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98화 (98/327)

98. 춘봉가패(春逢加貝). (3)

“식혜 물을 빼고 남은 밥풀들을 먹어서 그런지 그새 다들 살이 좀 붙었구만.”

“희희희. 식혜를 하고 남은 것이라고는 하나, 그것도 쌀이지 않습니까요. 언감생심(焉敢生心) 먹을 생각도 못 해 본 쌀밥을 아주 배 터지게 먹고 있습니다요. 희희.”

너무 말라 젖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함덕네도 나흘 만에 살이 오른 것 같았고, 함덕이의 큰아들은 배가 고파 축 늘어져 있었는데, 이제는 기운이 찼는지 이리저리 기웃거리며 여느 아이들처럼 뛰어다녔다.

“가패 안에서 반죽을 다 하면 좋겠지만, 공간이 좁으니 아예 여기에서 빵 반죽까지 만들어 가패로 가져가기로 했다. 그러면 뭐다?”

“저희가 할 일이 늘어났다는 거 아니겠습니까요?”

“그렇지. 분위기 파악이 빠르구나. 달걀과 반죽 그릇, 갈라진 숟가락을 가져오거라.”

갈라진 숟가락은 달걀을 휘젓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 만든 도구로 일반 숟가락의 앞부분을 여러 갈래로 잘라 휘핑기처럼 꼬아 만든 것이었다.

“달걀을 그대로 까 넣고, 갈라진 숟가락으로 휘젓는데, 살짝 뽀얀 거품이 일어날 정도로 휘저어야 한다. 그러면 색이 조금 연해질 것이다.”

참렬이와 관기 출신 여인네들에게 각자 반죽을 만들게 시켰다.

휘핑 기계가 있었다면 3~5분이면 되는 일이지만, 사람이 손으로 젓다 보니 10분 가까이 걸리는 준비 작업이었다.

“나중에 물산이 풍부해진다면 여기에 사탕과 꿀을 넣어 단맛을 더 높일 수 있겠지만, 그럴 수 없으니 우리가 만든 조청 중에서 물기가 많은 묽은 조청을 넣어서 다시 한번 섞어주거라.”

달걀 물이 조청과 섞이자 다시 색이 진해졌는데, 거품이 일며 살짝 뻑뻑해졌다.

“그럼 이제 미리 갈아둔 곡물가루를 고운 체에 걸러 넣어주거라 비율은 1:1로 잡으면 될 것이다. 밀가루만 넣는 것이 가장 부드럽고 맛이 있지만, 밀가루는 비싸니 보리와 메밀, 수숫가루를 섞어서 넣어라. 잡곡 간의 비율은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잡곡 가격에 따라 섞으면 될 것이다.”

사실 맛을 위한 최적의 비율이 있었지만, 계절에 따라 곡물 가격의 변동이 심했기에 그 비율을 고집할 수가 없었다.

“계핏가루를 넣고 다시 갈라진 숟가락으로 반죽을 휘젓거라. 휘젓는 숟가락을 들었을 때 점도 있는 반죽이 줄줄 흘러내리면 되는 것이다.”

참렬이와 여인들이 만든 반죽이 완성되자 한지로 그릇의 위를 봉했다.

“이제 가패로 가자. 걸어서 일각 정도 걸리니 반죽이 숙성되는 시간으로는 딱 알맞다. 이 말은 뭐다?”

“반죽 시간이 있으니 다른 엉뚱한 곳으로 새지 말고 바로 가패로 가라는 것 아니겠습니까요? 희희.”

“그렇지. 가자.”

함덕네는 두 아이와 집에 남았고, 다른 이들은 모두 가패로 움직였다.

가패에는 이미 무쇠로 된 불판이 설치되어 있었기에 불을 지피고 테스트 시식을 준비했다.

“걸어오는 동안 반죽이 숙성되며 살짝 더 부풀었다. 그러면서, 점도가 좀 더 끈끈해졌을 것이다. 기름칠한 불판에 국자로 반죽을 올리는데, 손바닥만 한 크기의 보름달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반죽량을 조절하면 된다.”

원종이 든 국자가 기울며 반죽이 불판 위로 흘러내리자, 점성이 있는 반죽은 기름칠 된 불판에서 둥근 원 모양을 잡으며 익어갔다.

