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70화 (70/327)

70. 길목에서 건설을 외치다. (3)

“이제 열이 식었을 겁니다.”

나흘 동안 막았던 가마의 문을 열자 여전히 후끈하게 뜨거운 공기가 피부에 느껴졌다.

사람들이 줄을 지어 벽돌을 꺼내기 시작했는데, 가마로 들어갈 때는 붉은 황토에 풀이 섞인 흙 돌이었다면, 지금은 붉은색과 검은색으로 단단하게 구워진 벽돌이 되어 나왔다.

[땅! 탕!]

속까지 단단하게 구워져 벽돌끼리 부딪쳐도 부서지지 않았고, 마치 차돌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좋구만. 이 정도로 튼튼하다면 집이 무너지거나 하지는 않겠어.”

지붕에 올릴 기와도 쓸데없이 튼튼하다고 할 만큼 불에 제대로 구워진 것 같았다.

“원하시는 벽돌이 나와준 것 같아 저도 마음을 놓았습니다. 그럼, 이대로 계속 만들면 되겠습니까?”

“그래, 우선 5번 더 구워주게나.”

한 번 가마를 돌리면 벽돌 800개에 기와 300개가 만들어지니 집을 짓는 데는 2번만 더 가마를 돌려도 되었다.

하지만, 이렇게 튼튼하게 나온 벽돌과 기와라면 아무리 초가지붕에 흙벽을 세우는 조선이라도 어디든 수요가 있을 것 같았다.

가마의 열이 식는 사흘 동안 미리 만들어 두었던 흙벽돌이 다시 가마 안으로 들어갔고, 다시 가마에 불을 붙였다.

가마에 불이 꺼지고 열이 식는 동안에도 준비할 것이 많았는데, 산에서 나무도 준비하고, 틀로 찍은 흙벽돌도 다시 만들어 말려야 했다.

간단한 벽돌을 구워내는 일에도 이렇게 인력이 들어가는데, 사옹원에 쓰이는 물품을 만들어 내는 데는 얼마나 인력이 갈려 들어갔을지 상상도 안 되었다.

거기에, 가마에서 소비되는 장작들로 인해 산림이 황폐해질까 걱정되어 나무를 심는 조림도 신경 써야 했다.

‘일이 이렇게 많은데, 대우해주지 않았으니 다들 도망을 쳤지.’

사기장들에겐 조와 수수 같은 잡곡이라도 넉넉하게 주어 배고프지 않게 했고, 장이나 다른 반찬도 챙겨줬다.

그런데도 원래가 부지런한 건지, 저수지 인근 땅을 호미 하나로 개간해 뭐라도 심으려고 했다.

어린아이들도 저수지로 흘러 들어오는 하천에서 피라미 같은 것을 잡아 구워 먹었고, 미꾸라지나 붕어, 잉어를 잡기 위해 대나무로 만든 통발도 여기저기 두어 추어탕을 자주 끓여 먹었다.

뭔가 벽돌 가마는 시스템이 만들어진 것 같았다.

***

“어디서 벽돌을 이리 많이 구해온 겁니까? 이 정도면 행랑처럼 쭉 이어진 집 2채는 충분히 지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런데, 방을 8칸이나 만들겠다는 게 진짜입니까?”

상주에서 석장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호철은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초입에 8칸이나 집을 짓는다는 게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8칸이 아니라 12칸이네. 한 채에 4칸씩 해서 3채를 지어주게. 화장실도 3개가 필요하네.”

“네? 소달구지에 벽돌을 싣고 온 저치들 20여 명이라면 4칸이면 충분할 텐데요.”

“그래 저치들 4칸에 길손들이 묵을 8칸이 필요한 거네. 아 참, 거기다 저쪽 개울 쪽에는 몸을 씻을 수 있는 목욕탕도 있어야 하네. 집을 짓는 조수로는 이 친구들을 쓰면 될 것이고.”

가마를 짓고 벽돌을 만드는 일에서 재인 무리를 빼 왔는데, 이제는 집 짓는 인부로 일해야 했다.

그리고, 재인들은 이제 집을 짓는 일을 해야 한다는 말에 얼굴들이 어두워졌다.

“다들 그렇게 힘이 빠지면 쓰나. 좋은 것도 있네. 자네들이 1년 내내 재주를 부릴 공연장도 저기에 만들어야 하네. 자네들이 한판 놀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어야 하기에 자네들을 여기에 투입하는 거야.”

“네? 공연장 말입니까요?”

“그래. 재주 부리는 자는 재주를 부려야지. 직접 바닥을 다지고,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단을 만들어 많은 사람이 즐길 수 있는 공연장을 만들게. 이 집에 묵는 사람들에게 자네들 재주를 보여주어야지.”

