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 쉐프 조선을 부탁해!-11화 (11/327)

10. 포계(炮鷄). (1)

상추가 정력제라는 말을 현대인이 들었다면 ‘뭐? 상추가 정력제라고? 웃기지 마!’ 하면서 어이없어했을 테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잎을 계속 따먹는데도 다음 날이면 다시 푸른 잎이 싱싱하게 올라오니 끊이지 않는 정력의 상징으로도 보일만 했다.

정력제로 인식되는 상추를 나도 먹어도 되지만, 밤에 힘쓸(?) 일이 많은 아버지와 큰형님만이 이 상추를 소중히 여기며 애용했다.

이렇게 정력제 취급을 받아온 상추는 키우기가 힘든 채소도 아니었고, 씨를 받기도 쉬워서 오래전부터 한반도에서 널리 재배가 되었었다.

그리고, 농업을 중히 여기는 조선이라는 걸 나타내듯이 유학자나 선비들도 상추를 텃밭에서 길러 먹었다.

물론, 정력제라고 믿었기에 심혈을 기울여서 키웠다.

‘그러고 보니 조선 후기 정약전, 정약용 형제도 귀양살이를 하며 직접 상추를 재배해 먹었고, 그 효과를 봤는지 둘 다 마흔 넘어서 소실에게 딸을 얻었지. 그런 걸 보면 상추가 정력제라는 게 영 없는 말도 아닌 것 같네.’

어쩌면 비타민제가 없는 시대이다 보니 상추가 주는 비타민이 그런 활력을 주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런 정력에 좋은 상추 텃밭이라 그런지 지렁이도 그 힘을 받아 번식을 왕성하게 했는데, 이곳에 지렁이가 많다는 걸 알아차린 풀어 키우는 집닭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종복이 닭들을 쫓아낸다고 쫓아냈지만, 지렁이의 맛을 본 집닭들은 집요하게 텃밭에서 지렁이를 잡아먹었다.

“네가 여기에 지렁이를 풀었다고 들었다. 아버지가 닭 소리가 시끄럽다고 종들에게 경을 치셨다. 멍석말이하려는 걸 내가 겨우 막아 세웠다. 아버지가 이번엔 넘어가셨지만, 계속 상추밭에 닭이 모여들어 아버지 신경을 거스르게 되면 큰일이 날 수도 있음에야. 설마, 일부러 아버지를 골탕 먹이기 위해서 지렁이를 푼 것이냐?”

“아닙니다. 형님. 전혀 아닙니다. 지렁이를 여기에 뿌린 건 텃밭에서 지렁이를 키워 제 닭들에게 주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지렁이가 많으면 땅이 비옥하게 되어 상추의 수확량이 더 늘어날 겁니다.”

“그게 정말이냐? 지렁이가 수확량을 늘린다는 게?”

“네 정말입니다. 지렁이가 흙을 먹고 싸는 분변토가 영양분이 많기에 상추들이 더 빨리 자라게 될 겁니다.”

“흥. 그렇게 더 빨리 자라는 것보다 상추밭의 지렁이를 먹고자 들락거리는 닭들로 인해 상추가 상하는 게 더 많을 것이다.”

“그건... 어쩔 수가 없네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집안의 닭들도 다 가두어 키워야 했는데, 그 닭들에게까지 먹일 곡식을 생각하니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닭들이 자기가 알아서 지렁이를 찾아 먹어야지 사람이 지렁이를 길러서 준다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 쯧쯧쯧. 분명 시간이 지나면 닭도 먹이를 찾아 먹겠다는 의지가 없어져 게을러질 것이다.”

“네. 형님. 그걸 원합니다. 저는 닭이 게을러지는 게 좋습니다. 닭이 게을러져서 움직이지 않고 살이 찌게 되는 걸 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두어 키우는 것입니다.”

“뭐? 살찐 닭을 원한 다라. 세상천지 간에 게을러서 이득이 되는 것은 없는 법이다.”

“아닙니다. 형님. 닭은 살이 찔수록 좋습니다. 살찐 닭이 훨씬 더 맛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사 온 닭이 살이 찌면 진짜 특별한 맛을 낼 겁니다.”

“특별하다라. 그렇다면 한번 보러 가자꾸나. 면포랑 바꿔왔다는 닭이 얼마나 특별한지 한번 보자꾸나.”

“아직은 일반 닭과 그리 큰 차이가 없지만, 일단 보러 가시지요. 저쪽입니다.”

***

“오호, 진짜 돌아다니며 키우는 닭에 비해 덩치가 크구나. 살도 통통하게 올라서 똥집도 커 보이고. 이렇게 가두어 키우면 확실히 게을러져서 살이 찌는가보구나.”

“네. 키우는 방식도 그렇지만, 이 닭은 종자 자체가 이렇게 만들어진 종자입니다. 그리고 먹이로 사료를 주는...”

