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건번. (1)
건빵은 말 그대로 수분이 없는 빵으로 현대에선 군인들도 잘 먹지 않는 간식 겸 부식이었다.
한국인들이 다들 알고 있는 모양의 건빵은 일본에서 만들어졌는데, 물론 따지고 보면 1534년 일본에 표류한 포르투갈 선원들이 먹었던 딱딱한 쉽 비스킷(ship biscuit)이 그 원조다.
이후 선교사들이 일본에 들어오며 일본에 제과제빵 기술이 전해졌고, 덥고 습한 일본의 특성상 전쟁에 관심이 많았던 다이묘들에 의해 빵이 전투 식량으로 개량되기 시작했다.
당시 일본도 조선과 마찬가지로 전투 식량으로 밥을 할 시간이 있으면 주먹밥을 해 먹었고, 시간이 없으면, 볶은 곡류와 그걸 가루로 만든 미숫가루 같은 것들을 먹는 게 전부였다.
그랬기에 한번 구워두면 기본 3~4일 후에 먹어도 괜찮은 ‘빵’이란 것에 다이묘들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일본 막부파와 일왕파의 전쟁인 보신전쟁(1868년)이 벌어지며 일왕파가 에도의 풍월당(風月當)이란 대형 제과점에 군용 건빵 5천 명분을 주문한 것이 최초의 건빵이라고 기록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젠 아니었다.
‘아시아에서 건빵이나 비스킷류의 제과제빵 시초는 오늘부터 이 고모산성이다.’
공식적인 일본 건빵에 비해 400년 이상 빠른 기록을 남기고, 일본에 전수해 줬다는 공식문서를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 문경현의 예산으로 만들었다는 기록과 유물을 남길 겸해서 큰 화덕을 만들기로 했다.
고모산성 내에 벽돌로 쌓고 황토를 발라 5m 크기의 가로로 긴 대형 화덕을 만들었다.
그러면서 야장들에게 주석으로 된 큰 쟁반을 30여 개 만들게 했는데, 주석은 없고, 값싼 연철만 있다 하여 어쩔 수 없이 3척(약 90cm) 길이의 사각 쟁반을 연철로 만들었다.
가지고 있는 잡곡이 보리와 조가 가장 많았고 수수, 율무, 메밀도 있었기에 다섯 가지 곡물을 섞어 가루로 만들었다.
그러곤, 소금과 물을 넣어 반죽했고, 먹을 수 있는 나물도 잘게 썰어 달걀과 같이 넣어 반죽했다.
“자! 다들 쟁반 앞에 서게나.”
노역 나온 양민들의 밥을 챙겨주기 위해 나졸들이 주먹밥을 만들었는데, 나졸들의 손을 깨끗이 씻기곤 반죽을 쟁반 가득 얇고 평평하게 펴게 했다.
“도련님 이건 떡을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부침개를 하시려는 것입니까요?”
나름 새로운 요리를 많이 보았기도 했고, 기록을 맡은 박복이가 어떤 요리인지 궁금해했다.
“아니, 이건 번(燔 bun)이라는 것이다.”
“번이면 그 시루떡을 솥에 안칠 때 틈으로 김이 새지 말라고 바르는 그 반죽을 말하는 것입니까요?”
“응? 하하하. 그래 그럴 수도 있겠구나. 그 번으로 부르고 쓰면 된다. 반죽이긴 하니깐 말이지. 정확하게는 구운 번이다. 그렇게 표기하도록 해라.”
“넵.”
문경과 상주에서 요리숙이라는 것을 운영하며 식료의로 이름이 어느정도 알려진 양반이 뭔가를 한다고 하자 일없는 아전들이 구경을 왔다.
김율시는 전도령이 엉뚱한 짓을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생전 처음 보는 요리의 모습에 슬슬 염려되기도 했다.
“다들 반죽의 높이를 1촌(약 3cm) 정도로 쟁반에 다 폈는가?”
