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수확의 계절. (1)
“...문어와 고사리는 같이 먹으면 안 되며... 도토리 묵과 감 또한 같이 먹으면 벼, 변비와 비, 빈혈을 이으키고, 아니 일으키고, 소화를 방해한다.”
더듬거리며 읽은 부분이 있었지만, 책자에 쓰인 한글을 모두 읽어내자 추분네는 밝게 활짝 웃었다.
“되었나유?”
“되었습니다. 추분네도 합격입니다.”
“아이구 좋아라!”
“추분네 축하혀.”
“우리 모두 다 합격했지라.”
원래, 춘봉 요리숙의 졸업 요건은 찻물밥, 포계, 주토피아, 밥비거, 계란마요를 만드는 것이었다.
거기에 갑작스레 언문을 읽고 쓸 줄 아는 것까지 추가했는데, 다행히 5명 모두 언문을 깨우쳐 졸업 요건을 채웠다.
“그럼, 바로 졸업 선물과 증서를 수여하겠습니다.”
식장의 사회자처럼 뻘쭘하게 서 있던 박복이의 진행에 내가 족자와 무명으로 만든 모자를 들고 일어섰다.
앞치마는 이미 요리숙이 시작될 때 주었었고, 요리할 때 머리카락이 떨어지지 않도록 쓰는 조리 모자를 수료증과 같이 수여하는 것이었다.
원종은 일일이 어멈들의 머리에 모자를 씌워주었고, 두 손으로 족자를 건네주었다.
역시나 모자에도 춘봉 요리숙이란 이름이 새겨져 있었고, 족자에는 요리숙 이수 인증서라고 어멈들의 이름이 한글로 쓰여 있었다.
“늘 가까이 두고 읽으라고 준 책자와는 다르게 이 족자는 그대들이 우리 요리숙 출신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표이네. 그리고 이 모자는 실력을 갖춘 사람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표식일세.”
“흐윽. 감사합니다.”
어멈들은 무명으로 된 모자와 양반들이나 받는 두루마리로 된 족자를 받아들자 눈물을 흘렸다.
“이제까지 뭘 해서 이렇게 인정을 받아 본 적이 처음입니다요.”
마지막으로 시험을 마친 추분네는 웃으며 이야길 하면서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들 어린 나이가 아니었음에도 성취에 대한 보상이나 인정을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에 더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지도 몰랐다.
“자 먹물에 엄지를 찍어 자기 이름 옆에 지장을 찍으시오. 다섯 명의 지장이 찍힌 이 종이는 벽에 걸릴 것이오.”
어멈들은 먹물이 흘러내릴까 조심하며 지장을 찍었다.
“호랑이는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이름을 남기는 법인데, 어멈들은 이제 요리숙에 이름을 남기었소. 앞으로 올 요리숙 수련생들이 어멈들의 이름을 우러러볼 것이오.”
“천것의 이름을 우러러보다니요. 꿈만 같습니다요. 이렇게 이름이 남게 될 줄이야.”
단순하게 수료했다는 확인 지장을 찍는 것이었지만, 어멈들의 이름을 후세에까지 남긴다는 의미를 부여하자, 그 행위가 와 닿는 게 달라졌다.
평생 부엌데기로 삶을 보내야 할 어멈들이었지만, 자신들이 그냥 살다 가는 게 아니라, 뭔가에 이름을 남기고 갔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낄 터였다.
감정에 복받쳐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어멈들을 보니 나도 가슴이 찡했다.
“이럴 때 사진 한 방 박아줘야 하는 건데. 아쉽구나.”
“뭘, 박아줘야 한다고유? 으미 남사시러브라.”
“어린 도령님 그렇게 안 봤는데 역시 사내는 다 같구마이. 내 딸이 박색은 아닌데, 놀이 상대로는 어떠우?”
귀신처럼 내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어멈들을 보니 아차 싶었다.
과거든 미래든 주방 이모들이 섹드립에 강하다는 것을 잊고 있었다.
***
“아우야. 내 늘 너를 응원하고 있었지만, 오늘은 더 응원해 주마. 여드레 동안 불편한 것은 없었느냐? 후후후.”
원길은 기분이 아주 좋았다. 처음 상주의 여러 가문 행랑어멈들에게 뭔갈 가르친다고 했을 때 표나게는 아니었지만, 왜 그딴 짓을 하는지 이해를 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행랑어멈들을 여드레 정도 가르쳐주고 한 명당 백미 2섬씩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세상천지 이렇게 쉽게 재산을 불리는 방법도 있구나 하며 감탄을 했다.
‘어디 보자, 여드레에 10섬씩 벌 수 있다면 1년 내내 하면 450섬을 벌 수 있겠구나. 어이쿠 이러면 소작에서 걷는 것까지 하면 6~700섬은 되겠구나. 크흐흑흑 천석꾼도 그리 멀지 않음이야. 암암.’
“형님. 10섬 중에서 6섬은 제게 주셔야 합니다.”
행복해하던 원길의 얼굴이 굳어졌다.