모가비 길근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집을 짓는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만 해도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었다.

하지만, 공연할 공연장을 만든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아졌다.

“저희가 난장을 치고 놀아야 하는 판을 만들어야 한다면 저희가 만드는 것이 당연하지요. 하하하. 어서 벽돌을 옮기지 않고 뭐 하느냐! 어서 옮겨라!”

목장과 석장을 도와 재인들이 벽돌을 옮길 때 원종도 벽돌을 여럿 빼서 화덕 만드는 걸 고민했다.

‘여러 가지 요리를 해 먹으려면 캠핑용 화덕을 만드는 게 좋고, 빵을 굽거나 하기에는 전통 방식이 좋은데 어떤걸 만든다.’

여러 요리를 해 먹거나 하기에는 캠핑용 화덕이 좋지만, 캠핑용 화덕을 만들려면 철판도 있어야 했고, 여러 현대문물의 힘을 빌린 소재들이 있어야 했다.

결국, 화덕 안에 불을 피우고 그 앞에 음식을 올려 굽는 피자 화덕 형태로 만들기로 했다.

***

“도, 도련님! 그급히 벽돌... 헉헉. 벽돌 가마로 가보셔야 합니다. 허억, 허억.”

“왜? 무슨 일이냐?”

“포, 포졸들이 왔습니다요!”

포졸이란 말에 잘못한 게 없으니 당당했지만, 찔리는 구석은 하나 있었다.

‘도망친 사기장들을 잡으러 온건인가?’

아직 어떤 이유로 포졸이 온 건지 밝혀진 게 없지만, 괜히 찜찜한 마음으로 내려갔다.

가마에서 벽돌을 꺼내는 중에 들이닥친 것인지 사기장들은 한쪽으로 물러나 있었고, 아전 두 명과 포졸 4명이 있었다.

그리고, 농사꾼으로 보이는 자들도 몇 있었다.

“응? 전도령 아니시오? 그럼, 이치들이 문경 전씨네 사람들이었소이까?”

다행이 아는 얼굴이었다.

작년 겨울 나이기온 옷을 가져가며 관노를 대신 넘겨주었던 아전 김율시였다.

그리고, 내 얼굴을 알아보고 급 방긋 웃는 그의 모습을 보니 사기장들을 잡으러 온 것은 아닌 것 같아 나도 마음이 놓였다.

그것 외엔 꿀리는 것이 없어 나도 그에게 반갑게 인사를 했다. 어떻게 보면 관노를 빼돌려 쓰고 있는 상태라 한배를 타고 있는 동업자나 마찬가지였다.

“집안에 벽돌이 필요해서 여기서 좀 굽고 있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었습니까?”

“아유, 문제는 무슨... 그저, 저 아래 농꾼들이 수확이 끝나서 저수지를 보강할 겸 물고기를 잡아먹으러 왔는데, 저치들이, 아니 전씨네 종들이 이미 고기를 다 잡아먹고 하여 그게 억울하다고 이야길 하더이다. 허허허 별거도 아닌 일이지요.”

“아, 저수지를 관리하는 자들이 따로 있었군요. 자네들 이리로 오게나.”

아랫마을에서 올라온 6명의 농꾼들은 쭈뼛거리며 다가왔는데, 잔뜩 겁을 먹은 모습이었다. 물론, 원종의 뒤에 서 있는 금산의 흉측한 모습에 겁이 난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양반의 패악질이 걱정스러운 것이었다.

‘아, 그러게, 이렇게 크게 일을 벌이는 건 양반들일 거라고 그냥 멀찍이 보고 물러가자고 했는데. 괜히 황구 놈 말에 넘어가 관에 신고해서 일이 이렇게 돼버렸잖아. 썩을.’

원종은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이리오라 부른 것인데 겁을 잔뜩 먹은 이들을 보니 괜히 미안했다.

“내년 농사를 위해 저수지를 보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 내 저 벽돌을 내놓겠네. 저수지를 살펴보고 틈새를 메꾸어야 한다면 돕도록 하지. 그리고, 물고기를 대신에 잡곡 한 가마니를 내놓지. 그렇게 하면 되겠는가?”

“네? 잡곡을 주신다고요?”

“그래 잘못 들은 게 아니네. 잡곡 한 가마니를 줄 테니 먹고 겨울을 준비하게.”

“아이고, 감사합니다요. 양반 나리들이 큰일을 하고 계신 것인데 그걸 모르고 저희가 엉뚱한 짓을 했습니다요. 그럼 저희들은 이만 가겠습니다요.”

농꾼들은 괜히 더 있다 불똥이 튈까 걱정되어 어떻게든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그런데 전도령. 벽돌과 기와를 굽는 양이 엄청 많은데 이걸로 뭘 하려고 하는 것이오?”

