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46화 (46/327)

46. 집을 떠나다. (2)

“그래, 여기서 주막을 열면 되겠네.”

그렇지 않아도, 문경새재에 들어서는 입구라고 할 수 있는 산 초입에서 길손들을 받는 주막들을 보았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사극 드라마에서 보았던 모습과는 좀 많이 달랐기에 의아했다.

일단, 주막들의 규모가 너무 작았는데, 초가삼간 2~3칸이 전부였고, 평상 위에서 국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그런 주막이 아니었다.

그냥 일반 초가집에서 길손을 받아 밥을 해주는 ‘민박’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모습을 보니 부업으로는 가능해도 전업으로 주막을 운영해서는 수지타산이 안 맞을 것 같았다.

“달유나 오추는 사냥하러 다니면서 주막을 많이 봤나? 오가는 사람들에게 술과 밥을 팔고, 숙박까지 하는 그런 집 말일세.”

“술을 파는 술집은 많이 봤습지요. 하지만, 주막(酒幕)이라는 이름처럼 따로 장막을 치고 술을 파는 곳은 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요.”

“그래? 허허.”

내가 아는 주막을 본 적이 없다는 둘의 말에 어이가 없었다.

“그럼, 자네들 잠은 어디서 잤나? 산에서 사냥할 때 말고 말이야.”

“그때는 절에 시주하고 자거나, 그것도 없으면 민가에서 묵었습니다.”

“절?”

그러고 보니 조선이 들어서며 불교가 탄압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 어느 산에나 절이 하나쯤은 있었다.

절을 생각하다 보니 떠오르는 게 있었다.

‘아차! 역참제(驛站制)를 생각 못했구나. 아니 역원제(驛院制)인가.’

왜 사극에서 보여주던 내가 아는 주막이 지금은 없는지 알 것 같았다.

우리나라 삼국시대에도 변경의 일을 수도에서 빨리 알수있게 말을 키우고 관리하며 관인들을 쉴 수 있게 해주는 역(驛)을 운영했었다.

그랬던 것이 원나라의 역참제가 들어오며, 조선팔도 곳곳에 역(驛)이 만들어졌었다.

그리고, 그런 역과 비슷한 일을 하는 곳을 조선에서는 원(院)이라고 불렀는데, 이 두 곳을 합쳐 역원이라 불렀다. 조선 초기에도 여전히 운영되는 제도였다.

‘그리고, 웃기게도 이 역원을 지원하고 운영하는 곳이 바로 절이었지.’

고려 시대는 불교국가이다 보니, 전국에 사찰이 많았고, 그런 사찰들이 역(驛)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게 돈을 대거나 인력을 대었었다.

나라 사업에 무슨 절이 끼어드냐고 할 수 있겠지만, 이는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서도 예가 있었다.

중세시대는 물론이고 근대시대까진 중앙정부의 힘이 지방 곳곳에 미치지 못했기에 수도원이나 성당이 끼어들어 여행자나 관리들의 숙박을 책임져 주곤 했었다.

심지어 신대륙 남미에서는 수도원과 수녀원이 신대륙에서 나오는 재화에 자체 세금을 붙여 구호산업이나 지역개발을 도맡기도 했었다.

고려 시대의 절들도 나라를 대신해서 역을 관리하고 운영했었는데, 임진왜란 이후 절들이 많이 없어지고, 이후 유학자들의 탄압을 받으며 역원의 운영에서 손을 떼버리게 되었다.

그렇게, 나라를 이어주던 역원이 사라지며 그 자리를 주막들이 채워가는 게 조선 중후기였다.

물론, 현대까지도 이태원, 조치원, 장호원, 양덕원 등의 지명으로나마 역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었다.

사극에서 보고 알고 있는 이미지의 주막은 그때에나 생기게 된다는걸 알게 되자 웃음이 나왔다.

‘그럼, 이거 내가 아는 주막의 모습을 선점하면 되는 거잖아. 양반들을 위한 주막은 ‘식료정’이란 이름으로 고급화로 가고, 일반적인 주막은 ‘춘봉주막’으로 해서 가면 되는 거네.’

길이 험했음에도 산길에서 이따금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양반은 물론이고, 중인, 상인, 천민등등 계층을 구별하지 않고 많은 이들이 문경새재를 넘어 다녔다.

이 정도의 유동인구라면, 충청도와 경상도를 잇는 문경새재의 양 입구에 주막을 만들기만 해도 운영은 될 거 같았다.

특히나, 양반들이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올라가는 길은 이 문경새재하나뿐이었다.

