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닭, 치킨, 토리, 자지. (1)
“아버지의 첩과 아이들을 저에게 맡겨보시면 어떻겠습니까?”
아직 명확한 계획이 없는 춘봉이었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어린 이복동생들의 얼굴이 떠올라 무턱대고 이야기를 꺼냈다.
“응? 네게? 어디에 쓰려고 그러느냐? 애를 둘이나 낳은 다희는 이제 그다지 재미가 없을 터인데.”
‘헐, 아버지만 비정상이라 생각했는데, 아버지 못지않게 형도 비정상이잖아. 아니 이 정도면 머리에 마구니가 들어앉아 있는 거 같은데.’
형이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어쩌면 형의 이런 사고방식이 이 시대 양반이 가지는 기본사고방식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부정적인 생각을 하다 보니 영덕 조씨 집안에 데릴사위로 간 둘째 형의 일이 떠올랐다.
‘어쩌면 큰형인 전원길은 어린 원종이가 생각하는 것만큼 좋은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지.’
어린 원종이가 아닌 서른 중반 춘봉의 눈으로 보는 전원길은 좋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다.
“형님. 그런 쪽이 아니라. 제가 뭔가를 해보려고 하는데 거기에 사람이 필요해서 그렇습니다.”
“뭔가를 해보겠다고? 그게 무엇이냐?”
“그게... 닭을 한번 키워보려고 합니다.”
“닭?”
춘봉이 요리와 미식 쪽으로 방향을 잡은 이후 가장 처음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 바로 닭의 품종개량이었다.
음식의 시작은 좋은 식자재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가장 기본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했다.
어찌 보면 개인이 닭의 품종개량을 하고 원재료부터 직접 챙기겠다는 게 무모해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음식의 재료부터 챙기는 것이 현대 요식업계의 트렌드였다.
프랜차이즈 업체나 대형 레스토랑들은 안정적인 재료 수급과 관리를 위해 농장을 직접 운영하는 추세였고, 그 농장에서 생산되는 유기농 식재료들은 업체의 마케팅 포인트로도 쓰일 정도였다.
동물복지를 따지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체계적으로 관리되는 식재료는 요리의 질을 위해서도 필요한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물론, 배다른 동생들이 집에서 쫓겨나 노비로 살아가야 한다는 게 마음에 걸리기도 하고.’
“닭? 닭을 왜? 아! 설마, 너는 관(官)을 쓰고 싶다는 것이냐? 그럼, 과거를 준비하겠다는 말이냐?”
“네에? 형님 그게 무슨 말입니까?”
닭을 키우겠다는데 갑자기 과거시험을 준비할 것이냐는 형의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닭을 키운다는 게 다른 의미가 있는 건가? 닭에게 그런 의미가 있는거였어?’
“뇬석아 아무리 형이 글공부와는 담을 쌓았다곤 하지만, 닭을 키우겠다는 말이 과거 준비를 한다는 뜻인 건 알고 있다.”
‘아니, 형님! 그게, 그런 뜻인 걸 저는 모른다고요.’
갑자기 과거시험을 준비하냐는 말에 춘봉은 멘붕에 빠졌지만, 형인 원길의 말에는 틀린 게 없었다.
조선시대 과거를 준비하는 유생들에게는 급제를 기원하듯이 닭이 그려진 그림을 선물하곤 했는데, 이는 닭이 선비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닭이 선비가 가져야 하는 오덕(五德)을 갖춘 완전체의 상징이었기에 그런 것이었다.
아 물론, 오타쿠의 오덕이 아닌 진짜 다섯 가지 덕을 말하는 것이었다.
첫째 덕은, 머리에 벼슬 관을 쓰고 있으니 문(文)덕이 있는 것이요.
둘째 덕은, 발에 삼지창 같은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으니 무(武)덕을 가진 것이요.
셋째 덕은, 적을 맞아 물러서지 않고 죽을 때까지 싸우는 용(勇)덕을 지닌 것이요.
넷째 덕은, 음식을 보면 혼자 먹지 아니하고 함께 나누어 먹는 인(仁)덕이 있는 것이요.
