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81화 (81/327)

81. 문상을 꾸리다. (2)

“칡? 나무뿌리처럼 흙이 잔뜩 묻어있는데, 저걸 먹는다는 말인가?”

“네 대군마마. 한양으로 올라오는 길에 눈에 보여, 새로운 음식을 해드리고자 들고 온 것입니다.”

“허허. 보리가 익기 전까지 보릿고개가 오면 나무의 껍질을 벗겨 먹는다는 것은 들어 보았는데, 나무의 뿌리도 먹는 것인가?”

“네 마마.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인데, 나무의 껍질이면 어떻고, 뿌리면 어떻겠습니까? 그리고, 저건 나무의 뿌리가 아니오라, 콩의 사촌쯤 되는 풀의 뿌리이옵니다. 열매에 영양소가 몰리는 콩과는 달리 칡은 영양소가 저 뿌리에 몰립니다.”

“콩의 사촌쯤 된 다라. 신기하군. 다들 칡이란 걸 먹어봤소?”

잘산군의 물음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않았는데, 집안에서 일하는 노비들도 칡을 먹어 보지 않았다고 했다.

칡을 지고 온 금산만이 유일하게 먹어 봤다고 대답을 했다.

‘아니, 조선시대에는 칡을 다 먹는 거 아니었어?’

노비들도 먹어 보지 않았다는 반응에 역시 노비를 해도 부잣집의 노비를 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먹어 보지 않은 것을 보니 구황작물로 배가 고플 때나 먹는 것 같군. 그럼, 이 칡은 어떻게 먹는 것인가?”

“마마. 그건 제가 답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뒤에서 들리는 소리에 보니 신숙주가 와 있었다.

“신숙주 대감이 답을 해주신다면야 언제든 대환영이오. 그래 이 칡이란 것은 어찌 먹는 것이오?”

“먼저, 이 칡이란 것을 먹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세종대왕 시절 가뭄이 들어 흉년이 들자 이 칡을 먹자는 의견이 나왔었습니다.”

“그래요? 그러면 먹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군요.”

“네. 마마. 당시 세종대왕께서 궐내의 누구든지 흉년을 넘기는 데 도움이 되는 방책을 이야기하면 상을 내리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왜통사(왜어 통역사)로 있던 윤인보, 윤인소 형제가 왜국에는 흉년이 들면 지천으로 깔린 칡을 가루로 내어 먹으며 흉년을 이겨낸다고 고했습니다.”

“오, 해서 어떻게 되었는가?”

“당시 세종대왕께서도 지천으로 깔린 칡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여겨, 하 삼도(경상도, 전라도, 충청도)에 두 형제를 보내 칡을 가루로 내어 먹는 법을 알렸습니다. 허나, 칡이 가지는 쓴맛으로 인해, 그렇게 널리 알려지진 않았사옵니다.”

신숙주가 해주는 세종대왕과 관련된 이야길 듣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래. 그러고 보면, 이 칡은 한명회와도 연관이 있구나.’

신숙주의 말처럼 세종 시절에 칡을 가루로 만들어 구황식물로 먹으라고 했지만, 맛이 없다 보니 널리 알려지지 않았었다.

그리고, 성종 시절 흉년이 들자 한명회가 흉년을 대비하는 방책으로 세종 대왕의 이야기를 꺼내며 칡을 구황작물로 쓰자고 밀었었다.

칡을 말려 가루로 만들고 거기에 쌀싸라기나 잡곡을 넣어 죽을 쑤어 먹으면 먹을만하다며 전국에 칡을 먹는 법을 보급했다.

역사대로라면 그렇게 칡 먹는 법이 알려질 터였다.

하지만, 칡을 재료로 하는 죽은 맛이 없었다.

‘칡을 먹었다는 역사도 앞당기고, 더 맛있게 먹는 방법을 알리자. 그러면 흉년 대비가 어느 정도는 되겠지.’

“쓴맛이 난다라... 신 대감도 혹여 먹어 보셨소?”