“점도가 있기에 더 퍼지지 않고, 바로 이렇게 둥글게 되는 것이다. 이 불판에도 굽는 위치를 정해서 한 줄에 4개씩 3줄로 반죽을 놓으면 된다.”

원종은 불판 위에 자리를 미리 정해둔 것처럼 줄지어 12개의 반죽을 올렸다. 반죽이 익어감에 따라 윗면에 기포가 송골송골 올라오자 뒤집개로 가장 먼저 올렸던 반죽을 뒤집었다.

“오오! 먹음직스럽게 구워졌습니다.”

“노릇노릇 한 것이 황금 보름달이어요.”

노릇하게 빵들이 모두 구워지자 빵을 들어 꺼내었고, 가게에서 직접 조리해야 하는 참렬이와 여인네들에게도 빵을 구워보게 시켰다.

“도련님. 이 빵은 손이 계속 가야 하니 난로에 그날 구울 빵을 다 넣은 후에 이걸 구우면 되겠군요.”

“장사를 시작하는 오전에 첫판 12개만 그렇게 굽고, 그 이후로 주문이 들어오는 것은 그때그때 손님들이 보는 앞에서 구워줘야 해. 만드는 것을 직접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조리실의 벽에 미닫이문을 설치한 것이고.”

“손님과 인사를 하며 구워내야 하는 거군요. 단골을 만드는 것입니까요?”

“그것도 있지만, 자신이 먹는 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직접 만드는 걸 보여주는 거지. 그래야 사람들이 우리 음식에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믿음이 있다면 비싼 음식이라도 우릴 믿고 사먹어 줄 것이다.”

“아! 그런 뜻이 있었군요. 하지만, 이렇게 만드는 것을 보여주게 되면, 우리 것을 따라 하는 자들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이 불판은 난로와 달리 누구나 만들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따라 만들어 파는 이들이 나올 것입니다.”

“우릴 따라 해서 똑같은걸 만들어 파는 이가 나온다면 나는 그 사람을 칭찬할 것이다. 아니 비슷하게라도 해서 장사를 한다면 내가 친히 그자에게 찾아가 사 먹어 줄 것이다.”

“아니 왜 그런 것입니까? 오히려 잡아다 치도곤을 때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요?”

“이 세상에 우리만 팔면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 경쟁자도 있어야 하고, 따라쟁이도 있어야 사람들의 입을 통해 화제가 되고 이야기가 널리 퍼지지 않겠느냐? 그리고, 우리 것을 보고 따라 한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들어가는 공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런 공을 들인 자라면 충분히 보듬어 줄만 하다. 안 그렇느냐?”

“하긴, 조청이나 단팥에 우리처럼 공을 들이는 사람이라면 어느 정도는 인정해 줄 수 있을 것 같긴합니다요.”

참렬이는 물론이고 직접 조청과 단팥을 만들며 주걱을 저었던 희재나 함덕이도 동의했다.

“물론, 수준 미달의 따라하기라면, 사람들은 맛이 없다고 가지 않을 것이니 자연스레 알아서 그곳은 도태될 것이다. 자. 그럼 구워진 빵을 반으로 접으며 그 안에 단팥을 숟가락으로 넣어주거라. 빵이 두껍게 구워졌으면, 이렇게 접을 때 부서지지만, 얇고 탄력 있게 구워졌으면 이렇게 접힐 것이다.”

얇게 구워진 빵을 골라 단팥을 중앙에 올리고 빵을 접어 함덕이와 희재에게 내밀었다.

며칠간 조청과 단팥을 만든다고 고생했으니 처음으로 시식할수 있게 배려했다.

“왜 먹지 않는가?”

희재 놈은 이미 함박웃음을 지으며 먹고 있었는데, 함덕이는 먹지 않고 그저 들고 있기만 했다.

“남만주에서 모든 것을 다 잃고 죽지 못해 한양으로 내려왔을 때만 해도 살아갈 방도가 없었습니다. 헌데, 도련님의 은혜로 밥을 먹게 되고, 살아갈 방도가 생겼는데, 제가 감히 이것을 먹어도 될지 감이 서지 않습니다. 이 귀한 것을 제가 먹어도 됩니까요?”

