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5권 - 8화 (501/513)

《501》2부 25권 - 8화

제4장. 같은 연백국이잖아요?

신월동 숙소 덩치가 운전하는 승용차 안이었다.

“어이, 김삼문 씨?”

“예?”

조수석 뒤에 앉은 최치곤의 쇳소리 가득한 음성에 김삼문이 화들짝 놀랐다.

“무슨 배짱으로 우리 큰형님의 이모부 돈을 슈킹 쳤어?”

“몰랐습니다. 알았다면 그랬을 리가 있겠습니까?”

“그럼 큰형님 이모부가 아닌 사람들 돈은 슈킹 쳐도 된다는 거야?”

“아닙니다. 잘못했습니다.”

“씨발. 대꾸는 졸라리 뺀질대게 하네. 잘못인 걸 아는 사람이 왜 남의 사업장과 가족이 무너질 걸 알면서 피 같은 돈을 슈킹 쳐?”

으르렁대는 최치곤의 말에 김삼문은 입을 다물었다.

“내가요. 김삼문 씨 배에 회칼 쑤셔 넣고서 치료해주고, 합의하면 상처 없어져?”

“아닙니다.”

답을 하는 김삼문의 머리를 버적버적 씹어먹을 것처럼 최치곤이 눈을 부라렸다.

“내가 당신 그냥 산에 데려가서 묻어버리고 싶은데 이 악물고 함께 사과하러 다니는 거야. 알았어? 그러니까 산에 가서 묻히기 싫으면 따귀를 맞는 한이 있더라도 용서를 받아내. 괜히 돈 갚았다고 뻗대지 말고.”

쇳소리 가득한 음성으로 말을 건넸던 최치곤이 세모꼴 눈을 홱 비틀어 김삼문을 노려보았다.

“왜? 아니꼬워?”

“아닙니다.”

“그런데 왜 대답을 안 해?”

“죄송합니다.”

“후-.”

최치곤은 숨을 길게 내쉬었다.

“혹시 내가 당신 바로 산에 데려갈까 봐 우리 보스가 아르윈 형님 붙이신 거니까 생각 잘해.”

“감사합니다.”

“이모부님은 우리 보스가 사과하라고 지시한 거, 모르시거든. 괜히 가서 신강남파가 어쩌니, 강성태라는 분이 저쩌니 하면 바로 나랑 같이 산에 가는 거야. 알았어?”

“예.”

공손한 김삼문을 최치곤은 몹시 불편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

아르윈과 통화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경찰서에서 지금 막 목동으로 출발했다는 연락.”

통화를 지켜보던 참이어서 이병렬은 이미 내용을 짐작한 눈치였다.

“이번 일 정리되면 배근이 형님과 교창이 형님한테 따로 지시하고, 저기 진용이랑 소국이 시켜서 인천하고, 천안 한 바퀴 돌려.”

무슨 소리인가 하는 강성태를 향해 이병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신강남파라는 이름 가장 위에 보스가 있어. 아무리 보스가 지금처럼 썩어빠진 인간들 잡도리하고, 야쿠자를 두들긴다고 해도, 아래쪽 어떤 놈이 술 마시고 여자 건드리거나 사소한 시비에 칼부림하는 순간, 그 모든 비난이 보스에게 달려들어.”

이건 전에도 이병렬이 염려하던 문제였다.

“보스처럼 바른 목적을 지닌 게 아니라 어릴 적부터 나쁜 짓만 하다가 이 바닥에 들어온 놈들이 깡패가 된다는 점을 잊지 마. 지금이야 눈치 보느라 사고가 없지만, 언제까지 바른 생활만 할 거라고 기대하지도 말고.”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방 숙소에 있는 덩치들만 해도 그래. 아는 사람 부탁으로 돈이라도 받으러 다녀봐. 그 새끼가 굳이 떠들지 않아도 신강남파가 나섰다는 말이 바로 돌지. 거기에 산에 데려가서 묻기라도 하면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뒤통수 맞는 거야.”

“솔직하게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람 괴롭히던 놈들이 결국 깡패 된 거잖아. 이 바닥에 제대로 된 놈이 몇 명이나 되겠어? 그나마 보스가 일반인들에게 머리 들지 말라고 경고한 게 있어서 지금껏 조용한 거지, 언제고 사고는 터져.”

다독이듯 강성태에게 말을 건넨 이병렬이 착잡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안 들어가?”

“저녁 먹고.”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던진 이병렬의 질문에 답한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연순동의 이름을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여보세요?”

- 연순동입니다.

“말해.”

- 강장문 지검장께서 전화하셨습니다. 곽정윤 의원, 오상현 회장과 함께 만났으면 한다는 뜻을 전해달랍니다.

“이유가 뭔데?”

- 물어보기 어려워서 정확히는 모르지만,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려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강장문이 찾아올 거란 언질은 이미 들었다.

