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춘봉가패(春逢加貝). (4)
“이 집이냐?”
“네. 맞수다! 담을 넘을깝쇼?”
몽둥이를 든 거지들은 담을 넘기 위해 앞으로 나섰다.
“아니다. 우리가 옷은 떨어지고 해진 옷을 입었다지만, 도둑은 아니잖느냐. 우리는 검계(劍契)를 지향해야 한다. 당당하게 정문으로 간다. 우리는 사람값을 받으러 온 것이다. 조금 전 순라군들에게도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았느냐.”
“그, 그건 그렇습죠.”
거지가 각설이 장타령을 하며 관혼상제가 있는 집 앞에 드러누워 먹을 것을 얻고, 돈까지 뜯어내려면 그 지역의 순라군과도 연줄이 있어야 했다.
순라군에게 돈을 받으러 간다고 하자 형 동생 하며 지내는 순라군은 몽둥이를 든 거지들을 보았음에도 은근히 자리를 피해 주겠다는 듯이 멀리 돌아갔다.
“대문을 밀어서 빗장을 부러트려라. 달라붙어!”
왕초의 말에 10여 명이 대문을 밀어대자 빗장에서 으득거리는 소리가 났고, 오기 전에 밥을 든든히 먹은 덕분인지 힘을 모아 밀자 우지끈하는 소리와 함께 대문이 터지듯 열렸다.
[우지끈! 쾅!]
원종은 문이 터져나가는 굉음에 놀라 벌떡 일어났다.
“뭐야?! 무슨 소리지?”
잠이 덜 깨 몽롱한데 방 건너 들리는 금산이의 웬 놈들이냐 하는 외침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도둑이나 강도라는 생각에 방안에서 무기가 될만한 걸 찾았지만, 써먹을 수 있는 게 도자기로 만든 요강밖에 없었다.
‘오줌 든 요강을 던지는 건 좀 모양새가 나지를 않겠네. 이런 일을 대비해서 무기 같은 것을 준비했어야 했는데, 너무 안일했구나.’
그래도 다행히 금산이가 있었고, 어제 문경에서 올라온 오추와 삼식이도 있었기에 그래도 마음이 좀 놓였다.
‘밖이 조용한 걸 보니 놈들도 금산이를 보고 각을 재고 있겠구나. 이럴 때는 내가 당당하게 보여야 한다.’
문을 천천히 열고 나서며 허리를 곧추세워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무슨 일이기에 이 밤중에 소란이냐.”
상황을 보니 내 예상이 맞았다.
놈들도 덩치가 좋은 금산과 오추, 삼식이를 보곤 만만치 않아 보였는지 대문 앞을 막아서서 지켜보기만 하고 있었다.
[저렇게 덩치 좋은 놈들이 이 집에 있다는 이야기는 왜 하지 않았느냐?]
[이야기 했잖소. 희재 놈이랑 데리고 갈 때 금강장사 같은 놈이 무서워서 아무도 못 나섰다고. 이야길 했을 때는 때려 놓고 서는...]
“뭐! 이 개 놈이 네놈이 확실하게 이야길 해야 하지 않느냐!”
귓속말로 이야길 주고받던 한 놈이 크게 이야길 했는데, 자기들의 예상과 다른 상황에 당황한 것 같았다.
“뭐 하는 놈들이기에 이 밤에 이 난리를 치는지 물었지 않느냐.”
“도, 돈을 받으러 왔소이다.”
“돈? 무슨 돈? 빚을 받으러 온 것이라면 집을 잘못 찾아온 것이다.”
“바로 찾아왔소이다. 우리가 받을 돈은 사람 값이오. 저기 희재라는 놈과 함덕일가를 여기서 데려갔다기에 그 값을 받으러 왔소이다.”
이제야 이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알았다. 청계천 다리 밑에서 빌어먹는 거지 놈들이 돈을 뜯어내러 온 것이었다.
떼강도가 아니라서 안심이 되긴 했지만, 거지라도 몽둥이를 든 14명의 거지이다 보니 쉽게 볼수는 없었다.
“사람 값? 그게 무슨 소리인가? 희재나 함덕일가가 네 종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만약 저들이 네 노비라면 그 노비문서가 있느냐?”
“문서는 나도 까막눈이라 없지만, 이건 분명하오. 저들은 내 구활노비(救活奴婢)요.”
“구활노비라...”
구활노비란 굶어 죽을 위기에 놓인 자를 먹여 살리고 양식을 제공하여 기아에서 벗어나게 해준 사람에게 노비로 부려지는 자를 말하는 것인데, 흉년이 심할 때 자신을 종으로 파는 자매노비(自賣奴婢)의 한 갈래였다.
