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 참 아까운데. (2)
“도련님. 이 근방에 의원이 세 곳이 있는데, 백초상이란 약재를 가진 곳은 한곳밖에 없었습니다. 그것도 한근(대략 600g)밖에 없다고 해서 일단 모두 다 달라고 했습니다요.”
삼식이가 사 온 백초상을 내놓았는데, 달유와 오추는 이게 약재가 맞는지 의아했다.
“이건 그냥 검은 것이 숯가루 아닙니까요?”
“삼식이 너 속아서 잘못 사 온 것 아니냐? 냄새도 독한 것이 나무를 태운 숯가루이지 않으냐.”
“아니네. 이게 맞아. 잘 사 온 거네. 백초상이 맞아. 삼식이는 바로 생강과 연근도 구해오거라. 그리고 약연(藥碾)도 좀 빌려오거라.”
원종은 손가락으로 백초상을 만져보니 부드럽게 갈려있는 상등품의 백초상이었다.
‘그래, 이 냄새가 맞아. 정로환(正露丸) 뚜껑을 열었을 때 확 올라오던 그 냄새.’
소독약 같기도 하고, 불탄 목초액 냄새 같기도 한 독한 냄새를 풍겨내는 백초상은 아궁이나 굴뚝 안쪽에 쌓여 생긴 숯 검댕을 모은 것이었다.
다른 잡다한 것이 섞이지 않고, 오랫동안 쌓인 숫 검댕이인 백초상에는 크레오소트(Creosote)란 성분이 있는데, 이 성분이 식용 살균제의 역할을 했다.
즉, 장내 세균 문제로 설사를 하는 사람에게 설사를 멈추게 하는 약 성분이었다.
정로환은 그 이름처럼 러시아를 공격하는 일본 관동군에서 만주의 수질이 좋지 않아 세균성 설사와 배앓이가 심하자, 만들어진 약이었다.
‘크레오소트 성분으로 인한 세균성 설사나 배앓이를 다 잡아주는 약이니 팔아도 되겠지. 이제 이 목초액 같은 크레오소트가 들어간 약은 정로환이 아니라, 방설환(防泄丸)으로 불리게 될 것이다.’
삼식이 구해 온 생강과 연근을 약연에 넣고 다지듯이 갈았다.
약연(藥碾)은 성인 남자 손바닥 두 개 크기의 배 모양으로 생긴 그릇을 말하는데, 그 안쪽에 약재를 넣고 주판알 모양으로 생긴 ‘연알’을 앞뒤로 밀고 당기며 약재를 가루로 만드는 약기였다.
거기에 생강, 연근을 넣어 갈자, 말린 것이 아니기에 즙이 흘렀다. 흘러내린 그 즙으로 백초상 가루를 둥글게 뭉쳐 알약을 만들었다.
생강은 예로부터 식(食)과 약(藥)에 사용되어왔는데 구토와 멀미를 가라앉게 하고 건위(健胃 위를 튼튼하게 하는) 작용을 했다
그리고, 연근에는 끈적거리는 뮤신(mucin)성분과 타닌(tannin)성분이 들어 있는데, 뮤신은 위벽을 보호하고, 타닌은 손상된 장 점막을 회복시켜 설사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했다.
“박복아. 이리와서 알약이 마르게 부채질을 하거라.”
“도련님 그런데, 이 냄새나는 약은 어디에 좋은 것입니까요?”
“물갈이로 설사를 할 때 설사를 그치게 하고 장을 보해주는 방설환이다.”
“오! 저도 착호갑사가 되기 위해 여러 곳에 사냥하러 다녔지만, 설사를 막아준다는 환은 처음 봅니다요.”
“맞습니다요. 설사가 타오면 그저 보리를 넣어 끓인 차를 마시는 게 전부였습니다요.”
“그런가? 그럼 잘 팔리겠나?”
“가격이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요?”
“대략 300알 좀 넘게 만들었으니 3알씩 해서 닭 한 마리 가격에 팔아야지.”