“뭐? 아니 그게 무슨 말이냐. 어멈들이 머무는 행랑이나 요리를 가르치는데 들어간 장작이고 재료고 간에 다 내 집에서 나온 것이지 않으냐?”
원길은 속으로 동생에게 1~2섬은 줘야겠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6섬이나 달라고 하자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형님. 아직 형님 집이 아니라 아버지 집이지요. 그래서 형님에게 4섬을 드리는 겁니다. 아, 아니다. 그냥 아버지께 이야길 하고 아버지께 3섬만 드리겠다고 하겠습니다. 형님도 그게 편하시지 않겠습니까? 형님은 그런 줄 아시고 7섬은 제게 주십시오.”
“뭐? 그건 또 무슨 말이야! 6섬이라고 했으면 6섬이지 갑자기 7섬이라니!!”
원길은 화를 내면서 절대 안 된다고 했지만, 동생의 말처럼 아버지가 끼게 된다면 아버지의 금전 감각을 알기에 본인은 1, 2섬만 겨우 받게 될까 걱정되었다.
“형님. 그럼 8섬으로 할까요?”
“아, 아니다. 원종아 왜 이러느냐? 우리 6섬으로 하자 6섬으로. 나도 4섬은 챙겨야 다음에 배우러 오는 어멈들을 위해 행랑을 더 늘리고 할 게 아니겠느냐? 그렇지 않으냐?”
“흠. 그건 또 그렇네요. 그럼 4섬은 형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하하하. 그렇게 하자꾸나. 아버지께는 비밀이다.”
“네. 그럼 여기 수결 하십시오.”
원종은 형에게 못 이기는 체하며 미리 준비한 종이를 내밀어 6섬으로 합의를 봤다.
형인 원길이 욕심이 많고, 우기기 잘하는 양반이었지만, 아직까진 아버지를 두려워한다는 약점이 있었기에 상대하는 재미가 있었다.
원종은 형에게 받아낸 쌀로 요리숙의 어멈들에게 요리를 가르친다고 힘썼던 덕구 어멈과 책을 손으로 일일이 필사했던 박복이와 언년이에게 나눠주었다.
그리고, 집안일을 맡고 있는 덕쇠 아재에게도 얼마간의 쌀을 주며 성의를 표했다.
종에게 성의를 표하고 쌀을 나눠주는 것에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을 것 같은데, 조선 시대의 노비도 사유재산을 가질 수 있었고, 노비가 노비를 두는 것도 가능했을 정도로 우리가 생각하는 무조건적인 노예와는 달랐다.
노비들은 생활이 어려워 자신을 팔아 노비가 되기도 했고, 그 반대로 돈을 벌어 다시 자신을 사는 속천도 가능한 것이었다.
법적으로도 노비가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조항은 없었고, 자녀에게 재산을 상속시켜 줄 수도 있을 정도로 노비도 재산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종들은 배움이 짧다 보니 자기가 힘들여 일하기보다는 주인집에서 험한 일을 당하더라도 편하게 먹고 사는 걸 원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사라졌음에도 그대로 주인집에 머슴으로 머물며 같은 생활을 하는 자들이 있었는데, 아무것도 없이 자유민이 되어 내쫓기는 걸 오히려 두려워하기도 했다.
여튼 조선의 노비제는 복잡하기도 해서 경국대전에 여러 사례를 정의하여 노비제를 단속할 정도였다.
***
“휴우... 다했다.”
다희는 한숨을 내쉬며 방안 가득 쌓여있는 옷들을 정리했다.
손가락이 아플 정도로 바느질이 힘들었지만, 수북하게 쌓여있는 새털 옷인 조모복(鳥毛服)을 보고 있으면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러왔다.
자신뿐만 아니라 행랑채 4명의 침모들이 모여 거의 매일 바느질을 했는데, 처음 막내 도령이 보여준 그림을 봤을 땐 기괴하게 생긴 옷이라 여겨 과연 입을 수나 있을까 생각했었다.
‘옷과 머리에 쓰는 모자가 이어진 것이 처음에는 신기했지만, 실제 만들어 입어보니 추운 겨울에 입기에는 딱 맞는 모양새구나. 어서 빨리 겨울이 왔으면...’
작년까지만 해도 추운 겨울이 싫었던 다희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만든 옷이 어떻게 판매가 되고 사람들이 따뜻하게 입을지가 기대되어 어서 겨울이 오길 빌고 있었다.
이런 다희의 바램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올해 가을은 빨리 오고 있었고, 금세 낙엽이 졌다.
여름내 가꾸었던 쌀과 곡식을 수확한다고 종들은 정신이 없었고, 요리숙을 거쳐 간 1기 어멈들도 손님들을 맞는다고 손에 물이 마를 날이 없었다.
“허허. 이게 바로 명성이 자자한 주토피아로구만. 오오~ 빨간 당근이 보이게 속살이 알아서 움직이는 이 모습을 보게나!”
