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31화 (31/327)

30. 내 안전을 위해. (2)

“...관노나 관기를 겨우내 부리시고, 그들이 만드는 나이기온 옷을 받을 수는 없겠는지요?”

아전들에게 가지는 이미지가 부패와 비리의 온상이었기에, 역시나 뭔가 남겨 먹을 궁리를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흠. 이렇게 서서 이야기할 주제는 아닌듯하니. 방으로 들어오시오.”

아전 김율시는 방으로 들어서자 방안 가득 지렁이를 키우는 항아리가 놓여있는 것에 놀랐다.

‘양반 자제인데도 요리도 하고 닭도 치고 한다더니 별종이긴 별종인가 보구나. 하긴 별종이니 나이기온인가 하는 옷도 만들어 낸 것이겠지.’

“내 알기로 관노나 관기는 사사로이 빌려주거나 데려다 쓰면 안 되는 것으로 아는데, 아니오?”

“네 잘 아시다시피 관노나 관기를 사사로이 쓰는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허나, 세상의 모든 일이 법도에 따라 돌아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불법이지만, 그게 무슨 문제냐며 웃으며 이야길 하는 김율시의 말에 말문이 막혔다.

하긴, 아전의 수장이라는 수리(首吏)였으니 중앙의 감찰이 오지 않는 이상은 뭐라고 할 사람은 없을 것 같았다.

“관노 둘과 관기 넷을 겨우내 쓰시고, 나이기온을 40벌 받았으면 합니다.”

“긴 장옷이요? 아니면 짧은 단옷이요?”

양반들이 입는 롱패딩인 장옷은 1벌에 15냥이었고, 양인들이 입는 숏패딩인 단옷은 1벌에 10냥씩 받고 있었다.

“활동하기 좋은 단옷입니다.”

단옷 40벌이면 동전 400냥이었다.

관노 둘과 관기 넷으로 겨울 동안 400냥 이상 뽑을 수 있는지 머릴 굴렸지만, 이득이 남지 않을 것 같았다.

“단옷 40벌 해서 400냥인데, 겨우내 그들에게 일을 시켜도 그 돈을 뽑을 수 없소이다. 아니 되겠소.”

“그럼 내년 여름까지는 어떻소이까? 9월 말일까지로 하면 되겠습니까?”

겨울이 아니라 내년 가을의 초입까지 6명을 부린다면 이익을 남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아전의 위신도 세워줘야 했다.

아무리 중인으로 양반보다 못하다고는 하지만, 지방 행정의 한 축을 맡은 자였다.

서로의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면 서로가 피곤할 일이 많을 터였기에 관계를 위해서 어느 정도는 들어줘야 했다.

“좋소. 그렇게 한다면 될 것 같소이다. 그런데, 이렇게 관노나 관기를 빌려주고 하는 경우가 많소?”

“알음알음하는 것이지요. 그럼 내일 데리고 오겠습니다. 옷은 언제 받을 수 있는 것입니까?”

“원하는 크기가 다 있다면 내일 바로 줄 수도 있을거요.”

40벌 이상 언제든 준비되어 있다는 말에 김율시는 은근 놀라는 눈치였다.

그렇게 내일 다시 오기로 하고 아전 김율시는 돌아갔는데, 비틀어진 조선의 민얼굴을 마주한 것 같아 기분이 그리 좋지는 않았다.

지방 군현의 수령을 보조하는 일을 하는 아전들의 비리와 부패는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이 병폐를 관리는 물론이고 왕들도 이미 알고 있었고, 그 병폐를 해결할 해결책도 분명 알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 말 일제 치하가 되며 아전이라는 벼슬이 없어질 때까지 바뀌는 것은 없었다.

‘녹봉(祿俸)’ 요즘으로 말하면 월급을 지방 아전들에게 주었다면 모든 일이 해결되었을 터인데. 그 녹봉에 들어가는 돈이 없었던지, 아니면 아전들의 비리쯤은 괜찮다고 생각했는지 조선 조 내내 그냥 방치되었다.

그냥 알아서 비리를 저질러 먹고살라고 방치를 하니 중앙에서 내려온 수령들도 그 사정을 알고 눈을 감아주는 게 현실이었다.

원종에겐 이 병폐를 고칠 방도도 없었고, 그렇다고 정의롭게 잘못되었다며 나서서 뭐라 할 이유도 힘도 없었다.

그저 서로가 피해 없게 이득을 보면 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음 날 김율시는 직접 나이기온을 입어보고, 만져보게 되자, 말을 달리했다.

“장옷도 10벌 가져가면 아니 되겠소? 이불도 한 채 여유가 있는 거 같은데 저것까지 안 되겠소?”

양반들처럼 롱패딩을 입고 싶은 것인지 아니면 위에 상납하려는 건지는 모르겠으나 김율시의 눈에는 욕심이 그득해 보였다.

“그럼 내년 겨울이 끝날 때까지 저 여섯을 데리고 있겠습니다.”

