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50화 (50/327)

50. 참 아까운데. (3)

“저, 그럼 도련님. 그 방설환을 만드는 약방문이라도 어떻게 아니되겠습니까요?”

“뭐? 약방문을 달라고? 하하하 재미있구나. 재미있어!”

원종은 웃음이 나왔다. 물에 빠져 죽어가던 놈을 건져 줬더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었다.

“끼니도 잇지 못해 빌빌거리던 것들에게 재주를 하나 가르쳐 줬더니, 밑천까지 내놓으라고 하는구나. 백정 놈들은 천지 분간 못하는 잡것들이라고 하더니 네놈이 딱 그짝이로구나. 썩 물러가거라.”

“아, 아이고, 도 도련님 죄송합니다요. 쇤네는 그저...”

“도련님이 그만 물러가라고 하지 않느냐?!”

달유가 조가비 길근의 어깨를 잡아끌어 문밖으로 내쳤다.

원종은 저들이 배우지 못했기에 저런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기분이 나쁜 건 어쩔 수 없었다.

왜 백정 놈들을 다른 신분의 사람들이 싫어했던 것인지 알 것 같다.

‘염치를 모르는 사당패나 재인 백정들을 들이기보다는, 아예 어릴 때부터 키우는 게 맞을 것 같구나.’

호텔이나 고급 가게에서 공연하기 위한 인력이면 기생들의 학교인 교방(敎坊)에서 데리고 오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 같았다.

아깝지만, 재인 백정을 내 사람으로 만들어 써먹을 생각은 접어 버렸다.

***

“도련님. 잡인들이옵니다. 뒤로 물러나시지요.”

음성을 지나 안성에 가까워지기 시작하자, 산과 들을 떠도는 유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서로 소 닭 보듯 했지만, 점점 유민들을 만날수록 그들의 눈빛이 변해간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춘궁기의 배고픔이 사람을 변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달유와 오추는 들고 있는 나무 창에 번쩍이는 창날을 꽂았고, 삼식이와 박복이도 기다란 목봉을 몽둥이처럼 들고 움직였다.

“저 안쪽에 고사리가 올라왔으니 고사리라도 뜯어 먹게.”

원종은 그런 그들이 안타까워 고개를 넘어오다 고사리를 봤다고 알려줬다.

“그리고, 고사리는 바로 먹으면 아니 되네. 반드시, 끓는 물에 삶아서 먹어야 하네!”

내 딴에는 고사리에 있는 유해성분을 생각해서 삶아 먹으라고 했지만, 고사리가 있다는 말에 뛰어가는 저들의 모습을 보니 과연 삶아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련님. 고사리는 저도 자주 먹는데, 떠도는 풍문을 들어보면 독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진짜 고사리에 독이 있습니까요? 그걸 먹으면 아침에 하물(何物)이 서지 않는다고 하던데 참말입니까요?”

삼식이가 물어오자, 아직 어린 박복이는 물론이고 달유와 오추도 궁금한지 고개를 돌렸다.

“어느 정도는 맞지만, 늘상 먹는 것도 아니고, 삶아서 말려 먹으면 별 상관이 없다. 생으로 먹지만 않으면 될 것이야.”

고사리에는 티아민(비타민 B의 한 종류)을 분해하는 티아미나아제(Thiaminase)와 독소인 프타퀼로사이드(Ptaquiloside)가 들어가 있는데, 비타민B를 티아미나아제가 분해하게 되면 각기병 같은 병이 올 수 있었고, 프타퀄로사이드는 암을 일으킬 수도 있는 독소였다.

하지만, 고사리에 들어가 있는 함량 자체가 적었고, 삶은 후 말려 보관하고 다시 먹을 때 삶으면 대부분의 독소나 몸에 좋지 않은 성분은 없어졌다.

물론, 그렇게 해도 정말 극미량이 남아 있을 수도 있기에 몸을 생각하는 사람들은 고사리를 아예 안 먹기도 했다.

간혹 스님 중에는 아침에 일어서는 그것이 너무 부담스러워 고사리로 차를 끓여 먹으며 본능을 억제했다는 말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고사리에는 섬유질이 많고 비타민C와 칼슘과 철분도 많이 함유하고 있어 이런 춘궁기에는 구황식물로 인기가 있는 식물이었다.

“삼식이 너는 몸에 약간이나마 해롭다고 하여 춘궁기에 고사리를 안 먹겠느냐?”

“안 먹으면 굶어 죽으니 먹어야죠. 헌데 수양산에서 고사리를 캐 먹으며 살던 백이 숙제도 그렇게 고사리의 독 때문에 죽었다고 하던데요.”

