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판을 키워라. (3)
‘벼, 벼슬을 주겠다고?’
사실 양반이라고 하더라도 삼대가 넘도록 벼슬을 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된 양반으로 쳐주지도 않았고, 부끄러움에 향교에도 나오지 못하는 세태도 있었다. 그래서 미관말직인 능참봉(陵參奉 무덤을 관리하는 한직)이라도 벼슬을 하기 위해 양반들은 애썼다.
원종의 경우에는 궁중에 쓰던 음식 재료와 식기를 담당하던 사옹원(司饔院) 참봉만 되어도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큰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기쁜 마음으로 예종에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를 외치려 했다.
하지만, 음성에서 나를 데리러 온 의금부의 도사와 나장들이 하던 이야기가 떠올라 다른 말이 입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전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에 감읍하였나이다. 허나, 소인의 나이가 너무 어려 벼슬을 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사옵니다.”
“어디 보자. 무인년(戊寅年) 출생이로구만. 흠. 어리긴 어리군. 벼슬을 하기가 힘들다면 뭔가 원하는 것이 있느냐?”
벼슬을 제외하자면 당연히 재물인데, 양반이 재물을 대 놓고 달라고 할 수도 없었다. 뭔가 양반의 품위를 지키며 이득이 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아, 그래 이거다.’
“전하. 궁에는 내의원과 전의감이 있으며 한양에는 혜민서와 활인서가 있어 도성의 백성들을 치료하고 의술을 베풀고 있습니다. 허나, 지방에는 이러한 곳이 전혀 없습니다. 팔도에 이러한 의료원을 만들어 주실 수는 없으신지요?”
“의료원을 만들어 달라?”
“네. 전하. 도성의 백성들에 비해 지방의 백성들은 병이 나더라도 의원을 만나기가 힘이 든 실정이옵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원종은 말을 하면서도 사극처럼 통촉하여 달라는 말을 자신이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김달의 그대가 내의원 정이니 묻겠네. 정녕 지방에는 활인서와 같은 기관이 없는 것인가?”
“네 전하. 태종 대왕 시절 지방에 의학원(醫學院)을 세워 의원을 파견했던 일은 있사오나, 실제 운영이 되지는 않았다고 알고 있사옵니다.”
“알고 있다라... 아무도 지방에 가보지 않았다는 거로구만.”
“송구하옵니다. 전하.”
예종도 이야길 하고 보니 암행을 하더라도 한양 인근이었지 다른 지방으로 암행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마 지방에 의학원을 세우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많았기에 태종 대왕 시절에도 도입하지 못하였겠군. 어떻게 한다.”
예종이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고민을 했는데, 돈이 없어서 못 하는 문제였기에 왠지 내가 말한 소원을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재정 문제로 국영 의학원이 안 된다면 최대한 돈이 안 드는 방법을 제시해야 했다.
“전하. 소인에게 좋은 방법이 있사온데 이야길 해도 되겠나이까?”
“어떤 방법인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보라. 내 꾸짖지 않겠다.”
“네. 지방에 따로 의학원을 세우는 것이 재정 문제로 안 된다면, 각 지방을 순회하는 이동 진료원을 만드는 것이옵니다.”
“이동 진료원? 내의원들이 지방을 도는 것을 말하는 것이냐?”
“네. 전하. 팔도에 의학원을 만드는 것에 큰 재정이 든다면 이동 진료원으로 팔도를 돌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8곳의 의학원에 들어가는 비용보다 훨씬 작은 비용으로 지방의 의료 부재를 메꿀 수 있을 것이옵니다. 그리고, 이런 이동 진료원을 하게 되면 지방에서 일어나는 역병에도 빨리 대응을 할 수 있을 것이옵니다.”
“흠. 괜찮아 보이는데. 김달의 그대의 생각은 어떠한가?”
“획기적이옵니다. 전하. 팔도에 한곳씩 만들어 여덟 곳을 운영하기보다는 팔도를 움직이며 진료를 보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일 것 같사옵니다.”