“함덕이 자네가 힘들여 만든 조청이 들어간 것이니 자네가 맛을 봐야 조청을 어떻게 더 맛있게 만들지 생각해 볼 수 있지 않겠나? 자네와 희재가 만든 조청과 단팥은 조선팔도에서 최고일 것이니 충분히 먹을 자격이 있네.”

“정말 자격이 있겠습니까요?”

“물론이지. 그리고 내 사람이 되었으니 그것만으로도 먹을 수 있는 자격이 있는 것이야. 그러니 어서 맛을 보게. 자네가 맛을 봐야 뒤에 사람들도 맛을 볼 게 아닌가.”

“어서 먹어 보슈. 이거 진짜 끝내주오. 우리가 만든 단팥 맛이 장난이 아니오. 이런 맛은 진짜 머리털 나고 처음이오.”

희재 놈은 이미 다 먹고 손가락을 빨며 함덕이에게 어서 먹으라 성화였다.

눈물이 그렁그렁한 함덕이는 그제야 단팥빵을 입으로 가져가 먹었다.

“아아, 이거... 이거 너무 답니다. 오뉴월 들꽃에 꿀이 많아 흘러내리는 것을 핥아 맛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 꿀보다 더 단맛이 납니다. 더구나 팥 껍질의 씹히는 맛과 빵의 몰랑거리는 부드러운 맛이 섞이니 입안에서 두 가지 식감이 같이 뛰노는 것 같습니다.”

행여나 입 밖으로 빵이 튀어 나갈까 싶어 손으로 입을 가려가며 함덕이가 단팥빵에 대해 품평을 했다.

“도련님. 나도 하나 줘보세요. 전 제가 만든 빵으로 먹고 싶은데...”

채월이는 자신이 직접 구운 빵을 먹고 싶어 했는데, 채월이가 구운 빵은 다 두껍게 구워진 빵이라 햄버거처럼 빵 위에 단팥을 쌓고, 그 위에 다시 빵을 덮어 주었다.

“이렇게도 먹을 수도 있지만, 이렇게 먹으면 배가 불러 다른 것을 안 먹을 수도 있으니 판매는 빵을 접어서 파는 것으로만 한다. 그러니 빵을 얇게 굽는데 공을 들여야 할 것이다.”

참렬이와 여인네들에게도 빵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가패의 실내장식 공사를 하며 탁자, 의자를 만들고 있던 목장들도 눈에 들어왔다.

그들도 먹고 싶어 곁눈질로 힐끔힐끔 보는 게 어찌 보면 안쓰러웠다.

“자네들도 이리 오시게. 어떻게 보면 우리 가패를 위해 힘써주는 사람들이니 이걸 맛볼 자격이 있네.”

소목장 다섯 명에게도 단팥빵을 만들어 먹이고 소감을 들으니 천상의 맛이라고 입을 모았다.

“저기 도련님. 이건 얼마나 하는지요? 집에도 싸가고 싶은데...”

역시나 가장 맛있는 걸 먹을 때 생각나는 사람은 가족이었다.

“오늘은 연습이니 그냥 두 개씩 공짜로 주겠네. 연습하며 만든 것들을 돈 받고 팔 수는 없지. 그리고 가게에서 정식으로 팔 때는 한 개에 1전 5푼이니 자네들도 나중에 사 먹으러 오게나.”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두 개씩이나 주시다니. 언제든 저희 목장이 필요하실 때는 부르기만 해주십시오. 만사 제쳐놓고 당장 달려오겠습니다요.”

“하하하. 그럼, 탁자와 의자에 사포질이나 한 번씩 더 해주게나.”

“지금 당장 하겠습니다요.”

소목장들은 단것을 먹어서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시키지 않은 청소일까지도 자진해서 해주었다.

“저 도련님. 함덕네에서 만든 단팥이 너무 맛있어서 일반 빵에도 넣어 난로에 구워 팔아도 되겠습니까?”

“당연히 되지. 안될 이유가 있나?”

“그러면 이게 이름을 달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요? 둘 다 단팥빵이라 불리는데, 생긴 모양도 다르고, 먹어 보면 다른 맛을 내니.”

“흠. 그러고 보니 그렇군.”

