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판을 키워라. (2)
약과는 자신이 비싼 몸이란 걸 알려주듯이 윤기가 흘렀는데, 손가락 세 개 정도의 작은 크기였지만, 저 한 개를 만드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쌀 한 되(1.8ℓ)는 될 터였다.
“어서 먹게나. 왜 그렇게 보고만 있는 건가? 아! 약과 금지령 때문인가?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되네. 회갑연에 올려졌던 약과이니 괜찮으니 먹게나.”
약과가 소고기도 아닌데 웬 금지령인가 싶겠지만, 유밀과(油蜜菓)로도 불리는 약과는 고려 시대부터 자주 먹지 못하게 금지령이 내려지던 음식이었다.
이는 약과에 들어가는 밀가루와 단맛을 내는 꿀, 튀기듯 굽는 기름까지 세 가지 모두가 고가의 사치품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잣이나 호두 같은 열매도 들어갔기에 조선 시대 과자중에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과자였다.
그러다보니 나라에 흉년이 들지 않더라도 제사나 회갑연, 혼인식 외에는 만들어 먹지 못하게 금지령이 시시때때로 내려졌었다.
물자의 부족함 때문에 소고기나 약과를 제재하는 금지령이 내려졌었지만, 이런 금지령에 잡혀 처벌을 받는 경우는 사실 거의 없었다.
소고기의 경우에는 멀쩡한 소의 다리를 망치로 부러트려 어쩔 수 없이 잡아먹었다고 핑계를 대었고, 약과의 경우에는 없던 회갑연이 졸지에 생겨 만들어 먹었다.
‘아니, 우리가 먹는 약과는 핵노맛인데, 그런 약과를 왜 법을 어겨가면서 먹는 거지?’ 하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현대인인 우리가 주로 사 먹었던 약과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제품이라 맛이 없을 수밖에 없었다.
옛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던 약과는 밀가루에 술과 꿀을 넣어 반죽하고, 나무 틀로 모양을 일일이 찍어내었었다.
이후 기름에 굽고 겉면에 조청을 발라 윤기를 내어 약과를 만들었는데, 이 과정에 사람의 인력이 계속 들어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현대의 공장에선 인력을 아끼기 위해 과정을 줄였고, 꿀이나 조청 대신 설탕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다 굽듯이 기름에 튀겨야 하는데, 대량으로 만들다 보니 자동기계를 통해 기름에 푹 담겨 튀겨진 약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우리가 현대에 먹는 약과가 옛날 수제 약과처럼 맛이 있을 수가 없었다.
“제사에 올려졌던 약과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먹게나.”
종친의 회갑연에 올라갈 정도라면 진짜 약과 장인이 만들었을 터였기에 기대가 되었다.
잘게 썰린 대추 살과 부숴 올린 잣의 데코레이션도 보기 좋았다. 먹기전에 요리사의 버릇과도 같이 냄새를 맡았다. 약과에서 나는 냄새도 내가 기억하는 약과와는 전혀 달랐다.
‘뭔가 상큼한 꿀 냄새다. 무슨 꿀이지?’
현대인들이 흔히 접할 수 있고, 요리에 자주 쓰이는 아까시 꿀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양봉도 하면 좋을 것 같은데, 문제는 양봉에 주로 쓰이는 아까시나무가 일제 강점기에 들어오게 되던가.’
제대로 된 꿀 냄새를 맡게 되자 가게에서 디저트로 팔았던 벌집 아이스크림이 떠올랐고, 그 덕에 배웠던 양봉도 기억이 났다.
‘아이고, 일단 먹자.’
일반적인 약과의 단단한 식감을 생각하며 베어 물었는데, 식감이 너무 부드러웠다.
카스테라 빵에 비한다면 딱딱했지만, 현대에서 먹던 약과와 비교하자면 너무 부드러웠다. 그리고, 뭉쳐진 덩어리가 아니라 페이스트리 빵처럼 약과에 결이 있었다.
‘결 사이에 꿀이 잼처럼 들어가 있잖아.’
약과를 먹으며, 현대의 약과보다는 당연히 맛있겠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건 그냥 맛있는게 아니었다.
‘이제야 알겠다. 왜 약과를 만들어 먹지 못하게 금지령을 내렸는지. 단순히 재화의 낭비 때문이 아니라, 너무 맛있어서 계속 이것만 만들어 먹을까 봐 그게 겁이 났던 거야.’
나라도 단맛을 과일이 아니면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이런 약과의 단맛을 알게 된다면 환장할 것 같았다.
