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길목에서 건설을 외치다. (1)
“...그렇게 된것입니다.”
가족들에게 전순의 영감을 만나 의술을 배운 이야기와 방설환을 만들어 주상전하를 배알 한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좌의정 한명회의 소개로 잘산군까지 만났다고 이야기하자 형과 형수는 놀라워했다.
아버지는 다른 이야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지만, 주상전하가 약을 만든 것을 치하했다는 말에는 은근히 좋아하셨다.
“향교에서 듣기로, 남이가 죽고, 구성군 이준이 귀양을 가며 한양의 분위기가 좋지 않다고 하더구나. 가만히 있다가도 불똥이 튀어 화를 입을 수 있으니, 당분간은 한양으로 올라가지 말도록 하거라.”
“네. 그렇지 않아도 당분간은 문경에 있을 요량입니다. 허나. 기주형이 신숙주 대감의 줄을 잡고 한양에 있다 보니, 제가 한양에 있든 없든 그쪽으로 줄을 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으흠. 그렇다면, 조정일에 관여하지 말고, 전순의 영감처럼 내의원의 의원이 되어 떨어지는 칼날도 피할 수 있게 처신하거라. 첫째도 조심이고 둘째도 조심이다.”
“네. 명심하겠습니다.”
아버지는 젊은 날에 계유정난으로 쓸려나가는 혈사를 겪어서 그런지 몇 번이고 조심하라며 걱정하셨다.
그리고 원길 형은 아버지와 다르게 군식구가 늘어난 것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
“네가 외유하며 데리고 온 저자들은 어찌할 것이냐? 보니 농군도 아니고, 재주넘는 놈들이라고 하던데. 그 뭐라고 하더라. 서거수단?”
“네. 이번에 방설환을 팔아보니 그냥 약만 파는 것보다는 재주 넘는 이들이 재주를 넘고 바람을 잡아주니 훨씬 더 판매가 좋았습니다. 그래서 저들을 바람잡이로 쓸 요량입니다. 음성에서 가져온 재물을 보셨지요? 저 치들과 같이 약을 팔고 얻은 재물입니다.”
“오호! 재주 넘는 놈들도 쓸모가 있는 것이구만. 그렇다면야 안심이다. 하면 저 자기 굽는 놈들은? 이야길 들어보니 굶어 죽을 것 같아 관요에서 도망친 놈들이라고 하던데, 아무 문제 없겠느냐?”
“도망쳐 왔기에 문제가 없을 수는 없겠지요. 우선 저들도 재인 백정으로 해서 제 아래에 둘 생각입니다. 음성 현감을 통해 재인들을 제가 거두어들인 것이 기록으로 남아 있으니 잡으러 온다고 해도 대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원길 형에게는 다 생각이 있다고, 이야길 했지만, 사실 막막했다.
사기장 무리가 34명이었고, 재인 백정 무리가 22명으로 56명이나 되었기에 입히는 건 고사하고 먹는 것도 걱정이 되었다.
여기에 금산과 사냥꾼 출신 달유와 오추까지 있다 보니 등골이 빠질 것 같았다.
방설환을 팔아 버는 돈으로 먹일 수야 있겠지만, 방설환은 여름에 주로 판매가 되는 약이었고, 이미 제조법을 공개했으니 나만 팔 수 있는 약도 아니었다.
방설환의 가격은 점점 내려갈 터였다.
‘사람이 많으니까 노동 집약형 산업으로 가야 하는 게 맞는데...’
노동 집약형 산업의 대표적인 것은 농사였다. 하지만, 이미 집안의 논밭에는 소작을 부쳐 먹는 인원이 다 차 있었고, 결정적으로 농사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농사 다음으로 노동 집약형 산업은 제조와 서비스업이지, 물건을 만들고, 그걸 사고팔고, 용역을 제공하는 것까지 가능할 것 같은데.’
사기장이 있으니 가마를 만들고, 그릇을 구워 파는 일과 문경새재를 넘어가기 전에 묵을 수 있는 숙박업소 일을 우선순위로 잡았다.
“아이고, 오셨습니까요?”
모가비 갈근이 나를 보자 굴러 나오듯이 튀어나오며 절을 했다.
‘사기장 놈들이 먼저 와 있었다지만, 구르는 돌이 박힌 돌을 빼내는 것이지. 이런 살랑거리는 일은 내가 최고다.’
갈근은 타고난 눈치 보는 실력으로 헤헤거리며 원종에게 절을 했다.
이런 갈근에게 질세라 사기장 편수인 지관도 뛰어나왔다.
‘천한 놈들답게 알랑방귀 뀌는 건 빠르구나. 저런 천한 놈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 드려야 한다.’
원종은 서로를 견제하는 모습이 재미가 있으면서도 이런 경쟁심리를 어떻게든 긍정적인 방향으로 써먹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들 푹 쉬었으니 이제 일을 좀 해야 하겠네. 가마를 만들어야 할 터인데, 내가 알기로는 가마를 만들고도 제대로 운영하려면 시간이 꽤 걸린다고 하던데 맞나?”