“소신도 아직 먹어 보지 않았기에 기대가 되옵니다. 압구(狎鷗 한명회의 호)를 보기 위해 왔는데, 별미를 맛볼 수 있겠군요.”

신숙주까지 나타나 뭔가를 먹어 보겠다고 군침을 삼켰으나, 내가 바로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마마. 칡을 가장 간단히 먹는 방법으로는 갈아서 즙을 마시는 것입니다. 물론, 신숙주 대감께서 이야기하셨듯이 특유의 쓴맛 때문에 쉽게 마시기는 힘이 듭니다. 그래서, 칡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가루로 만들어 조리해야 합니다.”

“가루를 내어야 한다고? 그럼, 오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구만.”

“네. 마마. 내일 저녁에나 새로운 것을 드실 수 있으실 겁니다. 그리고 사실, 오늘은 이것을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원종은 나무 상자에 담아온 양초를 꺼내다 말고, 손을 멈추었다.

‘아, 신숙주를 생각 못 했구나. 이거 어쩐다.’

양초 2개씩 해서 상자에 담아 훗날 성종이 되는 잘산군과 한명회에게 진상할 예정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하게 신숙주가 있자, 어떻게 할지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마마. 장수와 건강의 불을 밝히는 복촉(蝠燭)입니다.”

원종은 가지고 온 양초 4개 모두를 잘산군에게 다 내놓았다.

두 자루는 한명회에게 주려 했으나, 신숙주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잘산군에게 모두 받칠 수밖에 없었다.

“어머나, 은복(銀燭)이 그려져 있는 촉이라니.”

부인 한 씨는 은색 박쥐가 새겨진 양초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는데, 옆에 있던 잘산군도 마찬가지였다.

“이 귀한 것이 어디서 났는가?”

“네 마마. 이번에 소인이 만들어 본 것이옵니다.”

“이 촉을 만들었다고? 마마 소인이 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신숙주는 원종이 만들었다는 소리에 눈을 빛내며 앞으로 나섰다.

“이리 굵고 좋은 밀초라니 생산은 계속 가능한 것인가?”

“네 대감. 밀랍의 수급을 위해 양봉 또한 준비하고 있습니다. 벌집의 수급만 제대로 된다면 계속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오! 양봉까지? 대단하구만, 대단해!”

신숙주는 상업에 대한 접근 방향이 다른 원길에게 감탄했고, 이젠 아예 유통 가능한 상품을 만들어 낸다는 원종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그에겐 양반으로서 천한 공방의 일을 한다는 게 충격으로 와 닿았다.

‘대체 이 형제들은 어찌 성장했기에 이리 자유로운가?’

“그렇다면 다음에 만들어지는 촉은 내가 구매하겠네.”

“나도 구매하지.”

퇴청했는지, 한명회가 들어서며 양초를 자신도 사겠다며 나섰다.

“궐에서 주상전하께 진상된 황룡촉을 보고 감탄을 했는데, 그게 전 도령이 만든 것이었구려. 주상전하께 진상되고 남는 것이라면 내가 다 사지.”

“자네가 다 사면 나는 어찌하나. 그리고, 누차 물산은 돌아야 한다고 하지 않았나. 사재기는 오히려 안 좋다니깐.”

“흥. 그렇게 물산이 돌아야 한다고 생각하면 다시 좌의정을 맡아주게. 그리고 자네가 필요하다고 한 시포(市鋪)의 전면적 시행도 직접 좀 하게. 몸은 움직이지도 않고 입만 방정을 떨어대니 원...”

“하하하. 그건 자네가 알아서 지정해 달라니까 그러네. 나는 그 시포에서 돌아야 하는 물산들을 조절하겠네.”

“말이야 못하면 밉지라도 않지... 아범! 오늘은 귀하신 분들이 오셨으니 그걸 준비하게나.”

한명회의 말에 아범들과 어멈들이 급히 움직였는데, 요리의 이름을 꺼내지 않고, 눈빛으로만 주고받으며 상을 차리기 시작했다.

