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봄을 그리는 맛. (1)
불에 태우는 방법으로 털 손질을 한 사슴고기는 검은 그을음이 온몸에 가득했는데, 추운 겨울 날씨에 냉동된 것이라 어쩔 수가 없었다.
“달유. 사슴 살이 좀 녹았나?”
“네. 속은 아직 얼어 있지만, 겉은 털이 타며 나온 열기에 제법 녹았습니다.”
“그러면 꼬리와 엉덩이 살을 좀 떼어주게, 아 그리고, 사슴의 혀도 떼어주게.”
“네. 다른 것은 필요 없으신 겁니까요?”
“다른 부위는 자네들이 먹어야지. 우선, 창자를 빼낸 속 안에 된장을 펴 넓게 바르고, 당근과 연근, 우엉, 토란, 파, 당귀를 넣고 다시 꿰매게나.”
“네? 야채를 뱃속에 넣으라구요? 네네 알겠습니다요.”
달유는 아직 제대로 익지도 않은 엉덩이 살과 사슴의 꼬리를 잘라냈고, 사슴의 입안 깊숙이 있는 사슴의 혀도 뽑아주었다.
그러다, 이제까지 사냥하며 꼬치에 끼워 먹었던 동물들을 떠올렸다.
수십 마리를 통구이로 해 먹었지만, 왜 이때까지 창자를 뺀 뱃속에 이런 야채들을 넣어 구워 먹을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의아했다.
‘알고 보면 쉽고, 누구나 아는 방법인데, 먹기 전에는 왜 이렇게 해 먹는 방법을 생각하지 못한 거지?’
달유는 왜 이런 생각을 자신은 하지 못했는지 고민해봤지만,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이게 천품(天稟)의 차이일 수도 있겠구나. 천품이 차이가 나니 막내 도령은 생각해 낼 수 있는 것이고 나나 범인들은 이런 방법을 알아도 생각해 내지 못한 것이겠지.’
이번 성달의 일만 봐도, 자신과 오추는 의심하긴 했었지만,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자신보다 한참이나 어린 막내 도령은 일을 진행함에 있어 거침이 없었고, 그 결과 또한 모든 이들을 탄복하게 만들 정도였다.
이제까지 자신이 살던 곳이나 다녔던 곳에서 보지 못했던 영특함과 특별함이었다.
‘천인(天人)이다. 하늘이 내린 천인이야.’
하늘이 내린 천품의 차이를 본인이 직접 느끼고 나니 삼국지에 나오는 장수들이 돈이나 권력이 아닌 사람을 보고 주인으로 모셨다는 그 상황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사슴의 다리도 좀 녹으며 밑으로 쳐지게 하지 말고 몸에 붙여 고정시켜 버리게나. 나무 꼬치로 찔러 고정하면 될 것이야.”
“네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달유는 원종을 따르겠다고 했었으나 그 조건이 좋아 따르겠다고 했었다. 허나, 오늘의 일을 겪고 보니 진정 따를 만한 천품의 주인을 만난 것 같았다.
“그리고, 털을 태운다고 강한 모닥불에 겉을 태웠지만, 이 내촌(內村)이란 음식은 원래 숯으로 피운 약한 불에 천천히 구워야 하는 요리일세.”
원종은 모닥불에서 불에 타 하얗게 재가 되어 가는 장작들을 꺼내 넓게 불을 퍼트렸다.
그러곤, 그 불의 양옆으로 나무를 철로처럼 쌓아 올려 꼬치 창살이 굴러 움직일 수 있게 만들었다.
“사슴고기에 강한 불이 가해지면 타버리니 이렇게 굴려서 약한 불이 있는 곳으로 옮길 수 있게 하고, 끊임없이 불 위를 굴려 전체가 골고루 익게 해야 하네.”
“네. 그럼 이걸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요?”
“약한 불에 길게 익혀야 하니 짧으면 한 시진. 길면 두 시 진이 걸릴 것이네. 그 시간 동안 표면이 타지 않게 기름을 발라주고, 간장도 발라주며 양념을 해줘야 하네.”
“한 시진 이상이라니. 만드는 데 오래 걸리는 요리로군요.”
“그래, 오래 걸리는 만큼 고기는 맛이 있을 것이고, 익어가는 통구이가 눈앞에서 돌아가니 사람들은 즐거워할 것이네.”
“한 마을 사람들이 모여 먹는 내촌(內村)이라는 이름이 거기에서 온 것이군요.”
“그래. 맞아. 원래 처음부터 그런 요리니깐.”
