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52화 (52/327)

52. 사촌. (1)

“매분구가 왔느냐? 어서 안채로 들이거라!”

사랑에서 나온 양반은 물론이고 집안사람들은 화장품 판매상인 매분구 아낙들을 매우 반겼다.

행랑어멈으로 보이는 이는 한술 더 떠 매분구를 명나라에서 온 칙사처럼 대우하며 안채로 데려갔다.

“응? 도령은 누구인고?”

매분구들이 안채로 사라지고 나서야 양반의 눈에 원종 일행이 보였다.

“문경에서 올라온 전원종이라고 합니다. 혹시 홍전택 외숙부 아니십니까?”

“으응? 문경에서 올라왔다고? 전원종?”

외숙부로 추정되는 양반은 검은 피부에 150cm 정도로 키가 작았는데, 키와는 달리 턱수염은 길게 가슴까지 내려와 있었다.

“엇! 그럼, 네가 지윤 누나가 낳은 막내라는 말이냐?”

“네. 맞습니다. 외숙부 막내아들입니다.”

“오호! 언제 이만큼 컸느냐? 첫째인 원길이나 둘째인 원상이는 강보에 싸인 것을 몇 번 보았지만, 너는 처음 보는구나. 이리 한번 와보거라.”

홍전택은 원종의 얼굴에서 누나인 홍지윤의 흔적을 찾아보겠다는 듯이 이리저리 얼굴을 살펴보았다.

“흠. 매형의 얼굴이 그대로 들어있구나. 흰 피부 하며, 코가 긴 것이 영판이야. 아차, 세워두고 이야길 했구나. 어서 들어가자.”

외숙부의 손에 이끌려 들어가면서도 홍전택은 어리지만, 도포에 갓을 쓴 모습에 놀라 언제 성혼(成婚)했는지도 물었다.

“뜻한 바가 있어 아버지께 허락을 맡아 전순의 영감에게 찾아가는 길입니다. 그러다 보니, 상투를 트는 것이 움직이기 편할 것 같아 임시로 상투를 틀었습니다.”

“흠. 다행이구나. 나는 네가 외가에도 알리지 않고 성혼한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전순의 영감? 흠. 일단 네 외할머니께 가자꾸나.”

외가로 오면서 기억 속에 외할아버지나 외할머니에 대한 기억은 아예 없었다.

나를 낳은 다음 해에 어머니가 돌아가셨기에 외가와는 그 이후로 연락이 드문드문해서 원종의 기억에는 외갓집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다.

“어머니! 지윤 누이의 막내아들이 찾아왔습니다. 전원종이라고 합니다.”

“머어? 지윤이의 막내?”

안채에서 매분구들과 뭔가를 만지고 있던 할머니가 벌떡 일어섰다.

외할머니는 단정하게 쪽머리를 하고 계셨는데, 하얗게 센 흰머리를 감추기 위해 가채를 머리에 얹다 보니, 그게 더 흰머리를 강조하는 듯했다.

“전원종이라고 합니다. 외할머니께 인사 올립니다.”

큰절을 올리니 외할머니도 외삼촌처럼 내 얼굴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양손으로 볼살을 만지셨다.

“외탁이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래도 어미 없이 이리 건강하게 컸구나.”

외할머니는 그제야 원종을 앉아주며 등을 두드려 주었다.

“우선은 외숙과 같이 있거라. 오늘은 급한 일이 있다 보니 나중에나 보자꾸나.”

외할머니의 말에 물러 나오며 외삼촌에게 물었다.

“매분구들이 여럿 들어와 있는 것을 보니 뭔가 집안 행사가 있는 것입니까?”

“행사는 아니고... 내 친우의 소개로 내일 저녁 대도호부사 영감이 우리집으로 온단다.”

“대도호부사 영감이 오는데, 어찌 안채의 여인네들이 매분구를 들이며 난리입니까?”

집안에 손님이 온다손 치더라도 안채의 여인들과는 접점이 없는 것이 기본이었다.

한데, 화장품을 팔거나 꾸며주는 매분구들이 저리 야단인 것이 의아했다.

