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 다리와 꼬리. (6)
아무도 모를 거라며 창을 들고 나서는 밀구를 보며 성달은 걱정이 되었지만, 그도 창을 들고 밀구를 따라나섰다.
[크아앙!]
창을 들고 선 둘을 보며 호랑이가 울어대었지만, 성달과 밀구에겐 큰 공포를 주지 못했다.
쫓아가며 사냥할 때엔 그렇게도 잡기 힘들었던 호랑이었지만, 포획 틀에 갇혀 꼼짝하지 못하는 호랑이는 아무리 포효를 지르더라도 발톱 세운 집고양이보다 못했다.
둘이 합을 맞추어 창을 몇 번 찌르자 호랑이는 산중 맹호의 근엄함을 잃고 혀를 쭈욱 빼물며 죽었다.
둘은 죽은 호랑이의 목을 깊게 찔러 호랑이의 피를 마셨다.
“이거 보라고, 범도 죽고 나면 다 같다고, 이놈을 우리가 쫓던 호랑이인지 아닌지 누가 알아보겠어? 이제 둘이서 반씩 나누면 되는 거야.”
밀구의 말에 성달도 자기에게 떨어질 몫이 생각나 기뻤고, 처음으로 호랑이를 잡아 피를 마셔봤다는 성취감에 마음이 들떴다.
둘이서 가죽을 벗겼고, 성달은 호랑이 고기를 분리해 버리고 돌아왔다.
“뭐하는거야? 어서 가자고.”
“이걸 부수려고.”
밀구는 창을 포획 틀의 이음새에 쑤셔 넣더니 지렛대의 힘으로 포획 틀의 창살을 우그리기 시작했다.
“아니 왜? 왜 이걸 부수려는 거야? 지금 가야 해.”
“이걸 부수어야지 호랑이가 멧돼지 머릴 먹고 도망쳤다고 생각할거 아니겠어. 그러니 부수는 거야.”
“창대로 그렇게 하면 사람이 부순 게 티가 나잖아. 그러면 오히려 포획 틀을 부순 사람을 찾기 위해 난리가 날 수도 있다고. 그러니 어서 자리를 떠야 된다고.”
“이래서 네가 안 되는 거야. 비싼 걸 부수어야 오히려 쫓지를 않지.”
“아니 그게 무슨 소리야? 비싼 걸 부수면 더 뒤를 쫓지.”
“아니라니까. 불량품을 만든 놈을 탓한다고 우릴 쫓지 않을 거라니까.”
“부수면 우리가 쫓긴다니깐.”
“아니, 야이, 밸없는 새끼야. 그러니깐 네가 안 되는 거야. 사람이 과감성이 있어야지.”
“뭐? 지금 그게 할 말이야?”
성달은 평상시라면 자존심 없는 놈이라고 흉을 보더라도 그냥 허허 웃으며 넘어갔을 터였다.
하지만, 오늘은 호랑이를 처음 죽이고, 피를 마셔 본 날이라 그런지 마음이 쉽게 넘어가 지지 않았다.
“용기없는 놈은 혼자 꺼져, 그리고 호랑이 가죽도 놔두고 가고. 넌 그저 저런 사슴이나 잡아 파는 산꾼 놈이나 되라고. 제대로 하는 일도 없는 놈을 데려다 키웠더니 은혜도 모르고 쌍놈이. 어딜 감히 내게... 컥...크헉.”
성달은 밀구의 말에 머릿속의 먼가가 끊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칼을 뽑아 밀구의 옆구리에 찌르고 있었다.
성달은 밀구의 숨이 끊어지고 나서야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아, 글쎄 그냥 가자니깐 왜 분란을 만드냐고. 흐흑, 분란을 왜 만드냐고!”
성달은 자신의 자존심이 모욕당했다는 생각과 모욕당한 자신의 자존심을 칼로 세웠다는 생각에 울부짖었다.
“그리고, 네놈에게 배운 건 별로 없다고! 시발 그리고 이건 내 잘못이 아니야? 밀구 네가 포획 틀을 부수자고 해서 말리다 이렇게 된 거잖아. 네가 그냥 내 말을 따랐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고. 그러니 이건 네가 자초한 거야! 그러니 난 잘못이 없다고!”
큰소리로 울부짖은 성달은 홀린 듯이 밀구의 시신을 덤불에 숨겼고, 벗겨 낸 호랑이 가죽을 챙겨 들었다.
얼굴 가죽이 벗겨져 두 눈이 비어있는 호랑이가 마치 자신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그래. 다 이 호랑이 가죽 때문이야. 이건 내가 들고 있으면 또 화가 닥칠거야.”