내가 제시한 이동 진료원은 현대 도서 지역에도 운영이 되는 제도였다. 의료혜택을 받지 못하는 벽지의 사람들을 위해 군경이 협력하여 운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조선 시대에 이런 이동 진료원이 정착하게 된다면 자연스레 이동 진료원을 따라다니는 상인도 생기게 될 것이고, 백성들도 같이 움직여 물류가 생길 수도 있었다.
“도승지는 내일 조회에 이 일을 올리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시간이 지나 귀찮아 보이는 표정을 짓는 예종에게 절을 하고 물러났다.
***
“원종 동생. 내일 내의원으로 와서 설방환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어야 할것이네. 그런데, 왜 주상전하께서 벼슬을 내린다고 했을 때 받지 않은 것인가? 나이가 어리다고는 하나 충분히 그 몫은 하고 남을 것 같은데.”
“그게.이리 좀 오십시오.”
원종은 양주에서 올라온 전현재를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지금은 벼슬을 하면 안 될 것 같아 그랬습니다.”
“지금? 지금이 어떤데 그렇게 이야길 하는 건가? 주상전하께서는 할아버지를 생각해주시는 분이라 우리라면 쉽게 내의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터인데 왜 하지 않은 것인가?”
“네. 마음만 먹으면 가능하겠지요. 허나, 제가 음성에서 올라올 때 들은 이야기가 있다 보니 지금은 벼슬을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응? 무슨 이야길 들었기에 그러나?”
***
급히 짐을 챙겨 의금부 도사와 나장들을 따라나섰는데, 박복이도 그렇고 나도 어리다 보니 말을 타고 감에도 배려를 해주었다.
그리고, 우릴 어리다고 생각해서인지 의금부 내의 이야기들도 자기네끼리 서슴없이 나누며 움직였다.
“도사어른. 영의정 이준 대감을 쳐내려고 한다는 말이 돌던데, 그게 사실입니까?”
“음. 그런 이야기가 있긴 있네만. 자네 성씨가 한씨였지? 그럼 집안에서 들은 이야기인가?”
“네.”
의금부 도사와 그 휘하의 나장이 나누는 이야기임에도 은근히 서로 존대를 해주는 것 같았는데, 한씨라는 말에 나도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렇다면 한명회의 혈족이라는 말인데, 훈구파 대신들이 신진 세력으로 떠오른 종친 세력을 쳐내려고 하던 시기가 바로 지금이로구나.’
세조 집권 말에 이시애의 난이 터지면서 이시애의 거짓 편지로 인해 구성군 이준과 남이가 새롭게 떠올랐으나, 예종 집권 후 종친의 반역을 두려워한 예종이 은근히 훈구파를 부채질해 그 둘을 쳐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남이는 효수되고 이준은 귀양을 가게 되는데, 지금 벼슬에 나섰다가 괜히 같이 쓸려 목이 달아나지 않을까 염려가 될 뿐이었다.
이런 의금부에서 들은 이야기를 전현재에게 해주자, 그는 이야기의 진위를 따지기보단 말도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이야기인가? 종친이자 영의정인 이준 대감을 쳐낼 일이 있을 턱이 있나? 종친인데. 그리고, 남이 또한 태종 대왕의 외증손이라 종친이나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나장들이 하는 말처럼 쉽게 되지는 않을 것이네.”
“제가 한 말을 믿든 말든 상관은 없으나, 형님은 전의감이나 내의원에 자리가 난다고 하더라도 가지 말고 될 수 있으면 지방을 돌게 되는 이동 진료원으로 가도록 하십시오. 내려치는 소나기는 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야길 들은 전현재도 자신의 할아버지인 전순의가 어떻게 승승장구 한 것인지 알고 있었기에 원종의 충고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결국, 다음 날 지방을 도는 진료원이 만들어지게 되자 전현재는 진료원에 지원을 했고, 그러면서 진료원 논제 이후 시끄럽게 고성이 오가며 서로를 비방하고 있다는 말도 전해 들었다.
“희한하구나. 어린 나이에 방설환을 만든 것도 대단하지만, 시류가 흘러가는 것까지도 파악을 하니 나보다 동생으로 볼 수가 없겠구나.”
***
“방설환의 주원료인 백초상은 이 재에서 나옵니다.”
