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5권 - 9화 (502/513)

《502》2부 25권 - 9화

유충일이 광주 덩치들과 버티고 선 객실이었다.

조성호의 안내를 받아 들어선 강장문과 곽정윤, 오상현은 객실 안에 서 있는 덩치들을 보고 움찔했다.

“와서 앉아.”

소파가 아닌 4인용 테이블이었다.

권력이니 돈이니 안 먹힌다며 나채상의 따귀를 때렸던 강성태, 야쿠자 두목에게 손가락을 자르라고 차갑게 지시했던 강성태의 한 마디에 얌전해진 세 사람이 테이블로 다가왔다.

“앉으라니까.”

재차 강성태가 권하고서야 세 사람은 자리에 앉았다.

“마실 것 좀 줘.”

“예, 형님.”

냉장고에서 네 개의 작은 병을 꺼낸 조성호가 컵에 옮겨 담아서 테이블로 가져왔다.

“맛있게 드십시오, 형님.”

강성태가 잔을 들기 무섭게 예의상 마신다는 투로 세 사람이 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서울지검장, 다선 국회의원, 번듯한 기업의 회장, 그들이 지금 차지한 위치만 봐서는 존경받을 만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었다.

빌어먹을 탐욕만 부리지 않았다면, 저녁 8시에 강성태를 찾아와 고개 조아리거나 반말 들을 일도 없었다.

왜 이렇게 살까.

간짜장 대신 짜장 먹고, 검사 일에 충실하며, 강남 50평대 아파트와 삼각별 승용차를 탐내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잔을 내려놓은 강성태는 세 사람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나를 보자는 이유가 뭐야?”

“고검장을 통해 나 이사장이 벌인 일에 관해 들었소. 우리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자리에 참석하는 바람에 강 회장을 오해했었소.”

먼저 입을 연 건 곽정윤이었다.

강성태의 표정을 살핀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우선 오전에 있었던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유감을 표하고, 이를 계기로 보다 발전적인 관계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 자리에 왔소.”

선거 유세장에 나선 사람처럼 다분히 형식적인 태도와 음성이었다.

“피곤하게 굴지 말고 진짜로 찾아온 목적을 말해.”

강성태의 시선을 받은 강장문이 어쩔 수 없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늦어도 내일 오전이면 일본에서 발표가 있을 거 아닙니까? 연백국의 지난 잘못과 나채상 이사장의 죄를 오늘로 묻고, 더는 문제 삼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강준이 무슨 짓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강장문은 제법 공손한 태도를 보였다.

강장문의 답을 듣고 난 강성태는 당신도 한 마디 해보라는 투로 고개를 돌렸다.

“나는 사업하는 사람입니다. 기업을 운영하는 데 많은 도움을 받았고, 그 은혜를 갚으려다 보니 나 이사장의 부름을 거절하지 못했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새롭게 출발하는 연백국에 적극 협조하겠습니다.”

이런 비겁한 인간이 혼자만 빠져나가겠다는 거냐?

곽정윤이 억울한 눈으로 오상현을 힐끔 보았다.

“믿어도 됩니까?”

점잖게 건넨 강성태의 말투에 오상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믿어주십시오.”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 직후였다.

휙, 꽈악.

강성태는 대뜸 팔을 뻗어 맞은 편에 앉은 오상현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어? 왜 이러십니까?”

화들짝 놀란 강장문과 곽정윤이 상체를 뒤로 빼는 동안, 강성태는 당황한 오상현을 붙들고 식탁에서 몸을 일으켰다.

“강 회장님? 발전적인 관계를 바라고 온….”

강성태가 멱살을 당겨 눈을 들여다보자 급하게 항변하던 오상현이 입을 다물었다.

“기업가 협회? 짧게는 몇 년, 길게는 수십 년을 개발한 신제품을 돈으로 후려쳐서 죽인 뒤에 일본 회사에 파는 게 기업을 운영하는 거야?”

“기술이 있어도 운영을 못 하면 실패하는 게 사업 아닙니까?”

“그러니까 협회에 속한 회사들이 일제히 달려들어 말려 죽인 뒤에 그 기술을 일본 회사에 팔아먹는 게 사업이라는 거지?”

“나는….”

짜아아아아악!

“푸후! 후!”

따귀를 제대로 맞은 오상현이 푸들거리며 볼과 입술을 떠는 바람에 마치 물에 빠진 사람이 급하게 토해내는 듯한 숨소리를 터트렸다.

“당신이 협회 소속 회사들과 달려들어 짓밟았던 사람들의 고통이 조금은 이해돼?”

“됩니다. 이해됩니다!”

짜아아아아악!

“커흑! 큭! 꺼으윽!”

