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나중에 좀 도와주십시오.
잣을 잘게 부수어 밀가루와 반죽 하였다. 축축한 반죽을 손에 올려 속이 빈 만두처럼 만들곤 그 안에 꿀을 채워 넣었다.
‘설탕만 있었다면 진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데...아 진짜 설탕 마렵네.’
설탕을 써야 할 때면 그 대체재로 꿀을 쓰고 있었지만, 늘 배를 타고 사탕수수 교역을 하러 떠나고 싶다는 욕망이 치고 올라왔다.
곱돌솥이 올려졌던 곳에 솥뚜껑을 거꾸로 놓고 불을 지폈다.
솥에 열이 오르자 일전 황금밥을 하며 따로 챙겨 두었던 수유를 솥뚜껑에 모두 다 넣었다.
수유는 열을 받아 금세 녹더니 기름 물이 되었다.
수유가 어떤 것은 치즈였고, 어떤 것은 버터였는데, 치즈를 가리키는 건락(乾酪)이라는 말이 있음에도 치즈와 버터를 제대로 구별하는 사람들이 잘 없었다.
실제, 버터와 치즈를 한 덩어리로 뭉쳐 받치는 수유치들도 있었기에 그냥 다 수유라고 부르는 게 지금의 현실이었다.
‘재료의 이름이나 분류에 대해서도 정립을 해야겠구나.’
요리를 하나 제대로 하게 되어 그 이름을 알리게 되면 부가적으로 해야 할 일도 같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일단, 부산 남포동의 명물인 갠지스강 호떡이다.’
다른 지역의 호떡과는 달리 예능 방송으로 유명세를 탄 남포동 호떡은 다양한 견과류가 들어가 있다는 것이 장점이기도 했지만, 그보다 먼저 화제가 되었던 것이 있었다.
바로, 인도 갠지스강의 물처럼 누런 버터 물에 호떡을 튀기는 것이었다.
‘이 노랗게 보이는 버터 물이 위생적으로 보이지는 않지.’
하지만, 양식에서 스테이크 고기를 구울 때도 향미를 위해 버터를 사용했고, 식용유를 구하기 힘든 유목민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구이를 위한 기름이기도 했다.
‘그리고 호떡에 식용유 대신 버터를 쓰는 이유는 식용유와는 다르게 식으면 더 바삭해지는 식감을 위해서지.’
원종은 호떡을 구우며 둥근 호떡 모양을 하트 모양으로 만들었다.
호떡 누름개가 없어 밥뚜껑과 뒤집개로 만들어야 했지만, 제대로 된 도구 없이 만든 것 치고는 제대로 된 하트 호떡이 구워졌다.
“하하 어서 오게. 이 돌솥비빔밥이 왜 부부간을 위한 음식이라고 하는 줄 알았네. 서로가 먹여주는 것도 있지만, 눌어붙은 눌은밥을 떼어 먹이는 게 참으로 재미가 있었어. 아주 재미있는 음식이었네.”
잘산군의 말에 다시 부인 한 씨의 얼굴이 붉어졌는데, 서로 떠 먹여주고 했던 알콩달콩했던 게 생각나서 부끄러운 것 같았다.
“마마. 이 돌솥비빔밥은 원래 가난했던 양반 부부가 밥이 부족하여 서로 눌어붙은 눌은밥을 긁어먹으며 서로를 위하는 것에서부터 유래한 음식입니다. 서로 어려운 때를 기억하고 서로를 위해주자는 그런 의미가 담긴 음식 입지요.”
“그렇구만. 부인 우리도 나중에 오늘을 기억합시다. 하하. 돌솥을 긁기 위해 입을 앙다문 모습이 귀여웠소.”
“흠흠. 그리고, 이 후식은 호떡(好떡 좋아할 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 좋아 먹는 떡이란 말이온데...이게 그... 그거인지라. 후후후. 아시겠지요?”
원종의 말에 한 씨 뿐만 아니라 잘산군도 얼굴이 붉어졌다.
원래 호떡의 호는 오랑캐 호(胡)자를 쓰는데, 조선 말기 청나라의 상인들이 조선으로 들어오며 알려진 소병(燒餠)이라는 구운 떡이 그 원모습이라 할수 있었다.
이 소병이라는 구운 떡은 군만두처럼 고기와 야채를 넣어 구워 먹는 것이었는데, 조선에 전해지며 단 것을 넣어 굽는 형태가 되었고, 설탕이 흔해지는 시기가 되자 지금의 호떡 모습이 된 것이었다.
“이 호떡 또한 연인 부부를 위한 후식이온데, 이 호떡의 모습이 특이하지 않으십니까?”
“그렇네. 둥근 모양도 아니고, 삼각형도 아닌 특이한 모양이로군.”
“네. 마마. 바로 이것이 사람의 심장 모양이옵니다. 사람의 몸 전체에 피를 흘려보내게 하는 장기이지요.”