다섯째 덕은, 밤을 지키되 그때를 잊지 않고 시간을 알려주는 신(信)덕을 가진 것이라 할 수 있었다.
특히나 머리에 쓰고 있는 닭 벼슬의 모양이 입신양명(立身揚名)하여 머리에 관(官)을 쓴 형상이라 선비나 유생들이 닭을 존중하며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형님! 형님이 무슨 오해를 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과거 준비가 아니라 진짜 닭을 키우는 닭 농장을 하고 싶습니다. 절대 다른 의미가 있는게 아닙니다.”
“응? 진짜 닭을 키우겠다고? 허허 이거 참, 양반이 닭을 키우겠다 하니 참으로 웃기는구나. 웃겨! 허허허허.”
원길은 사족(士族)의 후예로 태어난 막냇동생이 진짜 닭을 키우겠다고 하자 황당하여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막냇동생인 원종의 얼굴에는 농을 한다는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기에 웃음기를 지우고 다시 생각했다.
“녀석... 그래, 네 녀석이 대충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겠다.”
원길은 생각하다 보니 왜 동생이 갑자기 닭을 키우겠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먹게 된 동생의 마음이 안쓰러워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
“사화(士禍)가 두려워 아예 출사를 포기하겠다는 네 녀석의 마음은 알겠다. 아마도, 병에 걸린 이후에 삶에 대한 욕구가 커진 것이겠지. 출사하여 어떤 사화에 얽혀 죽는 것을 걱정하기보다는 닭을 키우며 마음 편히 사는 것이 좋게 보였겠지. 내 너의 마음이 어떠한지 알겠다.”
“에에? 아아, 그렇죠.”
원길 형이 뭔가를 착각하는 것 같았지만, 모로 가든 질러가든 서울만 가면 된다는 생각에 형의 말에 동의했다.
“한데 닭은 그냥 두면 아랫것들이 알아서 키우는 것이 아니더냐? 그리고 다른 일도 많을 터인데, 왜 닭을 키우고 싶다는 것이냐?”
‘다행이다. 출사를 위한 과거 공부 대신 닭을 키우겠다는 내 말에 큰 반감을 보이진 않았어.’
사실 춘봉은 닭을 키우겠다고 말을 하면서도 큰형이나 아버지의 허락을 받는 게 가장 힘들이라 생각했다.
양반이 닭을 키우고, 나중엔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하겠다고 하면 족보에서 파내어 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다.
“그게, 그러니깐... 결국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되면 이 집이나 가산은 형님 것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미리 저만의 재산을 만들어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닭을 키워 자립할 수 있는 준비를 하려고 합니다.”
“뭐? 허허. 이놈 봐라. 이놈아. 내가 아무리 욕심이 많다지만, 동생 장가 밑천을 안 챙겨주겠느냐?”
원길은 동생의 이야길 듣고는 그런 걱정 하지 말라고 사람 좋게 웃으며 이야길 했지만, 듣고 있는 춘봉으로서는 쉽게 믿을 수가 없었다.
‘둘째 형인 원상형이 장가갈 나이가 되었을 때도 재산을 떼주고 분가를 시키는 게 아니라 데릴사위로 영덕 조씨 집안에 장가보낸 걸 알고 있습니다요.’
아마, 자신도 나이가 차게 되면 재산을 떼주기 싫어 데릴사위 자리를 찾아서 자신을 보내버릴 것만 같았다.
9살의 원종이라면 이렇게 생각하지 못했겠지만, 서른 중반의 삶을 살아왔던 춘봉에게는 큰형 원길의 좁쌀 심보와 탐욕이 어느 정도는 보였다.
원길은 이 근방에서 가장 많은 소출을 가진 양반집 장손이었기에 남을 배려할 필요 없이 성장했고, 그건 막내 원종이도 마찬가지였다.
거기다 색을 밝히는 아버지를 닮았는지 형수가 뻔히 있는데도 여러 계집종을 희롱하며 즐기는 한량이기도 했다.
군자 같지 않은 형의 삶을 알기에 장가갈 때 재산을 떼준다는 말도 신뢰하기 힘들었다.
