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88화 (88/327)

88. 공인(工人)의 삶. (3)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요? 도련님이 저희와 직접 거래를 해서 장사를 하시겠다는 말입니까요? 도련님이 유기그릇을 판다는 말이옵니까? 어찌 양반이 장사를...”

뭔가 아이러니한 말이었다.

양반이 필요해서 주문 제작을 하는 것은 되는데, 물건을 도매로 떼서 판매하는 상행위를 양반이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고정관념이란 참으로 무서운 것이었다.

양반도 아닌 공인이 상행위하는 양반이 말이 되냐고 묻고 있었으니, 사농공상의 신분제가 조선인들의 사고에 얼마나 강하게 고정되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네 같은 공인들을 위해서 내가 상단을 만들었네. 그 상단으로 장사를 하려고 하네.”

황가는 양반이 상단을 만들었다는 것도 요상했지만, 상단을 만든 이유가 자신들과 같은 공인들을 위해서 만들었다고 하니 그 이유도 이상했다.

‘자기 이득을 위해서 상단을 차렸으면 차린 것이지 무슨 우리를 위한다는 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릴 하고 있어.’

“자네.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하는가 보군. 저기 쌓여있는 장내기 유기를 보게. 아마도 자네들이 만든 유기를 팔아주는 상인들이 인수해 가지 않은 것이겠지? 맞나?”

“네 맞습니다요.”

“그래. 이런 게 문제네. 자네들의 유기를 팔아주는 상인들은 다 개인 상인이거나 아무리 규모가 커도 말에 실어 파는 자들이 전부일 거네.”

“네. 맞습니다요. 다들 개인 상인입니다요.”

“그런 개인 상인은 자네들에게 유기를 사서는 아마 한양에 가져가 팔 거네. 전국 8도 방방곡곡에 유기를 들고 가 팔기보다는 한양의 상인에게 파는 게 편하니깐 그런 것이지. 하지만, 나는 자네들의 유기를 한양은 물론이고, 전국 방방곡곡에 팔 것이네. 즉, 더 많이 팔아줄 수 있다는 말이네.”

“하, 하지만, 양반 나리가 그렇게 해도 되는 것입니까요?”

“양반이 상업을 하면 안 된다는 말은 그 어느 경전에 없네. 오히려 상행을 상인들만 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자네들이 더 손해 보며 살아온 것이네. 그런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않았나?”

황가는 원종의 말을 듣고는 뭔가가 느껴지는 듯했으나, 정확하게 이해득실을 따지기가 힘이 들었다.

“그럼, 나리께서 유기를 사가시면 저희에게 이득이 더 되는 것이 확실합니까요? 손해가 나지 않는다면 나리에게 싸게 팔겠습니다요.”

“무조건 이득 일 거네. 왜냐면 나와 거래하는 동안은 공인산이나 쌍화탕을 거의 공짜로 자네들에게 만들어 줄 것이기 때문이네.”

황가나 다른 공인들은 계속 약을 준다는 말에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어떤 유기그릇이 필요하신지 말을 해주십시오. 바로 챙기겠습니다요.”

***

“나리. 웬 공인이 찾아왔사온데 만나 보시겠습니까요?”

“이 시간에?”

유기 공인들과의 거래를 끝내고 국수와 쌍화탕의 개선점에 대해 정리하고 잠이 들려는 시간이었다.

귀찮은 마음이 일었으나, 이 시간에 추운 겨울밤을 뚫고 왔다면 긴박한 사정이 있을 거란 생각에 만나 보기로 했다.

“나리. 소인은 먹수라고 합니다요.”

“그래. 무슨 일로 이 시간에 보자고 한 것인가? 어느 유기 공방의 공인인가?”

“아! 나리 소인은 유기장이 아니라, 필공(筆工)입니다요.”

“필공? 붓을 만드는 자란 말인가?”

“네. 맞습니다요.”

“붓을 만드는 자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온 것인가?”

“그게... 나리께서 유기를 사서 판매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사옵니다요. 그래서 그런데, 유기를 판매하시듯이 제 붓도 판매해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요?”

“허허.”

갑자기 찾아와 이야기하는 필공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이거 빨라도 너무 빠르잖아.’