전원길이 반자동 사료통의 뚜껑을 열어보고 있었기에 춘봉은 말을 하다말고 급히 뚜껑을 잡아갔다.

하지만, 사료통 안에 있던 잡곡을 원길이 보고 말았다.

“응? 이게 무엇이냐? 설마, 조와 수수를 닭에게 먹이고 있는 것이냐?!”

전원길은 사료통에 가득 담겨 있는 곡식에 깜짝 놀랐다.

“키우는 닭에게 잡곡을 어느 정도 준다는 것은 알았지만, 이렇게 쌓아두고 곡식을 먹게 하다니. 어디 곡식이 남아도는 줄 아는 것이냐?”

욕심 많은 형이었기에 언젠가는 닭 사료로 인해 문제가 터질 거라 생각했지만 너무 빨리 들켰다.

“일반적인 닭을 기를 때보다 3할 정도 더 먹이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곡식량을 줄이기 위해 지렁이와 메뚜기도 잡아 먹이고 있습니다.”

“3할? 그 3할이 누구 애 이름이냐?”

“그리고, 형님이 말씀하셨듯이 저 닭의 덩치가 크고 살이 통통하게 오른 것은 다 곡식을 먹였기 때문입니다. 곡식을 먹인 닭이기에 살이 많은 것이고, 그만큼 맛도 있는 것입니다.”

“흥. 그 맛의 차이가 얼마나 나기에 곡식을 이리 물 쓰듯 쓰는 것이냐. 덕쇠야아!! 너는 가서 막내가 나 몰래 쓴 곡식이 어느 정도인지 알아 오너라.”

“형님! 형님이 제게 닭을 키우는 것을 한번 해보라고, 도와주겠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겨우 잡곡을 좀 썼다고 이러시니 저는 억울합니다. 남아일언 중천금이지 않습니까?”

“그, 그게 그렇긴 하다만 닭에게 사람이 먹는 곡식을 먹인다는 게 말이 되는 것이냐? 닭은 들판을 돌아다니며 벌레를 잡아먹고 들풀의 씨앗을 주워 먹고 커야 하는 법이다. 그것이 자연의 이치인 것이야.”

“형님. 그럼 가두어서 기른 저 서라벌 닭과 방목해서 키운 집닭들을 요리해서 한번 드셔보시겠습니까? 사육 방법에 따라, 먹이에 따라 고기의 차이가 확연히 다르다는 걸 먹어보시면 바로 아시게 될 것입니다.”

“흥! 그래! 좋다. 네 말대로 곡식을 먹여 키운 닭과 그렇지 않은 닭의 맛 차이가 엄청나게 난다면 인정해 주겠다. 허나 맛에 별 차이가 안 난다면, 네가 닭을 키운다고 하는 일은 접어야 할 것이다.”

“네. 좋습니다. 그럼, 아버지와 형수님까지 해서 저녁상에 요리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

“박복 어멈은 내가 정한 이 세 마리 닭을 잡아서 내게 가져오시오. 그리고 덕구 어멈은 집에 놓아 기르는 암탉 세 마리를 잡아서 가져오면 되오. 닭 목은 놓아둔 채 머리는 잘라야 하며, 닭의 다리는 두 치 반을 잘라서 가져오시오.”

급박하게 닭요리를 해야 하다 보니 준비해야 할 것이 많았다.

“그리고 박복 아범은 화덕을 만드는데...”

그리고 나름의 보여주기 쇼를 위해 내 곁채 앞마당에 화덕을 만들게 했다.

그냥 요리를 부엌에서 해도 되지만,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게 되면 고추가 떨어진다는 말이 있는 시대였다.

더구나, 양반이 부엌에 들어가서 요리를 했다고 하면 동네 아낙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일이었다.

그래서 곁채에 화덕을 만들고 공개된 곳에서 요리하는 것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곡식을 닭의 사료로 쓸 수 있게 형과 내기를 하는 것이지만, 실제는 아버지에게 정식으로 닭을 키우는 것에 대한 허락을 맡는 자리나 마찬가지다.’

욕심 많은 형보다는 아버지에게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 것인지를 미리 알려주고 거기에 따른 지원을 받아내어야 했다.

양반이 요리를 하겠다는 허락을 받는 일인 만큼 형이나 아버지가 먹어보지 못한 특별한 요리를 해야 했다.

창고를 담당하는 덕쇠 아저씨에게 내가 원하는 물건을 이야기해서 챙겼고, 화덕 옆에는 조리할 수 있는 탁자도 옮겼다.

그리고 양념으로 쓸 수 있는 걸 찾기 위해 부엌과 부엌 찬광을 뒤지기 시작했다.

당연히 행랑어멈들은 난리가 났다.

“아니 도련님 사내대장부가 부엌에 들어오다니요. 큰일 납니다요!”

“그건 됐고. 우리집에 호초(胡椒)가 있나?”

“호초요? 그게 있기는 있지만...”