왜 원나라 때 고려병(高麗餠)이라고 부르며 원나라의 귀족들이 약과를 잔치에 올리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어르신 혹시 이 약과를 만든 이가 누구인지 알 수 있겠습니까?”
“허허. 그 정도로 마음에 들었나? 이 약과를 가져다준 이가 한양으로 돌아갔기에 지금 당장은 알 수가 없지만, 돌아갈 때 방설환 100알을 가지고 갔으니 내가 다음에 꼭 알아봐 주겠네.”
“네. 감사합니다.”
“그건 그렇고. 약과를 들고 온 이가 사촌이다 보니 내가 힘들게 말렸음에도 방설환 100알을 가져가 버렸어.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방설환을 좀 더 만들어야 할 것 같은데. 흐흠. 미안하네.”
이종수는 전혀 미안해하는 표정이 아니었지만, 미안하다고 이야기는 했다.
“....네. 어쩔 수 없지요. 더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꿀맛으로 맛있던 약과가 방설환 100개짜리 약과가 되어 버리자 갑자기 약과의 맛이 팍 줄어들어 버렸다.
“줄을 서시오! 예약 구매했던 증표를 꺼내 들고 있으시오! 증표가 없으면 방설환을 받을 수 없소!”
금산은 물론이고 재인들까지 나서 약을 받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을 줄 세우기 바빴다.
그래도 먼저 약값을 다 받아 두었기에 일일이 금액이 맞는지 틀리는지 옥신각신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리고, 배포가 거의 끝나려 할 때, 급하게 말을 탄 무리가 현청으로 뛰어들었다.
“의금부에서 나왔다. 전원종이라는 의원이 누구인가?”
딱 보기에도 탄탄해 보이는 갑사들이 십여 명이나 뒤따랐는데, 아무리 괴력의 금산이 있다고 해도 이길 수 없을 것 같았다.
아니, 싸움을 하게 되면 역적이 되니 잔뜩 겁을 먹고 앞으로 나설 수밖에 없었다.
“소생이 전원종이라 하오. 무슨 일로 찾으시는 거요?”
“응? 이리 어리다니....의원이 아니라 유의(儒醫)인가?”
의금부에서 나온, 도사는 원종이 너무 어리자 난처했다.
“네. 먼저 무슨 일인지를 알려주시오. 왜 나를 찾는 것이오?”
“음. 왕명이 떨어졌네. 속히 짐을 꾸리게. 한양으로 올라가야 하네.”
“네?”
갑자기 한양으로 가야 한다는 말에 어이가 없었는데, 현청에서 이종수가 나와 의금부 도사와 이야길 나누더니, 그제야 사정을 내게 알려 주었다.
“자네 어서 한양으로 가시게. 주상전하께서 보고자 하시네.”
“에? 왜요?”
“짐을 어서 싸시게나 올라가며 이야길 해주겠네.”
조선을 지배하는 왕을 만나게 되었다는 생각에 기뻐야 하지만, 왠지 찝찝했다.
그래서 삼식이를 문경으로 보내었고, 달유와 오추, 금산에겐 방설환을 판 재물을 지키게 했다.
내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문경에서 사람이 오면 거기에 가 있게 처리를 했다.
그러곤 박복이만 데리고 한양으로 움직였다.
***
이소일은 지방관으로 남해에 있다 2년 만에 한양으로 돌아왔는데, 복귀를 알리자, 족보상 8촌인 예종이 따로 보기를 원했다.
“이곳에서 잠시 계셔주십시오. 석강(夕講)이 끝이 나시면 바로 편전으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지.”
무슨 일인지는 잘 몰랐으나 지은 죄가 없기에 이소일은 그저 덤덤하게 편전 입구에서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지나가는 궁녀들의 치맛자락이 눈에 들어왔다.
“이보게. 거기에 뭐가 묻었네.”
왕을 기다리는 신하를 접대하는 전빈(典賓) 상궁이었는데, 그녀의 치마 뒤편에 누리끼리한 물이 묻어 있었다.
“어머나.”
“지린 자국이...”
전빈 상궁과 다른 상궁들은 호들갑을 떨며 앞치마 자락으로 자국을 가리며 물러나려 했다.
“설사병이 난 거라면 이 약 한번 먹어보겠나? 여름 배앓이에는 직방이라네.”
이소일은 사촌에게서 얻어온 방설환 세 알을 내밀었다. 그렇지 않아도 궐내에 인맥을 늘리고 싶었는데, 기회가 온 것처럼 약을 내밀었다.
“따뜻한 물에 그냥 삼키기만 하면 되네.”