“그런데, 닭을 키워서 돈이 되겠느냐?”
“일단 해봐야 알지 않겠습니까? 닭을 대량으로 키워 닭 농장을 한번 해보고 싶습니다.”
“닭 농장이라... 뭐 그 모자를 데려가서 한번 해보아라. 소일거리라도 있어야지. 대신에 아버지가 또 새 첩실을 들이려고 하면 그때는 너도 나서서 말려야 한다. 알겠느냐?”
“네.”
춘봉은 형의 곁채에서 나오면서 생각하니 뭔가가 엄청나게 꼬인 인생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반상의 법도가 있는 조선에서 양반으로 환생한 건 좋은데, 색(色)을 밝히며 자식을 신경 쓰지 않는 아버지와 욕심 많은 큰형 덕에 어쩔수 없이 자력갱생(自力更生)해야 할 판이었다.
‘아니, 양반집이면 글공부나 좀 하고 과거 준비하고 하는 그런 선비 정신 같은 그런 게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그게 사족(士族)으로서의 정체성일 건데, 보면 무슨 다들 졸부집사람들 같잖아. 뭐, 그래서 닭을 키우겠다는 게 쉽게 잘 넘어갔지만.’
양반의 자제가 닭을 키운다고 하면 당연히 엄청난 반대를 각오했었다.
헌데, 너무 쉽게 형이 허락을 해주자 허무하기도 했다.
‘알고 보면 양반이 아니라 족보 사서 양반인 척 하는 거 아냐?’
왜 집안에서 양반의 느낌은 없고, 졸부집 같은 느낌만 있는지 생각하다 보니 또 떠오르는 사건이 있었다.
‘아!? 또, 정축지변이야?’
단종복위 운동이 정축년에 일어났을 때 근방 사족들이 역모의 혐의로 떼 죽임당하는 걸 보곤 아버지나 큰형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이건 우리 집안만의 문제가 아닐 것 같았다.
세조로 인해 사육신이나 여러 사화(士禍)가 일어나 많은 양반 가문이 씨 몰살했기에 아예 과거시험을 봐서 관직에 나가겠다는 생각을 접어 버린 양반들이 근방에 많았다.
‘나름 왜란이나 호란이 없던 시기라 살아갈 만하다고 생각했는데, 평화로운 시기에는 사화로 죽어나가는구나. 조선은 참으로 살기 힘든 곳이었어. 에혀..’
어떻게든 편안하게 살기 위해서는 내가 돈을 만들어내는 능력이 필요했다.
그게 닭을 개량하여 양계장을 운영하는 일이었다.
품종을 고정시키고, 생육에 체계를 잡아둘 수만 있다면 그 닭들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몇 배나 많아질 터였다.
춘봉은 자신의 곁채로 가지 않고, 집안의 닭을 키우는 곳으로 움직였다.
이때의 닭은 싸리나무나 대나무를 엮어 만든 ‘어리’라는 닭장에 길렀는데, 닭장이라고 하기보다는 엉성한 싸리나무로 만든 닭집이라고 하는 게 맞았다.
소쿠리나 광주리를 엎어 놓은 것처럼 만들어져 있었는데, 이 어리도 주로 밤에만 들어가서 자고, 평상시에는 집안 마당을 그냥 돌아다니게 방목해서 키우고 있었다.
[꼬꼬.삐약 삐약.꼬꼬댁.]
벼슬이 있는 수탉은 다른 곳에 있는지 아예 보이지 않았고, 병아리와 어느 정도 자란 중병아리, 암탉들이 보였는데, 닭의 크기나 색이 다양했다.
‘역시 닭 대부분이 살이 없네. 공원의 닭둘기보다도 살이 없다니. 이 놈들을 키운다고 육계나 산란계로 품종개량이 가능할까? 한 10년?’
“언년아 부채질은 이제 그만해도 된다. 집안에 닭은 저게 전부이더냐?”
언년이는 춘봉의 질문에 당황했는데, 그녀도 집안의 닭이 얼마나 있는지를 모르는 것 같았다.