“네 도련님.”
“그럼, 남은 쟁반에도 다 반죽을 얇게 펴게나. 삼식이와 만길 노인은 이제 화덕에 불을 지피면 되네.”
화덕의 안쪽으로 불붙인 장작을 넣었는데, 불쏘시개로 최대한 벽 쪽으로 불붙은 장작을 밀어 넣었다.
그러곤, 화덕의 입구를 절반 정도 닫아두자 금세 화덕의 온도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이 물 묻은 나무 접시로 반죽에 줄을 치게. 가로세로로 줄을 쳐 손바닥만 한 사각형 크기로 만들어 주면 되네.”
나졸들이 반죽 위로 줄을 치자 원종은 미리 만들어 두었던 포크를 들었다.
“이 오지창으로 사각형의 중심을 한번 찔러주면 되네.”
나졸들은 오지창이라 불린 포크를 들고 열심히 찍어대었다. 그러곤, 쟁반째로 화덕에 집어넣었다.
쟁반이 컸기에 화덕에는 5개밖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화덕이 제대로 만들어졌는지 일각이 지나자 반죽은 노랗게 익어 빵이 되었다.
불쏘시개로 열을 받아 뜨거운 쟁반을 끄집어내면 두꺼운 천을 든 나졸이 달려들어 쟁반을 잡아 옮겼다.
[쾅!]
마치 패대기치듯이 탁자 위로 쟁반을 뒤집자 쟁반과 들러붙지 않게 가루를 친게 효과가 있는지 사각형 모양 그대로 떨어졌다.
“아뜨뜨!”
미리 줄을 쳐두었기에 사각형 모양으로 빵이 잘 떨어졌는데, 설탕도 없이 소금으로만 반죽했음에도 고소한 빵 냄새가 풍기는 것이 그럴듯했다.
빵을 뜯어 입에 넣자, 뜨거운 열기 때문인지 가장 많이 들어간 보리나 조의 맛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그냥 담백한 식빵의 맛이었다.
‘이거 또 설탕 땡기게 하네.’
분명 건강한 곡물 맛의 빵이었지만, 현대의 빵을 먹어본 입장에서는 설탕이나 우유, 버터 같은 재료를 넣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반면에 이스트가 들어가지 않아 전혀 부풀어 오르지 않았는데, 이것이 오히려 씹히는 밀도를 만들어 내어 식감은 나름대로 합격점을 줄 만했다.
“다들 한 조각씩 먹어보게. 싱겁다 느껴질 때는 이 된장을 올려 먹어도 되네.”
삼식이를 비롯해 나졸들도 뜨거운 빵을 한 조각씩 들고는 맛을 보기 시작했다.
“으음? 이게 뭐지. 분명 떡도 아니고, 밥도 아니고...이게 뭔가 어중간한 맛과 식감인데 이걸 뭐라고 하지.”
“오! 처음 먹어보는 맛인데 뭔가 특이하구만. 그리고 은근히 맛있는데.”
“된장을 찍어 먹어보게나, 심심한 맛이 확 살아나는데.”
나졸들은 처음 먹어보는 빵 맛에 신기해했고, 그동안 원종을 따라다니며 새로운 음식을 많이 먹어본 삼식이도 처음 느껴보는 맛에 신기해했다.
‘분명 곡식의 가루로 만든 것인데, 밥의 맛이 전혀 없잖아. 어떻게 된 것이지? 식감은 또 물만밥을 말린 그런 느낌인가? 뭔가 설명이 어려운 맛이네.’
“도련님 이게 어떤 이유입니까요? 분명 곡식을 갈아 만든 것인데, 왜 밥의 느낌이 나지 않는 것입니까요?”
“방법의 차이이니라. 그래 이 번을 몇 개 먹으면 너는 배가 찰 것 같으냐?”
“흠. 저는 4개는 먹어야 할 것 같습니다요.”