“그러면... 대략 닭 100마리의 값이군요.”
“배앓이를 잡아주는 약을 닭 한 마리에 살 수 있다면 다들 여름을 생각해서 미리 사둘 것 같습니다요. 그런데, 진짜 효과가 있습니까요? 그냥 숯에 생강, 연근이지 않습니까요?”
직접 방설환을 만드는 것을 보았기에 너무나 쉬운 약 성분에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 같았다.
“내가 누구인가? 식료의네. 먹는 것에서 약을 만들어 내는 것이지. 정 의심스러우면 나가서 설사로 고생하는 자가 있으면 이 약을 먹여보게. 바로 효과가 있을 거네.”
원종이 자신 있게 이야길 하자, 오추는 의심이 들었지만, 밖에 나가 설사 환자에게 먹여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흠. 오추도 방설환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지 못할 정도라면 공연 중간에 약장사로 방설환을 파는 게 힘들 수도 있겠는데.’
훗날 나올 허준의 동의보감에도 이 백초상이 나오긴 했지만, 진짜 숯검댕이 주성분이라고 하면 믿음이 안 가긴 할 것 같았다.
약을 팔기 위한 영업 포인트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급히 모가비와 재인들을 불러, 공연을 짰다.
***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데, 오늘 장이 서는 게 아니라, 극락 서거수단이 공연을 한다고?”
“네 형방어른.”
“그럼, 군수 어른의 명을 어긴 것은 아니구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포졸 몇을 보내놓도록 하게나.”
대수롭지 않게 현청으로 들어가려던 형방 하일은 서거수단 공연에 서로 가보겠다고 하는 포졸들을 보고는 마음을 바꾸었다.
“아니다. 내 듣기로 작은 주머니를 주고받는 재주가 신기하다고 하던데, 어떤 재주인지 현감께 보고하기 위해 직접 가야겠다.”
“네 어르신 가시지요.”
형방 하일이 대사거리에 도착하니 장날 못지않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있었다.
근 이틀간 음성군의 큰 마을마다 서거수단이 돌며 홍보를 했기에 농사일마저 팽개치고 나온 것이었다.
“자자, 유향소의 어르신들은 이쪽 바른쪽에 앉아주십시오. 몸종들은 안됩니다요. 몸종들은 저쪽 일반 자리로 가시오.”
“한번 앉으면 공연이 끝날 때까지 움직이기 힘드니 배앓이를 하거나 설사 끼가 있는 사람은 왼쪽 저쪽에 앉아주시오.”
덩치가 큰 삼식이와 험상궂은 달유와 오추가 질서를 정리했음에도 끼어드는 사람이나 일행을 억지로 데려와 앉히는 사람까지 관리가 힘들 정도였다.
“형방 어른이시다. 모가비는 어디 있나?”
포졸들을 여럿 달고 온 형방 하일을 보자 눈치 빠른 달유는 양반들이 앉는 자리보다 더 가까운 자리로 안내해서 앉혔다. 대신에 포졸들을 움직여 질서 정리에 써먹었다.
“배앓이를 하는 자들은 이 따뜻한 차와 함께 이 환을 먹게나. 그래야 공연 중간에 배가 아파 자리를 뜨지 않을걸세. 돈? 공짜네. 공짜야. 자네들은 공짜네. 박복아 연근차를 나눠주거라.”
원종은 양반이나 유지들처럼 배앓이를 하는 사람들을 따로 앉혔는데, 공연 중에 자리를 뜨거나 하는 게 안된다고 해서 격리시키고 방설환을 먹이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조선 팔도 최초의 약장사 서커스가 시작되었다.
사방에서 장구를 든 처녀들이 장구춤을 추며 무대인 난장 마당으로 움직였고, 춤에 자신 있는 재주꾼들이 나와 춤을 추며 사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그러다. 다리를 저는 장년이 나오는데, 장구춤을 추던 처녀들이 웃으며 장년의 얼굴에 분칠을 했다.
