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문상을 꾸리다. (1)
원길은 털을 넣은 배자(褙子 조끼)를 만들기 위해 그길로 퇴청했다.
그러곤, 마포에 따로 얻어둔 집으로 향했다.
마포의 초가집에는 문경에서 올라온 다희와 바느질 어멈들이 머물렀는데, 대왕대비 마마는 물론이고, 후궁들과 여러 부부인의 옷을 만든다고 정신이 없었다.
“이보게. 옷 안에 받쳐입는 배자에도 나이기온 옷처럼 털과 솜을 넣어서 만들 수 있겠나?”
“배자를요? 닭털이나 오리털을 넣을 수는 있겠으나 그렇게 하면 옷이 두꺼워집니다.”
“괜찮아. 지금도 옷 위에 입을 수 없기에 옷 안에 여러 개를 겹쳐 입으니깐 두꺼워 지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아. 여력이 있는 어멈들은 배자를 만들도록 하게.”
이미 한양에서도 삯바느질하는 어멈들을 스무 명 가까이 고용했기에 털이 수급되자 금세 배자 나이기온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원길의 예상처럼 윗사람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던 이들에게 불티나듯이 팔리기 시작했다.
원래 겨울에 가죽으로 된 배자를 입어 추위를 막던 이들도 가볍고, 관리가 쉬운 나이기온 배자가 나오자 다들 사입기 시작했다.
“자네 안 추운가? 설마, 자네두?”
“나도 안에 입었네. 그냥 위에 두꺼운 나이기온을 입으면 되는데, 괜히 돈만 더 썼네.”
“그래도, 솜옷이나 가죽옷보다는 싸지 않나.”
“그건 그렇지. 그런데, 우리 마누라가 이 배자를 보더니 자기도 만들 수 있다고 하지 뭔가. 그래서 집안에 키우던 닭과 오리를 잡아 털을 뽑는다고 고생을 했네. 뭐 덕분에 고기는 잘 먹었지만.”
“오! 솜씨가 제법 있는가 보구만. 그러면 그쪽도 한번 만들어 팔아보지, 그런가. 이제는 만들어 두고 파는것도 괜찮은 것 같은데.”
“그러지 않아도 그 생각했네. 내가 딸만 셋이라 바느질 할 사람은 있으니 지어미와 같이 만들어 팔아보라고 해야겠어.”
눈이 내리고 본격적인 추위와 함께 나이기온 옷이 팔리기 시작하니, 나이기온 옷을 입는 사람이 많아졌고, 자연스레 집안에서 비슷한 옷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여유가 있는 상인들도 돈이 되는 것을 보자 털을 넣은 나이기온 옷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
신숙주는 나이기온이란 옷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많자 아주 기분이 좋았다.
그는 궐에서 재능있는 젊은 관리들을 보면 그 젊은이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고 거기에 맞는 일을 찾아주기 위해 여러 일을 시켰다.
일을 시키다 자신보다 어느 한 부분이라도 뛰어난 부분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면, 그를 나라의 동량으로 키우고자 일부러 힘든 일을 시키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신입 관리들은 일하기 싫어 도망 다니는 자와 신숙주의 인정을 받아 출세하려는 야심가로 나누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신숙주에겐 풍요속의 빈곤이었다.
자신의 능력을 펼치고 싶은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그의 눈에 들기 위해 많을 일을 했지만, 자신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물산의 진흥, 상업의 진흥을 맡길만한 인재는 없었다.
젊은 시절 명나라는 물론, 여진족들의 땅인 만주와 왜구들의 땅까지도 훑어보며 농업을 기반으로 하는 조선에는 상업의 발전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과거를 통해 젊은 인재들이 들어올 때마다 그 면면을 살폈고, 조상 덕에 음서로 관직에 나온 명문가의 자손들도 꼼꼼하게 살폈었다.
하지만, 그들 중 상업의 진흥을 맡길만한 인재는 없었다.
