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55화 (55/327)

55. 전순의 영감. (1)

“도련님 뭘 그리 골똘히 생각하십니까요? 마포나루에 다녀오신 뒤로 말이 없으십니다요.”

보통 간단하게 요기를 하는 것이 점심 낮 밥인데, 도다리쑥국으로 든든하게 밥을 먹다 보니 서해와 호남의 물산이 한양으로 들어오는 마포나루에 가보고 싶었다.

그리고, 마포나루를 보고 오자 생각이 많아졌다.

“자네들이 생각하기에 바다나 강에서 잡은 물고기를 내륙에서 먹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달유와 오추는 다녀본 곳이 많을 테니 다른 지역에선 물고기를 어떻게 먹던가?”

“저희야 백두대간 산간마을을 다니다 보니 어물을 제대로 먹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고향도 함양과 거창이다 보니 민물고기나 겨우 먹어봤었습니다.”

“끽해봤자 마른 명태(明太)나 오적어(烏賊魚)를 보는 게 전부였습니다. 그것도 강원도에서나 겨우 봤었습니다.”

둘의 이야길 듣고 보니, 말려서 유통되는 어물을 제외하곤 바다와 접한 곳이 아니면 답이 보이지 않았다.

‘염장으로 해서 보관 기간을 늘리기에는 소금이 비싸고, 말리는 거 말곤 방법이 없는 건가.’

소금은 나라에서 전매를 하고 있었고, 값싼 천일염이 나오려면 아직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그러고 보니 이 수산물이나 특산물 때문에 방납의 폐단이 생기는 것이었지.’

특산물을 나라님께 바치는 공납제로 인해 남해와 서해에서 잡은 생선을 한양까지 보내야 했는데, 현실적으로 이게 힘들자 한양에서 대신 구매해서 받치는 경주인(京主人)들이 생겨났었다.

이렇게 대신 구매해서 받치는 것을 방납(防納)이라 했다.

문제는, 이 경주인들이 실제로는 한 냥에 산 물건을 고을 백성들에게는 몇 배 혹은 수십 배의 비싼 값을 요구해서 착복한다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를 방납의 폐단이라고 국사 시간에 가르치며 대표적인 조선의 적폐 제도라고 교육을 받았었다.

‘그리고 오적어라 불린 오징어를 말린 것은 명나라의 사신이 구해달라고 할 만큼 인기가 있었다고 했으니 장기간 유통이 가능한 것은 명태와 오징어밖에 없는 건가.’

한참을 고민하다 보니, 훈제해서 장시간 보관이 가능한 훈제연어가 떠올랐고, 일본에서 식초에 고등어를 절여 보관하는 시메사바(しめさば)도 떠올랐다.

‘냉장고가 인류의 삶과 생명의 대혁신이라고 했던 이유가 있었구나. 식재료의 보관과 저장을 할 수 있다는 건 엄청난 변화였구나.’

실제 냉장고의 보급 후 유럽인의 평균신장이 커지기도 했으니 저장기술의 발전이 식문화의 발전에도 영향이 있었다.

‘우선, 명태든 오징어든 구할 수 있는 곳으로 가서 훈제를 하든 염장을 하든 고민해 보자.’

그리고 마침 데릴사위로 장가를 간 작은형이 있는 곳이 바닷가인 경북 영덕이었다.

작은형에게 들릴 이유가 생겼다.

***

“도련님. 양주에 왔는데도, 왜 사람들이 전순의 영감의 집을 잘 모르는 겁니까요? 높은 관직을 하셨던 분이라면 다들 알아야 하는데, 잘 모른다고 하니 의아합니다요.”

이유를 모르겠다는 삼식이에게 답을 알려주고 싶었지만, 아는 것이 병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알려주지 않았다.

그 이유는 바로 사육신의 한 명인 박팽년이 가지고 있던 양주의 전답을 전순의 영감이 세조에게서 받았기 때문이었다.

사육신과의 일을 아는 자들은 일부러 알려주지 않았고, 진짜 모르는 자들은 양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전순의 영감을 모를 수밖에 없었다.

사실, 아무리 당대 최고의 의원이고 공을 많이 세웠다고 해도 정2품인 자헌대부에 의원이 오른 예는 없었다.

세조 이후 조선조 내에서 전의감 의원에게 정3품 이상의 벼슬을 내린 적은 전순의 영감이 유일했다.

동의보감을 썼고, 임진왜란 때 선조를 호종하여 그 공을 인정받은 허준도 정3품이 끝이었다.

물론, 허준의 경우에는 사후 종1품인 숭록대부로 추존되긴 했다.

하나, 전순의는 살아 있을 적에 정2품인 자헌대부에 오른 것이었으니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사람은 뭔가 있었구나 하고 생각할 터였다.