“아니 되었다.”
‘우선 닭을 방목이 아닌 가두어 키워서 닭의 무게를 늘리고 고기의 식감이 부드러워지는지부터 확인해보자.’
“응?”
대충 구상이 잡히자 곁채로 가려는데, 붉은색의 벼슬을 멋지게 가진 흰 닭이 두리번거리며 오고 있었다.
‘저 수탉은 생김새가 꼭 레그혼(Leghorn) 같은데. 아!!?’
깃털이 올라오는 중병아리와 암탉을 다시 살펴보니 기본적으로 닭을 생각했을 때 떠오르는 갈색의 닭털을 가진 녀석들이 절반 정도 되었고, 나머지 절반은 흰색의 털을 가진 녀석들이었는데, 털색은 달라도 닭들의 체형이 다 비슷했다.
‘조선시대는 교통이 발달하지 못해서 고립된 채 번식되어 품종이 자연적으로 고정된 닭들이 있을 수도 있겠어.’
조선 팔도를 다 뒤져보면 우리맛닭에는 부족할지 몰라도 고립되어 번성한 육계와 비슷한 맛을 내는 닭이 있을지도 몰랐다.
“언년아, 오일장이나 큰 장이 서는 장소와 날짜를 좀 알아 오너라. 아, 아니다. 내가 알아보마.”
몸종처럼 따라다니는 언년이에게 장이 서는 것을 알아보라고 일을 시키려고 했지만 나보다 1살 어린 언년이에게는 힘든 일일 것 같았다.
‘제대로 된 사람이 필요한데. 글도 읽을 수 있고 일을 맡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필요해. 누구 없을까.’
이몽룡에게는 방자가 있었고, 춘향이에게는 향단이가 있었듯이 말귀를 잘 알아듣는 똘똘한 사람이 필요했다.
‘어디 방자, 향단이 인력 파견 업체나 외주 업체 같은 건 없나...’
***
“도련님이 일단 실으라고 해서 달구지에 실었는데, 진짜 어르신이나 큰 도련님이 아셔도 괜찮은 겁니까요?”
“괜찮다니깐 그러네. 박복 아범은 걱정하지 마시게나.”
춘봉은 박복 아범에게 쌀 한 말과 보리 두 말, 면포 한 필을 소달구지에 실으라고 했는데, 박복 아범은 짐을 실으면서도 근심 걱정이 앞섰다.
이 일이 큰 도련님 몰래 하는 일이거나 일이 잘못되면 결국 욕을 듣고 경을 치는 사람은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겨우 서 말을 지고 가는 데 소달구지를 쓰게 되면...”
“어허 내가 사 올 게 많아서 끌고 가는 거라니까. 형님이 뭐라고 하면 내가 끝까지 우겨서 들고 갔다고 하게. 그리고, 겨우 세 말이라 해도 지게로 지고 가면 힘들어.”
춘봉은 나름대로 박복 아범을 배려해주고자 지게로 들게 하지 않고 소달구지를 꺼내었는데, 편의를 봐준 것으로 본인이 불안해하니 답답했다.
“박복이 너도 힘들 텐데 소달구지에 앉아 가거라.”
소달구지 옆에서 걷고 있는 박복이에게 소달구지에 타라고 했다.
하지만 박복이는 제 아비의 눈치를 보며 소달구지 옆에 서서 손만 올린 채 걸었다.
박복이는 11살의 소년으로 역병 뒤처리를 위해 관에 동원되었다가 어제 오전에야 집으로 돌아왔었다.
역병의 뒤처리에 동원되어 일을 했기 때문인지 뭔가 어두운 느낌이 나는 녀석이었다.
우리 세 명이 향하는 곳은 풍양이란 곳에서 열리는 오일장이었는데, 풍양은 동쪽으로는 상주, 북쪽으로는 문경과 맞닿아 있었고, 낙동강의 휘어 흐르는 물길을 끼고 있어 여러 고을의 물자들이 모이기 좋은 곳이었다.
근방에서 가장 크다는 오일장이라 그런지 가는 길에 짐을 들고 가는 이들도 많이 보였다.