“그건, 주나라에서 나는 다른 곡물을 아예 안 먹겠다고 해서 고사리만 뜯어 먹었기에 죽은 것이지 않으냐. 고사리만 먹지 않고 다른 것과 섞어 먹으면 절대 죽지 않으니 걱정하지 말거라. 그리고 수양산은 될수 있으면 입에 올리지 말도록 하거라.”

“왜요? 아! 아예. 알겠습니다요.”

삼식이는 그제야 지금의 주상이 대군이던 시절에 수양대군으로 불렸다는 걸 떠올리고 입을 닫았다.

***

“아니, 여기에 어떻게 오셨소?”

해가 지기에 안성 인근의 마을에 들어서니 마을 사람들이 신기하게 우릴 쳐다봤다.

“그게 무슨 말이요? 어찌 오다니?”

달유가 오히려 이런 질문이 무슨 말이냐며 되물었다.

“절암재를 넘어온 것이 맞소?”

“절암재가 저 고갯길이라면 저 고갯길로 넘어온 것이 맞소이다.”

“헐! 그럼 절암재를 넘어온 것이 맞소이다. 우리 마을은 저 재가 둘러싸고 있소이다. 그런데, 재를 넘어올 때 아무 일도 없었소?”

마을 사람들은 아무 일 없이 재를 넘어온 우리를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봤다.

“우린 아무 일도 없었소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러는 것이오.”

“그... 그게, 고갯길에서 도깨비가 나오오.”

“도깨비? 헌데 우린 아무런 것도 보지 못했소이다. 우리 모시는 분이 유숙하셔야 하는데, 어느 집으로 가면 가장 편하오?”

“유 어르신네 집으로 갑시다. 따라오시오.”

유 아무개의 집으로 향하는데, 마을 사람들도 우릴 따라 움직였고, 유영복이라 불리는 양반집의 마당에는 사람들로 가득 찼다.

“근 한 달 전부터 도깨비가 나타나 절암재 고갯길을 넘는 사람들을 덮치고 있소이다. 젊은 양반은 덩치 좋은 종들이 셋이나 있다 보니 도깨비가 덮치지 않은 듯하오.”

마을의 유지인 유영복이란 사람은 볼살이 움푹 들어간 비쩍 마른 양반이었는데, 자신이 다스리는 거나 마찬가지인 마을에 나쁜 일이 생겨서 그런지 더 힘들어 보였다.

“안성 시내가 가까운데 현청에는 이야길 해보셨습니까?”

“그게, 도깨비가 사람은 해치지 않고, 물건만 들고 가거나 먹을 것만 챙겨가다 보니 현에선 나서주지 않고 있소이다. 사람이 죽지 않았으니 도깨비의 장난으로 여기고 있소이다.”

“사람이 죽지 않았다니, 현에서는 그럴 만도 하군요.”

“그래서 골치가 아프오. 근 보름 넘게 마을로 오는 사람이 없었고, 우리가 나가려고 해도 10여 명씩 떼를 짓지 않으면 도깨비가 덮쳐드니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소이다.”

이야기 중에 저녁상이 들어왔는데, 춘궁기임에도 고기가 올라간 삼첩반상이었다.

“그래서 그런데, 젊은 양반이 데리고 다니는 수하들을 좀 빌려줄 수 없겠소? 셋 다 덩치도 크고 힘깨나 쓰는 자들 같던데. 저 치들로 도깨비를 몰아낼 수 있을 것 같은데. 아 물론, 내 섭섭지 않게 챙겨주리다.”

유영복의 말을 듣고 보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마음대로 돌아다니지 못해 피해가 큰 것 같았다.

‘이들이 도깨비라고 하지만, 과연 도깨비일까?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은데.’

도깨비가 어떤 놈일지 생각하다 보니, 유민들이 떠올랐다. 절암재라고 불린 이 마을 앞의 고개는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산이 깊은 곳에는 먹을 것을 찾는 유민들이 있었다.

‘아마도, 먹을 것을 찾는 유민들이 도깨비인 척하며 사람들을 덮쳐서 먹을 것을 구하는 것 같은데. 어떻게 한다.’

유민들도 돕고, 이 마을 사람들의 고립되다시피 한 골칫거리도 해결해야 할듯했다.

“그럼, 잡곡으로 세가마를 주시오. 이야길 듣고 보니 배고픈 도깨비가 있는 듯한데, 내 아랫것들을 겁내는 듯하니 잡곡을 미끼로 하여 쫓아 보내보도록 하겠소이다. 물론, 실패한다고 해도 우리는 잘못이 없는 것이오.”

“좋소이다. 그렇게 잡곡으로 도깨비를 쫓아내기만 해도 충분하오.”