물론, 그런 힘든 상황에 노비가 되는 것을 나라에서는 압량위천(壓良爲賤 양인을 억지로 천인으로 만드는 일)이라고 하여 정식으로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민가에서는 암암리에 행해지는 일이긴 했다.
깔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구활노비를 데려오면 보통 사례를 하는 것이 또 암묵적인 도의(道義)였기에 그 값을 물어보기라도 해야 했다.
“배를 곯아 기아의 상태에서 밥을 먹여 살렸다면 그건 인정해 줄 수 있지. 그래 얼마면 되겠는가?”
“아이들까지 다섯 명이니 두당 4섬 해서 백미 20섬이오.”
‘백미 1말이 1냥이니 쌀 한 섬은 10냥. 20섬이니 200냥이로구나.’
청계천에서 희재와 함덕일가를 데려왔을 때 비쩍 곯아 있었는데, 1년 동안 피죽만 먹였어도 그리 마르진 않았을 터였다.
그런 이들을 백미 20섬을 달라고 하니, 정당한 요구가 아니라, 행패를 부리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다.
‘결국, 이 거지 새끼들은 돈을 뜯으러 온 것이구나. 이놈들을 어떻게 한다.’
시간을 끌어 순라군이 오게 되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 같은데, 담장을 마주한 옆집에서도 조용한 것을 보니 놈들이 미리 손을 쓴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금산이를 믿고 전면전으로 붙으며 이길 수는 있겠지만, 우리도 피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한다...’
집에 남자들만 있는 게 아니라 여인네들도 있었기에 혹여나 피해가 갈까 싶어 전면전은 망설여졌다.
“도련님. 저희가 거지 왕초를 따라가겠습니다. 저희를 위해 그리 큰돈을 쓰실 필요 없습니다.”
싸울 각오를 하고 몽둥이까지 들고 있던 함덕이가 앞으로 나섰다.
“상한 밥 좀 얻어먹었다고 백미 20섬을 달라고 하는 말을 들어주시면 안 됩니다. 그냥 저희가 따라가면 끝날 일입니다. 짧으나마 배불리 먹었고, 사람 대우를 받았으니 도련님이 더 손해를 보시면 안 됩니다.”
“시발, 쓰레기 희재 인생에 꽃피는 봄날이 온줄 알았는데...며칠 밥 잘 먹었수다. 니미 인생 주옥같네...”
희재와 함덕이는 내가 고민하는 것을 보곤, 자신들이 희생하기로 하고 나선 것 같았다.
앞으로 나서긴 했지만, 둘의 얼굴은 물론이고, 뒤의 함덕네도 눈물을 흘리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아니다. 너희를 내 사람으로 거두었으니, 내가 책임을 당연히 져야 한다. 너희들은 걱정하지 말거라. 삼식아. 광의 문을 열어라.”
“네엣?? 백미 20석을 주시겠다는 말입니까요?”
삼식이는 물론이고 다들 깜짝 놀랐다.
거지 두목인 왕초도 설마 이리 쉽게 20석을 받게 된 것이 진짜인가 싶어 눈만 끔뻑거렸다.
“사람을 중히 여기지 않고, 어찌 장사하겠느냐. 광을 열어 20석을 가져가게 하거라. 쌀보다 이제 내 사람이 된 너희들이 더 소중한 것이다. 삼식아, 광의 문을 열어주어라.”
희재와 함덕이는 자신들을 위해 백미 20섬을 쓰겠다는 원종의 말에 눈물이 흘러나왔다.
‘아, 진정한 주인님을 만난 것이구나. 나 같은 놈을 어찌...’
희재는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거지 왕초 놈을 죽일 듯이 쳐다봤다.
하지만, 거지 왕초는 지금 당장 만세 삼창을 부르고 싶었다.
‘호구도 이런 호구가 없구나! 땡을 잡았구나 카하하.’
희재와 함덕이네를 데리고 간 것을 트집 잡으며 시루다 보면 돈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는데, 이리 쉽게 백미 20섬을 내어주니 신이 났다.
“그럼. 계산은 끝난 거요. 사람값을 받아 가겠소.”
가죽만 붙어있는 비쩍 곯은 놈들 다섯으로 백미 20석을 얻었으니 이보다 수지맞는 장사는 없을 것 같았다.
삼식이란 종이 광을 열어주자 기쁘게 광으로 뛰어 들어갔다.
광에는 조청을 만들기 위해 쌓아둔 쌀이 그득하게 쌓여 있었는데, 작게 봐도 40섬은 될 것 같았다.