“아직 확정은 아니지만, 친우의 소개로 부사 영감의 아들과 네 외종사촌 누이를 엮어줄까 하고 있다. 그래서 내일 부사 영감에게 은근슬쩍 보여주며 혼담을 넣을 생각이다.”

그러고 보니 외할머니를 볼 때 14~15세 정도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한 명 있었는데, 그 여자아이가 내 사촌 누나인 것 같았다.

“우리 난희가 다 좋은데, 우리 집안의 특징인 피부가 검어서 문제다. 그래서 수원, 화성 인근의 매분자란 매분자는 다 불러 모았다.”

검은 피부와 매분자란 말에 혹시나 납(Blei/Lead)과 관련된 백분(白粉)이 떠올랐지만, 이 시기에는 납꽃을 이용한 백분이 쓰이지 않을 시기로 알고 있었다.

‘납이 들어간 백분으로 가장 유명한 박가분은 1930년대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지만, 왠지 찝찝했다. 외할머니를 만났을 때도 분명 매분구들과 흰색가루를 앞에 두고 있었다.

“참. 외숙부 방금 전 전순의 영감의 이야길 할 때 아시는 듯하셨는데, 혹시 그분을 아시는지요?”

“멀리서 얼굴만 보았지. 헌데, 너는 그이를 왜 찾아가는 것이냐?”

“제가 작년 여름에 역병에 걸려 죽다 살아났는데, 그 이후로 의술을 배워 식료의라는 것을 공부해 보고자 찾아가고 있습니다.”

“의술? 식료의?”

홍전택은 이름만 알던 조카가 찾아와서는 갑자기 의술을 배운다고 하니 뭔가 큰 사건이 있었구나 싶었다.

“흠. 뭐 양반으로서 의술을 배워두는 것이 나쁜 일만은 아니지. 하지만, 그이가 제자를 두는지는 잘 모르겠구나.”

“이미 여러 의원에게 의술을 배웠기에 설령 정식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해서 그런데, 제가 사촌누이 얼굴을 희게 만들어 준다는 매분구들의 백분을 한번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가? 분을? 남자가 백분을 살펴본다고.?”

홍전택은 여자들이 쓰는 백분을 살펴 본다는 말에 괜히 찝찝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은 그의 얼굴에 드러났다.

“외숙부 제가 배웠던 의술에도 백분을 만드는 것에 대한 것이 있는데, 매분구 들이 제대로 된 백분을 팔았는지 확인해보고 싶어서 그렇습니다. 만약 제대로 된 물건이 아니라면, 제가 가진 비방(祕方)으로 제대로 된 백분을 만들면 될 것이고요. 그러면 사촌누이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오, 백분을 만드는 비방을 알고 있다면, 도움이 되겠지. 매분구들이 돌아가면 함께 가보자. 외숙모와 다른 사촌 형제들도 보아야 하기도하고.”

***

“그래, 의술을 배우고 있는데, 피부를 희게 한다는 비방이 있다고?”

“네 외숙모. 우선 백분부터 좀 살펴보겠습니다.”

매분구들에게 오늘 구매했던 화장품이 많았는지 종이에 싸인 가루나 통에 담긴 것들이 많았다.

‘그러고 보니, 이 백분에 납이 들어있다고 해도 어떻게 구분해 내는 거지.’

막상 백분을 받아 들었지만, 납이 들었는지 구분할 방도가 없었다.

철가루처럼 자석으로 뽑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납을 분리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대충이나마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었지만, 그 방법은 정확하지 않은 방법이긴 했다.

백분 속에 납이 들어있는지 확인하기 어려웠기에 한국 최초의 화장품이라는 박가분이 만들어졌을 때 그 속에 납 성분인 납 꽃이 들어가 있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저 피부가 괴사 되거나 납중독으로 인한 정신 착란 같은 게 일어난 이후에야 납이 들어있었구나 하고 추측할 수 있었다.

그 1930년대에 나온 박가분이 나오려면 아직 몇백 년이 더 있어야 하지만, 이 백분에 납이 없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외할머니, 외숙모, 누이. 보통, 이 백분에는 피부를 희게 하는 흰색의 조개껍질을 갈아 넣고, 쌀을 갈아 넣어 만듭니다. 아주 큰 부자라면 진주를 갈아 넣기도 하고, 백합꽃의 수술을 채취해 넣기도 합니다.”