“혹시 쇠고기입니까?”

“쉿!”

아범들이 숯불을 들고 들어오자 소고기인 것 같아 물으니 기주 형이 검지를 세우며 입과 코를 막는 행동을 보였다.

“몰래 먹는 것이네. 몰래.”

기주 형의 말에 웃음이 나왔다.

종친인 잘산군에, 영의정인 한명회가 소고기를 먹겠다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가 싶었다.

“아니 왜 몰래 먹습니까? 아무리 농우를 중히 여긴다고 하지만... 아, 아직 국장이기 때문이로군요.”

“그래. 남이 장군이 죽을 때 그의 어미도 같이 목이 잘렸는데, 천륜 때문에 모자(母子)를 같이 죽이지 아니함에도 같이 죽인 그 이유가 바로 이 소고기 때문이야.”

남이가 유자광의 모함으로 잡혀 들어갈 때, 그 어미도 잡혀 들어갔는데, 죄가 더 무거워진 게 바로 소고기 때문이었다.

보통 왕이나 왕비가 죽으면 국장이 선포되며 3년간 금육을 하게 되는데, 남이 집안의 부엌에서는 소고기 뭉텅이가 발견되어 귀향으로 되었을 벌이 사형으로까지 커진 것이었다.

이는 종친이나 대신들도 마찬가지였기에 쉬쉬거리며 숯불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어멈들이 두껍게 썰어 양념장에 재운 소고기를 꺼내었는데, 미리 손질이 다 되어 있었다.

그리곤, 유기로 된 꼬치에 소고기를 꽂아 화로에 올리자 달구어진 숯불에 고기가 후두둑 하는 소리를 내며 익어갔다.

불판을 쓰지 않고, 꼬치로 소고기를 굽는 게 신기하여 나도 화로에 다가갔다.

“자네 이 설하멱적(雪下覓炙)의 어원을 아는가?”

“잘모르겠습니다.”

“송나라의 태조 조광윤이 눈 내리는 날 밤에 친구를 찾아가 소고기를 구워 먹었다는 데서 유래한 음식이지.”

신숙주가 자연스레 옆에 앉으며 꼬치를 들어 고기를 구웠는데, 고기를 굽다 말고, 고기를 재워뒀던 양념장 통에 집어넣었다 빼선 다시 구웠다.

‘아니 왜 고기를 굽다가 다시 양념장 통에 넣어 식혔다가 다시 굽는 거야?’

특이한 이 굽는 법을 신숙주만 하는 게 아니라 한명회도 그렇게 고기를 양념장 물에 넣었다가 빼서 고기를 구웠다.

“대감. 왜 굽던 고기를 양념장에 다시 넣었다가 빼는 것이옵니까?”

“응? 당연하지 않나? 양념을 묻히려면 이렇게 해야지.”

당연한 듯이 이야기하는 신숙주의 모습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이한 굽는 법이 생긴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양념장을 바르는 게 발달하지 못했구나.’

원종은 선비이기에 들고 다니기만 했던 새 붓으로 양념장을 찍어 고기에 발랐고, 물을 담는 연적에는 양념장 물을 넣어 고기 위에 양념장을 솔솔 뿌렸다.

“아니, 자네 뭐 하는 건가? 어떻게 붓과 연적을 이런 곳에 쓴다는 말인가? 문방사우는 선비의...아니지, 어떻게 이렇게 쓸 수 있다는 생각을 한 건가? 붓으로 양념장을 바르다니 난 생각지도 못한 일이야.”

신숙주는 선비의 친구와 같다는 문방사우(文房四友)를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을 보자 원종이 양반이 아닌 건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고기를 굽는 중간에 양념장을 바르기 위해 양념통에 넣었다 빼는 수고에 비한다면 이 붓과 연적을 쓰는 방법이 너무나도 편했다.