“저저. 얼굴에 뭐 하는 짓이여?”
“분칠을 하는 거 같은데. 남자 얼굴에 분칠이라니. 그런데, 왜 코는 또 고주망태야? 입술은 또 뭐고?”
“보통은 모가비가 나와서 시작을 알리는데, 이 재인 패는 특이하구만.”
“저어~ 남도 아래, 탐라섬을 지나 왜놈들의 열도 전국 순회공연을 마치고 상경한 저희 극락 서거수단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모가비 길근은 처음 나올 때는 멀쩡했지만, 얼굴에 화장을 떡칠하여 기괴한 모습으로 이야길 했다.
“명색이 모가비이온데, 재주는 하나 보여야 하겠지요. 양반 나리 돈주머니를 저에게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요?”
모가비가 정해진 대로 내게 말을 걸며 품에서 돈주머니를 꺼내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 원종도 거기에 맞게 돈주머니를 꺼내는 척 마는 척하며 분위기를 시루었다.
“내 돈 주머니가 많은데, 받아볼텐가?”
“물론입죠!”
모가비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가벼운 흙이 채워진 주머니 2개를 양손으로 던졌다.
던진 주머니를 모가비가 받자마자 다시 2개를 더 던지니, 모가비가 깜짝 놀라 들고 있던 2개를 내게 다시 던졌다.
그렇게 나와 주머니 4개로 주고받기하다 내가 다시 2개를 더 꺼내 총 6개의 주머니를 서로 주고받기 시작했다.
“어허! 신기하구만!”
“주고받는 거리가 멀어지는데.”
“엇! 사람이 또 나온다.”
그러다 중간에 삼청이란 젊은이가 원종과 모가비 사이에 끼어 들었다.
“아니, 양반네 돈주머니를 들고가다 무슨 큰일이 나려고 그러오. 이거나 먹으시오.”
삼청이는 말을 하며 주머니를 하나씩 빼더니 대신에 흰 밀떡을 던졌다.
“이놈! 먹을 것으로 장난치면 아니되지!”
모가비는 주고받는 밀떡을 던지기 전에 한입씩 베어 물며 던졌다. 그러다, 우는 소리를 냈다.
“아이고! 떡속에 돌이 있구나.”
모가비는 저글링을 하는 중에도 이빨이 아프다는 표정을 지으며 난리를 쳤다.
“하하하. 내 이런 재주는 또 처음이구나.”
“어디서 이런 재인들이 왔을꼬!”
이제껏 재인무리들이 했던 재주는 뻔했다. 모가비가 나와 춤을 추라고 하면 재인들이 춤을 추고, 재담줄을 타고, 소리를 하는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렇게 구경하던 양반과 같이 재주를 피우고, 눈이 휙휙 돌아갈 만큼 주머니를 주고받으며 웃음을 주는 재인무리는 처음이었다.
“아이고, 이놈이 다리도 불편한 나를 너무 힘들게 하는구나. 에잇!”
모가비는 돈주머니 대신 주고받던 밀떡을 전부 받아 입안에 집어넣어 양 볼을 부어오르게 만들며 익살스레 밀떡을 씹어 먹었다.
“그럼, 재담줄이오~.”
쳐진 줄에서 재주꾼이 뛰고 굴리기 시작했고, 줄에 올라간 재주꾼처럼 모가비도 줄에 올라가 익살스레 줄을 탔다.
물론, 슬립 스틱 몸 개그처럼 줄에 얽히고 걸리며 웃음을 주기 바빴다.
“그럼, 이번엔 선녀들의 장구춤이오~! 거 모가비는 그만 들어가시오.”
모가비 길근은 자신에게 들어가라고 했다고 한탄을 하는 척하고는 뒤로 돌아가는데, 절고 있던 다리가 걸을수록 정상인처럼 되었다.