“4개? 다른 이들은 어떻소? 이 번을 몇 개 먹어야 밥이 될 것 같소?”
“난 3개.”
“무슨 소리야? 일하려면 4개는 먹어야지.”
“난 5개는 되야 배가 부를 것 같은데.”
“그런데 이게 밥이 되긴 되나?”
‘아차!’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아무리 빵을 먹어도 그걸 밥으로 치지 않고, 간식으로 여기는 사람이 있었다.
그런 이들에겐 빵은 절대 주식이 될수 없었다.
주먹밥을 다시 해줘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먹밥 대신 빵으로 밥을 주게 되면 편한 부분이 많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럼 닭곰탕 한 그릇과 번 3개를 주먹밥 대신으로 준다면 어떨 것 같나?”
“닭곰탕요? 그걸 준다면야 3개로도 충분합죠.”
“닭이 살짝 들어갔다 나온 탕국이라면 있으나 마나인데.”
“허허. 이 사람 어디 잔칫집에 왔나? 배부른 소리 하고 있어. 하루 세끼 주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할 판이야.”
일단, 양민들의 이야길 들어보면 소금과 달걀, 나물이 들어간 번(bun)을 먹는 것에는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것 같았다.
이 번을 다시 한번 구워 습기를 6% 아래로 만들 수만 있다면 대항해시대 영국 군인들이 먹던 쉽 비스킷(ship biscuit)이 되는 것이었다.
빵이 머금은 습기가 없어 1년이 지나도 변질되지 않았기에 전투 식량이나 원양항해를 하는 이들에게는 최적의 식량이었다.
물론, 습기가 없기에 딱딱해서 식감은 최악이었고, 맛도 없었다.
하지만, 두 번 굽지 않고, 한 번만 구운 빵은 나름 부드럽고 먹을 만했고 습기 관리만 잘한다면 일주일 이상 지나서도 먹을 수 있었다.
밥을 해 먹는 것보다 노동력이 작게 들어가고, 보관성이 좋았기에 최적의 전투 식량이자 대량급식에 맞는 음식이었다.
‘다만, 아직 빵에 익숙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반죽에 소금을 더 치고, 아니면 아예 반죽에 된장을 넣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군.’
거기다 쉽게 넘어갈 수 있게 음료수 같은 닭곰탕을 끓여 국물을 주는 것도 고민했다.
***
“이게 뭐지? 떡인가?”
“난들 알겠나? 번이라고 하던데. 그것보다 어서 저기 가서 닭국 물이나 받아오게.”
“닭국 물? 웬일이지? 고기는 있나?”
춘복이는 닭국 물을 준다는 말에 뛰어가 줄을 섰다.
박 껍질을 말려 만든 박통에 뽀얀 것과 멀건 것의 중간쯤 되는 국물을 담아줬다.
“역시, 고기는 없구만. 기대한 내가 잘못이지.”
“그래도 이 번이랑 한번 먹어보게. 난 주먹밥보다 좋구만. 곡식 가루로 만든다고 하는데 난 입맛에 맞는구만.”
주먹밥보다 좋다는 말에 춘복이는 손바닥만 한 번을 입에 넣었다.
“음? 은은하게 된장 맛이 나는데. 씹히는 것도 괜찮고. 아! 이 국물이랑 같이 먹으니 괜찮구만. 뜨끈한 국물이 들어가니 몸이 풀리는 느낌이야.”
“번을 아예 국물에 넣어서 먹어보게. 이것도 괜찮은데. 국물에 말아 먹는 것도 좋은 거 같아.”
“그래?”
춘복이는 남은 2개의 번을 박통에 넣곤 나무 숟가락으로 꾹꾹 눌렀다.
그리고, 뜨거운 국물을 머금고 풀려가는 번을 퍼서 입으로 가져갔다.
“오, 이거 국밥 맛인데.”