없는 살림에 뭘 그렇게 바리바리 들고 가는지 안쓰러워 짐을 달구지에 실어라고 권했다.
“아이고 나으리. 아닙니다요. 일 없습니다요.”
“아니, 내가 훔쳐 가는 것도 아니고, 같은 풍양장에 가는 길인데 뭐가 그리 무서운가?”
“그, 그게...”
춘봉은 나름대로 호의를 베풀고 있었지만, 그 호의를 받아들이는 자들은 그 호의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호의를 받아들여 짐을 달구지에 올렸을 때 양반 도령이 짐을 헤집거나 할지도 모른다는 걱정근심에 호의를 받아들이는 것을 겁내었다.
‘대충 양반이란 자들의 행패가 어떤지 알 것 같구나. 쉽게 어울리고 편하게 다가가기가 힘들다는 거겠지.’
자기 몸이 편해지는 일임에도 양반이 타고 있기에 눈치를 보고 아예 우리보다 늦게 움직이기 위해 슬그머니 뒤로 물러나는 자들을 보니 답답했다.
새벽 해뜨기 전 출발했기에 정오가 되기 전에 장이 서는 곳에 도착할 수 있었는데, 여러 고을의 물산이 모이는 장날이다 보니 그 규모가 컸다.
잠실 종합운동장 크기의 넓은 땅에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흥정을 하고 있었는데, 군중(群衆)이라고 할 만했다.
춘봉은 먼저 천천히 장터를 한번 둘러보았다. 그리고, 예상대로 닭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사람이 있는걸 보자 기분이 좋아졌다.
‘전문적으로 닭을 판매하는 자가 있다면 분명 일정 규모 이상의 사육을 하고 있다는 말이겠지.’
다들 싸리나무나 대나무로 만든 어리 통에 닭을 담아 팔았는데, 생각보다도 닭의 품종이 다양했다.
일반적인 모양새의 닭은 물론이고, 꼬리가 두자(약 60cm) 가까이 긴 수탉과 꿩처럼 여러 색이 섞여 있는 화려한 닭도 있었고, 청색 털을 가진 청계도 여러 종류가 있었다.
‘장에 오길 잘했어. 물류가 연결되기 힘든 시대인 만큼 닭들도 고립되어 고정 번식된 거야. 그래서 종류가 다양한 거야.’
춘봉은 이런 상황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육계의 형질을 가진 닭도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보게. 여기 있는 닭 중에서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닭은 어떤 닭인가? 그리고 키웠을 때 어느 닭이 가장 커지는가?”
오리나 꿩은 취급하지 않고 오로지 닭만 취급하는 주걱턱의 상인에게 물었는데, 옆에 서 있는 박복 아범을 힐끗 보더니 나를 보고 답을 했다.
“큰 닭을 찾는 이유가 고기양이 많은 걸 원하기 때문이오? 그렇다면 저 검은 닭이 가장 클 거요.”
“그럼 고기양이 아닌 맛이 가장 좋은 닭은 어떤 닭이오? 어느 게 가장 맛있소?”
“직접 드시려고 하는 거요? 특이하구랴. 양반이 직접 닭을 사러 오다니. 천것들이야 양만 많으면 된다지만, 반가(班家)의 자제분이신 것 같은데..그렇다면 저 갈색 닭을 사가면 될 것이오.”
주걱턱의 상인은 크기가 그리 크지 않은 갈색 닭을 권했는데, 부리가 흰색에 가까운 것을 뺀다면 다른 닭들과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외형이었다.
“저 닭이 제일 맛있는 게 맞소? 다른 닭들과 맛이 어떻게 다른 것이요?”
“그건, 저 닭이 고기가 연한 서라벌 닭이기 때문이오. 크기는 보통인데 고기가 연해서 반가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닭이오.”
상인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길 했지만, 서라벌 닭이라는 소리에 머리에 떠오르는 단어가 있었다.
‘맞아! 계림(鷄林)! 계림을 잊고 있었어!’
*
[작가의 말]
제목에 있는 자지는 중국어로 치킨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러니 오해하지 말아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