성달은 더 이상의 화가 자신에게 미치지 않게 이 가죽을 처리하고 싶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며 사람들에게 물으니 포획 틀의 주인은 아전이 자신들을 소개해줬던 전씨 가문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성달은 자신이 원했던 병(丙)의 공적과 착호갑사가 될 수 있다는 꿈에 젖어 있었다.
하지만, 같이 왔던 달유와 오추가 여기 있다는 사실로 말미암아 그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저는 그저 대감님 집에서 만든 포획 틀을 부수고 호랑이 가죽을 훔쳐 가려 했던 자를 죽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억울합니다요!”
“우리 집안의 재산인 포획 틀을 부수려던 자를 막아서다 우발적으로 죽인 것이나 죄가 없다는 것이냐?”
“네. 맞습니다요. 제가 욕심이 있고 흑심이 있었다면 이렇게 호랑이 가죽을 들고 제발로 찾아 왔겠습니까요? 그저 도망을 쳤을 겁니다요.”
전기환은 성달의 이야길 듣고 보니 맞는 말이긴 했다. 그리고 정상을 참작해준다고 했기에 고려할 것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전기환을 보는 원좋은 답답했다.
‘현대였다면 단순한 살인죄였을 터인데, 이 시대에는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죽인 것도 정당방위가 되는 시대로구나.’
사실, 이 시대 양반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는 노비나 농민을 잡아 때려죽이곤, 재산을 훔치려고 하기에 때려죽였다고 하면, 그냥 넘어가는 시대였다.
그렇게 사람이 죽어도 그냥 넘어가는 헤프닝정도의 사건일 뿐이었다.
원종은 신분에 따른 생명, 목숨의 가치가 다르다는 걸 직접 체험하게 되니 어이가 없었다.
원종의 마음 같아선 포획 틀을 지키려 한 것이니 머니 따지지 않고, 살인죄로 다스렸겠지만, 이 시대의 양반인 전기환의 생각은 달랐다.
“대감마님, 포두와 포졸이 당도했습니다요.”
원길이 부른 포두가 왔다는 말에 전기환은 판결을 포두에게 넘길까 싶었지만, 어디까지나 유향소의 권위아래 있는 자신의 집이었기에 자신이 판결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네 놈이 사람을 죽였으나, 우리 집안의 재산을 위한 것이었기에 죄를 묻지 않겠다. 다만, 네게 주기로 한 오승포 50필은 죽은 이의 집으로 주는 것으로 하겠다. 이게 유향소의 판단이다.”
살인죄를 묻지 않는다는 전기환의 말에 성달의 얼굴은 밝아졌다. 성달은 재물이야 언제든 모을 수 있는 것이라 생각했기에 오승포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허나, 제물을 지키려다 우발적으로 죽였다고는 하나 미심쩍은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 그래서 추후의 일은 현청에 맡기겠다.”
“명판이십니다. 하하하. 뭣들 하느냐? 죄인을 묶어라!”
뒤에서 전말을 들은 포두는 유향소의 권한으로 내려진 판결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이렇게 서로 존중해 주는 일만 일어난다면, 유향소와 현청이 기 싸움을 할 일도 이유도 없을 것 같았다.
‘이집 전씨 댁은 꽤 괜찮은 양반댁이구만.’
***
원종은 성달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처음 성달을 의심했을 때 포획 틀에 잡힌 호랑이를 직접 보지 못했기에 그게 아쉬워서 시기심이 생겼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달유와 오추의 말에 채월이를 시켜 성달을 확인시켰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성달이 밀구를 죽인 것도 결국 내가 포획 틀을 만들어 설치한 일 때문에 발생한 문제였다.
내가 포획 틀을 만들지 않았다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르는 사건이었다.
‘내가 만든 요리나 물건들로 인해 세상이 달라지고 사람들의 운명이 바뀌는 게 맞는 일일까?’
영양가 있는 요리로 인해 영양결핍으로 죽었어야 할 사람이 살고, 얼어 죽었어야 할 사람이 내가 만든 나이기온 옷으로 인해 생명을 이을 수도 있었다.
그리고 그 반대로 새로운 요리라며 먹다가 급체로 사람이 죽을지도 몰랐고, 호랑이 가죽처럼 나이기온 옷을 두고 싸우다 죽지 않아야 할 사람이 죽을지도 몰랐다.
‘내가 한 일로 인해 삶이 달라질 것이고, 그런 삶들이 모여 운명이 달라질 수도 있다.’
이런 문제에 대한 답은 사실 정해져 있었다. 인과율을 생각 말고,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면 된다는 단순한 진리.