단팥을 사용한 빵이기에 단팥빵이라고 부르는데, 난로 오븐에 구운 빵과 불판에 구운 빵의 생김새가 완전히 다르니 혼동이 올 수도 있었다.

“그럼, 이 빵은 불판에 굽는 팥빵이라는 뜻으로 판팥빵이라고 부르도록 하지. 어떤가?”

“파파빵요?”

“파파방?”

“아니, 판판빵. 아, 나도 발음이 잘 안 되는구나. 하하하.”

판에서 구운 팥빵이라 판팥빵인데, 다들 발음해보니 판팥빵이 아니라 파파빵이 되어 버렸다.

“차림 보기에는 판팥빵이라고 써두고 손님이 파파방이라고 하면 알아서 주면 될 것이다. 난로에 굽는 팥빵과는 확실히 구분되겠구나. 하하하.”

“그럼 난로에 굽는 것보다 이 파파빵이 더 손이 많이 가기도 하고 5푼이 더 비싸기도 하니, 빵 사이에 단팥을 넣을 때 호두나 잣, 깨를 더 넣도록 하겠습니다.”

가르쳐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토핑을 추가하는 참렬이를 보니 나중에는 가게나 프랜차이즈 전체를 맡겨도 될 것 같다는 믿음이 들었다.

‘빵 사이에 아이스크림이나 치즈, 생크림을 넣어 먹으면 더 맛나는데. 냉장고는 어떻게 할 수도 없고. 아이스크림을 소로 넣는 건 겨울 특선 메뉴로 그때나 알려줘야겠구나.’

“집에 있는 함덕네에게도 줘야 하니 함덕이는 집사람과 아이들꺼까지 챙기게.”

“우리같이 천한것들까지 신경을 써주시고, 감사합니다. 이 은혜 결초보은하겠습니다.”

“희재 너도 다른 이들이 연습하고 남는 게 있다면 한 개 더 챙겨 먹거라.”

“희희희.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요.”

***

“이봐 저거 저놈. 분명 희재 놈 맞지?”

“맞어. 어? 저 뒤에 큰 그릇 들고 움직이는 놈은 북방에서 온 함덕이 같은데 맞나?”

“맞는 것 같아 둘 다 깨끗이 씻고, 때때옷을 입어서 못 알아볼 뻔했네.”

“그럼, 당장 왕초에게 갈까?”

“아니, 어제 부초가 맞는 거 못 봤냐? 사흘 동안 알아낸 게 정확하지 않았다고 엄청나게 두들겨 맞았잖아. 확실하지 않으면 또 두들겨 맞아. 저놈들이 어느 집에 들어가는지까지 다 확인하고 이야기해야 안 맞을 거라고.”

“하긴. 그럼 저 치들 뒤를 밟자.”

거지 둘은 사람들의 뒤를 밟아 육조거리 끄트머리 공랑 점포에서 뭔가를 맛있게 먹는 것을 확인했고, 이후 다시 돌아가 송목 거리에 있는 초가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곤 왕초에게 향했다.

“뭐? 드디어 알아냈다고? 누구냐? 어디의 양반놈이냐?”

“그게 희재랑 함덕이를 씻기고 옷을 입힌 걸 보면 양반인 거 같은데, 그 집이 송목거리에 있었습니다. 주위에 알아보니 얼마 전에 그 집을 샀다고 해서 누구인지 아는 자들이 없었습니다.”

“송목거리? 거기에 사는 양반이라고 해봐야 끈 떨어진 어설이들이 아니더냐.”

“왕초. 그런데, 그게 또 양반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갓에 도포는 썼는데, 그 양반으로 보이는 도령이 공랑 점포에서 음식을 만들고 뭔가를 파는 가게를 열 것처럼 했습니다.”

“머어? 가게? 크하하핫! 이거 웃기는구나. 그렇다면 그놈은 양반이 아닐 것이다. 양반이 무슨 장사를 한다는 말이냐? 그리고, 힘 있고 권세 있는 양반이 송목거리에 그것도 초가에 살겠느냐.”

“그렇면 더 잘된 것이지 않습니까요?”

“그렇지. 바로 오늘 밤 들이친다. 감히 이 철도끼의 식구들을 마음대로 빼돌렸다면 뜨거운 맛을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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