‘내일 또 이자라고 해서 사람값을 받으러 오지. 멍청한 양반 놈 내가 다 빨아 먹어주마. 크흐흐.’
“두 명이 한 섬씩 들어라. 바로 가져간다.”
왕초의 명에 160kg이나 되는 쌀가마니를 두 명씩 들고 나르기 시작했다.
한섬, 두 섬, 세 섬... 쌀가마가 대문 밖으로 나가기 시작하자 이제 대문 안에 있는 놈들의 숫자가 우리보다 작아졌다.
그리고, 놈들이 다섯 번째 쌀가마니를 들고 광을 나올 때 외쳤다.
“지금이다. 뒤를 쳐라!”
“네?”
눈치 없는 삼식이가 넋 놓을 때, 북방에서 창을 잡았던 금산이와 사냥꾼 출신 오추는 창을 꼬나쥐고 달려들었고 희재도 몽둥이를 들고 냅다 질렀다.
금산은 거지 왕초를 벼르고 있었는지 단번에 왕초의 어깨를 창으로 때려 내려 앉혔고, 쓰러지는 왕초의 턱을 발로 후두려 까자 왕초놈은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놈들은 쌀을 들고 간다고 두 명씩 떨어진데다 이미 대문 밖으로 나간 놈들도 있다 보니 오추는 물론이고 삼식이와 함덕이까지 몽둥이를 들어 달려드니 어어 거리 다 제대로 반항도 못 해 보곤 지리멸렬할 수밖에 없었다.
대문 밖으로 쌀을 들고 나간 놈들도 오추와 금산이 뛰쳐나와 창을 휘두르자 형세가 뒤바뀐 걸 알고는 그대로 몸을 멈춰 세웠다.
“꿇어라!”
그리고 흉악하게 생긴 금산의 한마디에 모두 무릎을 꿇었다.
***
“박복아 저놈들 묶게 줄이나 가져오거라.”
“도련님의 신기묘산(神技妙算)에 감복했습니다. 어찌 그런 묘수를 생각해 내신겁니까요?”
“하하하. 용장인 금산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니라. 그리고, 놈들의 눈에 욕심의 불이 그득하였기에 쓸 수 있었던 묘수이니라.”
박복이에게는 여유 있게 이야길 했지만, 사실 임기응변으로 만든 수였고, 이게 잘 먹힐까 하는 걱정도 했었다.
그리고, 광에 진짜 엽전이 쌓여 있었거나 오승포 같은 포목이 있었다면 안 먹혔을 꼼수였다.
두목으로 보이는 왕초라는 놈이 조금 더 똑똑해서 수레를 끌고 오거나 날 밝은 후 오겠다고 했다면, 분산시킨 후 뒤치기 하는 게 불가능했을 터였다.
하지만, 눈앞에 쌓인 쌀을 들고 가야 한다는 욕심이 머리끝까지 다 달았기에 성공한 계책이었다.
“네놈들 소굴에 남은 놈들이 몇 놈이나 있느냐?”
“아직 스물은 더 있소! 우릴 풀어주지 않으면...”
[퍼억!]
줄에 묶여 대답하던 놈의 머리를 뒤에 있던 희재가 냅다 발로 찼다.
“거짓입니다요. 이제 다리 밑에 남자는 두서넛 밖에 없을겁니다요.”
“그렇다면 잘되었다. 희재 네가 앞장서고 금산이와 오추, 삼식이가 가서 소굴에 남아 있는 놈들도 다 잡아 오거라.”
“네. 싸그리 끍어 오겠습니다요.”
희재가 거지들의 추레한 살림살이까지 다 들고 올까 봐 겁이 났지만, 다른 이들도 있으니 알아서 챙겨 올터였다.
잡은 놈들을 포도청에 신고부터 하려 했으나, 이 난리가 났는데도 순라군이 오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박복이를 시켜 놈들의 무기는 물론이고 몸을 뒤져 숨겨둔 것까지 검사하고 있으니 그제야 순라군이 기웃거렸다.
“이보게. 포도청에 사옹원 제조(提調)의 집에 도둑이 들어 잡았으니 데려가라고 통보를 하게.”
“네에? 제조라굽쇼?”
거지 왕초에게 공짜 술을 몇 번 얻어먹고 했던 안면으로 순라군은 한참이나 지나서 송목거리로 왔는데, 거지들이 나오지 않자 어찌 돌아가는지 확인차 고개를 내밀어 본 것이었다.
헌데, 당상관에 해당하는 벼슬아치의 집을 도적질했다는 소리에 불알이 오그라들었다.
“이 미친놈들이...”