물론, 충청도와 경상도를 막고 있는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길이 문경새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대표적으로 죽령을 넘어가는 길과 추풍령을 넘어가는 길도 있었다.

하지만, 죽령으로 넘어가 한양으로 가게 되면 죽죽 미끄러진다는 말이 있었고, 추풍령으로 넘어가 과거를 보면 추풍낙엽처럼 떨어진다고 하여, 양반들은 무조건 이 문경새재로만 소백산맥을 넘어갔다.

‘양반들을 위한 과거 합격 요리 메뉴만 갖춰 두면 고급 음식점인 식료정의 장사는 그냥 되는 것이지. 후후’

죽령과 추풍령의 지명 덕분에 반독점으로 양반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자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문경새재를 넘어가려 했으나 어린아이의 걸음이라 그런지 문경새재의 중간쯤에 오르자 해가 졌다.

“도련님 사람들이 저쪽에 마을이 있다고 합니다. 저쪽으로 가시지요.”

문경새재를 넘던 사람들을 따라 움직이니 20여 호의 작은 마을이 나왔는데, 모든 집에서 민박 비슷하게 길손들을 받아 밥도 차려주고 숙박을 할 수 있게 영업을 하고 있었다.

“산중이라 농지가 부족하니 저리 손님을 치는 일을 하는 것이로구나.”

생계형 민박이라 그런지 대충 살펴봤음에도 열악했다.

언제 세탁했는지 모를 정도로 누렇게 사람의 기름 때가 묻어 있는 이불을 보니 과연 잠이나 잘 수 있을까 싶었다.

‘저긴 벼룩이나 이가 장난 아니게 있을 거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으니 양반들이나 돈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식료정을 여기서 오픈한다면 무조건 성공할 것 같았다.

“응? 박복아. 그런데 저 양반들은 어디로 가는 것이냐? 한번 알아보고 오거라.”

생계형 민박집들을 보고 있는데, 같이 산을 올라온 갓 쓴 양반들은 이곳에 있지 않고, 안쪽으로 움직여 들어가는 게 보였다.

“안쪽에 조령사 라는 절이 있어 양반들은 절에서 머문다고 합니다요.”

뒤를 쫓아 알아 온 박복이의 말에 100% 성공할 거라는 고급 식당 겸 호텔인 식료정의 성공률을 수정해야 할 것 같았다.

“풍수지리가 좋은 곳을 찾아 지관들이 맥을 따라가다 보면 열에 아홉은 절이나 탑이 있다고 하더니, 그 말에 과장이 없구나. 절이 문제네. 절이 문제야.”

“네?”

“아니다. 우리도 절로 가자.”

마을 안쪽에 기와가 올려진 절이 보였는데, 규모가 작지 않았다.

“시주님도 묵어가실 것입니까?”

햇빛에 검게 탄 피부를 가진 스님이 나와서는 숙식 여부를 물었다.

“네. 방이 있다면 내어주십시오. 시주는 어떻게 해드리면 되는 겁니까?”

“네에? 허허허. 시주님은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저분들과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양반은 물건 가격이나 돈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격이 떨어지는 행동이라 여겼는데, 그러다 보니 스님은 시주에 대해 대 놓고 이야길 하는 원종을 신기하게 여겼다.

결국, 몸종인 박복이와 내가 절에 묵는 조건으로 오승포 3개를 절에 시주했다.

“이런 것도 정가가 아닌 시가로 하게 되다니.”

돈을 쓰지 않는, 물물교환 경제라는 게 다시 한번 짜증이 났다.

그리고, 양반을 대상으로 한 식료정이 100% 성공 못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역원의 관리와 운영을 절에서 해왔기에 양반들이 절에 하루 묵는 것을 어렵지 않게 생각한다. 이러면 절과 숙박경쟁을 해야 하는데, 전국에 퍼져있는 절과 경쟁해서 이길 수 있을까? 아니, 그전에 부처님이나 스님과 경쟁하는 게 옳은 건가.’

만약, 절과 경쟁해서 식료정이 이기게 된다고 하더라도, 스님들에게 욕을 들을 것 같았다.

‘물론, 부처님은 우릴 욕 안 하시겠지만.’

아예 식료정을 절과 연계하여 산나물 비빔밥 같은 메뉴를 납품하게 하는 공생적 관계도 생각했지만, 머리가 복잡했다.

절에서 하룻밤을 묵고 문경새재를 넘어 충청도 땅에 도착했다.

“도련님 해가 지니 오늘은 여기서 묵어가시지요.”

달유의 말에 살펴보니 30여 호의 마을이었는데, 근처 산자락을 살펴봐도 절은 보이지 않았다.

