으?”
“음. 뭔지는 잘 몰라도 알겠구만. 그저 거지처럼만 안 살면 되는 거란 말 아녀?”
“그렇지! 이제 거지처럼만 안 살면 제대로 사는 거지 뭐. 자 그럼, 몸 건강한 이들은 함덕이를 따라 조청과 단팥을 만들고, 몸이 좀 약한 아녀자들은 저기 선녀 같은 여인네들을 따라가 가패에서 일하면 되는 거요. 자자! 그럼 다들 일어나서 움직여 봅시다!”
***
<요리>
가수저라 – 1냥, 저화(楮貨) 5장 추포 1필
판팥빵 – 3전, 2승포 1필
참렬버거 – 3전, 2승포 1필
...
<음료>
쌍화차 – 2전 2승포...
식혜 – 1전 2승포...
...
메뉴판인 차림보기를 보고 있으니 금액이 복잡하다 못해 짜증이 났다.
화폐개혁을 진짜 이루어야겠다는 열망이 치솟았다.
“흠. 채월이가 한문과 언문으로 예쁘게 차림보기 글씨를 썼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해. 우리야 이미 먹어봤으니 글만 봐도 이게 어떤 음식인지 알겠지만, 처음 온 사람은 이 글씨만으로는 어떤 음식인지 전혀 알 수 없을 거다.”
원종은 일꾼으로 거두어들인 몇몇을 불러 차림보기라 불리는 메뉴판을 보여주며 어떤 음식으로 상상이 가는지 물었다.
“쇤네 들은 무식하여 숭늉이나 연근 같은 거 말고는 잘 모르겠습니다요.”
“이 차림보기를 보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이 뭘 시켜 먹는지를 살펴보고 그걸 달라고 할 것 같습니다요.”
먹어 보지는 못했지만, 구경은 했던 관리들은 어떤 음식인지 알고 있으니 가수저라를 주문하겠지만, 그 외의 사람들은 차림보기를 보기보다는 다른 사람이 먹는 걸 보고 저걸 달라고 하는 게 가장 빠른 주문일 것 같았다.
‘샘플을 매일 만들어서 전시할까.’
가게 입구에 쇼케이스를 두고 견본품을 놔두는 게 가장 직관적일 것 같았지만, 유리로 된 쇼케이스를 만드는 것도 문제고, 그 관리도 문제였다.
사진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게 없으니 화원을 구해 차림보기에 그림을 그려 넣는 게 가장 좋은 방법 같았다.
“도화원에 다녀오마.”
도화원(圖畫院)은 예조에 속해있는 관청으로 궁중에서 그림과 관련된 업무를 하는 곳이지만 실제 궐에 있지 않았다.
청계천 일대인 광통교 부근에 20여 칸의 집을 얻어 화원들이 숙식하며 머물렀는데, 공조에 속한 장인들처럼 전국에서 모인 기능인으로 취급을 받았다.
그 말은 한마디로 대우가 별로였다는 말이었다.
도화원 원주를 맡은 제조는 당상관이 겸하였지만,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제조보다는 5품인 별좌가 도화원의 우두머리 역할을 했다.
그리고, 도화원에 소속된 화원이라고 해도 벼슬을 바로 주는 게 아니었기에 일반 화원이나 생도는 녹봉이라고 나오는 것도 없었다.
화원들이 부업을 해야 먹고 사는 상황이라 별좌가 보여준 여러 화원의 그림 중에서 세필을 잘 쓰는 자를 고를 수 있었다.
안동에서 온 장덕수라는 사람이었는데, 아비는 양반이지만, 어미가 종이라 서얼이었다. 나이는 40줄에 접어든 이였는데, 중인이었음에도 갓을 아예 쓰지 않고, 상투만 틀고 있었다.
“그러니깐. 음식을 작게 이 종이에 그려 달라는 거이지요?”
“맞소. 이 종이는 차림 보기라고 하는데, 어떤 음식인지 확인하고 주문할 수 있게 만드는 종이요. 그러니 만들어진 음식을 보고 그대로 이 종이에 그려주면 되오. 이 차림보기는 삼십장. 저기 있는 2장(6m) 길이의 천 네 장에 글씨와 그림을 그리는 것까지 해서 백미 한섬을 주겠네.”
조건이 마음에 든 장덕수는 한 탁자 가득 차려준 음식과 음료를 보고는 두께가 있고 단단하며 질긴 상화지(霜華紙)에 글씨와 그림을 그려 넣기 시작했다.
노란색의 염료 가루를 잘 섞어서 먹음직스럽게 그림을 그려 넣었다.
그러곤, 2장 길이의 현수막에도 ‘고관대작들이 반한 맛! 가수저라 판매중!’ 글귀를 넣고 그 아래에 먹음직스러운 노란 카스테라를 그려 넣었다.
육조거리 끄트머리에 있다는 것과 오픈 날짜도 박아 넣자, 한때 유행하던 캘리그라피 스타일의 현수막이 만들어졌다.
“삼식아. 이 현수막을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 담벼락에 붙이고 오거라. 집주인이 뭐라고 하면, 몇전 쥐여주도록 하거라.”
“그럼, 소인은 이만...”