“오, 심장이 이런 모양이었군. 역시, 식료의 답네.”
“네. 이 심장 모양으로 만든 호떡은 사랑하는 연인이나 배우자에게 자신의 심장이라도 떼서 먹여줄 수 있다는 그런 마음가짐을 담고 있습니다. 이 이야기만 들으면 심장을 떼서 준다는 것이 흉측하지만, 실상은 호떡의 달콤한 꿀맛처럼 자신의 사랑으로 배를 채워주겠다는 것이옵니다.”
“배를 채워준다고? 하하하. 그렇다면 내가 직접 먹여줘야겠군.”
잘산군은 웃으며 부인 한 씨의 배를 쳐다봤고, 부인 한 씨는 그런 잘산군의 모습에 부끄러운지 고개를 아예 들지 못했다. 이제 13살 12살의 꼬맹이들의 이런 모습을 보자 나도 웃음이 나왔다.
‘아니지. 예종은 11살 때 자식을 낳기도 했으니, 이게 가능성은 또 있는 거네. 애들이지만, 애들이 아닌 그런 느낌이구만.’
“자네는 어찌 이런 음식을 다 아는 것인가? 내 감탄을 금치 못하겠네. 자네 같은 이를 소개해주신 장인어른께 감사해야겠어.”
잘산군은 말을 하면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호떡을 떼서 부인 한 씨에게 먹여주었는데, 어린것들의 꽁냥거리는 모습에 왠지 흐뭇하면서도 안타까움에 눈물이 흐를뻔했다.
***
“이보게 장인어른께서 좋은 소고기를 보내주셨는데, 이 소고기로 뭔가 특별한 요리를 해주게나.”
“마마. 제가 소고기를 살펴보니, 가장 질이 좋은 소고기입니다. 이런 고기는 특별한 조리 없이 그냥 바로 석쇠에 구워 먹는 것이 가장 맛이 있습니다.”
“응? 그런 건가?”
잘산군은 흔히 볼 수 있는 채소나 밀가루를 가지고도 이제껏 보도듣도 못한 요리를 해준 원종이었기에 소고기라면 어떤 신기한 요리를 해줄지 기대를 했었다. 헌데, 그냥 평범하게 고기를 구워 먹자고 하니 뭔가 아쉬했다.
“마마. 소고기로 할 수 있는 요리는 많사오나, 이런 최상급의 소고기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직화로 구워 먹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옵니다. 양념을 하고 여러 조리 방법을 쓰는 것은 고기의 잡내라던지 떨어지는 고기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기책(奇策)일 뿐이옵니다.”
물론, 고기가 좋으면 바로 육회로 먹는 방법도 있었지만, 접종도 없이 자란 소였기 때문에 기생충을 생각해서 제외했다.
“그렇군. 가장 좋은 재료는 그 상태 그대로 먹는 게 좋다는 말이구만. 그럼 숯불에 구워주시게나.”
“네. 마마.”
석쇠에서 익어가는 소고기를 젓가락으로 뒤집다 보니 또 부족한 게 느껴졌다.
‘고기를 구울 때 필요한 집게와 가위도 있어야겠구나. 이것도 유기로 만들어질까. 아, 그러고 보니 만들어 온 게 있었지.’
원종은 목장에게 만들어 온 물건을 꺼내어 돌렸다.
“응? 그건 뭔가? 방망이 같은데. 엇? 거기서 나오는 건 뭔가?”
“네. 마마 통 호초(胡椒)를 갈아내는 갈음통 입니다.”
[드르륵, 드르륵~!]
원종은 갈음통이라고 이야기한 후추 그라인더의 위아래를 잡아 돌리며 부산스레 이리저리 움직여 갈린 후추를 고기에 뿌렸다.
그리고, 이렇게 후추를 뿌려대는 모습에 잘산군은 감탄하며 내 손에 든 후추통을 눈으로 좇기 바빴다.
‘역시, 실록에 나와 있었던 것처럼 잘산군은 후추에 환장하는구나.’
성종은 후추의 얼큰한 맛을 너무 좋아하여, 매년 후추의 종자를 도입하여 조선에서도 재배할 수 있게 하라고 명을 내렸었다.
물론, 한반도가 재배조건이 되지도 않았지만, 당시 후추를 재배하는 곳에서 후추를 내보낼 때는 반드시 뜨거운 김으로 쪄서 싹이 나지 못하게 처리했었다. 그래서 후추 종자를 구하는 것조차 힘든 일이었다.
결국, 성종이 그토록 원했던 후추의 국산화를 이루어내지 못했고, 미래 한국에서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후추를 재배하지 않았다.
후추통에 이어 같은 모양으로 생긴 갈음통을 꺼내어 돌리자 이번에는 흰색의 고운 가루가 나왔다.
“그건 소금 갈음통인가?”
