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다리와 꼬리. (1)
들개로 만든 순대와 탕을 다들 잘 먹었고, 여러 의학서에 적힌 대로 몸을 보하게 하는 효과가 있는지 뼈가 부러졌던 사냥꾼 오추도 뼈가 붙어 일어나게 되었다.
“걸을 수 있다고, 벌써 다 나은 것 같겠지만, 이제 뼈가 붙었을 뿐이네. 최대한 걷지 말고, 부러진 쪽에 힘을 싣지 말게.”
“네 도련님 명심하겠습니다. 처음 다리가 부러졌을 때는 이제 제대로 걸을 수 없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걸을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입니다요.”
“도련님께서 개고기도 챙겨주시고 자넬 살펴주셔서 빨리 일어난 게야, 나중에 은혜를 꼭 갚게나.”
달유는 그래도 며칠 동안 막내 도령과 어울렸다고 편을 들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요. 은혜는 꼭 갚도록 하겠습니다요.”
“그래서 그런데, 자네들은 이제 어찌할 셈인가? 내 박복이에게 듣기로는 착호인(捉虎人)을 지망했었다던데 맞나? 그래서 아전의 소개를 받아 문경으로 왔다고 들었네.”
“네. 소인들은 착호인을 지망했사온데, 이제는 일이 그른 것 같습니다요.”
“왜 그런가? 내 알기로는 한양 일대에는 착호갑사(捉虎甲士)를 뽑고, 지방에는 착호인을 뽑아 호랑이를 잡는다는데, 왜 글렀다고 하는가?”
원종은 이미 박복이에게 들어 모두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물었다.
“그게... 보통은 지방 아전들이 상신을 하여 그 지방의 목사님들이나 관찰사님들이 착호인을 뽑는데, 저희 둘처럼 몸을 다쳐 사냥에 실패하게 되면 그 기회는 영영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 입니다요.”
“저런... 전장에 나가는 장수가 언제나 이길 수 없듯이 사냥꾼도 언제나 사냥에 성공할 수 없는 법인 것을. 쯧쯧쯧. 그럼, 이제 고향으로 돌아갈 것인가? 고향이 함양과 거창이라고?”
“네. 고향이 속리산 자락 마을이라 이제는 땅을 파먹어야 하겠지요.”
오추는 물론이고 달유도 농꾼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에 얼굴에 근심이 그득했다.
“허허 얼굴을 보니 둘 다 농사를 하기 싫어하는 것 같은데, 사냥꾼으로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은 없나?”
“자매(自賣 자신을 팜)를 하라는 말이십니까요?”
“자매를 하여 노비가 되라는 말이 아니네. 그저 내 전속 사냥꾼 겸 발골꾼으로 자네 둘을 쓰고자 함이야.”
“사냥꾼과 발골꾼요?”
“그래. 자네들도 보다시피 포획 틀을 만들었고, 여러 짐승이나 가축들을 잡아먹으려면 자네 같은 사람들이 필요해. 어떤가?”
“저는 하겠습니다요.”
달유는 오추와 의논도 하지 않고 바로 하겠다며 원종에게 절을 했다.
사실 달유는 뭔가를 느끼고 있었다. 막내 도령의 몸종인 박복이란 놈이 밤 번을 서는 자신에게 매일 찾아와 이야길 하며 자신의 신상이나 여러 가지 것들을 확인하는 것 같았다.
더해서, 외인이나 마찬가지인 자신들에게 검은색의 비싼 옷을 입으라고 내준 것이나, 들개나 토끼를 잡을 때 내림상으로 아랫것들에게 넉넉하게 내려오는 것을 보고는 이 집 종들은 살만하겠다고 생각을 했었다.
‘더구나 자매를 통한 노비가 아니라 겸인(傔人)이라면 산골에서 사는 것보다 100배는 나을 것이다.’
확신에 차 절을 하는 달유와는 달리 다리가 부러져 방안에만 주로 있었던 오추는 갈피를 잡지 못했는데, 결국 달유를 따라 엉거주춤 절을 했다.