실제 실록에도 어느 정도 의심할만한 것들이 나와 있지만, 야사에는 전순의가 가만히 두어도 될 문종의 종기를 억지로 침으로 찔러 터트려 피를 흐르게 했고, 이미 어머니인 소헌 왕후 심씨의 3년 상과 아버지인 세종대왕의 3년 상을 연달아 치른 문종이 그 여파로 죽었다고 했었다.

그리고, 문종이 죽은 후 그 책임을 물어 전순의를 죽이고, 재산을 몰수하여야 한다고 대신들이 입을 모을 때, 그런 전순의를 막아준 사람이 수양대군이었다.

그렇게 전순의 영감은 전의감 청지기로 강등이 되는 것이 처벌의 전부였다.

이러한 관계가 실록에 그대로 남아 있다 보니, 문종의 죽음에 전순의 영감이 관련되어 있고, 전순의 영감을 사주한 것이 수양대군이 아닌지 하는 말이 많았다.

물론, 역사는 승자의 역사만을 기억하는 법이었고, 세조가 왕이었기에 그 누구도 대 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다.

그렇게 물어물어 찾아간 전순의 영감의 집은 조용했다.

드라마 속 허준까지는 아니라도 환자들을 돌보는 진료소라도 운영할 줄 알았는데, 일절 그런 것이 없었다.

몸이 아프기에 쉬는 건가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저 위세 등등한 양반가의 고래 등 같은 기와집만 있을 뿐이었다.

***

“아버님을 뵙고 싶어서 문경에서 왔다고?”

“네. 식료의로서 이름 높으신 영감님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서 왔습니다.”

“허허. 반가의 자손이 의술이라...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구만.”

“많이 편찮으시기에 뵐 수 없는 것입니까?”

“앉아서 이야기는 하실 정도는 되네. 헌데, 왜 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겐가? 내 아버지 덕분에 양반이 되고 보니, 의술을 배우지 않아도 양반으로서는 충분히 행세할 수 있던데. 뭣 때문에 배우려고 하는 것인가?”

전순의 영감의 아들이라는 전두길을 만났는데, 벼락 양반이 되어서 그런지 자신의 신분을 양반으로 만들어 준 의술을 낮게 보는 듯이 말을 하자 뭔가 촉이 왔다.

“역병에 죽다 살아났기에 의술을 제대로 배워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전순의 대감이 쓰신 식료찬요(食療纂要) 책을 보고 식료의가 되고자 생각했습니다.”

“흠. 그런가. 죽을 고비를 넘겼다면 그럴 만도 하지. 우선 방으로 가 있게나, 아버님의 건강이 조금 나아지면 그때 부르도록 하겠네. 그런데 문경에서는 소매를 그렇게 작게 하는 겐가?”

전두길은 의술보다는 내가 품을 줄인 한복에 더 관심을 가졌다.

“활동하기에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았기에 임의로 제가 소매와 밑단을 줄였습니다.”

“흠. 실용성을 따지는 거구먼.”

전두길은 내 옷을 한참이나 구경하며 물어보곤 돌아갔다.

내어준 방은 나름의 독방이었는데, 조용했던 집과는 달리 손님들이 묵는 곁채에는 여러 사람이 머물며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 글쎄 내가. 그 의원하고 침 대결을 벌리는데 말이야...”

“내가 청송에서 번지는 역병을 막았다는 걸 자네는 못 믿을거네...”

대충 보니 다들 중인인 것 같았고, 의원인 듯했다.

아마도, 나와 같은 의도로 전순의 영감을 만나려는 자들 같았다.

그렇게 곁채에서 나흘을 보내었지만, 언제 전순의 영감을 만날 수 있다는 언질이 없었다.

‘이거 전순의 영감이 죽고 나서나 볼 수 있을 판이로 구나.’

어떻게 해야 빨리 볼 수 있을까 생각하다, 산가요록에 쓰여있는 포계 요리에 나만의 방법을 추가한 레시피를 보내보기로 했다.

순살 포계와 마늘, 깻잎, 파를 올리는 레시피를 적어 일꾼에게 전두길에서 전해달라 했다.

***

“이걸 문경에서 왔다는 도령이 전해달라 했다고?”

“네 아버님. 식료의가 되기 위해 아버님의 가르침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흠. 포계를 보니 이미 내 산가요록과 식료찬요를 본 것 같은데, 뭘 더 배워가려고 온 것인지 모르겠군.”

전순의는 몸을 움직이기는 하지만, 이부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상황이었기에 정말 친한 지인이 아니면 만나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이미 식료찬의나 산가요록을 다 본 것 같은 문경에서 온 양반을 보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 양반의 나이가 이제 10살이라는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현재를 불러오도록 해라. 현재가 오면 그때 이 문경의 도령과 같이 보도록 하지.”