“그게... 뭘 만드는 가마이냐에 따라 다릅니다요. 사옹원(司饔院)에서 쓰이는 고급 자기를 만드는 가마라면 제대로 열기가 흘러야 하기에 만드는 데 몇 개월씩 시간이 걸리지만, 기와나 장독을 굽는 가마는 만들기가 쉽습니다요.”
“오, 그럼 다행이군. 내가 만들려고 하는 것이 벽돌이네. 황토로 만든 벽돌. 벽돌을 만들어 본 적 있는가?”
“벽돌이라... 정원 바닥에 까는 전돌은 구워봤었습니다.”
전돌이라 하면 그림을 그린 흙 판을 구워 정원에 디딤돌처럼 까는 것을 말하는데, 벽돌과 비슷하게 제작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잘되었군. 내가 만드는 벽돌은 전돌처럼 바닥에 까는 것이 아니라, 집을 짓는 데 쓸 것이야. 자네들이 살집을 벽돌을 지을 것이네.”
“도련님. 그냥 초가를 지어 살면 되는데, 왜 돈을 더 들여 벽돌로 지으려고 하시는지요?”
지관은 비싸게 벽돌을 구워 집을 짓는다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넓은 집을 지으려고 하기 때문이네. 나무로 벽을 세우고 그 위에 흙벽을 발라 세우는 집은 그 크기가 작을 수밖에 없네. 허나, 단단하게 구운 벽돌로 집을 지으면 천정을 더 높이 할 수도 있고, 기와를 올리기도 쉬울 것이네. 아 물론, 구들장을 만들기도 쉽지.”
“벽돌로 구들(방바닥을 만드는 돌)을 대신해 깔겠다는 말이옵니까?”
“그렇네. 집을 짓는 것은 목장이나 석장이 할 테니, 자네는 벽돌을 구울 가마를 만들어 주게나. 가마터 장소는 달유와 오추를 붙여 줄 터이니 좋은 흙이 많은 곳을 한번 찾아보게. 고모산성이 있는 위쪽에 보면 내천(內川)이 있는데, 그 인근을 먼저 살펴보고 산에 오르기 전에 있는 신기 저수지 인근을 한번 살펴보게나.”
“네.”
편수 지관은 흙을 볼 줄 아는 수비장(水飛匠)과 조를 나눠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재인들은 풀을 좀 베어야 하겠네. 벽돌을 구울 때 볏짚을 넣어서 굽는데, 볏짚은 쓸 곳이 많으니, 잡초나 들판에 핀 여러 풀을 베어서 쓸 것이네.”
“그냥 풀만 베어두면 되는 것입니까요?”
“일단은 그렇네. 최대한 많이 베어보게. 벽돌을 만들지 않더라도 토끼나 염소의 먹이로 쓸 수도 있으니깐.”
사기장팀과 재인팀에 일을 시킨 후 원종도 가만히 시간만 죽이는게 아니었다.
금산을 보디가드 삼아 문경새재를 넘어가는 초입을 이리저리 살폈다. 물을 쉽게 구할 수 있고, 어느 정도의 텃밭도 가꿀 수 있는 그런 곳을 원했는데, 배산골이라는 작은 마을이 적절해 보였다.
배산골 마을은 초가집 8채가 전부인 작은 마을이었는데, 집에 남는 방을 민박 비슷하게 길손들에게 빌려주고 돈을 받는 것이 서비스의 전부였다.
“이보시오. 여기 마을 땅을 좀 사려고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하오? 주인이 누구요?”
“네에? 여기 땅을 산다굽쇼?”
밭에서 일하는 남자는 땅을 산다는 말을 듣고도 이해를 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이 밭의 주인은 누구요?”
“이 밭은 쇤네가 터를 잡은 곳이라 제가 주인입니다요.”
“그럼, 저기 공터 땅은 누가 주인이오?”
“네에? 그냥 공터인데 주인이 어디 있습니까요?”
대답을 들은 나도 황당해했지만, 대답한 남자도 황당해했다. 그리고, 왜 이런 대답이 나온 것인지 알 것 같았고,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아챘다.
‘땅 주인이 지금은 예종이구만.’
조선의 모든 땅은 기본적으로 왕의 땅이었다.
실질적 소유주가 있을 수는 있겠으나, 관념적으로는 모든 조선의 땅이 왕의 소유였다.
즉, 조선의 가장 부자는 국왕이며, 모든 이들은 국왕의 은혜를 받으며 땅의 소유권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었다.
과전법이든 직전법이든 수조권이든 땅을 관리에게 주더라도 모든 토지의 주인은 국왕이었고, 지금 내가 사려고 하는 땅도 조선의 왕이 가진 땅이었다.
그리고, 저자가 땅의 주인을 모른다고 한 것은, 전혀 관리가 안 되는 땅이라는 소리였다.
토지는 나라가 돌아가게 하는 세수의 원천이었기에 조선에선 세금을 받는 땅(주로 논과 밭)이 얼마나 늘었는지, 경작 상황은 어떤지를 정기적으로 조사했는데, 이를 양전(量田)이라 했다.
