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65화 (65/327)

65. 물이 흘러가는 대로.

잘산군(乽山君)의 부인인 한 씨는 한명회의 막내딸로 추후 잘산군이 성종이 되며 공혜왕후(恭惠王后)가 되는 정실부인이었다.

문제는 그녀가 후손을 보지 못하고 병치레를 하다 19살에 죽는다는 것이었다.

그녀가 명이 짧아 죽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내가 진맥을 본다 하더라도 바뀌는 게 있을까 싶었다.

그리고 만약 진맥하여 현대의 방법으로 이겨낼 수 있는 병이라는 걸 알게 되었을 때가 문제였다.

‘역사상으로는 죽어야 할 사람이 살게 되어 생기는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일전에도 내가 만들어 낸 변화로 인해 역사가 바뀌게 되었을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했었다.

하지만, 그때 고민했던 일반 민중의 삶과 공혜왕후가 되는 한 씨의 삶은 그 무게감부터 달랐다.

아니, 사람의 생명은 같지만, 그녀가 죽지 않고 살게 될 때 생기는 변화의 무게감이 무서웠다.

‘만약, 나로 인해 죽지 않고 살게 되고, 후손을 보게 된다면 앞으로의 역사는 어떻게 되는거지?’

덕이 있는 공혜왕후가 죽지 않고 살게 된다면 당연히 폐비 윤 씨의 일도 없어질 것이고, 태어났어야 할 연산군이 어쩌면 태어나지 않게 될지도 몰랐다.

그리고, 연산군이 태어난다고 하더라도 역사 속의 폭군인 연산군이 되지 않을지도 몰랐다.

‘그래, 연산군이 폭군이 아니게 되는 경우의 수도 있다. 어머니였던 폐비 윤씨가 죽지 않는다면, 연산군이 폭군이 되지 않을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역사가 긍정적으로 바뀔 수도 있다.’

그리고, 역사에는 흐름의 향상성 같은 게 있을지도 몰랐다.

내가 아무리 역사를 바꾸려고 해도 그 큰 물줄기는 바뀌지 않는, 그런 역사 의 흐름이 나로 인해 변해 버린 것들까지 쓸어가 버릴지도 몰랐다.

‘그래, 지금 이게 나로 인해 변하는 역사의 모습을 공혜왕후의 일생으로 확인할 기회인지도 모른다.’

마음을 먹었다.

“제가 식료의라고 제 입으로 이야기는 하나, 그 재주가 변변찮아 부끄럽습니다. 진맥을 하기보다는 식료의 답게 어떤 음식을 먹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알려드리는 것이 소인에게는 더 맞는 것 같사옵니다.”

“그런가? 그럼, 어떻게 먹고, 생활해야 건강하게 되는 것이냐?”

“그게... 대군마마께선 십 일에 몇 번이나 등에 땀이 나게 운동을 하시는지요? 걷거나 달리기 혹은 말타기든 무엇을 하든지 몸을 움직여 등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운동을 하십니까?”

“등이 흠뻑 젖을 정도의 운동이라.”

잘산군은 물론이고 부인 한 씨와 한명회도 과연 자기가 얼마만큼 운동하는지를 생각했다.

“거의 없는 것 같군. 그런데, 그게 중요한가?”

“네. 마마. 본시 사람의 몸에 음식이 들어오고 나감에 있어 노폐물(老廢物)이라는 게 쌓이게 됩니다. 보통은 소변과 대변으로 대부분이 빠져나가지만, 몸에 쌓이게 되는 노폐물 중 어떤 것은 몸의 여기저기에 쌓이게 됩니다. 그런 노폐물이 몸의 여기저기를 아프게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 노폐물을 빼기 위해서는 최소 십 일에 이삼일은 땀을 흘려 노폐물을 빼주셔야 합니다.”

“옳거니. 땀을 흘리고 나서 냄새가 나는 게 그 노폐물이 나왔기 때문이로군.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냄새가 심해지는 것 또한, 그 빼지 못한 노폐물이 쌓여서 그런 것이고 맞는가?”

“네. 나리 맞습니다. 몸에 쌓인 노폐물을 정기적인 운동으로 빼주시기만 해도 몸이 건강해 지실 겁니다. 그리고, 그 땀으로 나온 노폐물은 될 수 있으면 물로 씻어주셔야 합니다.”

“목욕을 자주 하라는 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목욕을 자주 해야 한다는 말에 한명회의 표정이 굳어졌고, 잘산군도 긍정적이지는 않았다.

‘뭐지 왜 목욕을 자주 해야 한다는 말에 저런 거지?’

원종은 한명회나 잘산군의 부정적인 반응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사실 조선 시대에는 목욕을 그리 긍정적인 이미지로 보지 않았다.