내촌이라며 이름을 비슷하게 말했지만, 원래 레촌(Lechón)이란 말은 스페인 단어로 젖먹이 새끼돼지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근래에는 돼지를 통째로 구워 껍질을 바싹하게 요리한 것은 모두 다 레촌이라고 지칭할 정도로 널리 알려진 요리가 되었다.
그리고, 이 레촌은 돼지든 양이든 한 마리 통째로 먹을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먹지 못하는 음식이었기에 근대이전에는 부자들만이 즐기던 요리이기도 했다.
그러한 가난한 자들이 유일하게 통구이를 즐길 수 있는 것은 잔칫날뿐이었는데, 요즘도 필리핀 시골에서 레촌을 하게 되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모여 구경을 했다.
이런 구경거리에는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깐 저 사슴 안에 연근도 있고 당근도 있다는 말이야?”
“아 그렇대도. 울 아버지가 분명히 봤데. 막내 도련님이 사슴 배에 그렇게 넣어 먹으면 맛있다고 하셨다고.”
“와! 그럼 엄청나게 맛있을 텐데. 그런데, 저 한 마리로 사람들이 다 배불리 먹을 수 있을까?”
“아, 그렇네. 먹어 봐도 한점이겠다. 쩝.”
아이들은 야채가 들어간 사슴 통구이에 기대를 하면서도 인원에 비해 작은 크기인 걸 보곤 실망도 같이 했다.
“엇!? 와! 닭이랑 토끼다!”
사슴이 익어가는 동안 창자 대신 야채를 채워 넣은 닭과 토끼도 준비가 되어 불에 올려졌다.
“시간이 한시 진이나 걸리는 요리이니 너희들이 고기가 타지 않게 돌려야 한다. 할 수 있겠지?”
“네에!”
예닐곱 살 먹은 아이들은 경쟁하듯 창살 꼬챙이를 서로 굴렸는데, 고기의 살들이 약불에 익으며 뿜어내는 육즙의 구수한 냄새에 코를 벌렁거렸다.
덕구 어멈이 익어가는 고기의 겉면에 붓으로 참기름을 펴 바르자, 고기의 육즙과는 다른 고소한 참기름 향이 사방으로 진동을 했다.
“와 참기름향 장난 아니다!”
“이번엔 간장이야!”
노르스름하게 익어가는 겉면에 참기름과 물을 섞은 간장이 칠해지자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에 사람들이 불가로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모습에 원종은 흐뭇했다.
“그래, 저렇게 함께 구경하고 같이 먹게 되는 그것이 공동체 의식을 키우는 것이지. 그럼 아버지와 형님께 드릴 꼬리 요리를 만들어 볼까.”
요즘 사람들은 소나 돼지의 많은 부위 중 꼬리 부위가 인기 없는 부위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꼬리 부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기 부위였다.
특히 서양의 제사장들은 신에게 바치는 제사에서 살코기 한 덩이와 꼬리를 바쳐 모든 것을 드린다는 것을 표현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 ‘십계’의 주인공이기도 한 모세였다.
모세는 여호와께 제물로 황소와 숫양의 미려골(尾閭骨 등뼈의 가장 끝부분에 있는 뾰족한 뼈)에서 떼어낸 꼬리를 제물로 바쳤는데, 이 꼬리가 가장 기름진 부위였기에 여호와께 올린 것이었다.
모세가 살던 당시의 중동에서는 양의 꼬리에 기름이 가득 들어차게 개량된 종을 따로 키울 정도였고, 특히 숫양의 힘이 가득 들어차 있는 기름 진 꼬리를 중요하게 생각했었다.
그리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조선의 왕 영조와 정순왕후의 결혼식 축하연에서 사람들에게 소꼬리 찜을 내놓을 정도로 꼬리는 중요한 사람에게 내놓는 최상의 부위로 여겨졌다.
조선의 왕이 축하연에 내놓을 정도라면 소꼬리를 해서 아버지께 드려야지 왜 사슴 꼬리냐고?
우선, 이 당시 사람들은 사슴의 꼬리가 소보다 짧으니 그 짧은 꼬리에 양기가 더 농축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십장생 중의 하나인 사슴이기에 그 가진 바가 소보다 더 특별하다 여겼기에 소꼬리보다는 사슴의 꼬리를 더 귀하게 여겼거든.
물론, 영양성분은 다 거기서 거기지만.
“여기에 솥을 걸어라. 그리고 장작을 높이 쌓아 솥에 열기를 올려라.”
작은 솥을 달구는데 큰 솥에 들어가는 이상의 장작을 종들이 쑤셔 넣었다.
“아버님. 형님 어서 자리에 앉으시지요. 오늘 해 드리는 것은 아주 특이한 요리입니다.”
“탕이나 찜이 아니라고 하기에 아주 궁금하였다.”