찾아오겠다는 이유를 듣지는 못했지만, 독립유공자의 후손을 지원하겠다는 보도에 이름을 올려보겠다는 얄팍한 속셈, 거기에 강성태가 고춧가루를 뿌리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 빤히 속이 들여다보이는 의도여서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높은 자리에 있는 양반들이 괜히 깡패 두목 만나는 거 들켜봐야 좋을 거 없을 테니까 오늘 저녁 8시에 강남 호텔에서 보자고 해.”

- 객실에서 만나자는 말입니까?

바로 그 객실에서 시원하게 두들겨 맞았던 연순동의 음성에 묘한 흥분이 담겨 있었다.

“그게 좋지 않겠어?”

-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연락해서 의견 물어보겠습니다. 괜찮으시면 객실 번호를 문자로 주십시오.

지검장이 따귀 맞는 게 이렇게 들뜰 일인가?

통화를 끝낸 강성태는 기가 막힌 심정으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

강장문과 헤어진 곽정윤은 다시 나채상의 병실로 들어갔다.

퍼스트 클래스의 좌석을 연상시키는 거대한 침대에 누운 나채상은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의식이 없었다.

“좀 어떠신가?”

“나가시고 나서 잠깐 깨어나셨었는데 정신적인 충격이 커서 진정제 맞고 다시 주무세요. 지검장은 뭐라던가요?”

곽정윤을 맞아 잠시 자리에서 일어섰던 나서희가 지친 얼굴로 질문을 건넸다.

“우리가 모르는 일이 있었던 모양이오.”

“모르는 일이라니요?”

“내가 말하기는 어려우니 나중에 나 이사장이 깨어나시면 직접 들으시는 게 좋겠소.”

남편 김병일을 돌아보았던 나서희가 다시금 곽정윤을 바라보았다.

“지검장이 적당하게 빠져나가려나 본데 우리 부부도 그렇지만, 연백국 회원들이 가만있지는 않을 거예요.”

“연백국의 설립 목적이 바뀐 상황이오. 게다가 나 이사장께서 워낙 크게 걸려 있어서 당장은 지검장도 손을 쓸 방법이 없었다고만 알아주시오.”

“그러니까 그 잘못이 뭐냐고요?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의원님은 물론이고, 의원님과 관련된 분들의 재판 결과가 불리하게 나올 수 있어요.”

“여보!”

과한 경고를 내뱉는 나서희를 그녀의 남편 김병일이 나직하게 불렀다.

비록 자세를 낮췄지만, 곽정윤은 세 번이나 지역구에서 당선될 정도로 능력과 수완이 있었다.

증거보다 감정에 따라 판사의 판결이 결정된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떠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만, 나서희의 표독스러운 말을 들은 직후에 그는 바로 표정을 무겁게 가라앉혔다.

“방금 했던 말은 죄송해요. 아버지께서 저렇게 되시니 감정에 치우쳐서 실언을 했습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뻑뻑한 분위기에서 오간 대화였다.

이대로 헤어지는 건 양쪽 모두 불편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특히, 곽정윤은 어떤 식으로든 법원과 얽혔을 때, 불리한 결과를 받게 될 확률이 높았다.

“나 이사장의 체면을 생각해서 입을 다물었으나, 우리 부장판사의 심정을 생각하니 그 또한 도리가 아닌 듯싶소. 사실 나 이사장께서 살인을 지시하셨답니다.”

“뭐라고 하셨어요?”

말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서희를 향해 곽정윤이 재차 입을 열었다.

“연순동 부장검사가 이미 증거를 확보했고, 고검장에게 보고한 상태였소. 또, 그런 이유로 연순동 부장검사가 연백국과 나 이사장을 조사했는데 그 과정에서 120억 원에 달하는 횡령 금액이 나왔고.”

숨을 내뱉는 나서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살인 교사는 몰라도 횡령 사실과 그 규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아는 눈치였다.

“하필 살해하라고 지시한 대상자가 강성태인데 그 역시 살인 교사 증거와 횡령 사실을 확보한 모양이오. 이런 이유로 고검장은 오히려 이번 일을 덮는 데 최선을 다하는 모양이었소.”

“사실이 그렇더라도 검찰이 강성태만 처벌하겠다면 끝나는 일 아니겠어요?”

“일본 측 연백국의 기무라 쿠니오키 이사장이 강성태와 손을 잡았소. 만약, 우리가 강성태만 처벌하겠다고 나서면, 당장 그들이 들고일어납니다.”

“같은 연백국이잖아요?”

“같은 폭력조직이라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나서희의 항의를 곽정윤은 구렁이 담 넘어가듯 넘기고 있었다.

“최악의 경우에는 나 이사장이 서명한 서약서가 공개될 수도 있소.”

쐐기를 박는 듯한 한 마디에 나서희는 더 이상 따지고 나서지 못했다.