유기장들에게 약을 무료로 나눠주며 유기를 가져다 팔고 값을 제대로 치러주면 물산이 모이는 안성이었기에 다른 공인들도 알아서 나를 찾아올 것으로 생각은 했었다.

공인을 대우해주는 양반이나 상단이 잘 없기에 제 발로 공인들을 찾아오게 하는 이미지마케팅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유기를 제대로 팔아 보기도 전에 하루 만에 이렇게 붓을 만드는 공인이 찾아오니 빨라도 너무 빨랐다.

‘빨리빨리 문화가 지금부터 있었구만. 그게 아니라면 그만큼 조선에서 공인들을 대우해주지 않았다는 방증이겠지.’

“헌데, 보통 붓은 재료를 주면 그 재료에 맞게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었나? 자기 손에 맞는 붓을 주문 제작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아닌가?”

“네. 맞습니다요. 보통은 양반 나리들이 좋은 털이 있으면 저희를 불러 붓을 만들게 합니다. 헌데, 그것이... 저...”

필공 먹수는 말끝을 흐리며 내 눈치를 봤는데, 더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아마도, 붓을 만들고 난 이후에 제대로 대가를 치러주지 않았던 것이겠지. 맞나?”

“네. 정확하십니다요. 양반답지 않은 양반들은 저희를 종 부리듯이 붓을 만들게 하고, 삯은 주지 않은 채 시간을 끕니다요. 그러면서도 털 재료를 계속 주어 붓만 만들게 하다 삯도 못 받고 내침을 당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요.”

“허허, 관아나 향교에 가볼 생각은 해보았는가? 아니지, 거기서 고변하더라도 해결은 안 되었을 테지. 괘씸하다고 멍석말이나 안 당하면 다행이지. 휴우. 참으로 현실이 녹록지 않았겠구만.”

“네 나리. 공조(工曹)에 불려가 붓을 만드는 역을 하게 되면 그래도 얼마라도 곡식은 받았는데, 양반 나리들에게 불려가 붓을 만들고 나면 남는 게 하나도 없습니다요. 유기장들에게 듣자 하니 나리께서는 공인들을 중히 여기신다고 하시니 필공들도 가엽게 여겨 저희가 만드는 붓도 팔아주십시오.”

말을 마친 필공 먹수가 절을 하며 붓 좀 팔아 달라고 하니 난감했다.

붓은 유기그릇처럼 장내기용으로 만드는 공통된 그릇이 있는 게 아니었다.

글을 아는 양반들이나 쓰는 것이었기에 대부분이 주문 제작이었다.

나이기온 옷처럼 공산품처럼 팔려고 해도 털에 따라, 붓대에 따라 수십 가지의 붓이 만들어질 수 있으니 쉽게 팔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다.

하지만 또 욕심은 났다.

족제비의 꼬리 털로 만드는 황모필(黃毛筆)은 붓 한 개에 백미 한 마가로 교환이 될 정도로 고가의 물건이었다.

‘물론, 그 가격은 중국에 팔 때의 가격이긴 하지.’

중국은 산이 없고, 평지가 많다 보니 족제비가 잘 살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한반도에 사는 시베리아족제비의 노란 꼬리털로 만드는 황모필을 천하제일의 붓으로 여겼다.

그래서, 조선에 방문하는 명나라의 사신들은 황모필을 사가기 위해 웃돈까지 주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개인이 외국에 사고 파는 사무역은 금지였고, 필공 먹수가 이야기했듯이 주문 제작하는 양반들은 삯을 제대로 주지 않았다.

물론, 주문 전에 선금을 받으면 해결되는 문제였는데, 물건 만들기 전에 돈을 내라고 양반에게 배짱을 부릴 수 있는 공인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필요한 붓이 있는데, 그거부터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붓을 어떻게 매입해서 팔아야 할지 고민하다 보니 나도 필요한 붓이 떠올랐다.

“털이 둥글게 뭉쳐있는 일반적인 붓이 아니라 이렇게 일자로 털이 길게 늘어진 일자 붓을 만들 수 있겠는가?”

예전, 신숙주와 고기를 구워 먹으며 일반적인 둥근 붓으로 고기 양념을 발랐었는데, 음식에 기름칠하거나 양념을 바를 때 필요한 일자 붓이 필요했다.