“있다고? 어디에 있나?”

이리저리 뒤지는 나로 인해 정신없어하던 행랑어멈은 면포로 만든 주머니를 찾아 건네주었다.

주머니 안을 보니 한 줌이나 될까 싶은 분량이었지만, 분명 호초, 아니 우리가 아는 후추가 들어있었다.

‘후추가 태종 때 유입되어 궁중은 물론이고 민간에서도 인기가 있었다고 하더니 양반들에게는 어느 정도 보급이 다 되긴 되었구나. 닭고기 염지에 꼭 필요했는데 다행이다.’

염지에 쓰기 위해 후추를 들고 나가려는데, 집안 살림을 맡고 있는 덕쇠 아저씨의 불안해하는 눈빛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불안한 눈빛에서 대충 후추가 비싸다는 걸 알 것 같았다.

“도련님. 호초를 닭요리에 쓰실 생각이십니까?”

“맞아. 이거 외에도 들기름과 참기름, 간장도 필요해.”

“그럼 호초를 반만 남겨주십시오. 호초가 음식에도 쓰이지만, 약으로도 쓰임이 있습니다. 다 써버리면 곤란합니다.”

덕쇠 아저씨는 어떻게든 내가 후추를 다 쓰는 걸 막으려는 것 같았다.

그리고, 덕쇠 아저씨가 어떻게든 후추를 남기려고 하는 이유도 알 것 같았다.

처음 대마도 도주 소 사다시게(宗貞茂 종정무)가 태종에게 호초를 진상했을 때 식용의 기능뿐만 아니라 배앓이를 할 때나 구역질이 날 때 쓰는 약이라고도 진상을 했었다.

그리고 호초가 약도 되고 고기의 잡냄새도 잡아주는 귀한 향신료라는 게 알려지자 궁중에서 인기가 높아졌고 돈 좀 있다는 사람들은 다들 호초를 갖췄었다.

그리고 몇 년 내 왕이 되는 성종은 고기에 후추를 뿌려 먹는 것을 좋아해서 아예 조선에서 재배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고 명을 내릴 정도였다.

그것도 무려 10년 동안 매년 호초를 재배해 보라고 지시를 할 정도였다고 하니, 성종의 호초에 대한 애착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성종의 지시가 있었음에도 오키나와나 동남아시아에서 호초의 종자를 들여오지도 못했고, 설혹 종자를 들여왔다고 하더라도 기후 환경이 달라 재배가 불가능했을 터였다.

2000년 중반 온실에서 국산 후추를 재배해 보려 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토질의 문제인지 하우스의 재배환경 문제인지 자라난 후추의 후추 향이 약해서 사업을 접었다는 이야기도 들었었다.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결국 한반도에서 생산이 힘든 향신료가 후추였고, 그만큼 귀한 물건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후추의 절반만 가지고 나올 수밖에 없었다.

시간이 흘러 박복 어멈과 덕구 어멈이 손질한 닭을 가져왔는데, 닭 창자와 피를 말끔하게 제거해 오니 서라벌 닭과 집닭의 몸 크기가 더 도드라져 보였다.

옷을 편하게 입고는 두 종류의 닭을 부위별로 잘라 물에 담아 피를 더 빼주었다.

그리고 서라벌 닭에만 염지를 하기 시작했는데, 약간 비열한 수법 같았지만, 내 서라벌 닭이 집닭과 비교했을 때 확연하게 맛이 좋아야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우유와 설탕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소금과 후추, 청주 약간으로 닭을 염지하기 시작했다.

고기의 안쪽까지 소금기가 들어갈 수 있게 송곳으로 닭고기의 살을 찔러가며 염지를 했다.

염지가 숙성되는 시간 동안 마늘을 다지고, 간장을 준비하며 아버지나 형을 요리로 설득할 수 있을 만한 모든 준비를 마무리했다.

저녁 시간이 다가오자 아버지와 형, 형수 그리고 아버지의 둘째 첩인 원홍이란 첩도 아버지의 옆에 앉았다.

“그래, 무슨 닭요리가 맛있는지 맛을 보라고 해서 왔는데, 어떤 요리인 것이냐?”

“네 아버님. 형님께 이야길 들으셨겠지만, 두 종류의 닭으로 같은 요리를 할 것입니다. 그 요리를 드시고 어떤 종류의 닭이 더 맛있었는지를 알려주시면 되겠습니다.”

“그래. 그럼 하려는 게 무슨 닭 요리냐?”

“포계(炮鷄)라고 합니다.”

“포계?”

*

[작가의 말]

드디어 포계가 나왔습니다.

사실 이 글을 쓰고 싶다고 아이디어를 준 책이 바로 전순의영감의 산가요록이었습니다.

앞으로 나올 많은 조선 시대 요리의 모티브를 구한 것도 이 산가요록과 전순의 영감이 쓴 식료찬요에 바탕을 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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