“오! 재료가 그렇다면 우리가 약연(藥碾)으로 갈아서 만들 수도 있겠구나.”

“네. 그게 가장 좋습니다. 직접 백분을 만들어 물이나 꿀에 절여 바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그리고, 그런 재료를 쓰지 않고도 얼굴을 희게 만드는 재료가 하나 있는데, 납꽃이라 불리우는 것입니다.”

“납꽃?”

“네. 얇은 납판을 식초에 넣어 끓이고 하루 정도 놓아두면 납판에 흰색의 납꽃이 피는데, 그 납꽃을 긁어 이 백분과 섞으면 얼굴이 아주 하얗게 됩니다.”

“오! 그런 방법이 있구나. 그것이 네가 아는 비방이냐?”

“네. 비방이라고 하면 비방이지만, 문제는 이 납꽃이 들어간 백분을 쓰게 되면 처음에는 피부가 하얗게 되어 여자들은 좋아할 것입니다. 허나, 매일 납꽃 가루를 얼굴에 바르게 되면 얼굴 피부가 벗겨지고 피부에 구멍이 나 피부가 죽어 버립니다.”

“응? 피부가 죽는다고?”

“그럼 쓰면 안 된다는 말이냐?”

백분을 쓰면 피부가 벗겨지고, 구멍이 뚫려 버린다는 말에 세 여자는 깜짝 놀랐다.

“네 피부 껍질에 구멍이 뚫려 피부 자체가 죽어 버립니다. 그래서 이 납꽃이 들어간 백분은 절대 쓰면 안 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냐?”

“가장 좋은 것은 직접 백분을 만들어서 쓰는 것입니다. 그리고 백분에 납꽃이 들어가 있는지 확인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오 어떤 방법이냐.”

“우선, 대야에 뜨거운 물을 담아서 가져오게 하십시오.”

노비가 펄펄 끓는 물을 대야에 담아오자, 원종은 백분을 그대로 뜨거운 물에 넣어 버렸다.

“아이 아까워라.”

사촌 누이는 비싸게 주고 산 백분을 물에 넣어 버리자 아까워서 혀를 찼다.

“누이 아깝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일 내가 백분을 만들어 드리리다.”

원종은 대야의 뜨거운 물을 나무 주걱으로 휘휘 저었다.

“이야기했듯이 납꽃은 금속에서 피어난 흰꽃이기에 뜨거운 물에 녹지 않습니다. 하지만, 흰쌀로 만든 가루나 보리, 조개껍질의 가루는 곡식과 석회성분이라 뜨거운 물에 녹아듭니다.”

원종은 말을 하며 뜨거운 물을 밖으로 졸졸 따라 버렸다.

“그리고, 물에 녹지 않는 이런 납꽃들은 물 바닥에 가라앉습니다.”

“어머나! 정말이구나. 물에 녹지 않는 가루가 있었구나.”

“우리가 납꽃으로 된 백분을 쓰고 있었구나.”

“내 그 매분구 그 년들을...!”

“아마도, 매분구들도 모르고 팔았을 것입니다. 그저 앞으로는 백분을 구매하지 마시고 만들어 쓰시면 될것입니다.”

원종이 쓴 이 뜨거운 물로 백분의 성분을 확인해보는 방법은 석회가루 성분인 몇몇 조개껍질 가루나 진주 가루를 걸러내지는 못했기에 완전한 방법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렇게 납꽃을 걸러내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지고, 납의 유해성도 같이 알려지게 된다면 나중 1930년대에 일어날 박가분의 피해는 입지 않을 터였다.

‘아니지. 이 백분을 브랜드화해서 내가 만들면 되지. 그리고, 패키지 겉면에는 [납성분은 절대 들어있지 않습니다.] 라고 쓰면 되는 것이고.’

갑자기 원종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오이와 수세미로 ‘미안수’를 만들고, 달걀과 참기름으로 로션 역할을 하는 ‘면약’도 만들 수 있었다.

‘수제 백분과 미안수, 면약, 그리고 팥으로 만드는 생비누까지 규격대로 만들어 판다면 근본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 파는 매분구들을 쉽게 이길 수 있을 터.’