“저도 하겠습니다요. 흙 파먹고 사는 것보다는 좋겠지요. 그리고, 이걸로 은혜를 갚을 수 있다면 그거면 된 거 같습니다요.”
“하하하. 둘 다 일어서게나. 그리고 오추 자네는 다리에 힘을 싣지 말라니깐 그러네.”
원종은 오추와 달유를 일으켜 세웠다.
“그럼, 내 이제 두 사람을 외인이라 생각지 않겠네. 그리고 집에 연락해서 처자식이 있으면 다 데리고 오게나.”
“네. 감사합니다요.”
***
“큰 도련님! 포획 틀에 또 들개가 잡혔습니다요!”
삼식이와 달유가 흰털과 노란 털이 섞인 들개를 잡아 왔는데, 아직 덜큰 새끼도 두 마리나 데리고 왔다.
“어미가 잡히자 새끼들은 어디 도망치지도 않고 잡혔습니다요. 이놈들은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요?”
“새끼는 묶어두고 키우게. 집안 개들이 다 다리가 짧은 종자들이었는데, 긴 다리 개도 있어야지.”
그렇게 새끼는 키우고, 어미 개는 요리해 먹었는데, 이젠 원종이 알려주지 않아도 덕구 어멈 선에서 등골찜이나 개장국, 순대가 만들어져 올라왔다.
“원종아, 내 궁금한 것이 있다. 이렇게 개가 맛있는데, 왜 개는 토끼나 닭처럼 가두어 키우려고 하지 않는 것이냐?”
원길의 질문에 원종은 아!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왜 고기를 얻을 목적으로 개를 키우지 않는지 떠올랐다.
“형님 먼저 개는 고기양이 작습니다. 닭이나 돼지처럼 가두어 키운다고 해도 그 수고로움에 비해 붙는 살이 많지가 않습니다.”
“흠, 그러고 보니 개는 잠을 잘 때를 빼곤 가만히 있지를 않은 놈이었지.”
“네. 돼지 같은 경우에는 배불리 먹으면 바로 그 자리에 누워 자고, 다시 일어나 먹고 자는 그런 행동을 보이지만, 개는 바삐 움직이고 호기심이 많기에 살이 돼지처럼 찌지를 않습니다.”
“그렇겠구나.”
“그리고, 개는 쥐와 새를 잡아주기도 하고 밤에 집을 지켜주기도 하니 그냥 고기로만 쓰기 위해 가두어 키우기에는 너무 아까운 동물입니다.”
“그렇군. 쥐를 잡아주는 것만 해도 그 이유가 되겠구나. 그저 떠돌아다니는 들개나 잡아먹어야겠구나.”
하지만, 계속 개고기를 먹고 싶다는 원길의 바람과는 달리, 근 열흘이 지나도 포획 틀에 들개가 잡히지 않았다.
“왜 요즘 들개가 안 잡히는 것이냐? 설마 너희들이 몰래 먹어치우는 것은 아니겠지?”
원길은 집안의 종들과 막내가 거두어들였다는 사냥꾼들이 몰래 들개를 빼돌려 먹고 있는 건 아닌지 의심을 했다.
“절대 아닙니다요 도련님. 들개가 잡히지 않는 건 그들에게 학습이 되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요.”
“하악습?”
“네. 포획 틀이나 먹이통 함정에서 동족들이 죽어 나가자 먹이 냄새가 나더라도 위험해 보여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것 같습니다요.”
“흠. 개들도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는 것이냐?”
“네. 제가 10여 년 사냥을 하다 보니, 개나 늑대는 물론이고, 웬만한 짐승들도 함정에 빠져 죽는 동족을 보면 아예 그 근처로 오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그렇다면 큰일이로군. 그런 걸 기억하다니, 그러면 들개를 먹을 수가 없다는 건데. 너희는 사냥꾼이니 뭔가 방법이 없느냐?”