“소중히 다루어야 하는 것이 문방사우라지만, 도구에 품격이나 격조가 어디 있겠습니까? 글을 쓰는데 붓이 아닌 손가락으로 글을 써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이고, 반대로 글을 쓰는 붓으로 고기 양념을 바를 수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 맞아. 맞네. 사물이 아니라, 그걸 쓰는 사람에 따라 달린 것이지. 아! 아깝구나.”

붓과 연적으로 고기 양념을 바르는데 아무 거리낌 없는 원종을 보자 신숙주는 한탄을 했다.

“자네가 두세 살만 나이가 많았다면 내 자네를 중히 섰을 걸세. 성혼도 아직 하지 않았다고 하고... 그럼, 자네가 보기에는 조선통보(朝鮮通寶)를 어떻게 하여야 한다고 보는가? 아니, 어떻게 하면 유통할 수 있다고 보는가?”

자신과는 다른 측면에서 사고하는 원종을 보자 신숙주는 답에 확신이 없던 통보의 유통에 관한 것을 물었다.

“저는 그냥 놔두어야 한다고 봅니다. 관에서 이래라저래라 하게 되면 유통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냥 자연스레 시전을 통해 사람들이 쓰기를 기다려야 합니다.”

원종의 대답이 자신과 같자 신숙주는 너무 기뻤다.

“그럼, 관에서는 가만히 있고, 양민들을 통해 통보가 돌게 된다면 양반들은 어찌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사실 신숙주의 상업진흥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가지는 공통된 두려움이었다.

양반이 낄 자리가 없다는 것.

상업을 천시하여 장사를 하지 않고, 장인처럼 물건을 만드는 것 또한 천시하여 양반들은 이런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런 양반들은 돈이 돌면서 상업으로 부자가 될 수도 있는 양민들을 경계했고, 그래서 신숙주가 법적으로 시포(市鋪)를 보장해주자는 의견에도 반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이 시포에서 양반이 끼어들 자리를 만들어 준다면 그들도 반대하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천한 상업과 공업에 발을 들일 양반이 과연 있을까 싶었다.

“자본을 가진 양반을 시포에 끌어들일 방안을 찾으시는군요. 그런데, 그건 아주 쉽습니다. 상단을 만들어 소유하게 하는 것입니다.”

“응? 그 말은 결국 상업을 해야 한다는 말 아닌가?”

“조금 다르다고 봐야겠지요. 양반이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경전을 읽고 과거를 보는 것이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양반의 아래에는 마름이 있고, 그 마름의 아래에는 농민들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그런 양반에게 농사를 한다고 이야기하지는 않잖습니까? 농사는 그저 아랫사람이 대신해주는 것이잖습니까? 상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숙주는 원종이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양반이 농사에 마름을 두듯이 상업에 종사하는 행수를 두는 겁니다. 그 행수 아래에는 상업과 공업에 종사하는 기술자들이 모여 일을 하는 것이니, 그 양반이 상업에 종사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농사하는 마름과 같다면, 상업이나 공업을 양반이 한다고 할 수 없지. 소유만 하는 것이니깐. 그러면...”

신숙주는 혼잣말하며 골똘히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가 들고 있던 소고기 꼬치가 타기 시작하자 급히 내가 대신 구웠다.

“이 일에 자네 가문이 앞장서 주게. 문경 전씨 가문에서 상단을 만들어서 운영해주게.”

“그럼, 혜택은 있습니까?”

신숙주는 원종이 두 번 생각하지 않고, 상단을 만들 때 받을 수 있는 혜택을 물어보자 일이 잘 풀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 말]

산림경제와 규합총서란 요리책에 보면 소고기를 구울 때 한번 삶고 구우라고 하는 레시피도 있고, 굽는 중간중간 물에 넣어 식힌 후 다시 구우라는 레시피도 있습니다.

추정하기로는 한자로 남겨진 레시피이다 보니 후대에 와서 해석이 잘못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단순히 굽다가 물에 넣으라는 게 아니라 양념장 물에 넣었다가 다시 구우라는 그런 의미이지 않을까 싶어 잘못되는 해석이 없게 아예 붓으로 양념장을 바르는 부분을 넣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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