“그렇지? 건더기는 없다지만, 멀건 국물에 국밥처럼 말아먹으니 진짜 밥을 먹은 느낌이지?”
“맞어. 주먹밥보다 훨씬 좋구만.”
춘복이는 박 껍질로 만든 박통에 구멍이 날까 염려될 만큼 박박 긁어먹었다.
그리고, 박통을 반납하러 가니 사흘 동안 매 끼니 이렇게 번과 닭국 물을 준다고 했다.
“나흘째 되는 날에는 다시 주먹밥? 그냥 먹고 싶은 거 달라고 하면 그거 주면 안 되나?”
“배부른 소리 하는구만. 얼른 가서 일이나 해.”
“도련님. 다행히 다들 만족스러워하는데요.”
“그래 나도 확인했다. 그럼 이제 한번 구워낸 쟁반을 식힌 후에 다시 굽는 걸 해보지.”
“네? 그러면 더 맛이 좋아집니까요?”
“아니, 더 맛이 없어지게 된다.”
“에? 그럼 왜 다시 굽는 겁니까요?”
“오랫동안 보관이 가능한 음식을 만들기 위해서다. 자! 한번 구워진 쟁반을 다시 넣어라!”
번에 있는 습기 제거를 위해 다시 한번 화덕에 집어넣어 굽자 번의 윗부분은 건빵처럼 딱딱해졌다.
하지만, 건빵의 수분 6% 이내의 퍽퍽한 느낌은 나지 않았다.
“다른 쟁반 위에서 뒤집어라. 아랫부분이 위로 가게 해서 다시 굽는다.”
결국, 4번이나 구운 후에야 수분이 빠져 돌처럼 딱딱해졌는데, 미국 남북전쟁 시절 먹던 하드택(hardtack)과 비슷해졌다.
***
“건번(乾燔)을 만들었다는 이걸 조정에 상신해달란 말이오? 이건 본관이 아니라, 직접 해도 되지 않소? 내 듣자 하니 방설환을 만들어 내어 주상전하께 포상을 받기도 했다고 하던데.”
문경 현감 최철환은 자신이 직접해도 되는 일을 자기에게 해달라고 하는 원종을 보곤 괜히 의심이 들었다.
‘건량을 낭비하게 했다는 죄를 내게 씌우려는 것인가? 어린놈에게 내가 잘못 보인 게 있는 건가?’
현감 최철환은 작년에 나이기온 옷 때문에 마음이 상한 것인가 싶어 괜히 켕겼다.
그런 눈치를 보는 현감을 보니 원종은 공을 세울 기회를 줘도 못 먹는 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뜻이 아니옵니다. 마음이 쓰이시면 제가 만든 것을 현감께서 보고 한다는 것으로 올려주시면 됩니다.”
원종은 직접 상신해도 되는 일이었지만, 자신이 올리면 건번이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그 도입이 지체될까 염려스러웠다.
지방의 병사나 나졸들을 직접 움직일 수 있는 현감이라면 상신한 이후 바로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라면 쉽게 도입이 되지 않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조정에서 건번이라는 게 있으니 이걸 해보라고 지방에 내려보내도 세월아 네월아 하며 도입이 안 될 것 같았다.
중앙군에게 도입시킨다고 하더라도 어느 세월에 될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문경 현에 바로 도입할 수 있게 현감이 직접 상신하길 부탁했지만, 찔리는 게 많은 사람인지 일을 뒤집어쓸까 염려만 하는 사람이었다.
“흠. 그렇다면 내 식료의 전원종이 만들었다는 건번을 보릿고개 넘는 것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해서 상신하겠네.”
*
[작가의 말]
참고로 건빵의 조상격인 비스킷은 영국식의 얇은 비스킷과 미국식의 두꺼운 빵 같은 비스킷으로 나누어집니다.
KFC에서 파는 두꺼운 비스킷이 미국식이고, 제과업체에서 파는 과자 같은 얇은 비스킷이 영국식 비스킷입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