“개들이 기억을 까먹을 때까지 포획 틀이나 먹이통 함정을 거두어들여야 합니다. 아니면,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후 기억을 잊어버리게 되면 그때 다시 가져다 놓으면 될 것입니다.”
“오호라. 그럼, 어서 포획 틀을 옮기거라!”
***
“허억. 막내... 헉, 헉... 도련님. 산 초입으로... 헉헉. 옮긴 포획 틀에. 헉... 헉...”
숨을 헐떡거리며 뛰어온 삼식이를 보니 뭔가가 잡힌 것 같았다.
“그래, 포획 틀에 뭐가 잡혔느냐?”
“뫼... 멧돼지가... 허억. 큰 멧돼지가... 헉... 잡혔습니다요.”
“멧돼지가 잡혔다고? 어서 가자!”
원종은 며칠 전 형의 명으로 포획 틀이 다시 산 초입으로 옮겨졌다는 걸 들었었다.
그렇지 않아도, 뻑뻑한 토끼고기와 기름기가 없는 닭고기에 물려가던 참이었는데, 멧돼지가 걸렸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원종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도련님! 여기입니다요!”
달유의 고함에 가까이 가보니, 사람만 한 멧돼지가 포획 틀 안에서 씩씩거리고 있었다.
입가에 돋아난 송곳니와 붉은 눈을 보니 범이나 곰이라도 쉽게 잡아먹기 힘든 거센 수놈이었다.
[콰앙! 쾅!]
몸을 움직이기도 힘든 포획 틀 안에서 멧돼지가 몸을 부딪치며 탈출하고자 난동을 부렸다.
강철로 만들어져 부서지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귀청이 울리게 쾅쾅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으니 포획 틀이 부서질까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이 몰려드니 제 죽을 날이 오늘이란 것을 알아챈 모양입니다. 바로 잡으면 되겠습니까?”
“내가 소식을 듣고 먼저 달려왔지만, 형이나 아버지를 기다려야 하네. 이렇게 살아 있는 멧돼지는 아마도 다들 처음 볼걸세.”
원종의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산짐승이 많은 조선 시대라고는 하지만, 살아 있는 맹수를 이렇게 가까이서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확실히 멧돼지는 다르구나.’
원종 또한 예전 춘봉이였을 적에 멧돼지와 혼혈 된 돼지를 직접 보기도 했고, 잡아서 발골을 했던 적도 있었다.
하나, 집돼지와 피가 섞이지 않은 멧돼지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고, 포악해 보이는 멧돼지의 박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 삼식아. 아버지나 형은 언제 오시는 게냐?”
원종은 자신의 뒤를 따라 올라오는 삼식이와 몇몇 종이 보이자 물었다.
“네에? 큰 도련님이나 주인마님이 오신다는 말은 없었습니다요.”
“그으래?”
늑대가 잡혔을 때는 궁금해서 같이 뛰어 왔었는데, 형이나 아버지가 멧돼지에는 오지 않는걸 보니 뭔가 이상했다.
“멧돼지고기는 냄새가 심해 맛도 없으니 안 오시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그럴 수도 있겠구만.”
달유의 돼지고기가 맛이 없다는 말에 무슨 헛소리야? 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이었다.
현대의 돼지고기와는 달리 멧돼지고기는 맛이 없는 고기였다.
멧돼지에서 갈라져 나와 사람이 키우는 집돼지가 된 이후에도 사료가 보급되기 전까지는 맛이 없었고, 냄새가 심해 돼지를 즐기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럼 잡아서 들고 가지. 달유 잡게나.”
달유는 시퍼렇게 날이 선 창을 들고 나서는 대신 여러 개의 밧줄을 들고 나섰다.
밧줄 끝에 매듭을 만들었는데, 내가 철사로 올가미를 만들 때 쓰던 매듭이었다.
달유는 매듭을 멧돼지의 뒷다리에 던져 발버둥 치는 멧돼지의 왼 뒷다리를 줄로 잡았다.
“이 줄을 잡고 버티게나.”