현대식으로 짧은 손잡이가 달린 일자 붓 그림을 종이에 그려주자 먹수는 일자로 털을 눕혀 만드는 붓을 신기해했다.

“제일 구하기 쉬운 털이 토끼인가? 개인가? 어떤 털로 만들던지 상관없이 이 모양대로만 붓을 만들어주면 되네. 선비의 문방사우가 아닌 부엌에서 기름칠할 때 쓰는 붓이니 고급일 필요는 없네. 만들 수 있겠는가?”

“네 만들 수 있습니다. 구하기 쉬운 토끼털로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먹수는 선비들이 쓰는 게 아니라 아낙들이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붓이라는 말에 부담 없이 만들면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럼, 일단 이 일자 붓을 10개 만들어주게. 또 가장 억센 털로 이렇게 나무 틀에 털이 옆으로 붙어있는 모양을 만들 수 있겠는가?”

원종은 다시 종이에 그림을 그렸는데, 먹수가 보기에는 기름칠하는 일자 붓만큼이나 특이한 모양이었다.

“나, 나리. 나무로 만든 틀의 앞이 아닌 옆으로 짧은 털이 달려야 한다는 말입니까? 이런 모양은 생전 듣도 보도 못했습니다요.”

“그래. 이건 글씨를 쓰거나 기름칠하는 붓이 아니라 옆에 달린 이 짧은 털로 치아를 청소하는 붓이네. 치붓(齒筆)이라고 하지.”

“그, 그럼... 버드나무 가지로 하는 양지(楊支)를 억센 털을 가진 붓으로 하겠다는 말입니까요?”

“그래. 조금 생각을 바꿀 때가 된 것 같아. 양반들이 필요로 하는 비싼 황모필이나 초미필(담비 꼬리털 붓), 청서필(청설모 털 붓), 양호필(염소 털 붓) 같은 것은 비싼 물건들이라 양반들이 삯을 제대로 쳐주지 못하는 것이네. 하지만, 토끼털로 저렴하게 만드는 기름칠 붓이나 양지질 붓이라면 돈을 떼일 염려는 없을 것이네. 먼저 값싼 붓을 만들어 호구지책을 만들고 난 이후라면 선금을 먼저 받겠다고 배짱을 부려 일을 가려 받을 수 있지 않겠나?”

“저 그러면, 그... 배짱을 부릴 때 나리의 이름을 빌려와도 되겠습니까요?”

먹수는 자신의 하찮은 붓을 파는데 양반의 이름을 가져다 붙여 팔아도 되는지 조심스레 물었다.

“물론이지. 나는 아예 자네가 만드는 붓에 내 호(號)를 붙일까도 생각 중일세.”

“호(號)를 말입니까요? 그... 그래도 되겠습니까요?”

“되네. 다만 내가 거두어들인 사기장들처럼 내 상단에 소속이 되어야 하네.”

“소속이요? 상단에 소속이 된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요?”

“관리처럼 녹봉을 받으며 붓을 만들 수 있다는 말이지. 살집을 주고, 매월 월봉을 주겠네.”

유기는 한둘이 아닌 수십 명이라 판매 납품이지만, 필공 같은 소수의 공인이라면 내가 다 껴안을 수 있을 터였다.

“월봉으로 얼마를 줄지는 자네가 만들어 오는 붓을 본 이후 이야길 하도록 하지. 실력이 뛰어나다면 그만큼 대우해주겠네. 나가면서 털과 붓대를 살 수 있을 만큼 포를 받아 가게.”

먹수는 선금 조로 오승포를 먼저 받아 가는 일을 겪게 되자 뭔가 기분이 묘했다.

‘이 쉬운 일을 왜 이제까지 못 한것이지... 선금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

그리고, 일한 대가로 월봉이라는 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다.

***

“참렬아 난로에 열이 제대로 오르고 있느냐?”

“네. 금산님이 장작을 더 넣으며 온도를 올리고 있습니다요.”

난로를 만들며 난로 본체 위쪽에 공간을 만들어 오븐을 겸하게 했는데, 처음으로 제대로 된 빵을 구워볼 예정이었다.

