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다리와 꼬리. (5)
“그러니까 저 성달이란 사냥꾼을 취하게 하여 호랑이를 어떻게 잡았는지 알아보라는 말이유?”
“그래 할 수 있겠느냐?”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 도련님 참으로 섭합니다요. 저희가 바느질은 못 한다고 어멈에게 구박을 받지만, 사내를 취하게 해서 데리고 노는 것은 자신이 있는 분야유. 그러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우. 저자가 어디서 총각을 뗐는지도 알아내 주겠수다.”
“아니, 그것까진 알아봐 줄 필요는 없고.”
원종은 성달이란 자가 술에 취하더라도 과연 속마음을 이야기할까 싶었는데, 관기인 채월은 마치 주머니에서 물건을 꺼내는 것만큼이나 쉽다며 걱정하지 말라 했다.
“덕구 어멈. 독한 술을 내주고, 포계와 주토피아까지 술안주를 제대로 넣어서 도와주게.”
그렇게 원종의 작업이 진행되는데, 갑자기 닭과 토끼를 잡는 덕구 어멈에게 놀라 원길이 찾아왔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냐? 저놈이 착호갑사가 되어 도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이게 무슨 짓이냐? 저놈을 이렇게 대우해줄 필요가 있느냐?”
“형님. 그게, 뭔가 이상해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관기들에게 술을 먹여 의심스러운 것을 알아내게 했는데, 제 생각대로만 되면 저놈에게 줘야 할 오승포를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응? 오승포 50필을 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좋은데, 그게 무엇 때문이냐?”
“그게 아직 추정일 뿐이지만, 저놈이 호랑이 가죽에 눈이 멀어 사람을 해한 것 같아 그럽니다.”
“뭐어? 그게 사실이냐?”
“네. 거의 확실합니다.”
“음모로군... 아주 짙은 음모가 있는 것이로구나. 그럼 포두를 불러야 하는 것이냐?”
“네 포두를 불러도 좋겠지요. 우선, 관기들에게 시킨 일이 있으니 그걸 봐야 합니다.”
***
“으하하하. 그만큼 내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호호호 그러니깐 호랑이가 갑사님을 보고는 오줌을 지렸단 말이우?”
“아, 글쎄 그렇테두. 산중 맹호라는 범도 내 창에 찔리면 죽는다는 것을 알고 지린 것이지.”
“어머, 용맹스러워라! 한잔 더 받으시우~.”
성달은 일이 생각한 대로 잘 풀렸고, 오히려 자신의 편의를 전씨 가문에서 봐주기로 하자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그동안 염원하던 착호갑사가 되는 일도 현청에서 올리는 상문이 있다면 합격은 떼 놓은 당상이었다.
거기다 현청의 아전이 오기까지 술상을 차려주고, 꽃과 같은 계집 셋을 붙여주니, 마치 구름 위를 걷는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그러다 보니 채월이란 계집이 따라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넘겼고, 주량을 넘어 도저히 먹지 못하는 지경까지 되어 버렸다.
“아니, 호랑이도 잡는다는 영웅호걸이 겨우 이걸 먹고 취한다는게 말이 되우?”
“끅, 내 내일 다시 끅, 마신다고 하지 않았느냐? 어이구 취한다.”
“내일은 내일 술이 있는 법 아니우? 그럼, 천하 명주라는 입술주를 준다고 해도 아니 먹겠수?”
채월은 성달이 술을 마다하자 먼저 자신이 술을 마셔 입에 머금었고, 그 입술로 입을 맞추며 머금은 술을 성달에게 억지로 먹였다.
닳고 닳은 관기의 관록과 같은 입술주에 성달은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술을 마실 수밖에 없었다.
“이보우. 같이 산에 올랐던 밀구란 자는 어디서 헤어진 것이유?”
“음냐... 크헉... 헤어지긴... 안 헤어졌어... 내가... 크흑... 음냐...”
“안 헤어졌으면 밀구는 어디에 있다는 말이유? 그럼, 집에 돌아간 것이유?”
“음냐... 집에 가긴... 밀구는 내가... 어휴... 이게 다 그놈이 욕심을 부려 일을 자초한 게야. 그놈이...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자초했다니? 뭘 자초했다는 말이유?”
“...아 글쎄... 아, 몰라. 다 그놈이 자초한 일이야... 사람이 약삭빠른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으어억...”
“이 보슈, 뭘 약삭빨라야 한다는 말이유? 밀구는 그럼 어디 있다는 말이유?”
“아, 몰라... 어딘가에 있겠지... 이젠 몰라... 크르륵...”