약한 숯불에 올리는 내촌(內村)과는 달리 사슴의 꼬리와 혀는 강한 불에 구워드리기로 했는데, 사슴 특유의 노린내를 없애기 위해 향이 강한 참기름으로 솥을 달구었다.
추운 겨울 날씨에 자연 냉동된 살이었기에 칼질로 얇게 썰기 편했는데, 현대에서 흔히 보는 대패 삼겹살의 두께로 고기를 잘라 솥에 올렸다.
[촤아악~.]
참기름의 강한 향이 산화되며 그 고소함과 불 향이 그대로 사슴고기에 스며들었다.
마이야르 반응이라 불리는 고기의 코팅층이 만들어지기 전에 고기를 솥에서 꺼내 아버지와 형의 앞에 놔두었다.
핏물이 흐르지는 않았지만, 마치 덜 익은 것 같은 사슴고기의 모습에 원길은 물론이고 전기환도 쉽게 젓가락을 움직일 마음이 들지 않았다.
생 육회였다면 오히려 쉽게 젓가락이 움직였겠지만, 얼렸던 것이었기에 일말의 망설임이 있었던 것이었다.
“지금 드시면 됩니다.”
원종은 사슴고기에 가루를 살살 뿌리곤 얼른 먹으라 강요아닌 강요를 했다.
“음. 그럼 어디... 음?”
“이게 고기가 맞는 것이냐?”
원길은 입안에 들어온 것이 진짜 고기가 맞는 건지 의문이 들었다.
분명 불향과 육향은 나는데, 강하게 풍기는 참기름의 향기에 고기의 향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더구나 고기의 두께가 너무도 얇아 이게 고기인지 버섯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고기 위에 솔솔 뿌려졌던 가루의 정체를 알 것 같았다.
“끝에 뿌린 것이 계피가루에 소금을 섞은 것이냐?”
“네 맞습니다. 계피가루에 구운 소금을 섞은 것입니다. 어떠십니까?”
“음. 이게 호불호가 있는데... 이건 고기인 것 같기도 하고, 고기가 아닌 것 같기도 한 것이. 끝에 뿌려진 계피향 때문에 뭔가 아리송한 맛이다. 헌데 잘 넘어가긴 하는구나.”
“그렇지요? 이걸 눈앞에서 만드는 것을 보지 않았다면 무엇으로 느끼시겠습니까?”
“당연히 사슴고기... 아니다. 이건 사슴고기라기 보다는, 무슨 약으로 된 버섯을 먹는 느낌이고. 묘한 맛이구나. 그래서 이름이 멜랑꼬리라는 것이냐?”
“네. 그래서 제가 이름을 멜랑꼬리라고 지은 것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거냐?”
“멜랑꼬리가 무슨 뜻이냐면...”
멜랑꼴리(melancholy)란 말은 원래 프랑스어로 괜시리 기분이 울적하고 뭔가 애매한 기분이나 느낌이 들 때를 뜻하는 말이었다.
그리고, 내가 성달의 처리를 보고 느꼈던 감정이었다.
하지만, 이 멜랑꼴리는 이제 한국에서 멜랑꼬리라는 이름의 음식으로 남겨질 예정이었다.
사슴의 꼬리나 다른 꼬리 음식들에 한약재 가루를 섞어 만드는 형식의 요리에 붙일 이름이었다.
물론, 이 요리가 완전 창작은 아니었다.
조선 시대 폭군으로 이름 높았던 연산군은 사슴의 꼬리와 혀를 좋아하여 팔도감사에게 사슴의 꼬리와 혀를 진상하게 했는데, 그렇게 올라온 사슴의 꼬리와 혀에 귀한 한약재를 올려 구워 먹었다고 했었다.
신선처럼 오래 살고 싶은 연산군의 바램이 십장생의 하나인 사슴과 영지버섯 같은 한약재를 같이 먹는 괴식으로 창조되었던 것이었다.
“멜랑꼬리는 명랑꼬리를 강하게 발음한 순우리말인데, 몸에 좋은 꼬리를 특별하게 먹어보자는 그런 의미로 하였습니다.”
“흠. 원길이는 모르겠지만, 나는 꽤나 좋구나. 육식과 한약을 같이 먹는 그런 느낌이라 일거양득의 기분이구나. 더 올려 보거라.”
“네.”
원종은 얇게 썬 사슴고기 위에 계피소금을 뿌려주기도 했고, 인삼가루를 뿌려주기도 하면서 올렸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진정한 보양식이구나. 겨울에 강한 불에 구웠지만, 타지 않았고, 사슴의 고기도 아닌듯한 느낌에 약재도 아닌 느낌까지. 마치 동지(冬至)를 넘어 봄을 그리는 느낌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