하지만, 자신으로 인해 사람들의 운명이 달라진다 생각하니 그렇게 하루하루 열심히 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런지 호랑이와 성달의 문제를 해결했음에도 원종의 기분은 멜랑꼴리해 졌다.
***
“도련님. 그럼 이 호랑이 가죽과 사슴은 어찌하면 되겠습니까요?”
원길은 호랑이 가죽을 가지고 싶었지만, 살인의 피가 묻은 가죽이니 찝찝했다. 어찌할까 고민하는데, 원종이 나섰다.
“팔아서 춘궁기에 배를 곯을 사람들을 돕는 데 쓰죠.”
“애민 정신을 가진 고을의 웃어른으로서 그게 맞는 말이지만, 전부 다 그렇게 쓰겠다고?”
“네 형님.”
“그건 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지...”
“형님. 이 가죽에 원한이 묻은 자들이 많습니다. 사정을 이야기하여 저렴하게 팔고,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는 데 쓴다면 죽은 자들이 원한이 있어 원혼이 된다 한들 성불 할 것입니다.”
“...휴 어쩔수 없지. 그럼, 저 사슴으로는 뭘 할 것이냐?”
“이번 일에 사람이 피를 보았으니 원한을 풀어주는 요리를 해야겠지요. 추운 겨울 몸을 풀어주는 요리. 이 사건으로 뒤숭숭할 때 그걸 잊게 해주는 그런 요리를 만들어야겠지요.”
“그런 사슴 요리가 있느냐?”
“형님. 사슴 하면, 십장생 중의 하나이기도 하며 오래 장수하며 몸을 보양한다는 짐승입니다.”
“그렇다면... 보양은 몸의 양기를 보한다는 뜻이니 체온을 끌어 올려주는 음식이라는 말이겠지? 그러면 찜이나 탕이냐?”
“형님 말처럼 사슴고기로 녹개장을 할 수도 있겠지만 너무 흔하지 않습니까? 개장국을 너무 자주 먹었으니 그건 제외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뭘 할 것이냐?”
“어두육미(魚頭肉尾)란 말처럼 전체적인 요리가 있고, 따로 꼬리를 이용한 하나를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오! 난 사슴의 녹용이나 녹혈로 뭘 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슴의 꼬리로 만든다고? 그럼 그 꼬리 요리의 이름은 무엇이냐?”
“멜랑꼬리라고 합니다. 멜랑꼴릿이 아닙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더냐?”
“아, 아닙니다. 마치 어디선가 꼴릿 소리가 들린 듯하여. 흠흠.”
원길은 딴소릴 하는 원종을 두고는 덕구 어멈과 달유를 시켜 사슴을 분리하려 했다.
허나 어제 잡은 사슴이다 보니 추운 겨울 날씨에 사슴은 꽁꽁 얼어 있었다.
“도련님.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요? 방혈을 해서 피도 뺏고, 창자도 뺏지만, 얼어서 가죽을 벗기거나 할 수가 없습니다.”
“다행히 창자가 없으니 여럿이 함께 둘러앉아 먹기 좋은 음식을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달유는 포획 틀에서 부서져 나온 창살 틀 하나를 가져오게나.”
원종은 긴 창살 틀을 사슴의 입에 꽂아 넣었고, 달유는 그 창살 틀을 길게 밀어 넣어 사슴의 몸통을 관통시켰다.
“응? 이런다면 이건 통구이냐?”
“네 통구이이긴 하는데, 이제까지 먹었던 통구이와는 조금 다를 겁니다.”
원종이 지금 하려는 요리는 레촌(Lechon)요리였다.
레촌 요리는 원래는 살이 부드럽고 여린 새끼 돼지로 만드는 통구이였지만, 사슴으로 레촌을 만들기로 했다.
필리핀에선 축제나 생일날 모두가 나누어 먹는 화합과 축제의 음식이었기에 레촌이 지금의 상황과 딱 맞아 들어갔다.
레촌요리가 필리핀에선 모두의 즐거움을 나타내는 요리이듯이 사슴 통구이도 우울한 성달의 사건을 잊고 다시 출발하자는 의미를 품게 하고 싶었다.
“간장과 꿀을 여러 번 발라 굽는 통구이로 내촌(內村) 구이라고 하는 요리입니다. 한 동네 한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같이 모여 먹는 요리이기에 이름이 내촌입니다.”
내촌이라 이름 붙은 사슴은 모닥불 위에 올려 불살랐다.
털이 타는 꼬릿한 냄새가 났고, 겉 털이 모두 타자 달유와 덕구 어멈이 붙어 겉껍질을 얇게 깎아 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