그렇게 저녁 식사를 하며 도깨비란 놈이 나타나서 저지른 이야기를 들었다.

***

“진짜 도깨비이겠습니까요?”

“그대들은 도깨비를 직접 봤나? 아니면, 귀신은 본적이 있는가?”

“귀신은 물론이고 도깨비도 본적이 없습니다요.”

“다들 그럴 거네. 실제 귀신이나 도깨비를 봤다고 하는 사람이 있지만, 보고 싶을 때 보지 못한다는 건 없는 것이나 진배없음이야.”

“헌데, 도련님은 도깨비를 퇴치해 주겠다고 잡곡을 받으셨지 않습니까요?”

“사람을 죽이지 않고, 물건이나 먹을 것만 가져가는 도깨비라고 하면 뭔가 떠오르는 게 없나?”

“그, 그럼 도련님은 이 도깨비가 유민이나 화적들일 거라고 생각하십니까요?”

“맞네.”

“음. 도련님. 마을 사람들이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겠습니까요? 아마도 먹을 것이 없어 떠도는 유민이나 화적들이라고 저들도 생각했을 겁니다요.”

원종은 달유의 말을 듣고 보니 이쪽 사람들의 지능을 알게 모르게 자신의 아래로 여긴 것 같았다.

현대인이라는 자만심이 자신도 모르게 깔려있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자만심이 사람을 잡는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조선 시대 사람들이 현대인보다 수준이 좀 떨어진다고 느낀 것은 교육을 받은 자들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부분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기에 단순하며, 사고(思考)하는 지능이 떨어진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조선 시대 사람들도 사고라는 걸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고, 교육을 받거나, 타고난 지능이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사람들을 생각하지 않고, 그저 단순하고 아는 것이 없는 노비들 같은 사람이 전부라고 다들 내 밑이라는 자만심을 가진 것 같았다. 인식을 급히 바꾸었다.

“아마도, 유영복이라는 양반도 종들이나 마을의 힘깨나 쓰는 자들을 동원해 처리하려고 했겠지.”

“네. 맞습니다요. 헌데 그게 실패했기에 아무 일 없이 재를 넘어온 우리에게 부탁한 것일 겁니다.”

“아마도, 유민들도 우릴 보곤 덩치도 있고, 창을 들었기에 정면으로 싸우게 되면 피해가 클 것 같으니 보내준 것이겠지.”

“네. 오추와 함께 산에 올라 한번 살펴보겠습니다요.”

“아니. 그럴 필요 없어. 어쩌면 산에서 우리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르지.”

원종은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

“그럼, 하루 잘 묵고 갑니다.”

유영복의 집에서 하루를 유하고, 바로 마을을 벗어났다.

“뭐여? 어제 듣기로는 저 덩치 좋은 남정네들이 도깨비를 처리해주기로 했다고 하더만.”

“그러게. 왜 그냥 가는 거지.”

“제놈들도 무서웠겠지.”

“듣기로는 어린 양반의 호위가 우선이라고 거절했다고 하더군.”

“쳇, 그냥 며칠 늦는다고 무슨 일이 난다고. 써글.”

유영복과는 미리 이야기를 해두었지만,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마을 사람들은 도깨비를 처리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장사들이 그냥 간다며 한탄을 했다.

“역시나, 저희는 아예 건드리지 않는데요.”

마을을 둘러싼 절암재란 고개를 넘어와서 돌아보니, 과연 산세가 깊어 유민이나 화적들이 몸을 숨기기 좋을 것도 같았다.

“마을을 지켜보고 있던 자들은 우리가 마을을 떠났다고 생각해서 주시하지 않을 걸세. 달유와 오추는 저 절암재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있는지 알아보고 오게나.”

***

“4명? 정말 그거밖에 없었나?”

“네. 저희들도 너무 인원이 작은 것 같아 몇 번이나 살폈으나, 분명 4명밖에 없었습니다요.”

“그럼 그 4명이 마을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고 먹을 것을 뺏었다는 건데. 말이 안 되는군. 한데, 그 4명이면 자네 둘이 처리할 수 있겠는가?”

“길고 짧은 것은 대어봐야 아는 것이지만, 숨어서 활로 공격한다면 다 처리할 수 있을 것입니다요.”

달유의 자신만만한 말을 듣자 그대로 처리하라고 이야길 하려 했다.

‘잠시만, 재물을 빼앗고, 먹을 것을 빼앗았지만, 한 달 가까이 사람을 해치지 않은 자들이라면 갱생의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인명을 해치지 않는 규칙을 가지고 산에서 도적질을 하는 자들이라면 갱생의 여지가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직접 그들을 만나보겠네. 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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