전빈 상궁은 부끄러움에 도망치듯 사라졌고, 다른 상궁이 약을 받아갔다.
그리고 석강이 끝난 예종을 만난 이소일은 지방에서 자신에 대한 평판이 어떤지 물어보는 예종의 질문에 성실히 답을 하고 물러났다.
***
“그게 정말인가? 전빈 상궁의 설사병이 순식간에 다 나았다고?”
허리가 굽고, 어깨도 늘 굽히고 있어서 앞으로 휘어 버린 키 작은 내시가 예종의 옆에 붙어 고변하듯이 이야길 하고 있었다.
“네 전하. 근 열흘 넘게 설사로 고통받던 전빈 상궁이 이소일 목사가 준 알약 세알을 먹고 나았다고 합니다.”
“그 약이 대단한 명약이었는가 보군. 무슨 약인지 알아봤나?”
예종은 자신도 여름에 자주 겪는 설사병이었기에 관심을 가졌다.
“소신이 직접 사람을 보내 약을 더 얻을 수 있는지 물어보니 상호군이 만든 약으로 방설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약이라고 했습니다.”
“상호군? 좌익원종공신 전순의를 말하는 것인가? 그는 얼마 전 노환으로 죽은 것으로 아는데.”
“네. 그는 죽었으나, 그에게 배운 자가 음성 현감으로 있는 완산부원군의 증손자인 이종수와 같이 약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응? 이종수? 어찌 종친이 의원과 같이 약을 만드는 건가?”
“저도 이상타 여겨 확인해보니, 이 방설환의 효과가 너무 뛰어나 음성 현감이 발 벗고 나서 약을 만들고 있다고 합니다.”
“오! 그 정도로 효과가 있다면 궁에서도 만들어 배앓이가 심한 자들에게 배포를 해야겠구먼. 전의감이나 내의원에는 상호군의 제자들이 많으니 그들에게 만들라고 명을 내리게.”
“그것이 이상하여 전하께 이야기를 올리는 것입니다. 이 방설환이란 약을 아는 의원이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응? 그건 또 무슨 말인가? 분명 상호군이 만든 약이라고 하지 않았나?”
“네. 이소일 목사가 약을 얻어올 때 분명 상호군이 만든 약이라고 하여 받았는데, 궐 안의 의원들은 전혀 모르고 있으니. 아마도, 상호군이 양주에 칩거하며 말년에 만든 약이라 궁에 있는 의원들이 모르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흠. 뭔가 불명확한 것이 있군. 그렇다면 양주 집에 사람을 보내 그 후손을 부르고, 음성에 있다는 그 의원도 불러들이게. 먼저 상호군이 만든 약인지 확인을 하고, 약의 효과가 좋고 실력이 좋다면 그에게 벼슬을 내리도록 하지. 밖에 의금부도사 있으면 들라 하라!”
***
“그럼, 이자가 전순의 영감에게 의술을 배운 것은 맞다는 것이군.”
“네 전하. 허나, 방설환이라는 이 약은 소신도 알지 못하는 약이옵니다.”
번개불에 콩 볶아 먹듯이 궁에 들어오게 된 원종은 양주에서 전현재가 와 있는 것에 놀랐고, 안면이 있는 의원 10여 명의 손에 방설환이 놓여 있는것에 또 놀랐다.
그리고, 그들은 방설환을 처음 본다고, 전순의 영감이 만든 약이 아니라고 이야길 하고 있었다.
“듣자 하니, 방설환의 제조 비방을 다 공개하기로 했다고 하던데 사실이냐? 그리고, 아들과 손자는 물론이고 제자나 다름없는 의원들도 전혀 방설환의 존재를 모르는데, 그것은 어인 일이냐.”
“그것이... 방설환은 소생이 만든 약이긴 하나, 어린 제가 만들었다고 하면 사람들이 신뢰하지 않아 스승의 이름을 내세운 것이옵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스승의 이름을 높이는 일이라고도 생각했기에 제조 비방을 다 공개하기로 한 것이옵니다.”
“흠. 그렇게 된것이군. 고개를 들거라.”
예종의 말에 고개를 천천히 들어 예종의 얼굴을 보니, 살짝 비만인듯한 풍채에 가로로 찢어진 눈이 가장 먼저 보였다.
이제 20살일 텐데 뭔가 성격이 괴팍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너는 무슨 상을 받고 싶으냐?”
“네에?”
“유의로서 실력을 가진 것은 물론이고, 인성까지 갖추었으니, 상을 내림이 마땅하다. 아니면 벼슬을 하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