마음 같아서는 안면이 있는 왕초를 때려죽이고 싶었지만, 기절해 있는 지금 포도청의 나졸이 끌고 가는 것이 이득인 듯싶어 급하게 포도청으로 뛰어갔다.
해가 뜨고 나장들이 도적들을 끌고 가자 금산이가 거지 떼들을 데리고 왔는데, 어린 젖먹이부터 나이 든 노인까지 21명이었다.
“왕초 놈이 숨겨두었던 저화(楮貨)는 물론이고 돈이 될 만한 것은 다 챙겨 왔습니다요. 놈은 잘 숨겼다고 하지만 제 눈을 피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희희희.”
희재가 저화를 꺼내는데, 대충 봐도 수십 장이나 되어 보였다.
저화(楮貨)는 고려말 사용되기 시작한 지폐 돈인데, 태종대왕 때는 조선에서도 화폐로 보급되기 시작했었다.
허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저화의 가치가 떨어져 세종 1년에 저화 1장에 쌀 석 되이던 가치가 세종 4년에는 저화 3장이 쌀 한 되가 될 만큼 가치가 폭락했었다.
문종과 단종, 세조를 거친 지금에는 종이돈인 저화로 거래를 하는 이가 드물어 화폐로서의 가치가 사라져 가고 있었지만, 돈 이긴 돈이었다.
“이 저화로 희재 네가 책임지고 저치들을 씻기고 옷을 사입히거라. 함덕이는 저 잡동사니를 내다 팔아 저들이 먹을 것을 준비하거라. 누울 곳이 없으면 우선은 한편에 천막을 치고 살게 해라.”
대충 일이 마무리되자 금산이나 오추는 놔두고 삼식이를 데리고 궐로 움직였다.
***
“그러니깐, 저놈들이 주상전하와 대관들에게 그 가수저라를 만들어서 먹였던 사옹원 제조의 집을 털러 들어간 놈들이라고? 저놈들 미친거 아닌가?”
“그래서 단순한 도당(徒黨)이 아니라 흉계가 있는 검계(劍契)놈들인가 싶었는데, 자기들 말로는 청계천 장타령꾼이라고 우겨대네. 그리고 제조 어르신의 집인 줄도 모르고 들어갔다고 우기고 있어.”
“쯧쯧쯧. 거지 놈들이 장타령이나 할 것이지 거기가 어디라고. 하여튼 저런 정신머리를 가진 놈들이라면 치도곤을 당해야 정신을 차릴 거야.”
“그놈들 치도곤 대신 문경으로 보내란 명이네.”
“엥? 심문도 없이 문경으로? 어디 보자 도형(徒刑)에 처하고 제탄목(製炭木 숯 만드는 일)으로 3년?”
“문경에도 제탄목 노역이 있는 줄 몰랐군.”
나졸들은 문경의 제탄목 노역을 보내라는 명은 처음이었지만, 이날 이후 도둑질이나 사기 등 잡범의 경우 문경현으로 내려보내라는 명이 형조에서 계속 내려왔다.
*
[작가의 말]
사실, 조선의 노예제는 사실 엄청 복잡합니다.
우리가 글에서 대충 보는 사고팔고 하는 노예제와는 많이 달랐습니다.
조선은 인본주의도 강했기에 노비는 물건이라기 보다는 인격으로서 가치를 매기는 성격이 강했기에 서양의 노예제처럼 노비 거래소나 노비 전문 상인 같은 형태 자체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노비의 매매는 분명이 있었긴 했습니다.
가문이 망하거나 했을 때 같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도 타인에게 팔기보다는 친족이나 지인에게 노비를 매매했다고 합니다.
가격에 손해를 보면서도 아무나 에게 팔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특히, 부부나 자식을 생이별시키는 일은 천륜을 어기는 일이라고 하여 엄금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조선 후기 양반 같지 않은 양반들의 경우에는 천류을 어기는 짓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양민을 천인으로 만드는 압량위천도 법으로 철저하게 따졌다고 합니다.
구활노비나 빚때문에 노비가 되는 부채노비 같은 자매노비(自賣奴婢)도 사실상 불법이었습니다.
이렇게 조선에서 까다롭게 노비의 매매를 챙긴 것은 서구와 같이 백인 흑인의 이분적인 구분이 불가능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노비를 가신으로 생각하는 그런 인식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봉건제의 왕과 기사 같은 급은 아니지만, 주인의 안정적인 보살핌에 대한 의무로 노비도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하는 형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주인은 노비가 굶어죽지 않고, 아프지 않게 챙겨야 하는게 의무였고, 그 의무를 받은 노비는 주인에게 충성을 해야 하는 모습이 어떻게 보면 일본의 번주와 사무라이의 관계와도 비슷하다고 저는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