원종이 손에 들고 있는 재를 바라보는 의원들의 눈빛에는 호기심이 일었다. 개똥도 약에 사용했듯이 재라고 약이 안될 리 없었지만, 어떻게 재를 먹어볼 생각을 했는지 신기해했다.
“일반적인 재가 다 되는 것은 아니고, 오랫동안 불을 지펴 묵히고 쌓인 재가 원료입니다. 소량으로 만들 때는 집안의 아궁이에서도 가능하나, 대량 제조를 해야 할 때는 도자기를 굽는 가마와 숯을 굽는 숯장이들에게서 백초상을 납품받아야 합니다.”
내의원에 나와 방설환을 만드는 걸 의원들에게 알려주고 하다 보니 하루가 그냥 지나갔다.
“이보게. 자네가 전원종인가?”
수염을 멋지게 기른 이가 웃으며 다가왔는데, 웃는 그와는 반대로 같이 있던 의원들은 몸이 굳어졌다.
“중추부사 한계희 어르신이네.”
다른 의원이 귓속말하곤 뒤로 빠졌다.
“하하하. 뭘 그리 겁을 먹는 건가?”
사람 좋게 웃으며 다가오는 이가 누구인지 생각하다 보니, 그제야 떠올랐다.
‘한명회와 같은 혈족이자 예종의 스승이었던 자로구나.’
당금 조정에서 가장 권세가 있는 자이다 보니 내의원의 의원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것도 이해가 되었다.
“내 전해 듣기로는 약도 잘 만들지만, 식료의로서 특이한 음식도 잘한다고 들었네. 주토피아라는 토끼고기 요리를 자네가 만들었다지? 문경에서는 요리를 가르쳐주는 요리숙이란것도 만들었다고 하던데. 날 좀 도와줄 수 없겠나?”
한계희는 이미 나에 대해 조사를 다 했는지 내 신변을 줄줄 외고 있었는데, 다른 일이 아니라 요리와 관련된 일이란 생각에 긴장되었던 것이 어느 정도는 풀렸다.
“소인이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이라면 돕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나를 따라오게나. 다른 게 아니라, 매달 가까운 이들과 모여 식도락을 즐기는데, 얼마 전 상주에서 올라온 이가 데리고 있는 어멈이라며 모임에 와서 주토피아라는 요리를 만들어 줬었네. 다들 처음 보는 요리였지. 그걸 자네가 만들었다고 하더군. 맞나?”
“네 대감 어른. 소인이 새로운 걸 만들어 먹고 하는 걸 즐기다 보니 그런 음식을 만들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도 그 상주에서 올라온 그 어멈이 올 것인데, 자네가 나서서 상주의 그 위인도 먹어보지 못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 줬으면 하네. 아무도 먹어 본 적 없는 새로운 음식이어야 하는데 할 수 있겠는가?”
“재료만 있다면야 새로운 음식을 만들어 드리는 것이 어렵지 않습니다.”
“하하하. 그럼 되었네. 6총형의 집에는 뭐가 필요하다고 하면 뭐든 다 있을 것이네.”
한계희의 6촌형은 그 이름도 대단한 한명회였기에 그 뒤를 따르면서도 기대도 되고 걱정도 되었다.
***
한계희를 따라간 한명회의 집은 그 위세만큼 솟은 대문이 있었고, 한명회와 한 번이라도 만나기 위해 줄을 선 자들이 즐비했다.
그리고, 매달 모인다는 모임에는 내가 익히 아는 이들도 있었는데, 가장 먼저 신숙주가 눈에 띄었다.
‘내의원으로 출근할 때 멀리서나마 보았던 신숙주를 여기서 보게 되는구나.’
여러 사극이나 글에는 신숙주가 문종의 부탁을 저버리고 세조의 편에 가담한 것을 옳게 여기지 않았고, 배신의 아이콘으로도 현대인들에게는 기억되고 있었다.
‘그리고, 숙주나물로 인해 박팽년이나 성삼문은 몰라도 다들 신숙주는 알고 있지.’
녹두나물을 삶아두면 다른 음식에 비해 빨리 맛이 변한다고 하여 녹두나물에 변절한 신숙주의 이름을 붙여 숙주나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어원이 있는데, 사실 이 어원에 대한 기록은 불명확한 것이었다.