그리고 양전으로 정리된 사항을 쓴 책을 양안(量案)이라고 했는데, 쉽게 말해 토지대장이었다.
이 토지대장 양안을 바탕으로 하여 전세(田稅)를 거두었는데, 논밭이 양안에 올라가 있지 않으면 어떠한 세금도 내지 않을 수 있었다.
조선에서는 법률로 20년마다 양전 사업을 하여 양안을 새로 만들게 했는데, 문제는 전쟁 같은 상황으로 인해 제대로 조사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방 고을 수령들이 자체적으로 양전을 챙겨 양안을 새로 바꾸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지역은 제대로 된 토지조사가 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산골같이 생산량이 부족한 곳은 누락되기 일쑤였다. 아니면, 양전 이후 만들어진 밭이었기에 아예 그 존재를 모를 수도 있었다.
‘개꿀! 그냥 공짜 땅이다! 그냥 건물 올리고, 밭 개간을 하면 되는 땅이야!’
원종은 땅값을 아끼게 되었다고 좋아했다.
예종이라는 땅의 주인은 있지만, 실질적으로는 주인이 없는 땅이었기에 공짜였다. 고로, 내가 집 짓고, 개간하면 내 땅이었다.
추후 양전으로 양안에 오르게 되면 그때 땅에 대한 세금을 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럼, 여기에 마을 촌장은 있는가?”
“촌장이라고 할 그런 사람은 없고, 저기 안쪽 박이 크게 열린 집의 진쇠 어르신이 대소사를 챙겨주십니다요.”
“고맙네. 일하게나.”
***
“마을에 집을 지으시면서 우물을 파주시겠다고요?”
“그렇네. 저 옆으로 시냇물이 흐르고는 있지만, 마을에 우물은 없더군. 그래서 우물을 파주려고 하네. 물론, 내가 집을 짓고 하는 데 불편해서이기도 하고.”
“우물을 파주시는 것은 고마우나. 왜...”
“내가 문경새재를 넘어보니 편히 쉴 곳이 없더군. 그래서 사람들이 편히 쉴 수 있는 여관(旅館)을 하려고 하네.”
진쇠는 당돌하게 이야길 하는 어린 양반에게 뭐라고 하고 싶었지만, 신분에서 오는 문제도 있었고, 뒤에 앉아있는 금강야차 같은 무사 때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하하하. 고맙네. 그럼 터를 다지고, 하는 사람들이 올 것이니 그치들을 상대해서 돈 벌 궁리나 하게.”
***
상주에서 우물을 잘 판다는 자를 불러 배산골에 우물을 파게 하고, 벽돌로 집을 지을 수 있는 목장을 찾으니 사기장 지관이 가마터를 세울 곳을 정했다고 알려왔다.
그리고 예상대로 그곳은 고모산성의 뒤쪽과 신기 저수지 근처였다.
“도련님이 고모산성 뒤 천(川)이 갈라지는 곳을 살피라 하셨는데 그곳의 흙이 좋았사옵니다. 그리고, 거기보다 못하지만, 신기 저수지 인근에도 꽤 좋은 흙이 많이 있었사옵니다. 어떻게 그곳에 좋은 흙이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까? .”
“지나가며 얼핏 본 것인데 맞았다니 다행이군.”
“역시, 도련님의 식견은 대단하십니다.”
편수 지관이 대단하다고 입을 모았지만, 사실 현대에서 문경새재를 차로 지나갈 때 거기에 도자기를 굽는 도예촌이 있다는 표지판을 보았기에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조선 후기 광주 관요가 문을 닫으며 흩어진 도공들이 문경새재 근처로 몰려들어 도자기를 구웠는데, 그때 문경에만 12곳의 민요가 만들어졌었다.
그만큼 문경 인근에 도자기를 구울 수 있는 좋은 흙이 있다는 말이었다.
운전하며 지나갈 때 보아뒀던 것이 도움이 되었다.
“신기 저수지에 쌓인 흙으로 벽돌을 굽는다면 괜찮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틀모산도 있어 땔감을 가져오기도 좋을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가마를 만들어 주게. 저수지 옆의 가마에서는 벽돌이나 기와를 굽고, 안정이 되면 산성 위에서 제대로 된 자기를 구워보세.”
*
[작가의 말]
실제 경기도와 하삼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는 인구도 많고 개간도 많이 하기에 꽤 자주 양전을 해서 양안을 변경했었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작고 난리를 많이 겪은 황해도, 함경도 같은 경우에는 70년 혹은 100년에 한 번 할 정도였습니다.
양전이 단순 조사라고는 하지만, 교통편도 없고, 항공촬영도 못하다 보니 제대로 된 조사자체가 힘들었었습니다.
이방이라 불리는 아전과 고을 군수들의 장난질도 당연히 있었구요.
어떻게 보면 땅으로 인한 절세(혹은 탈세)도 아주 유구한 우리의 전통일지 모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