“아! 이보슈... 말을 하래두!!”
채월은 몇 번이나 성달에게 질문하여봤으나 고주망태가 된 성달은 더 이상 대답을 하지 못했다.
***
“그러니깐 술김에 밀구가 자초했다고 말을 했다는 말이지?”
“네 도련님. 분명히 밀구가 자초했다고 했어요.”
“알았다. 수고했다. 놈이 술이 깨더라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계속 잡아 둘 수 있겠느냐?”
“그것 또한 쉬운 일이니 맡겨만 주시우.”
“달유와 오추는 사람들을 데리고 포획 틀이 있던 곳으로 가보게. 암만해도 성달이 밀구를 죽여 입막음한 것 같군.”
달유와 오추도 관기들에게 들은 것이 있다 보니 늦은 밤임에도 횃불을 들고 날 듯이 산으로 올라갔다.
“이게 무슨 소리야?”
아직 포획 틀을 놔두었던 곳에 도착하기도 전인데, 산짐승들이 울부짖으며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런, 호랑이의 피 냄새를 맡고는 여러 짐승이 모여들었구먼.”
늑대는 물론이고 삵과 여우, 담비 같은 산 짐승들이 눈에서 형형색색의 빛을 뿌리며 호랑이 고기를 차지하기 위해 으르렁거리고 있었다.
“여긴 포획 틀이 있던 곳과는 한참이나 먼 곳인데, 어찌 여기에 호랑이 고기가 있는 것이지?”
“짐승들이 싸우면서 여기까지 끌고 온 것인가?”
“뭐,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일단 저놈들부터 몰아냅시다. 우리가 사람도 많고 하니 횃불로 밀어내면 될 것이오.”
10여 명의 남자들이 횃불을 휘두르며 돌을 던져대자, 처음에는 포악하게 이빨을 드러내던 녀석들도 슬금슬금 뒤로 물러나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저놈들이 완전히 물러난 거 같지는 않으니 두 명씩 짝을 지어 살펴주시오.”
“그런데, 뭘 찾아야 하는 것이오?”
“시체요. 이 근방에 버려져 있을 것 같소.”
찾아야 할 것이 시체라는 말에 노비들은 겁을 집어먹었지만, 인원이 많다 보니 이리저리 흩어져 살펴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해가 떠오르는 아침이 되었어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만 돌아갑시다. 그런데, 저놈들은 뭐 먹을 게 있다고 아직도 싸우는 거지?”
“아차! 저기다! 저놈들이 죽은 밀구의 시체를 두고 싸우는 것이야!”
오추의 말에 짐승들이 다투는 곳으로 사람들이 급히 움직이니 과연 짐승들이 밀구의 시신을 두고 싸우고 있었다.
이미 팔다리가 뜯겨 나간 보기 힘든 시신의 형체였지만, 달유는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온 밀구를 바로 알아봤다.
“이보게 밀구! 우리가 왔네. 죽어서도 억울하여 짐승들을 끌어 모은 겐가? 으흐흑.”
오추는 밀구의 시신을 챙기며 밀구의 몸을 살폈다.
“여기 뒤 옆구리에 칼에 찔린 자국이 있어. 도련님의 말처럼 성달이 놈이 죽인 것이야.”
***
달유와 오추가 찾아온 밀구의 시신은 보기 힘들었지만, 뒤에서 찌른 무기가 폐까지 이르며 치명상이 된 것 같았다.
지역의 웃어른과 같은 양반으로서진위를 밝혀내야 할 것 같아 아버지를 찾았다.
“그러니깐 유향소의 권한을 쓰게 해달라는 것이냐?”
“네. 본디 유항소는 향리를 규찰하고, 향풍을 바로 잡기 위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지금 이 사건에서 향풍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래서 유향소의 권한을 써야 한다고 봅니다.”
전기환은 막내아들의 말을 듣고 고민을 했다. 유향소의 권한을 세워 성달이란 자를 벌하게 되면, 그를 소개한 아전들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도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다 보니 유향소의 권한으로 성달이란 자의 죄를 밝혀내는 것이 살짝 부담이 되긴 했다.
하지만, 성달이란 놈에게 속았다는 사실이 괘씸해 유향소의 권한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유향소의 권한으로 성달이란 놈을 잡아 꿇려라!”
관기들에 의해 아직도 술에 취해 자고 있던 성달은 이유도 모른 채 무릎이 꿇려졌다.
“네 이놈! 네 죄를 내가 알렸다!”
술이 덜 깬 성달은 이게 무슨 일인지 갈피를 잡지 못했고, 정신이 없어 뭐라 해야 할지도 몰랐다.