실제 녹두 나물을 부르는 옛 '두아채(豆芽菜)' 또는 '녹두장음(菉豆長音)'이라 표기가 되었는데, 두아채란 이름은 원나라 때 나온 거가필용(居家必用)이란 책에 쓰인 이름이고, 녹두장음이란 이름은 1808년에 나온 만기요람(萬機要覽)이란 책에 쓰인 이름이었다.
즉, 고려말에서 조선 후기까지 녹두 나물을 숙주나물로 불렀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는 것이었다.
그러다, 민족정기의 강화를 외치던 일제 강점기에 나온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이란 책에서 처음으로 신숙주와 녹두 나물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당시에 민족정신을 바로 세우기 위해 역사 속 배신자들을 비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는데,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신숙주였다.
그러다 보니 신숙주를 좀 더 욕하기 위해 빨리 상해버리는 녹두나물에 신숙주를 연결하여 부르기 시작했고, 그 이후로는 자연스레 녹두나물의 이름이 숙주나물이 된 것이었다.
고로, 지금 이 시기의 신숙주는 명 정승 중의 한 명으로 한명회와 더불어 실세 중의 실세인 사람이었다.
“허허. 이거 계희에게 한 방 먹었구먼. 내가 수소문하여 상주에서 사람을 불러왔는데, 그 원조나 마찬가지인 전도령을 데리고 와버렸구만. 한형은 내세울 사람이 없소?”
“나야 뭐 자네들이 새롭게 선보이는 음식만 먹으면 되는 것이지 내가 자네들 이겨서 뭘 하겠나.”
냉소적이게 이야길 하는 자는 구레나룻이 턱수염과 합쳐질 정도로 털이 많은 자였는데, 이야길 듣고 보니 저 사람이 한명회였다.
칠삭둥이라고 알려져 있었지만, 키도 다른 이들에 비해 컸고, 미숙아로 태어났기에 성장이 안 좋다거나 하는 외적인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정녕 저 어린 도령이 그 전도령이 맞는 겐가? 너무 어리지 않은가?”
“좌의정 어른. 저 친구가 맞습니다. 저 친구가 요리숙을 만든 전원종이라는 친구입니다.”
내 이름을 이야기하며 나오는 사람의 얼굴을 보곤 깜짝 놀랐다.
*
[작가의 말]
세조는 계유정난으로 집권을 했기에 중앙집권을 강화하고자 북도 출신의 인재들을 수령으로 임명하지 않았는데, 이는 김종서의 영향력이 북도 출신 사람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여겨 북도 출신들을 배제했었던 것입니다.
허나, 이 북도 출신을 배척했기에 함경도 출신인 이시애가 난을 일으켰고, 함경도 전체가 들고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조정에 혼란을 주기 위해 ‘신숙주, 한명회가 절도사 강효문과 짜고 반역을 일으키는 것을 막아 내었다’라고 거짓 편지를 보내었는데,
이에 의심이 많은 세조는 한명회와 신숙주를 비롯한 유력 인사들을 투옥합니다.
그러다 보니 이시애의 난을 진압할 장수가 부족했고, 세조는 어쩔 수 없이 당시 25살의 구성군 이준과 26살의 남이에게 병권을 맡겨 난을 진압하게 시켰습니다.
이에 구성군 이준과 남이가 이시애의 난을 진압했고, 이후 혐의가 풀린 한명회, 신숙주의 훈구세력이 돌아 왔지만, 이준, 남이를 중심으로 하는 신진 세력이 이미 자리를 잡아 조정을 양분하게 됩니다.
그러다, 예종이 즉위하게 되는데, 예종의 컴플렉스 때문인지 아님 세조처럼 힘 있는 종친이 일을 벌일까 두려워 구성군 이준과 남이의 권력을 빼앗았고, 결국에는 이준은 귀양, 남이는 효수되게 됩니다.
이후 성종 시기 동안에도 훈구세력이 정권을 장악하게 되었고, 차후 다시 신진사류가 나왔으나 연산군의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에 어느 세력 가리지 않고 다 갈려나가게 됩니다.
죽이는 데는 세력 가리지 않고 평등했던 연산군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