이는 숭유억불정책과도 연관이 있었는데, 왜 목욕이 유불교의 종교에 따라 이미지가 다른 것인지 의아스러울 것이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 되었던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안압지를 비롯해 여러 곳에서 목욕탕으로 추정되는 터가 발견되었고, 고려 시대에는 아예 절마다 목욕시설을 구비하여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기 전에 목욕을 하는 것이 법도처럼 되었었다.

허나, 고려의 불교가 사치와 향락으로 타락하게 되고 절에서 목욕하는 문화가 변질이 되어 남녀교합의 장이 되어버리자 유교를 받아들인 조선 시대에서는 옷을 모두 다 벗고 씻는 목욕문화 자체를 등한시되게 되었다.

물론, 세종대왕처럼 온천을 즐겨 온양에 행궁을 만들기도 했고, 여유가 있는 양반들은 집안에 목욕탕을 만들기도 했지만, 고려조의 타락한 불교를 기억하는 이들은 목욕 자체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다.

덕분에 조선 중후기로 가면서 사회적으로 더 유교적 관념이 강화되어 다 벗고 씻는 문화가 더 위축될 수밖에 없었고, 늘 땀을 흘리는 하층민들은 악취와 함께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조선 후기 주한 미국 공사였던 호러스 뉴턴 알렌은 ‘조선은 음식에서마저 사람들의 악취가 진동한다’ 했을 정도로, 불결하고 비위생적인 나라가 되어버렸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사오나, 땀을 흘린 후, 목욕을 하게 되면 노폐물을 씻어 낼 수 있어 피로가 회복되고, 피가 잘 돌게 되어 근육통이나 혈액순환 장애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나 부인병 예방에 아주 좋습니다. 세종대왕께서도 병을 낫게 하려고 온양행궁에 자주 다녀오셨다는 것을 기억해 주십시오.”

“흠. 그렇게 도움이 된다고 의원이 이야길 하니 따르도록 하겠네.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한 이후에는 씻도록 하지. 그 외에는 또 뭐가 있나?”

세종대왕을 언급해서 그런지 목욕을 자주 하라는 말을 받아들인 것 같았다.

“네. 세종대왕께서는 고기를 너무 많이 잡수어, 말년에 여러 병을 앓으셨습니다. 그리고, 세종대왕의 피를 이은 마마께서도 고기를 많이 잡수시면 병이 오실 수 있습니다. 해서 고기는 하루에 손바닥 정도 되는 크기의 양만 드시는 걸 추천해 드리옵니다.”

“손바닥 크기의 고기만 먹으라고? 그렇게 적게 먹으면 오히려 안 좋은 것 아닌가?”

“전혀 작지 않습니다. 마마. 그렇게 먹어야 살이 찌지 않습니다. 살이 찌게 되면 병이 많아지게 되옵니다. 팔순 이상 장수하는 노인들을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그들 중에 살이 찐 자는 없을 것이옵니다.”

“몸이 말라야 오래 산다라. 흥미롭군.”

“네. 그리고 이렇게 비빔밥 같은 조리 방법으로 채소를 많이 드셔야 배변 활동이 좋아져 노폐물도 쉽게 뺄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것이 건강과 장수를 위한 생활의 기초가 되는 것이옵니다.”

현대였다면, 종편 방송의 동치미쇼나 쇼닥터같은 프로그램에서 늘 들을 수 있는 고기 적게 먹고, 채소 많이 먹으라는 흔하디흔한 건강 조언이었다.

그리고, 이런 조언은 영양분이 부족한 조선 시대 사람에게는 맞지 않는 말이었다.

하지만, 풍족하게 고기를 먹을 수 있는 잘산군과 그 부인에게는 쇼닥터들이 늘상 하는 이 조언이 딱 맞을 것 같았다.

‘실제, 조선 시대의 왕들은 운동하지 않고, 고기를 많이 먹어 대부분이 고혈압이나 당뇨 합병증으로 죽었다고 할 정도였으니, 쇼닥터의 조언이 잘산군에게는 딱 들어맞는 조언일 것이다.’

건강을 위해 잘산군 부부의 생활패턴을 듣고 분석하다 보니 어느새 해가 저물었다.

“자네는 내일도 바로 여기로 오게. 내의원 일은 내가 궁에서 처리해주지.”

한명회는 잘산군 부부와 이야길 하며 건강을 챙겨주는 내가 마음에 들었는지 아예 내일 출근을 이쪽으로 하라고 했다.

***

“아니, 잘산군 사저에 갔다고 하던데, 이거 제대로 줄을 잡았구만.”

기루를 겸하는 다연재로 돌아오니 진기주가 난리를 치며 부러워했다.

“형도 신숙주 대감 집에 다녀오고 하지 않소이까?”

“아무리 신숙주 대감이라고 해도 좌의정 한명회 대감보다는 못하지. 이거 이거 어리다고 순진한 줄 알았더니 더 하는구먼. 나중에 높이 올라가면 날 좀 잘 끌어다오. 이거 동생에게 청탁을 해야 겠구만 하하하.”