“호랑이가 포획 틀에 잡히자 이를 우리에게 알리려 한 밀구를 죽인 네 죄를 알렸다!”
“네에?”
그제야 어떻게 돌아가는 판인지 알게 된 성달은 밤새워 마신 술이 한 번에 깨는 것 같았다.
“아닙니다요. 천부당만부당합니다!”
성달은 사실이 아니라며 고개를 저으며 억울해했다.
“이노옴! 어디서 거짓을 말하느냐! 죽은 밀구의 시신을 찾았는데도 거짓을 말하는 것이냐?”
“네에? 그걸 어찌... 저는 억울합니다요. 저는 정말로 포획 틀에 잡힌 호랑이를 죽여 가죽을 벗긴 죄 밖에 없습니다요.”
성달은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결백을 강조했다.
하지만, 달유와 오추가 죽은 밀구의 시신을 덮고 있던 거적을 들어내자, 훼손된 시신에 놀란 듯이 딸꾹질을 시작했다.
“아, 아닙니다요. 딸꾹. 제가 죽이지 않았습니다요. 딸꾸...”
“그럼 누가 죽였다는 말이냐? 놀랐을 때 나오는 딸꾹질을 하는 네놈이 범인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이냐!”
“억울합니다요!”
“억울하다고? 그럼, 네 녀석이 어제 계집과 술을 마시며 한 말은 무엇이냐? 밀구가 죽음을 자초했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게 아니라면 그 말은 무엇이냐?”
그제야 성달은 아차 싶었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었고, 흘러가 버린 물이었다.
그리고, 어제 그렇게 환대해 주었던 술자리가 단순한 축하연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그건 허풍이었습니다. 젊고 예쁜 계집에게 허풍을 치고 싶은 그런 마음은 사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요? 그리고, 이 허풍 외에는 제가 밀구를 죽였다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성달의 말에 전기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정도로 몰아붙이면 자진해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리라 생각했는데, 이자는 증거를 찾고 있었다.
“왜 증거가 없나? 저기에 있는데.”
수세에 몰린 아버지를 돕기위해 원종이 나섰다.
“저놈이 가진 칼을 밀구의 상처에 대어봐라.”
원종의 말이 떨어지자, 달유가 칼을 들고 밀구의 상처 크기와 비교를 했다.
“같은 깊이를 만들 수 있는 칼입니다. 딱 들어맞습니다.”
사실, 법의학자가 아니라면 대충 대어보는 것만으로는 그 상처를 낸 무기가 무엇인지 알지 못했다.
그래서 대충 넘겨짚는 방식으로 달유에게 시켰는데, 능청맞게 칼이 만든 상처와 같다고 이야길 했다.
“어떠냐? 이래도 증거가 없다고 할 것이냐?”
현대인이 보았다면 얼토당토않은 증거였지만, 성달은 얼굴이 썩은 간처럼 변했다.
“억울합니다. 그놈의 죽음은 본인이 자초한 것입니다. 억울합니다!”
“뭐가 그리 억울한가? 그리 억울하다면 왜 밀구를 뒤에서 찔렀는지를 이야기하게. 사연에 따라 죄를 참작할 것이네.”
죄를 참작해주겠다는 말에 성달은 결심이 섰는지 입을 열었다.
“처음 호랑이를 쫓았을 때는 다들 알다시피 달유와 오추까지 4명이 쫓았습니다. 그러다, 둘이 다쳐 떨어지고, 밀구와 둘이 한참이나 호랑이를 쫓았습니다. 그러다, 포획 틀에 잡혀 있는 호랑이를 보았습니다. 그게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
“그냥 포획 틀을 설치한 주인에게 호랑이가 잡혔다고 알리는게 좋지 않을까? 그러면, 우리가 얼마간이라도 먹을걸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운이 좋다면 병(丙)의 공적을 인정받지 않겠나?”
“무슨 소리야? 성달이 자네는 그래서 안 되는 거네. 우리가 이놈을 얼마나 쫓았는데, 아마 포획 틀이 없었다면 오늘내일해서 우리가 잡았을 놈이야.”
“하지만, 이 포획 틀을 보면 돈을 들인 것이야? 반가에서 설치한 것이라면 경을 칠 수도 있어.”
“이제 밤이 깊어지는데, 포획 틀을 확인하러 오는 사람이 있겠나? 우리가 밤새 가죽을 벗겨내 떠난다면 그 누가 알겠나?”
“하지만...”
“그래서 자네는 안되는 거야. 나를 믿게. 아무도 모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