“좋소이다. 내후년 입춘까지로 하면 되겠소?”

김율시는 나처럼 계산해보는 시늉도 하지 않고 바로 내 후년 입춘까지로 이야길 했다.

“대신에 감찰이 나올 때는 현관에 돌려보내 줘야 하오. 제대로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기에 그때는 어쩔 수 없소이다.”

“감찰이라면 당연히 돌려보내 드려야지요.”

롱패딩이나 이불 채를 뜯기긴 했지만, 무조건 이득이었다.

왜 갑자기 무조건 이득이냐고?

그건, 김율시가 데리고 온 관기 중에서 두 명의 미모가 꽤나 조선 시대 미인상에 부합하는 외모였기 때문이었다.

큰형은 물론이고. 이제 사춘기에 들어 이성에 관심이 많아진 박복이도 그 둘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남자인 관노는 그냥 종놈 같았기에 별 상관없었지만, 관기들의 얼굴을 보니 이들로 돈을 벌 방법이 바로 떠올랐다.

관기들을 어디에 써먹을지는 생각해 두었지만, 지금 당장 바로 생각한 것을 펼칠 수는 없었기에 결국, 관기들도 나이기온 옷을 만드는 데 투입되었다.

***

“이보게 이 옷은 아주 특이하구만. 다 좋은데, 정말 양반이 입는 옷이 맞나? 소매가 너무 좁지 않나?”

“사또 어른 저도 소매가 너무 꽉 조인다고 왜 이런지 물어보니 찬 바람이 소매를 통해 들어오기에 소매를 줄였다고 했습니다요. 중인들이 입는 옷은 다리까지 길지 않고 허리 부근까지만 오는 단옷이라 지금 입고 있으신 장옷은 사대부들이 입는 겨울옷이 맞습니다요.”

“흠. 그러면 중요한 약이나 필수적인 물건은 어디에 넣어 다니란 말인가?”

“아, 그것은 양 옆구리 부근을 손으로 만져보시겠습니까?”

문경 현감인 이종수는 장옷의 허리 부근을 더듬어 보자 오목하게 뚫려있는 주머니를 찾을 수 있었다.

“네 거기입니다. ‘호(胡)주머니’라고 부르는 주머니입니다. 거기에 물건을 넣으시면 됩니다.”

“호(胡)를 쓰는 것을 보면 오랑캐의 습식이라는 거구만. 주머니를 옷에 달지 않고, 이렇게 옷 안에 주머니를 만들어 달다니 특이하구만.”

이종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보고 물건을 넣어보자 넓은 소매에서 물건을 찾는 것보다 편하다는 걸 깨달았다.

“호주머니라는 이거 편리하구만. 다른 도포에도 이런 호주머니가 있으면 편할 것 같은데. 침모(針母)에게 내 옷에 호주머니를 다 만들라고 시키게. 그리고 장옷과 이불은 한양 본가로 어서 보내도록 하게.”

“네. 그렇게 시키겠습니다요.”

아전 김율시는 장옷과 이불을 자신이 쓰지 않고 현령에게 바치었는데, 현령인 이종수도 아주 좋아하여 한양의 부모님집으로 보내자 그도 느낌이 왔다.

‘이 나이기온 이라는 옷은 돈이 되는 옷이다.’

***

“그래서 이번에는 나이기온 옷을 사고 싶다는 말이오?”

관노, 관기를 주고 옷을 가져간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김율시가 다시 찾아왔다.

“네. 이 나이기온 옷을 다른 곳에 팔아 보고 싶은데, 이미 만들어 둔 옷을 모두 사고 싶습니다.”

“내가 만들어 둔 옷이 몇 벌인지 알고 다 산다는 말이오? 모아둔 재산이 많소?”

“제가 다 사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사서 다른 지역에 팔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누구요?”

“개성에 적을 두고 있는 송상의 행수(行首)가 있사온데, 그와 함께 옷을 구매하여 팔아 볼 생각입니다.”

“송상?”

송상이라 하면 개성상인을 말했는데, 고려조부터 유명한 상인 집단이었다.

나라가 바뀌며 억압을 받았음에도 한양의 경강(京江)상인들과 더불어 조선의 상권을 쥐락펴락하는 곳이었다.

‘송상에 대해 알려지기로는 억척스럽고 깍쟁이 같아 조선의 유태인들이라고 불릴 정도로 지독한 면이 있었다고 하던데, 과연 송상과 거래해도 될까?’

조선인이 멸시받던 일제 치하에서도 개성의 상권을 일본인들에게 빼앗기지 않고 지켜냈을 정도로 송상의 저력이나 고집은 대단했다.

그런 그들에게 나이기온을 판매하게 되면 100% 카피 제품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것도 기회였다.

내가 만들어 내는 물건들을 유통해줄 상단이 있다면 내가 앞으로 할 일에 필요한 자본금을 좀 더 쉽게 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 그 송상의 행수를 부르시오. 그와 한번 만나 이야기나 해봅시다.”