“이렇게 절이 없을 때는 어디서 묵어가는 건가? 이 마을이 문경새재를 넘어오면 나오는 첫 마을인데, 어디서 묵는 건가?”

“네? 그게...”

달유나 오추가 손을 들어 한곳을 가리켰다.

“응? 저긴 어딘가?”

“이곳 고사리 골의 유지인 김 씨네 집안입니다요.”

“아니, 웬 양반집이...”

그제야 생각이 났다.

사극 드라마에도 자주 나오는 그 대사!

“이리 오너라! 주인 어르신께 하루 유하여 갈 수 있는지 여쭈어라!”

그랬다. 양반들은 한양에 과거를 보러 갈 때 주막에 묵지 않았다.

절이 있으면 절에 묵었고, 절이 없으면 사족(士族)이라 일컫는 같은 양반가의 집에서 묵었었다.

‘시발, 식료정 만들면 100% 적자다.’

아마, 식료정을 만들고 합격기원 요리 메뉴를 내세우면 여유있는 양반들은 오긴 올 것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양반들은 아마도 지금처럼 절이나 같은 양반집에서 묵어갈 터였다.

생면부지의 사람인 원종을 보곤 그날 하루 묵어갈 수 있게 바로 허락을 해주었다.

문경새재에 인접한 마을이다 보니 인심이 좋은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인심 좋은 양반집은 식료정에는 좋지 않았다.

길손을 받아 하루를 묵게 해주는 양반들은 초면이면 얼마라도 내어주고 가는 게 기본 예의였다.

그리고, 예의상 내는 물품이나 금액은 그리 크지는 않았다.

식료정보다 이런 양반들의 집에 머무는 게 저렴하다면 식료정에 올 사람은 없을 터였다.

더구나, 문경새재를 넘는 양반의 대다수는 과거 때문에 넘어가는 것이니 오래 머물지도 않아, 장기 숙박에 따른 이득을 볼 수도 없었다.

‘식료정은 시기상조다. 생계형 민박을 하는 서민들과 경쟁하는 춘봉주막부터 추진한다.’

등짐을 지고 문경새재를 넘는 사람들을 위한 창고업 같은 물품 보관업도 하면 될 것 같기도 했고, 물건을 저당 잡는 전당포를 해도 될 것 같았다.

***

“그래 자네는 어디로 가는 길인가?”

고사리 마을의 유지인 김시덕이란 양반은 자신의 집에 묵는 양반들과 이야기하길 즐기는 자 같았다.

“수원에 있는 외가에 가는 길입니다.”

“그렇다면 음성을 지나가게 되겠구만. 그렇다면 미리 괴산에서 먹거리를 사서 준비해서 가게나.”

“네? 음성에 무슨 일이 있는 것입니까? 역병이나 그런 게 생긴 것입니까?”

“역병은 아니니 걱정하지 말게나. 음성군수가 당분간 오일장을 열지 못하게 했다고 하네.”

“네? 사람들이 먹고 살기 위해서는 물물교환을 위한 오일장이 서야 할 터인데 무슨 일 때문에 그렇게 된 것입니까?”

“오일장이 열리는 중에 사람이 너무 몰려 세 명이나 밟혀 죽었다고 하네. 그래서 아예 음성군수가 장이 서는걸 당분간 막았다고 하더군.”

“허허. 사람이 죽었다고 하니 어쩔 수 없었겠지요. 그렇게 되면 음성군민들이 그 근처인 충주나 괴산으로 몰릴 수밖에 없겠군요.”

“그렇네. 그러니 올라가는 이들은 미리 식량을 챙겨 가도록 하게나.”

***

“전 아우. 뭐 하는 건가?”

“고사리 골 김 어르신 말처럼 식량을 챙기는 것인가?”

“이렇게 되면 우리는 못 기다리네.”

김시덕의 집에서 같이 묵었던 양반들은 땅바닥에 웅크려 뭔가를 찾는 원종을 기다려 주지 않았다.

“네. 형님들 먼저 올라가십시오.”

한번 안면을 익혔기에 한양에서 한번 보자는 이야길 하고 헤어졌지만, 과연 다시 볼 수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도련님 뭘 보시는 겁니까요?”

“봄에만 먹을 수 있는 인삼보다 더 좋은 명약을 찾고 있다. 오! 여기 있구나.”

달유와 오추는 물론이고 삼식이와 박복이 까지 인삼보다 더 좋은 명약이라는 소리에 헐러 벌떡 뛰어왔다.

“도련님 그 명약은 어디 있습니까요?”

“여기 있지 않으냐.”

“네? 도련님. 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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