그러곤 줄의 끝을 사내종에게 쥐여주고, 다리 한족이 묶여 발버둥 치는 멧돼지의 다른 세 다리도 줄로 묶어 종들에게 잡으라 했다.
“이런 틀에 잡혔다고는 하나, 멧돼지가 상처를 입게 되면 날뛰는 힘이 상상을 초월하게 되네. 그래서 네 다리를 잡은 자네들이 최대한 잡아당겨 멧돼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해야 하네.”
“알았수. 그런데 언제까지 잡아야 하오? 이놈 힘이 보통 아니우.”
“조금만 버티게.”
달유는 그제야 날이 선 창을 들고 포획 틀 위로 올라섰는데, 네 다리가 붙잡힌 채 발버둥 치던 멧돼지는 위기감을 느꼈는지 더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읏챠!”
달유의 힘찬 기합 소리에 위를 쳐다보던 멧돼지의 머리로 창날이 내려꽂혔다.
멧돼지는 마치 벼락에 맞은 듯이 몸을 꿈틀댔고, 천근의 추가 멧돼지의 머리로 떨어져 내린 듯이 대가리가 푹 숙여졌다.
그리고, 몸을 벌벌 떨다 힘이 빠지며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죽은 건가?”
“네. 도련님. 사람으로 치면 목과 머리를 이어주는 곳을 끊어 내었습니다.”
달유는 창을 뽑았다가 다시 그 밑으로 찔러 넣었다.
이미 멧돼지는 죽었는지 반응이 아예 없었다.
포획 틀의 문을 열고, 뒷다리가 묶여 있는 줄을 잡아당겨 멧돼지를 끌어내기 시작했다.
“거꾸로 묶어 방혈은 하지 않는 겐가?”
“멱을 따 방혈을 하는 것이 좋으나, 여기처럼 산 초입에 피 냄새를 풍기게 되면 다른 산 짐승들을 끌어들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더 좋은 거 아닌가? 포획 틀이 있으니 더 많이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면, 다른... 아, 아닙니다. 바로 방혈 하겠습니다.”
달유는 포획 틀에 잡히지 않는 다른 산짐승들 때문에 피해가 생길 수도 있다고 이야길 하고 싶었지만, 천진난만하게 다 잡아먹으면 된다고 하는 원종의 말에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두 다리에 묶인 줄로 멧돼지를 거꾸로 매달고 멱을 따자 흥분해서 죽은 영향인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삼식이도 본 것이 있다 보니 얼른 가죽 주머니에 돼지 피를 받았다.
하지만, 달유는 아랑곳하지 않고 멧돼지의 한쪽 귀를 잘랐고, 멧돼지의 혀 앞부분도 잘라내었다.
그러곤, 자른 귀를 그릇 삼아 자른 혀를 올려 옆 바위 위에 올렸다.
“고시레인가?”
“고수레라고도 볼 수 있지만, 산신님께 받치는 것입니다요. 산에서 나고 자란 동물을 잡아가니 고맙다고 산신께 성의를 표하는 것이지요.”
그러곤, 나뭇가지를 잘라 젓가락처럼 돼지 혀 위에 올리곤 절을 했다.
달유의 행동을 보니 먹기 위해 동물을 잡는다고는 하나, 죽어간 동물들을 기리는 위령비라도 하나 세워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작가의 말]
고시레는 국어사전에는 고수레로 등록이 되어 있으나 고시레, 고슈레, 고시네 등등 방언에 따라 단어가 조금씩 다르게 발음이 됩니다.
사람이 먹는 것을 자연에 다시 돌려준다는 의미도 있고, 조상신에게 음식을 나눠준다는 말도 있고 의미와 뜻도 지역마다 여러 가지입니다.
몽골에도 양이나 말을 잡으면 개와 자연 신에게 고시레 하던 풍습이 있는데, 고려말 원나라의 풍습이 유입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몽골 사람에게 듣다 보니 듣는 사람마다 다르게 발음이나 의미가 전해졌고, 여러 발음과 의미가 중구난방이 된 것이라 생각 되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