***

“도자기거래로 화서면에 내려와 있었는데, 문경의 양반들과 상주의 몇몇 양반들이 추위를 잊게 해주는 옷을 입고 있다고 하여 궁금해하던 차였습니다.”

송상의 행수 석태라는 자는 키가 작고, 염소의 턱수염을 기른 자였는데, 얼굴빛이 누렇게 뜬 것이 어딘가 아픈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행수는 저치와 어찌 되는 사이요? 같이 옷을 구매한다고 하는데, 어떤 사이요?”

“소인의 처형이옵니다. 먼저 그 나이기온을 실제 볼 수는 없겠는지요?”

김율시와 처형 사이라는 말에 같이 구매해서 일을 한다는 게 수긍이 되었다.

“그럼, 자리를 옮깁시다.”

집안에서 가장 넓게 만들어진 대청마루로 움직였는데, 마루의 중앙에는 붉은색의 비단이 한 줄로 길게 깔려있었다.

그리고 비단이 끝나는 부분에는 방석이 깔려있었다.

“두 분은 저 방석에 앉으시오.”

행수 석태와 아전 김율시는 이게 뭘 하는 것인지 알지 못했지만, 앉으라고 하는 자리에 앉았다.

“언년아, 준비가 다 되었느냐?”

“네, 다 되었습니다.”

대청마루와 이어진 방문 안으로 고개를 넣어보니 이미 준비가 끝나 있었다.

“설국이 그려진 병풍을 세우거라.”

문 앞으로 가림막 같은 병풍이 세워졌고, 그 병풍 뒤로 나이기온을 입은 원길 형이 섰다.

“형님. 저 붉은 비단을 밟고 천천히 걸어 저 둘에게 옷을 보여주면 되는 겁니다. 이후 옆에 놓인 의자에 가서 앉으시면 됩니다.”

“그래, 몇 번이고 들었다. 어서 신호를 주거라.”

“먼저, 내년 정해년(丁亥年) 겨울을 휘어잡을 양반의 옷. 나이기온 장옷이오.”

내 말에 원길 형이 롱패딩을 입고 병풍에서 천천히 걸어 나왔다. 큰 갓을 썼고, 양손에는 검붉은 장갑까지 끼고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었다.

바닥에 깔려있는 비단 위를 버선발로 성큼성큼 걸어 석태와 김율시가 앉아 있는 앞까지 갔다.

그러고는 그들 앞에서 한 바퀴 돌며 패딩의 앞 단추를 풀었다. 양손을 허리에 올려 힘 있는 포즈를 잡았다.

강한 남자라는 자신감을 나타내듯이 패딩을 뒤로 젖히며 골반을 앞으로 내미는 원길의 모습에 석태와 김율시는 충격에 입을 벌렸다.

“나이기온 장옷은 기골이 장대하지 않은 양반이라 하더라도 기골을 크게 보이게 만들어 양반의 풍채를 만들어 주는 옷이오. 다음으로는...”

내 소개가 이어지자 원길 형은 단추를 다시 잠그고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 병풍 쪽을 주시했다.

“다음으로는 부녀자(婦女子)들을 위한 장옷입니다.”

내 마음 같아서는 형수를 모델로 세워 원길 형과 같이 머리를 마주하는 앙드레 김 포즈를 시켜보고 싶었으나, 양반가의 아녀자 얼굴을 중인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여준다는 게 지금 시대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원길 형이야 남자이고 거드름 피우길 좋아하는 성격이라 이런 일을 시키면 자신이 돋보인다 생각해 좋아하지만, 부녀자는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결국, 여성용 장옷은 조선 시대 사람들의 눈에 가장 미인으로 보이는 채월이란 관기에게 옷을 입혔다.

“오오! 화용월태(花容月態)로다!”

원길 형은 물론이고, 방석에 앉아 있던 둘도 자기도 모르게 입을 쩍 벌렸다.

흰색의 롱패딩에 검은 쪽머리와 흰 피부가 돋보이는 채월의 자태는 뭇 남자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채월이 붉은 비단 위를 지나 둘 앞에 한참을 서서 이리저리 몸을 돌려 보여주자 이미 게임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사, 사겠습니다. 나이기온 옷을 사는데 얼마면 되겠습니까?”

*

[작가의 말]

장옷은 사실 머리 위로 덮는 긴 옷을 말합니다.

조선 전기에는 남자의 도포와 두루마기 위에 걸쳐 입는 겉옷을 장옷이라 불렀습니다.

다만, 시간이 흘러 조선 후기가 되면 장옷을 남자는 입지 않고, 여인들이 외출할 때 머리 위로 쓰는 쓰개 형태의 덮개 옷으로 변화하게 됩니다.

그리고 드라마에서는 조선 초기 배경이라도 여자의 머리를 두르는 장옷으로 그냥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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