원종의 머리에는 조선판 방판. 방문판매의 체계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세분은 그대로 누워 보시지요.”

여종 둘에게 오이를 갈라 시키고, 외숙부와 이야기하며 미리 준비해온 목화를 섞어 만든 백면지(白綿紙)를 꺼내었다.

가위로 할머니와 외숙모, 사촌누이의 얼굴 크기대로 백면지를 잘라서는 오이즙에 백면지를 담구었다.

목화솜을 섞어 만든 종이이다 보니, 백면지는 오이의 즙을 듬뿍 머금었다.

“앗! 이것이 무엇이냐? 왜 오이를...”

“외숙모 이것이 가면 화장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피부에 좋은 오이나 수세미의 즙을 백면지에게 발라 얼굴에 씌어두는 것입니다.”

“먹는 것으로 장난을 치지 말라고 했거늘. 이래도 되는 것이냐?”

“오이의 즙을 얼굴이 먹는 것이옵니다. 즙을 내고 남은 오이는 다시 먹을 수 있으니 장난을 치거나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이 백면지 가면을 쓰고 한시 진 후 피부를 만져 보십시오. 아마 오이의 풋풋함이 순수함이 얼굴 피부에 남아 한층 젊어지실 것입니다.”

“나도 젊어지는 것이냐? 오호호.”

“네 할머님. 젊을 때의 피부로 돌아오실 겁니다.”

안채의 방에 여자 세 명이 주르륵 누워 녹색의 가면을 쓰고 있으니 그 모습이 참으로 재미있는 광경이기는 했다.

결국, 백면지 가면을 쓰고 누워 있다는 말이 외삼촌의 귀에도 들어갔고, 직접 보러 왔다.

“허허, 말을 듣고 믿지 않았는데, 가히 대사건이구나. 대사건이야!”

외삼촌은 기행에 신기해하며 한참을 구경했고, 한시 진이 지나 백면지를 떼어낸 외숙모의 얼굴 피부를 만져 보았다.

“오! 피부가 살아났구나! 살아났어!”

외삼촌의 손가락이 볼을 찌르는데, 외숙모의 볼이 찰떡처럼 탱탱거렸다.

“어머나 신기하구나. 정말 오이의 풋풋한 젊음을 내 피부가 가졌구나.”

“난희야 이 할미의 피부를 보거라. 어떠냐?”

“어멋! 할머님이 아니라 어머님인줄 알았어요.”

“하하핫! 원종이의 말처럼 정녕 피부가 젊어진 것 같구나. 어디서 이런 주안술을 배운 것이냐?”

“여러 곳에서 배웠습니다. 매일 저녁 오이나 수세미로 백면지 가면을 하시게 되면 피부가 좋아지고 절로 밝아질 것입니다.”

“그럼, 오이가 열리지 않는 가을, 겨울에는 어떻게 하느냐?”

“가을에는 사과와 배 같은 과실류로 하실 수 있고, 겨울에는 달걀흰자와 꿀을 사용해서 하셔도 됩니다.”

“오! 1년 내내 한다면 내 늙지 않겠구나. 하하핫.”

백분가루를 만드는 것까지 알려주고 안채를 나오니 외삼촌이 아주 기뻐했다.

“그래, 누이의 피부뿐만 아니라 외숙모와 외할머니의 피부까지 좋게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는데, 내가 뭘 해주면 되겠느냐?”

“혈족 사이에 뭘 주고, 받고 할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하나라도 더 주고 싶은 게 혈족이지 않겠습니까?”

“하하하. 그렇게 생각한다면 내가 더 너를 챙겨주고 싶지 않으냐. 뭔가 필요한 것은 없는 것이냐?”

“음. 뭐 굳이 뭔가를 해주고 싶으시면 내일 대도호부사 영감이 올 때 맞이 음식으로 물만밥을 제가 해서 올리면 아니 되겠습니까? 물론, 외삼촌은 물론이고 저도 같이 먹을 것이기에 음식에 장난을 치거나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래. 좋다. 내일 부사 영감의 맞이 음식 물만밥을 네가 한번 올려 보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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