“어디 그것뿐인가 이거 보게 내 마늘을 좋아하긴 했으나 이렇게 닭과 마늘이 잘 어울릴지는 몰랐네.”
집안의 종들이야 수확에 바쁘다지만, 양반들은 새로운 먹거리를 먹는다고 바빴다.
진기주와 어울리던 친우들로 인해 상주에 퍼지기 시작한 소문은 이 근방에서 모르는 양반이 없을 정도가 되었고, 소문이 거꾸로 문경에도 알려지자 인근 양반들이 전가 고택으로 들락거리기 시작했다.
“원종아 이거 큰일이다. 매일 이렇게 손님들이 찾아온다면, 집안의 닭이 씨가 마를 지경이다.”
집안 식구들이 먹을 때만 서라벌 닭을 쓰고 있고, 손님들에게는 잡곡을 먹인 집닭을 내놓고 있었는데, 손님이 많다 보니 집닭도 씨가 말라가고 있었다.
“이거 인심을 잃더라도 친인들에게 닭값을 받아야겠다. 너는 얼마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형님. 돈을 받으시면 아니 됩니다.”
“응? 그럼 어쩌자고? 사흘이 멀다 하고 문경 시내 양반들이 우리 집을 드나드는데, 이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나 마찬가지이지 않으냐. 거리가 있는 상주의 양반들과는 또 다른 상황이다.”
“네. 형님. 상주와는 다르지요. 문경은 우리 가문이 뿌리를 내리고 있는 땅입니다. 찾아오는 친인들도 촌수가 멀다고는 하나 대부분인 같은 종씨나 친족들입니다. 친족들에게 돈을 받게 되면 인심을 잃고 욕을 듣게 될 것입니다.”
“그럼 어떡하자는 말이냐? 보배로 여겼던 요리들이 이제는 화(禍)가 되고 있는데.”
원길은 답이 없다며 줄어드는 재산이 아까워 머리가 다 아파왔다.
“아니다. 아버지와 내가 출타를 해버리면 어떨까? 아버지나 내가 없다면 친척이나 친인들이 오지 않을 것 같은데.”
“형님 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작은 것을 조금은 잃어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당분간은 손해가 생기더라도 친인들을 반갑게 맞아주고, 성심성의로 대하십시오.”
“그러다 이익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할 것이냐? 손해만 보는 것 아니냐?”
“형님. 저를 못 믿으십니까? 저를 믿으셔야 합니다. 친인들의 입으로 들어간 재화의 배 이상을 제가 벌어드리겠습니다.”
원길은 동생의 말에 긴가민가했지만, 이미 여드레 만에 백미 10섬을 벌어들이는 것을 보았기에 한번 믿어보고 싶기도 했다.
“그럼, 허허 거리는 호인처럼 친인척에게 베풀면 되는 것이냐? 그러면 진짜 배로 벌어 줄 수 있는 것이냐? 어떻게?”
“아직 말은 못 드립니다. 그저 이달 말까지 베푸십시오. 그러면 겨울이 왔을 때 배로 벌게 될 것입니다. 매일 점심나절에 향교에 가서 친우들을 초대하십시오.”
“후후 좋다. 네 한번 흔전만전 써보마.”
원길은 배로 벌 수 있다는 말에 신이나 매일 향교에 나가 양반들을 불러 음식을 대접하고 교분을 넓히기 시작했다.
***
“이게 누군가? 김진사 아닌가? 너무 오랜만에 향교에 오는구만. 과거 준비에 힘쓰는 건 좋지만, 자주 향교에 와서 얼굴이나 비춰주게나.”
“그러겠네. 그런데, 향교에 비치되어 있던 대학혹문(大學或問)책은 혹시 누가 빌려 간 것인가?”
“서가에 없던가? 그렇다면 누군가 빌려 간 것이겠지.”
“그렇구만.”
김진사라 불린 김재원은 난감했다.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다들 들고 있는 대학혹문 서책이 없어 빌려보기 위해 한나절을 걸어왔는데, 책이 없자 어찌해야 할지를 몰랐다.
“오! 오늘도 왔다.”
“여~ 원길이 자네를 기다리고 있었네. 오늘도 낮걸이를 같이 먹을 친우를 구하나?”
“하하하. 맞네. 오늘은 세 명인가? 응? 이거 김진사 아닌가? 오랜 맛이네. 과거 준비는 잘되어 가는가?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자네 살이 많이 빠졌구만. 고생하는가 보이.”
원길은 오랜만에 김진사를 보았는데, 오랜만에 본 것도 있지만, 그 행색이 남루해 더더욱 살이 말라 보이게 하고 있었다.
“김진사도 오랜만이니 같이 우리 집으로 감세. 오늘은 백숙이네.”
김재원은 평소 쫌생이로 알려졌던 전원길이 낮걸이로 백숙을 준비했다며 함께 먹으러 가자고 하는 말에 의심이 되었다.
평소 알고 있던 전원길은 절대 호의를 베푸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백숙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김재원은 홀린 듯이 전원길을 따라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