‘하긴, 나만 해도 그랬지. 명나라와 왜국을 다녀오며 물산의 흐름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전까지는 상업의 중요성을 몰랐었지.’
신숙주 자신도 나이가 지천명(50살)이 되고 나서야 상업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조선을 살기 좋게 만들기 위해서는 상업을 중흥시켜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그 일을 맡아줄 인재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눈에 띈 것이 전원길이라는 문경에서 올라온 자였다.
술을 좋아하는 넷째 아들놈의 소개로 진기주란 이를 알게 되었고, 다시 진기주의 소개로 알게 된 자였지만, 그의 막냇동생은 이미 만나서 알고 있었다.
방설환이란 약을 만들어, 여름 배앓이를 없애주는 약은 그도 먹어봐서 효능을 잘 알았다.
그래서 그의 형은 과연 어떤 그릇을 가진 것인지 궁금하여 일부러 그를 호조의 근무지까지 데려다줬었다.
마치, 내가 점 찍은 인재이니 다들 주의 깊게 살피라는(?) 그런 의미였다.
그리고, 오늘에서야 상업의 중흥을 맡길만한 인재를 찾아낸 것 같았다.
“송상과 같은 공랑 점포에서 옷을 팔고 있다고 하던데, 어떻게 그렇게 된 건가?”
원길은 신숙주의 물음에 정직하게 답을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아마, 오늘 신숙주를 처음 봤다면 돈거래가 있었다고 이야길 하지 않고 다른 핑계를 대며 숨기거나 속이는 이야기를 했을 터였다.
하지만, 원길은 호조에서 일을 하며 명재상이라 불리는 신숙주의 능력을 알게 되었기에 속이기보다는 그 상세한 이유를 설명해줬다.
“허허 재미있군. 나이기온이 문경 전씨 집안에서 만들어졌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판매 수익을 나눠 가지는 계약을 했을 줄이야. 허면, 일반 양민들이 직접 나이기온 옷을 만들어 입는 것은 어떻게 할 것인가? 내가 보기엔 이미 순이익이 많이 줄어들었을 것 같은데.”
“맞습니다. 그래서 이제 어디에서 누가 만들었다는 것을 표시하여 원조라는 것을 알려야지요. 그리고, 배자 나이기온 옷으로 오히려 수익은 늘어났습니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옷으로 수익을 만들겠다는 거구만.”
“네. 배자 나이기온을 따라 만들어 파는 이들이 생기면 그땐 나이기온 옷에 모자를 붙여 파는 새 옷을 내놓을 겁니다.”
“모자를? 옷에 모자를 붙인다라. 허허 신기한 옷이 되겠구만.”
“네. 더해서 저희는 신제품을 만드는 것과 귀인들의 맞춤옷에 집중하고, 송상은 장옷과 단옷 위주로 전국에 판매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습니다.”
“영역을 나누고, 서로의 장점에 맞춰 이익을 키우는 것이로군.”
신숙주는 송상과 같이 경쟁하는 듯하다가도 담합하기도 하며 옷을 파는 기묘한 관계를 보고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재화, 돈을 버는 것을 좋아하면서도 천박하지 않았기에 나랏일을 맡기기에도 무리가 없어 보였다.
선비로서 상업을 천하게 여기는 고정관념도 없었고,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일을 다각도로 추진하는 것이 자신이 찾던 인재상에 적합했다.
“자네 봄에 나랑 일 좀 하세.”
***
양초를 진상하기 위해 한양으로 올라가는 원종의 눈에 특이한 게 보였다.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에서 곡괭이질을 하는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금산아! 저기 농꾼들은 무엇을 저리 캐는 것이냐? 작물이 있을 것 같진 않은 곳인데.”
“칡인 것 같습니다요. 눈이 내려 땅이 더 얼기 전에 캐낼 수 있는 것은 다 캐내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칡? 갈근(葛根)을 캐는 것이구나.”