“어떻게 하시겠소? 강성태를 잡자고 나 이사장의 살인 교사와 횡령을 만천하에 밝히고.”

“그건 무죄 판결이 나도록 제가 나서겠어요.”

“일본에 충성한다는 서약서는 어떻게 해결하시겠소?”

“부인해야죠.”

“일본에서 그동안 보내 준 돈마저 밝히면 더 큰 화가 닥칠 텐데 그것도 감당하실 거요?”

곽정윤의 뻔뻔함에 말려드는 바람에 어느새 나서희가 궁지에 몰려 있었다.

“지검장과 나는 우리 이사장의 명예를 지키려고 강성태를 만날 의사까지 있었소. 그러나 부장판사가 그리 강경하게 나온다면 나 역시 사건을 무마하는 일을 중단하겠소.”

이럴 수도, 저러지도 못하는 나서희가 어버버 하는 얼굴로 대꾸를 내놓지 못했다.

**

강명그룹 회장 정세원은 집무실로 들어서는 은선곤을 손짓으로 불러서 곧바로 소파를 가리켰다.

“앉아.”

“예, 회장님.”

은선곤이 앉은 다음이었다.

정세원은 기가 막힌다는 투로 은선곤을 보았다.

“강성태 회장 말이다. 아예 연백국을 거꾸로 세우는 모양인데 알고 있었냐?”

“죄송합니다, 회장님. 아직 못 들었습니다.”

은선곤의 표정을 살핀 정세원이 나직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고강준 고검장이 아예 대놓고 나섰다. 잘만 수습하면 강장문 지검장, 곽정윤 의원, 그리고 오상현 회장의 지원을 받을 테고, 거기에 나와 너까지 포함한다면 이번 사건을 아예 차기 총장 자리를 위한 발판으로 만들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1인용 소파의 팔걸이 장식을 손으로 매만지며 정세원은 잠시 뜸을 들였다.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겠다만, 나는 상상도 못 했던 결과다. 이렇게 하면 아무리 나채상 이사장과 나서희 부장판사가 나서도 판을 뒤집기는 어려워. 우리나라는 판사가 아니라 검사들의 세상이니까.”

혼자서 떠들던 정세원이 물끄러미 은선곤을 바라보았다.

“공사 준비는 어떠냐?”

“조만간 조사단이 현장으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그거야 보고를 받은 내용이고, 신도시 건설과 관련해 강성태 회장 쪽의 준비는 잘 되고 있냐?”

“지금까지 다른 이상은 없습니다, 회장님.”

이 정도 칭찬을 해주면 맞장구치는 맛도 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얄미울 정도로 반듯하게 답하는 은선곤을 정세원은 못마땅한 눈매로 바라보았다.

“무슨 수를 써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지. 혹자는 그걸 대세라고 하던데, 강성태 회장이 그런 모양이다. 그렇더라도 혹시나 주변에 사소한 오류는 없는지 철저하게 챙겨.”

“명심하겠습니다, 회장님.”

“이만 가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고 기조실 통해서 협조받고.”

“감사합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은선곤이 깍듯하게 고개 숙인 뒤에 집무실을 나섰다.

**

불쑥 찾아와 냅다 무릎을 꿇은 김삼문을 김진규와 장숙경이 복잡한 표정으로 내려다보았다.

“잘못했습니다, 김 사장님. 제가 나쁜 놈입니다.”

“이제 와서 이런 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나는 고소도 안 했지만, 탄원서를 써드릴 마음도 없으니 돌아가세요.”

“탄원서가 아니라 우리 김 사장님의 용서를 받고 싶어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이 사람이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어?’

김진규가 돌아보았으나 장숙경 역시 답을 하지는 못했다.

“김 사장님. 내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이번에 용서해주시면 새사람이 돼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육감으로 바퀴벌레를 잡는 장숙경이었다.

그녀는 애절하게 용서를 바라는 김삼문의 표정에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감정이 담겨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합의서나 탄원서를 바라지 않는 데다, 진심으로 반성하는 기색도 아닌데, 또 어떡해서든 용서는 받아야 한다?

“혹시 치곤이 때문에 이러세요?”

“예?”

옆에 섰던 김진규와 무릎 꿇은 김삼문이 동시에 장숙경을 보았다.

최치곤은 모르는 거 같고.

“아니면 성태가 뭐라고 했나요?”

“예에? 아닙니다! 절대 저는 강성태라는 분을 모릅니다! 시키신 적도 없고요.”

“성태의 성이 강 씨인 건 어떻게 아셨어요?”

날카로운 장숙경의 질문에 김삼문이 난처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강성태라는 분이라니요? 시키신 적도 없다고요? 왜 그렇게 존칭을 쓰세요?”

“모릅니다! 저는 모르는 분입니다!”

부인하는 김삼문을 장숙경은 의심 가득한 눈으로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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