“네 마마. 호초처럼 소금도 이렇게 넣어 마음대로 소금과 호초를 칠 수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호초통과 소금통을 잘산군에게 건네주자, 천하의 보물을 얻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후추 그라인더를 이리저리 돌리며 움직였다.
부인 한 씨도 나무 통 안에 호초와 소금을 넣어 조금씩 돌려 뿌리는 갈음통을 신기해했다.
“마마. 고기가 타겠습니다. 드시지요.”
“하하하. 그대가 요란하게 후추와 소금을 뿌려서 그런지 고기가 익었는지도 모를 만큼 시간이 가는구만.”
잘산군은 내가 구워 올려드린 고기에 다시 후추통을 이리저리 돌려 후추를 뿌려댔다.
“이거 재미있구만. 이런 건 또 어떻게 만든 것인가? 가장 좋은 재료로 가장 기본이 되는 방법으로 먹으면서도 이런 것들로 특별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참으로 재미있어.”
“마마. 어쩌면 이 호초와 소금 갈음 통이 전도령의 기책이지 않을까 저는 생각합니다.”
“오! 그렇구려. 일부러 가장 기본이 되게 구워 먹는다고 이야길 했던 이유가 있었구만. 자넨 참으로 의뭉스럽네그려. 자, 부인 듭시다.”
잘산군은 부인에게 먹자고 하면서도 후추와 소금통에 욕심이 있는 건지 쉽게 내어주지 않았다.
“내 마음에 들게 호초와 소금을 뿌려서 먹으니 더 맛있구만.”
“이것보시와요. 기름장에 이렇게 소금과 호초를 뿌려서 찍어 먹으니 더 맛이 있어요.”
“오, 기름장에 소금과 호초를 더하니 더 맛이 있구랴. 맛있게 먹기 위한 기책이구려. 헌데, 전도령...”
“네 마마. 갈음통은 마마께서 가지시면 되옵니다. 부인 마마의 갈음통도 만들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하하하. 내 이야기도 하지 않았는데, 벌써 눈치를 챈 것인가? 자넨 참으로 내 속마음을 잘 아는구만. 크하하.”
‘애들이 가지고 싶다고 하는 눈빛은 보기만 해도 바로 느낌이 오지요.’
그렇지 않아도 성종과 인연이 있을 때 뭔가 기억에 남을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선물로 이 그라인더 통이 딱이었다. 밥을 먹을 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후추를 갈음 통으로 갈아서 뿌려 먹는다면, 갈음 통을 쓸 때마다 나를 기억할 터였다. 이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을 것 같았다.
“이 갈음 통에 후추를 오랫동안 놔두면 설령 후추가 다 떨어지더라도 이 통을 옆에 두시면 후추의 향을 느끼실 수가 있으실 겁니다.”
“그러지 않아도 이제 이 갈음 통을 늘 상 들고 다닐 것이네. 허나, 호초가 비싸서 걱정이긴 하군.”
“그건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소인도 호초를 좋아하여 소인이 크게 되면 큰 배를 빌려 호초를 사러 갈 것입니다. 그러면서 호초의 종자를 들여와 호초를 직접 키울 것입니다. 그러면 호초의 가격이 내려가겠지요. 그때쯤이면 해금령을 거두어들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정도령은 어찌 나와 생각이 같은가? 나도 그런 생각을 했었네. 호초를 수입하지 않고 조선에서 재배하게 된다면 지금처럼 비쌀 이유가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네.”
“대군마마와 제가 통하는 것이 많은 것 같사옵니다. 그럼 제가 커서 배를 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그때 대군마마께서 좀 도와주십시오.”
“좋아. 그러지. 그때가 되면 전하께 내가 직접 해금령의 제외를 주청 드리겠네.”
“마마께서 그렇게 해주신다니 든든합니다.”
‘그럼 이제 약속한겁니다요. 나중에 제가 후추, 설탕 사러 간다고 할 때 방해나 하지 마십쇼. 그리고 그때는 왕위에 앉아계실 테니 배도 좀 팍팍 지원도 해주시고 좀 많이 도와주십쇼.’
배를 타고 나가 후추를 사 오겠다고 둘이 장단을 맞추었지만, 조선의 해금령은 조선이 서양에 의해 강제로 문을 열게 될 때까지 유지가 되었다.
이 조선의 해금 정책은 고려 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온 정책이었는데, 처음 시작은 섬을 비우는 공도 조치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원나라와 항쟁하던 삼별초에 동조하여 섬사람들이 그들에게 합류하지 못하게 모든 섬 거주민들을 육지로 강제 이주시켰었다.
이 공도 조치가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더 확대되어 해금령이 되어 버린 것이었다.
아예 해상 무역 자체를 하지 못하게 막아 버리는 조치였는데, 이 해상 무역 금지 조치인 해금령에 가장 큰 피해를 본 집단이 바로 개경의 왕 씨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