“도련님 목장에게 의뢰했던 것이 도착했습니다요.”

목장에게 의뢰한 물건을 박복이가 들고 왔는데, 언뜻 보면 가지 같기도 했고, 다르게 보면 포졸의 육모방망이와도 비슷한 물건이었다.

“내일 이걸로 재미 좀 볼 수 있겠군.”

***

“마마. 아무리 비빔밥이 몸에 좋다고 하지만, 매일 같은 것을 먹으면 질리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오늘은 특별한 것을 준비했습니다.”

한명회의 청지기가 검은색으로 된 작은 솥을 들고 왔는데, 언뜻 보면 쇠로 만들어진 작은 솥 같았지만, 가까이서 살피니 광택이 있는 돌로 만든 돌솥 이었다.

“곱돌로 만든 솥입니다.”

“곱돌? 그러한 돌도 있느냐?”

“네. 대군마마. 곱돌이라는 돌은 한약재로 쓰이는 돌이 온 데. 돌 자체에 차가운 성질을 가지고 있으며 방광에 염증이 있거나 몸 안에 열 기운이 있을 때 주로 처방되는 약재입니다. 몸 안에서 이뇨 작용을 하여 노폐물을 배설시켜주는 일을 하옵니다. 이는 여인들이 많이 걸리는 방광염과 요도염을 치료해줍니다.”

“오! 그런데, 방금 약재라고 하지 않았나? 약재로 쓰는 돌로 솥을 만들다니 그건 무슨 의미인가?”

“네. 바로 여기에 비빔밥을 올려 돌솥비빔밥을 하게 되면 이 곱돌의 기운이 밥에 스며들어 자연스레 몸으로 그 기운이 들어가게 해주기 위한 것이옵니다. 이 곱솔 솥은 궁에서 그렇게 쓰이고 있으니 안심하시고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렇군. 그럼 그 돌솥으로 비빔밥을 한번 해보게나.”

원종은 곱돌솥에 참기름을 먼저 올려 향을 내었고, 밥과 채소를 넣어 밥을 비비기 시작했다. 뜨거운 열이 올라오니 자연스레 밥이 눌어붙었는데, 일부러 긁지 않았다.

“비빔밥이 건강에 좋지만, 가을 겨울에 먹게 되면 아무리 뜨거운 밥으로 하게 되더라도 채소의 차가움 때문에 온도가 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렇게 뜨거운 돌솥으로 비빔밥을 하게 되면 추운 날씨라도 비빔밥을 즐기실 수 있으실 겁니다.”

곱돌솥 채로 잘산군과 부인 한 씨에게 올렸는데, 둘 다 독상을 차지하고 있는 상황이라 어디에 놓아야 할지 난감했다.

‘아차, 곱돌솥이 귀해 두 개를 준비하지 못했구나. 에잇! 그러면 돌솥비빔밥은 커플, 부부용 음식으로 간다.’

“마마. 이 돌솥비빔밥은 부부간에 같이 먹는 음식이라 겸상을 하여야 합니다.”

“겸상을?”

조선 시대에 겸상은 할아버지와 손자, 혹은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아이들이나 하는 것이었지, 일반적으로는 겸상을 하는 것이 법도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특히나 남녀 사이라면 더 그랬다.

“네. 이 돌솥비빔밥은 부부간에 서로 떠 먹여주는 음식이옵니다.”

“부부간의 금실을 위한 음식이란 말이군. 알았네.”

잘산군은 이내 자신의 독상을 치우고 부인 한 씨와 마주 앉았는데, 그 사이에 돌솥 비빔밥을 놓고 내가 숟가락으로 비벼 주었다.

“아~ 해보시오. 부인.”

잘산군은 내가 비키기 무섭게 한 숟가락을 떠 부인에게 내밀었는데, 부인 한 씨는 입을 벌리지도 않은 채 나와 시종의 눈치를 보며 얼굴을 붉혔다.

“아, 저희는 잠시 나가 있겠습니다. 바닥에 눌어있는 것이 가장 맛있으니 꼭 드십시오.”

시종들을 데리고 나와 귀를 기울이니 서로 비빔밥을 떠먹여 주는지 어서 더 먹어라, 입을 더 크게 하라는 말들이 은근히 들려왔다.

곱돌솥이 한 개 밖에 없다 보니 임기응변으로 부부간에 먹는 음식이라 둘러대었는데, 진짜 그렇게 금실을 좋게 만드는 음식이 될 것 같았다.

‘역사에도 부인 한 씨의 병이 깊게 들어 한명회의 집으로 요양을 갔는데, 그때에서 매일 성종이 병문안을 왔었다고 했었지. 둘 사이가 참으로 애틋했구나.’

이 부부의 끝을 알고 있었기에 부부간의 저런 알콩달콩한 모습이 더 가슴에 남았다. 저 부부에게 뭔가를 더 해주고 싶었다.

“밀가루와 꿀, 잣을 가져와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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