한겨울 열이 나고 감기에 걸렸을 때 갈근탕이라고 칡을 끓여 먹으면 열을 내리게 하는 처방이 있었다.
물론, 저 농꾼들은 갈근탕이 아닌, 칡의 녹말 성분을 먹기 위해 캐는 것 같았지만.
‘그러고 보니 칡과 관련된 사람이 있었지.’
“금산아 눈이 더 내리기 전에 서두르자.”
원종은 한양에 도착하여 여독을 풀기도 전에 나서려고 했으나, 원길이 막았다.
“양초를 진상하기 위해 한명회 대감에게 찾아가는 거라면 잠시 멈추거라.”
“형님. 한명회 대감이 영의정에 올라 바쁘다고 하는 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바쁘다고 해도 저를 박대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무턱대고 궐에 가서 진상하고 싶다고 이야길 해야 하는데, 그게 되겠습니까?”
“내가 있지 않으냐. 내가 상선에게 양초를 전하마. 그리고, 지금은 무턱대고 잘산군이나 한명회 대감을 찾아가면 아니 된다.”
“네? 그건 왜 그렇습니까?”
“그게... 이야길 하면 길다. 하여튼, 지금은 안면이 있다고 하여도 그냥 만나면 아니 된다. 궐내의 분위기가 조금 요상하게 돌아간다. 미관말직인 내가 느낄 정도다. 여튼 내가 상선에게 직접 이 황룡초를 전하고 오마. 그 이후에나 잘산군이나 한명회 대감에게 찾아가도록 하거라.”
원종은 형의 말을 듣자 떠오르는 게 있었다.
‘예종이 슬슬 훈구파인 한명회와 신숙주의 구 대신들을 밀어내려고 하고 있구나.’
같은 편이긴 하지만, 결국 권력을 나눠 가져야 한다는 것 때문인지 이 시기의 예종은 신하들이 가진 권력을 덜어내기 위해 신경을 쓰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젊은 왕의 호기로 볼 수 있는 것이었지만, 그 결과를 원종은 알고 있었기에 형의 말을 챙겨들었다.
‘그러고 보니 원길 형이 한양에 온 이후로 뭔가 달라졌구나.’
관료가 되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 없이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해야 하는 상황을 겪어서 그런 것인지 어른스러워진 것 같았다.
***
“촉(燭)을 진상한다고? 어디 봅시다.”
상선 이감은 웬 젊은 관리가 촉을 진상한다며 찾아오자 그가 내미는 물건부터 확인하고자 했다.
평상시에도 이렇게 진상을 빙자해 자신들에게 청탁하는 이들이 있었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그가 내민 나무 상자에 든 황금색을 띤 촉을 보자 예사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에 상자 뚜껑을 닫고 젊은 관리를 다시 쳐다봤다.
‘이자가 누구더라... 아! 건번으로 인해 벼슬을 내렸던 그자구나.’
상선은 예종이 젊고 능력있는 자들을 모으고 있다는 생각에 그의 손을 잡아 끌었다.
“갑시다. 이런 귀물은 직접 진상해야 하는 물건이오.”
***
“아주 불이 밝구만. 불이 밝아. 상선 그렇지 않은가? 촉에 불을 밝히니 아랫부분에 새겨진 황룡 그림이 더 뛰어나 보이는구만.”
예종은 이제까지 보지 못했던 굵은 촉에 감탄했고, 초에 그려진 황룡 또한 도화서에서 그린 듯이 뛰어나자 너무 만족했다.
“불에 녹아내리는 것이 아까울 정도야.”
“전하. 동생의 말로는 매년 소량이지만 계속 생산할 수 있다고 하니 매년 진상하도록 하겠나이다.”
“그래, 좋군. 상선 그걸 내려라.”
예종은 비단으로 만들어진 작은 주머니를 내렸는데, 원길은 그 주머니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다.