“도련님. 그런데, 술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누룩을 넣어도 되는 것입니까요?”

“그럼 되지. 안될 게 뭐가 있느냐?”

빵을 부풀게 하는 이스트를 만들어 내는 것은 힘들었기에 손쉽게 구할 수 있는 누룩을 제빵에 쓰기로 했다.

천연 발효종인 누룩을 이용한 제빵은 이미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

원종은 보리로 만들어진 누룩을 잘게 부수어 밀과 함께 반죽했는데, 달걀 2개와 양귀비씨, 참깨도 넣어 반죽했다.

한국에서는 마약 성분이 없는 양귀비씨라도 인식의 문제로 인해 제과제빵에 쓰지 못하게 하지만, 제과제빵이 발달한 일본이나 유럽에서는 흔하게 쓰이는 제빵 재료였다.

양귀비씨에는 마약 성분 대신 50% 이상의 양귀비 기름이 채워져 있었는데, 이게 단맛을 내었다. 그래서 이 단맛을 이용하기 위해 중동이나 인도에서는 고기 음식에 주로 사용되었다.

반죽을 주먹 크기로 잘라 둥글게 놔두자 숙성이 되는지 은근하게 반죽이 커지고 있었다.

“도련님. 이렇게 빵이 부풀어 오르면 그 속은 비어 버리는 것이 아닙니까요?”

“아니, 비지 않는다. 숙성되며 빵을 더 부드럽게 해주는 것일 뿐이다.”

“반죽에 달걀 2개만 쓰셨는데, 이 8개 달걀은 어떻게 합니까요?”

“한 개는 노른자와 흰자를 같이 섞고 달걀과 같은 양의 물을 넣어 휘젓거라, 그리고 소금을 두 자밤(꼬집) 넣거라.”

참렬이가 재빠른 손으로 달걀 물을 만들어 내자 새 붓을 들었다.

“빵을 숙성시킬 때 이렇게 달걀 물을 붓에 찍어 빵의 표면에 바르거라. 맨 끝에 한 개는 비교를 위해 달걀 물을 바르지 말거라. 이 달걀 물을 바르는 것과 바르지 않는 것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날 것이다.”

“아하! 빵의 겉에 광택을 내기 위해 달걀 물을 바르는 것이군요.”

“그렇지.”

참렬이는 빵 반죽에 바르는 달걀 물의 용도를 바로 알아봤다.

“그럼 반죽이 숙성될 때까지 다른 걸 준비해보자. 남은 7개의 달걀을 흰자와 노른자로 구분하여 따로 그릇에 담거라.”

이번에 만드는 것은 특별했기에 기생들도 볼 수 있게 모두 불렀다.

“노른자에 조청과 들기름을 넣고, 잘 섞이게 저어주면 된다. 옳지. 그리고, 곱게 갈린 밀가루를 넣어서 다시 휘젓거라.”

밀가루가 들어가니 노른자가 뻑뻑해 졌다.

“그리고, 달걀흰자는 한쪽 방향으로 저어주는데, 거품이 일고, 그 거품에 힘이 생겨 형태가 생길 때까지 계속 저어주거라. 이게 달걀흰자 치기라고 한다.”

참렬이는 숟가락으로 한참을 휘젓기 시작했지만, 제대로 머랭이 만들어지지 않았다. 팔에 힘이 빠질 정도가 되자 관기 채월이와 유화가 이어받아 머랭을 쳤다.

“도련님. 도대체 무엇을 만드시기에 이런 힘든 방법이 들어 가는것이옵니까?”

“음. 내가 알기로는 아마도, 이 조선에서 너희들이 처음으로 먹어보게 되는 음식일 것이다.”

“네? 나라님이 아니고 저희가 제일 처음 먹어보는 것이라고요?”

“그래. 이름은 가수저라(加須底羅)라고 하지.”

*

[작가의 말]

토막상식!

조선 시대에는 버드나무 가지의 껍질을 벗긴 부드러운 속살로 양지(楊支)를 했는데, 이게 시간이 흐르며 양치(養齒)가 되었습니다요.

맛있는 음식 많이 먹고 오래 살려면 잠들기 전에 꼭 양치 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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