“은혜를 갚는 게 우리 기업들 죽여서 그 기술을 일본에 넘겨주는 거냐?”

“아닙니다!”

짜아아아아아아악!

“아니라는 걸 알면서 기업가 협회를 동원해서 힘없는 중소기업을 무너트렸어?”

“잘못했습니다!”

짜아아아아아악!

네 번째 따귀를 맞는 순간, 오상현의 몸에서 힘이 빠지며 아래로 축 늘어졌다.

“다섯 대로 끝내려고 했는데 괜히 죽은 척하면 스무 대를 다 채우는 수가 있어.”

강성태의 말이 떨어진 직후였다.

늘어졌던 오상현의 몸이 꿈틀대며 악착같이 몸을 세웠다.

“혹시 또 정당하지 못한 욕심이 들면 지금 이 순간을 떠올려. 알았어?”

다급한 마음에 오상현이 고개를 급하게 끄덕였다.

“대답은 입으로 하고.”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인 오상현이 아차 하는 얼굴로 강성태를 보았다.

거기까지였다.

짜아아아아아아악!

강성태가 세차게 휘두른 따귀를 맞은 오상현이 오른쪽으로 기우뚱한 뒤에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졌다.

강성태가 시선을 탁자로 돌리자 강장문과 곽정윤이 동시에 마른침을 삼켰다.

“곽정윤 의원님?”

“커흑.”

강성태가 부른 직후에 곽정윤이 거북한 비명을 토해냈다.

꽈악. 콰드등.

강성태가 멱살을 잡아당기자 그의 발에 걸린 의자가 뒤로 넘어갔다.

“일본 국왕의 생일 파티를 왜 우리나라에서 하는 거지?”

“그야 이웃 나라이기도 하고.”

“그럼 중국도 해야지? 러시아는?”

“거기는 왕이 없어서….”

기가 막혀 웃는 강성태를 향해 곽정윤이 비굴한 웃음을 올렸다.

짜아아아아악!

“아흑!”

짜아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악!

“커흑! 끅! 크흑!”

코와 입술이 단박에 터져서 피가 튀었고, 네 번째 따귀 뒤에는 어금니 세 개가 흘러나왔다.

“우리가 발전한 게 일본의 근대화 덕분이라고? 그럼 끌려가서 덧없이 죽은 우리나라 사람들은 뭐야? 힘이 없는 것도 죄라고?”

“허흑! 흑!”

뭔가 변명하려는 데 코와 목에 핏물이 걸려서 제대로 말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힘이 없는 게 죄라고 했으니까 억울한 것도 없지?”

찌아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아악!

‘다섯 대라며?’

일곱 번째 따귀를 맞았을 때 곽정윤의 눈에 억울한 감정이 스치듯 지나갔다.

짜아아아아악!

마지막 따귀를 맞은 곽정윤이 뻣뻣하게 옆으로 넘어갔다.

재수가 없었을까.

콰자작.

하필이면 자빠져 있는 의자 위로 쓰러진 바람에 갈비뼈 한 대는 부러졌겠구나 싶었다.

“이건 아냐.”

그래도 지검장이라고 기개는 남아 있었던 모양이었다.

“여섯 대.”

“고검장의 얼굴을 봐서라도 이건 안 되는 일이지. 그리고 내가 무사해야 앞에 두 분을 설득할 게 아닌가.”

“일곱 대.”

“이봐, 강 회장?”

“여덟 대.”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어야지.”

“아홉 대.”

너는 진짜 죽는다.

강성태가 독한 눈빛으로 고개를 꺾는 순간이었다.

강장문이 의자를 조심스럽게 뒤로 빼며 몸을 일으켰다.

“지검장이라면 억울한 사람, 힘이 없어서 당한 사람들을 도와서 죄지은 인간들을 벌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습니다.”

다시금 강장문의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다.

“그걸 아는 사람이 연백국의 돈을 처먹으며 저 사람들의 죄를 덮어줬어?”

“그 점은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강장문의 답을 듣는 순간, 왜 그런지 강성태는 서글픈 웃음이 새 나왔다.

누군가는 연백국 회원에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나서 절박한 심정으로 검찰을 찾았을 텐데, 저 인간은 일본의 돈을 처먹고 사건을 덮었다.

마치 이학의의 기간제 교사 성폭행 사건을 덮어준 연순동처럼 말이다.

“죄송합….”

쩌어어어억!

강성태의 주먹에 맞은 강장문이 춤을 추듯 거친 스텝으로 뒤로 밀렸다가 벽에 부딪혔다.

일부러 기절하지 않게 볼을 갈겼는데 광대뼈가 주저앉은 것만은 분명했다.

“끄으으….”