“허허. 내가 던져주는 밀떡을 먹고 다리도 나았구나! 그러고 보니, 공연전에 배 앓이를 하는 이들을 따로 앉혔는데, 다들 배는 괜찮소?”
“엇! 그러고 보니 배가 괜찮아.”
“어라라 나도 그렇네. 서거수를 보다 지릴 것 같아 옷을 챙겨 왔는데, 지리지도 않았구먼.”
양반들의 반대쪽에 앉아있던 배앓이를 하던 자들은 배가 멀쩡하자 난리였다.
“우리 극락 서거수단은 열도에서 올라와 문경새재를 지나는데, 문경에서 식료의로 이름 높은 전원종 의원에게 방설환을 지어왔소이다. 그 방설환을 아까 공연 전에 먹인 것이오. 어떻소? 약효가 좋지 않소?”
“그러고 보니, 약을 먹어서 괜찮은 거구만. 그 약, 방설환은 어디서 구할 수 있소? 약 좀 파시오.”
“3알에 반푼이오. 오늘만 특별하게 닭 한 마리 값에 설사와 배앓이를 멈춰주는 방설환을 파오.”
“6알 주시오! 당장 주시오! 여기 닭 두 마리요!”
마치, 닭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배앓이 환자가 닭을 건네고 종이로 싼 방설환을 받아 들었다.
한 명이 그렇게 약을 사자 직접 방설환을 먹고 효과를 본 사람뿐만 아니라, 평상시 장이 좋지 않던 사람들도 서로 약을 달라며 나서기 시작했다.
“주, 줄을 서시오! 약은 있소이다! 줄을 서시오~오~~!”
장구춤을 추던 처녀들이 흰 종이에 쌓인 약을 건네주며 닭 한 마리에 맞는 오승포나 쌀, 잡곡을 받는다고 한참이나 난리였다.
그리고 아랫것들이 난리를 치며 약을 사는 걸 보자, 양반들도 종들에게 약을 사라고 보냈다.
그렇게 300알이 넘던 약은 금세 다 팔려 버렸다.
“방설환은 따뜻한 보리를 달인 물이나 연근을 달인 물과 같이 먹으면 되오. 그러면 물을 잘못 마셔 하는 설사를 다 고칠 수 있을 것이오. 그럼, 다시 줄타기를 보시오~.”
***
“도련님. 약을 더 팔라고 난리입니다요. 의심했던 제가 참으로 병신이었습니다요.”
숯과 별거 아닌 재료로 만들어진 방설환에 의심하던 오추는 이렇게 반응이 좋을 줄 몰랐다.
“더 만들어 팔고 싶어도 백초상이 없기에 만들 수가 없으니, 재료가 떨어졌다고 하거라. 그래, 모가비는 호남으로 갈 여비를 벌었는가?”
방설환 약을 판 이후 공연이 끝났을 때는 양반들이 던져주는 돈과 사람들이 주고 가는 먹거리가 한가득하였다.
“여비뿐이겠습니까요? 며칠만 이렇게 하다 보면 겨울까지 나겠습니다요.”
“하하. 그거 다행이구만. 어떻게든 춘궁기를 이겨내게. 나는 이만 가야 하네.”
“도련님. 혹시 어디로 가시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요?”
“수원이네.”
“그럼, 저희도 따라가면 안 되겠습니까요?”
“흠... 자네들을 다 달고 다니는 게 부담스러운데.”
속으로는 낚았다! 하는 환호성이 터졌지만, 일부러 귀찮다는 표정을 지었다.
“도련님. 오늘 번 것으로 입 구멍에 먹을 것은 챙길 수 있습니다요.”
“아니, 먹이는 것이야 뭐 스무 명이 안 되니 부담스럽지 않네. 내가 부담스러운 것은 양반이 재인백정들을 이끌고 다닌다는 말이 부담스러운 거네.”
모가비 길근은 그제야. 아차 하는 표정을 지었다.
자신들이 따라 다니는 것만으로도 양반의 체면은 바닥에 떨어질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럼, 도련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