“뭔가를 짓는 데 쓰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남으면 벽돌이나 기와를 팔려고 합니다.”

“벽돌과 기와라...”

아전 수리인 김율시는 처남이 송상의 행수라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아전으로 있으면서 돈의 흐름과 냄새를 아는 것인지 한참이나 벽돌을 들었다 놓았다 하며 재었다.

“전 도령 혹시... 이 벽돌을 더 크게도 만들 수 있소?”

“어느 정도 크기를 말하는 겁니까? 아 편수에게 바로 듣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편수 지관은 이리 오게나.”

“가로 2척(尺 약 60cm)에 세로 1척의 크기로도 만들 수 있는가? 그렇게 크게 만드는 것도 이렇게 딱딱하게 잘 만들 수 있나?”

“물론입니다요.”

“그럼 되었네. 전도령 우리 저쪽으로 잠시 걸어보세.”

김율시는 다른 이들이 듣지 못하는 곳으로 원종을 이끌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도령. 혹시 문경 새재 위에 있는 고모산성(姑母山城)에 한번 가보았소?”

“새재를 넘을 때 단순히 지나가기는 했습니다.”

“어떻게 보았소?”

갑자기 산성이 어떠냐고 물어보니 무슨 의도인지를 몰랐다.

“그거야 그냥 산성 아니겠습니까?”

“그렇지. 아주 오래된 산성이지 신라 시대 때 지어졌다고 하니깐. 그래서 올겨울에 고모산성을 수리 겸 개축한다고 하는데. 이시애의 난 이후 각 거점에 있는 성들의 방비를 점검하라 했고, 고모산성은 아예 개축하기로 했소.”

“그렇군요.”

원종은 고모산성이 개축한다는 것이 왜 중요한지를 몰랐다.

“음. 보통 성을 개축할 때 보면 말이지. 산에 있는 석재를 다듬어서 성에 쓰네. 아주 많은 석장과 돌이 쓰이지. 헌데 말일세 겉은 돌을 다듬어서 쓰더라도 그 안쪽 눈에 보이지 않는 곳을 저 정도로 튼튼한 벽돌로 쓰면 어떻게 되겠나?”

“아, 그런 말이었군요.”

김율시는 성 개축할 때 화강석 같은 비싼 돌 대신 벽돌을 넣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일에 아무리 아전의 우두머리라는 수리(守吏)라고는 해도 자기 마음대로 좌지우지할 수 있는 건가?’

“제가 벽돌을 만져보고 하니 튼튼하긴 했지만, 화강석을 깎는 것보다는 약할 것입니다. 만약 벽돌로 채웠다가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할 겁니까?”

“저 정도로 튼튼하기만 하다면야 일이 생기겠나? 그리고, 고모산성은 예전 삼국시대에야 중요한 성이었지 고려 이후로는 저기서 싸웠던 일도 없지않소.”

김율시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앞으로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기억에 떠오르는 전쟁 중에서 고모산성이란 이름이 나왔던 적이 없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립 장군이 탄천으로 가지 않고 문경새재에게 방어했다면 저 고모산성이 쓰였을지도 모르지만, 몇백 년 동안 전쟁이 없는 성이긴 했다.

‘앗 그러고 보니, 내 후손이 살아갈 땅인데 임진왜란도 안 벌어지게 막아야 하는 건가. 미리 신립을 위해 예언을 남겨? 아니지, 아예 일본의 도요토미를 죽여야 하나.’

아직 임진왜란까지는 100년 넘게 남았지만, 내가 남기는 유산으로 임진왜란 같은 걸 막을 수 있다면 막고 싶었다.

“허허, 뭘 그리 골똘하게 고민하는거요? 그렇게 중한 문제가 아니라니까. 이제까지 이렇게 다 해 먹었다니깐 그러네.”

“그래도 혹여나 일이 잘못될 경우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걱정하지 말게. 돌을 벽돌로 바꾸고 남는 이익을 내가 다 먹겠나? 다 위로 두루두루 칠을 하게 되어 있네. 절대 걸리지 않아.”

절대 걸리지 않는다는 김율시의 말을 들으니 왠지 더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돌다리를 두드리는구먼. 내일 돌을 깨는 석장이 오는데, 그때 한번 산성의 벽을 허물 거네. 그때 산성 벽을 한번 보고 판단을 하게.”

“그럼 내일 산성으로 바로 올라가 있겠습니다.”

비싼 화강석 대신 성벽 안에 넣을 만한 벽돌을 찾아서 그런지 김율시는 어떻게든 원종을 끌어들이고 싶었다.

큰돈은 아니지만, 기와까지 올리는데, 관노를 쓴다면 이리저리 몇 가마니는 더 챙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빼먹을 수 있을 때 못 빼먹는 놈이 바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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