강성태는 벽에 기댄 채 고통에 몸을 비트는 강장문에게 다가갔다.

“여덟 대 남았으니까 이 꽉 깨물어.”

“끄윽.”

광대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이를 악물었던 강장문이 고통에 찬 비명을 토해냈다.

**

예상보다 김삼문은 빠른 속도로 용서를 받아냈다.

가장 먼저 피해 금액을 돌려준 게 컸고, 다음으로 공장이 영등포 쪽에 몰려 있었으며, 마지막으로는 피해자들이 그만큼 순박한 성정인 덕분이었다.

일곱 번째 사과를 받고 난 다음이었다.

주차장으로 내려온 김삼문에게 아르윈이 캔커피를 건넸다.

“감사합니다.”

김삼문의 인사에도 아르윈은 무심하게 손에 하나 더 들고 있던 캔커피의 뚜껑을 당겼다.

“가디언스파는 알죠?”

“압니다.”

“오늘이 김삼문 씨 두 번째 생일이라고 생각하세요.”

말을 던지고 캔커피를 마시는 아르윈을 김삼문이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머리통을 깨물어 먹게 생긴 최치곤이 공손하게 대하는 모습, 손등에 해적 문신을 새긴 필리핀 조직원들이 어려워하는 태도에 주눅 든 탓이었다.

“안다니까 긴말 않겠습니다. 필리핀에서 악어 밥으로 던져주려는 걸 피해변제만 하고 돌려보내라고 한 분이 큰형님이십니다.”

“예에.”

“뭐해요? 얼른 드세요. 그래야 용서받으러 가죠.”

“예. 감사합니다.”

급하게 뚜껑을 딴 김삼문이 캔커피를 입으로 가져갔다.

“살다 보면 돈 만 원이 하늘만 하게 보일 때 있거든요. 배고파서, 집에 누군가 누워 있는데 약값이나 몇 푼 안 되는 병원비가 없어서 돈통에 손을 넣었다면 몰라도, 내 배 불리겠다고 다른 사람 피눈물 빼면요.”

편안하게 말하던 아르윈이 김삼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아파트 주차장의 불빛을 받은 목덜미의 해적 문신이 김삼문을 향해 잔인한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당장은 달콤할지 몰라도 길게 가지 않습니다. 알았어요?”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하겠습니다.”

“갑시다.”

남은 캔커피를 마저 마시란 투로 눈짓을 던진 아르윈이 고개를 돌렸다.

“출발하자.”

나직하게 건넨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동차 건너편에 있던 최치곤이 다가왔다.

“나머지는 제가 혼자 돌겠습니다, 형님.”

“보스께서 함께하라고 말씀하셨는데 그건 아니지. 얼른 끝내고 야식 먹자.”

“예, 형님.”

고개 숙이는 최치곤의 팔을 다독여준 아르윈이 뒤편에서 기다리는 승용차를 향해 움직였다.

“용서받더니 속은 좀 편해진 모양이네?”

“죄송합니다.”

“그러게 왜 그런 짓을 했어?”

“제가 미쳤었나 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당신 소식은 이모부 통해서 얼마든지 듣거든? 그러니까 말로만 나불대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짧게 으르렁댄 최치곤이 입맛을 다셨다.

과연 김삼문이 말대로 반성하는 삶을 살까, 아니면 더욱 철저하게 준비해서 아예 찾지 못할 곳으로 튈 계획을 세울까.

선택은 오롯이 김삼문의 몫이었다.

**

조성호는 광주 덩치들과 함께 코와 입술이 터진 세 사람에게 물수건을 건네주었다.

“우선 이거로 연백국의 일은 넘어가는데 앞으로 독립유공자 후손을 돕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나랑 또 이곳에서 만나게 돼.”

“으에.”

입을 제대로 벌리지 못하는 세 사람이 이상한 소리로 답을 대신했다.

“그동안 받은 금액 모두 토해내고. 알았어?”

“예에.”

강성태는 말없이 세 사람을 바라보았다.

지닌 것보다 더 가지겠다는 탐욕에 물들어 이 꼴이 된 세 사람이 과연 그동안 먹었던 돈을 제대로 내놓을까 하는 의심이 들어서였다.

할 수만 있다면 법의 심판에 맡기고 싶었다. 그러나 죄를 밝혀야 하는 사람이 강장문이고, 판결을 내리는 사람이 나서희인 상황이라면 올바른 결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어쩌다가 이런 인간들이 법 위에 앉았지?

강성태가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스마트폰 우는 소리와 함께 유충일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받아봐.’

강성태의 눈짓을 받은 유충일이 “실례하겠습니다, 형님.”하고는 몸을 돌렸다.

짧은 틈 뒤에서였다.

유충일이 급한 눈으로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