“아니, 아직 일이 끝난 게 아니네. 나중에 가게가 영업하게 되면 손님들이 저기 탁자에 앉아 다과를 즐기게 될 것이네. 그때 춘봉가패의 전경을 그려줬으면 하네. 실내에서 사람들이 앉아서 이야기하는 전체의 모습을 그려줬으면 좋겠는데 어떤가?”
실제 카페 형식의 가게가 영업했다는 것을 기록으로 남기겠다는 의도도 있었지만, 가패 내부에서 사람들이 어찌 차를 즐기고 음식을 먹는지 궁금해하는 지방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림이 필요했다.
멋들어지게 다과를 즐기는 그림이 사람들 손을 거쳐 퍼지게 되면 그게 홍보물이 될 것이고, 그 홍보 그림은 사람들에게 한양에 가면 춘봉가패에 꼭 들려야 한다는 환상을 만들어 줄 터였다.
“자네가 그림을 그리면 상응하는 값을 쳐 줄 것이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가패에 오면 음식을 공짜로 주겠네. 언제든지 와서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려주게.”
“감사하옵니다. 헌데, 제 친구도 되겠사옵니까?”
“친구도 그림을 그리는가?”
“아, 친구는 장악원의 악공(樂工)입니다.”
“악공? 악기는 어떤 것을 다루는가? 아니지. 지금 당장 그 친구를 부르게.”
“비파를 주로 다루지만, 다른 악공들처럼 해금이나 가야금 등 다른 악기들도 다 어느 정도는 다룰 수 있습니다. 그럼, 얼른 데리고 오겠습니다요.”
급하게 뛰어간 장덕수는 염소수염을 길게 기른 삐쩍 마른 자를 데리고 왔는데, 손에는 비파가 들려 있었다.
“함경도 길주 사람인 채길이라 하옵니다.”
“그래. 비파연주부터 들려주겠나? 잔잔하게 깔리는 그런 음악이 나는 필요하네.”
“잔잔하게 깔리는 것이라... 네 알겠습니다요.”
채길이 자리를 잡고 앉아 손가락으로 튕겨내며 비파를 연주했는데, 띵땅 거리는 현의 울림이 가게 안을 휘감았다.
‘암. 춘봉가패가 전통 찻집은 아니지만, 이렇게 음악이 흐르는 가패가 되어야 품격이 있지.’
여럿이 모여 쌍화차를 마시며 듣는 비파연주는 이제까지 겪어보지 못한 문화적 충격을 손님들에게 줄 것이 확실했다.
“채길이라고 했나? 자네와 장덕수는 나와 부업계약을 하지. 여기에 와서 그림을 그리고 연주를 해주면 돈을 주겠네.”
***
“육조거리 입구에 걸린 천에는 내일이 첫 영업일이라고 하던데, 어찌 이리 사람이 많은가? 내가 온다는 것을 알린 것인가?”
“군 마마께서 오신다는 것을 알리지 않았사옵니다. 내일이 첫 영업일이지만, 오늘 최종 연습을 위해 가게 문을 열고 여러 연습을 하다 보니 사람들이 궁금하여 저리 기웃거리는 것이옵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로군. 영업일 전에 나를 초대해줘서 고맙구만. 그 누구보다 먼저 여러 가지를 먹어 볼 수 있다는 재미가 아주 쏠쏠하이.”
“네. 그런데, 이분은...”
“아, 네 형님이시네요.”
“헉! 그럼... 대군마마를 뵈옵니다. 이쪽으로 앉으시지요.”
잘산군이 친형을 데리고 왔는데, 3살 위인 월산대군(月山大君)이었다.
원래라면 훗날 적법한 왕이 되어야 하는 사람이었지만, 그의 친동생이 왕이 되고 그 이후 조용하게 살게 되니 비운의 주인공이었다.
월산군은 잘산군보다 3살이나 많았음에도 키가 잘산군과 비슷했는데, 전해지는 말처럼 잔병치레가 잦았는지 전체적인 몸이 작고 왜소했다.
“아우가 자네의 요리 솜씨를 극찬하여 꼭 같이 오자고 하여 왔네. 그래 여기에는 무엇을 파는가?”
“네, 마마. 여러 가지가 있사온데. 차림보기를 올리겠습니다.”
깨끗한 옷을 입은 자가 유니폼 격인 조끼를 입고 차림보기를 내어 왔는데, 훗날 차림표라 불리게 되는 메뉴판의 첫 등장이었다.
“허허 나는 몇몇 개는 이미 먹어보았기에 알 것 같은데, 안 먹어 본 것도 이리 그림이 그려져 있으니 어떤 것인지 대충 알겠구만. 처음 드시는 형님을 위해 여기에서 파는 모든 것을 내어 오도록 하게.”
“네. 바로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있는 ‘어매일가노’는 뭔가? 음료라고 하는데, 이건 봐도 어떤 음료인지 도통 모르겠군.”
*
[작가의 말]
비파가 대부분 중국 악기로 알고 있으실 텐데, 그 원형은 서역이라 불리는 중앙아시아에서 만들어진 악기입니다.
서양으로 전래가 되어 기타가 되었고, 동양으로 전래가 되어 중국에서는 피파, 한국에서는 비파, 일본에서는 비와, 베트남에는 단띠바 로 전래가 되었습니다.
당나라 시절에 들어왔다고 하여 당비파라고도 불리는데, 삼국사기에는 당비파를 보고 자체적으로 만든 향비파라는 비파도 있었다고 나오는데, 그 원형은 전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