새끼손톱만 한 작은 진주가 들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매년 4개를 진상하라. 그리고 상선에게 이야기했듯이 색상 문제는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
“진주는 형님이 하십시오. 저는 그다지...”
원종은 현대에서 진주목걸이나 진주귀걸이를 하고 다니는 사람을 많이 보았기에 진주에 관한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 시대의 사람들은 다른 것 같았다. 영롱하게 빛을 내는 진주를 보며 귀한 물건이라 보고 또 보고 했다.
“쉽게 쓰지도 못하는 것이니 형수님이나 주십시오.”
양초를 진상하고 은이나 돈으로 받아오면 사용하기 편했을 텐데, 시가에 따라 가격이 변화는 보석류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았다.
“형님 한명회 대감께 갈 것인데, 기주 형도 부르십시오. 혈족 좋다는 게 이럴 때 데리고 가는거 아니겠습니까?”
한명회의 집에 도착하니, 한명회와 연을 이어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집안의 청지기들은 찾아오는 이들의 신분에 따라 사람들을 대기 장소에서 대기 시켰다.
“어이쿠! 그러지 않아도 대감마님께서 도련님이 찾아오시면 지체없이 모시라고 했습니다요. 바로 안채로 드시지요.”
“안채?”
사랑이 아니라 안채라는 말에 의구심이 들었지만, 뒤를 따랐다.
그리고, 왜 안채로 오라고 한 것인지 알 것 같았다.
한명회의 사위이기도 한 잘산군 내외가 안채에 머물고 있었다.
‘공혜왕후(恭惠王后)라 불리는 한명회의 막내딸이 아파서 와 있는 것이구나.’
지금 보위에 있는 예종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듯이 잘산군의 아내인 한명회의 딸도 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
원래부터 몸이 약했던, 한명회의 딸인 공혜왕후는 18살에 죽을 운명이었다.
예종에게 시집보낸 딸도 그렇고, 한명회의 딸들은 대부분 수명이 짧았는데, 이게 아버지인 한명회의 유전적인 문제라는 말도 있고, 한명회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많아 저주를 받아 일찍 죽었다는 말도 있었다.
하지만, 저주였다면 70살 넘게 장수했던 한명회부터 죽었어야 할 터였다.
결국 유전적인 문제인데, 이건 내가 어떻게 해줄 수가 없었다.
“자네가 문경으로 내려간 이후 적적했네. 이번에는 한양에서 오랫동안 머물게나. 그리고, 호떡도 너무 많이 만들어 먹었는데, 뭐 새로운 것 없나?”
“마마. 당연히 새로운 걸 준비해 왔사옵니다.”
진상하기 위해 가져온 박쥐 그림이 그려진 양초를 꺼내었고, 금산에게 지고 오게 한 기다란 물건도 내려놓았다.
“저건 뭔가?”
“칡입니다!”
*
[작가의 말]
실제 신숙주는 상업의 진흥을 말년에 외쳤습니다.
실록에 기록으로 나오듯이 임의로 열리고 있는 5일장 같은 시포(市鋪)를 법적으로 상시로 열리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었습니다.
그래야 화폐가 돌고, 물물교환으로 말미암아 누락 되고 망실 되는 물산을 아낄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젊은 시절 세종대왕의 화폐유통이 실패하는 것을 직접 보았던 실무진이었기에 이후 명나라와 일본, 만주를 다녀오며 화폐가 유통되었을 때의 장점을 깨달았고, 강제가 아닌 자연스레 시장을 통해 화폐가 돌 수 있게 법적인 시장의 설치를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명이 짧았습니다. 58세로 죽었는데, 조선 시대치고는 장수한 축에 들지만, 좀 더 명이 길었다면 성종 시대에 화폐의 유통이 정착되었을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일찍 죽었기에 폐비 윤씨 시사 사건에 연관되지 않아, 갑자사화 때 한명회나 다른 이들처럼 부관참시 되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