***

“정말 10살이 맞는구만. 아주 좋구만. 그런데, 도령은 무슨 일로 나를 찾아왔는가?”

일주일이나 기다리다 만나게 된 전순의 영감은 삐쩍 마른 몰골이었는데, 눈 밑으로 다크써클이 내려와 있어 누가 보더라도 병자의 얼굴과 몸을 하고 있었다.

“산가요록과 식료찬요의 책 때문에 왔습니다. 소생은 식료의로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식료의로 영감님이 이름 높다고 하여 가르침을 받으러 온 것입니다.”

원종의 말에 전순의는 싱긋이 웃었다. 그리곤, 아들 옆에 앉은 손자 현재를 힐끗 쳐다봤다.

“양반이 의술을 배운다고 집안 어르신이 뭐라고 하지 않으셨소?”

몇 번이나 물어오는 질문에 다시 역병 때문이라고 이야길 했다.

“그리고, 식료의로서 여러 음식을 만들어 주위 사람들에게 먹이니 다들 식료의가 되는 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뜻이 있으니 길이 있다는 말처럼 뜻을 세웠기에 길이 만들어진듯하오. 허나, 내 몸이 아파 가르침을 내리지는 못할 것 같소. 대신 내 서재를 사용하게 해주겠소이다. 필사해 갈 것이 있으면 필사해 가도 좋소이다.”

“네. 감사합니다.”

직접 가르침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서재를 쓸 수 있게 허락해 준 것만으로도 내가 처음 목표로 했던 것은 다 이룬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서재에서 따로 전순의 영감에게 의술을 배웠다고 하면 그 누가 거짓이라고 하겠는가.

나름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원종이 물러나는 것을 보자 전순의는 손자인 전현재를 보았다.

“어떠냐? 우리 같은 일대로 만들어진 양반이 아니라, 전조에서부터 내려오던 권문세족 양반의 자제도 의술을 배우러 온 것이다. 느끼는 게 없느냐?”

“저는 저 도령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뭐가, 나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냐?”

“할아버지의 재주로 양반이 되었기에 저는 양반에 맞게 과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왜 제게 계속 의술을 배우라고 하시는 겁니까?”

날 때부터 양반으로 태어난 손자와 관노로 있으며 의술을 배워 양반이 된 할아버지는 출발점이 다르다 보니 서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의술을 배우게 되면 결국, 전의감이나 내의원에서 중인처럼 지내야 하겠지요. 그렇게 의원이 된다고 해서 할아버지처럼 공을 세울 기회가 제게 있겠습니까?”

손자의 말에 전순의는 입을 열지 못했다. 결국 수양대군의 계유정난처럼 역모가 일어날 수 있는 계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면 의원이 양반이 되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기껏 양반이 되었는데, 다시 중인들이나 되는 의원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아버지를 보십시오. 할아버지의 음서로 관직에 출사는 했으나 한직을 전전하고 있지 않습니까? 저는 과거를 준비하여 대과를 통해 우리 가문을 일으키겠습니다.”

전순의는 식료의가 되겠다는 나이 어린 양반을 보면 과거 준비를 하는 손자도 뭔가를 느끼고 의술을 배우겠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자신이 궐에서 세조를 도와 일을 하며 너무 가족을 돌보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자신의 의술을 내의원의 의원들에게는 나누었지만, 아들과 손자에게 미리 가르치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하는 법이다. 의술로 일어선 가문이 반가의 자손들처럼 과거를 보게 되면 결국 사육신들처럼 될 뿐이다. 왜 그걸 모르느냐?”

“저는 그 송충이를 벗어날 것입니다. 할아버지의 의술을 받겠다는 양반이 나타났으니 그에게 전해주십시오. 저는 이만 다시 돌아가겠습니다.”

전현재는 볼일을 다 봤다는 듯이 공부하고 있던 절로 돌아가려 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보던 전순의 영감은 몸을 일으켜 손자를 잡으려다 힘이 빠져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가, 갈 때는 가더라도, 이 할애비를 위해 죽이나 한 그릇 만들어 올리고 가거라!”

*

[작가의 말]

사실 글에 명태와 명란이 나오지만, 실제 명태가 잡히기 시작한것도 18세기 쯤으로 보고 있습니다.

한류성 어류로 심해에 사는 어종이라 그전까지는 그물을 치지 못해 잡지 못하다가 50m 이상 그물을 칠 수 있게 되면서 잡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름도 함경도 명천의 ‘태’라는 어부가 잡아 주위에 알렸기에 명태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야사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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