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2》2부 24권 - 19화
다른 사람 아닌 강성태가 직접 지시한 일이었다.
함부로 동생들에게 맡겼다가 틀어지면, 박노익은 물론이고 독을 품은 이병렬부터 줄줄이 나서서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더구나 요코하마 시내를 가로지른 일로 누구보다 강성태를 우러러보는 이교창이었다.
야쿠자들이 머무는 호텔로 향하기 전, 이교창은 전화를 먼저 넣었다.
“그놈들 전부 연회장에 모아. 여차하면 오늘 공구리 칠 수 있으니까 독하게 마음먹어.”
호텔 주차장에서 대기하던 덩치들과 복도를 지키던 덩치들이 야쿠자들이 머무는 방으로 몰려갔고, 이교창이 또 숙소 덩치들을 불러서 달려간 바람에 숫자는 백을 훌쩍 넘겼다.
“이쪽입니다, 형님.”
호텔을 지키던 덩치 한 명이 이교창을 향해 상체를 숙인 뒤에 엘리베이터를 가리켰다.
숫자가 워낙 많아서 이교창과 늘 따르는 심복 세 명만 엘리베이터를 이용했고, 나머지 숙소 덩치들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오셨습니까, 형님?”
이미 전화로 독한 지시를 받았던 참이라 복도에 서 있던 덩치들이 긴장한 얼굴로 이교창을 맞았다.
복도를 걸은 이교창은 3층에 있는 연회장으로 들어갔다.
모두 스물일곱 명의 야쿠자들이 줄줄이 바닥에 무릎을 꿇고 앉았고,
“안녕하십니까, 형님?”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둘러서 있던 부산 덩치들이 서열에 따라 상체를 깊게 숙였다.
부리부리한 눈을 돌려 안을 둘러본 이교창은 야쿠자들 앞에 놓아둔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는 중앙에 꿇어앉은 사카구치 소우타를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꺾었다.
매에는 장사 없다.
키란에게 개 맞듯 얻어맞은 상처가 겨우 아물었던 사카구치 소우타는 고룡동의 일로 이교창과 부산 덩치들에게 죽기 직전까지 두들겨 맞았다.
어설프게나 두들겼나.
고룡동의 일로 꼭지가 돌아버린 경상도 사나이 이교창이 죽어도 상관없다는 투로 나섰고, 그 바람에 사카구치 소우타는 정말 죽기 직전까지 갔다가 겨우 살았다.
그렇게 맞고도 야쿠자로서의 자존심을 간직했던 사카구치 소우타가 완벽하게 부러진 건, 오다 스미야기의 죽음, 요코하마 조직의 궤멸, 관동 연합 오야붕들의 사죄, 이어서 요코하마 시내를 행진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다음이었다.
그 뒤로 사카구치 소우타는 졸라리 때리면 신나게 맞을 줄 아는 착실한 야쿠자가 되었다.
“야!”
“예, 형님.”
넓은 셔츠 카라를 재킷 밖으로 꺼내 놓은 사카구치 소우타가 쇳소리 가득한 이교창의 부름에 잽싸게 답을 내놓았다.
매를 줄여보겠다며 ‘형님.’이라는 호칭마저 내놓는 사카구치 소우타를 이교창이 같잖다는 투로 내려다보았다.
“야, 이 씨발놈아!”
“예, 형님.”
“내가 너희 다 드럼통에 공구리 쳐서 바다에 넣으려는 걸 말리신 게 우리 성태 큰형님이시다. 그뿐이냐. 호텔에서 먹여줘, 재워줘, 그런데 이 씨발놈들아, 은혜를 원수로 갚아?”
“예? 형님?”
몇 개월 사이에 한국 깡패 다 됐다. 사카구치 소우타는.
놀란 시선을 들었다가 이교창과 눈이 마주친 그가 얼른 고개를 처박았다.
놈이라고 한국에 있고 싶었겠나.
강성태가 붙들어두는 바람에 애꿎게 호텔 방에 처박혀서 삼시 세끼를 짬뽕과 군만두로 연명했고, 그렇게만 지내도 괴로울 판에 지루할라치면 지금처럼 연회장에 불려 나와 부산 덩치들이 때리는 매를 얻어맞는 서글픈 삶이었다.
“야!”
“예, 형님!”
빠르게 답을 했던 사카구치 소우타가 얼른 고개를 떨궜다.
이교창이 고개를 옆으로 돌려서 오른쪽에 선 덩치를 불렀기 때문이었다.
이제 이교창이 지시를 내리면 부산 덩치들이 달려들 차례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강성태의 이름이 거론됐으니 오늘은 쉽게 끝나지 않을 거란 각오도 필요했다.
“더 볼 거 없다. 이 새끼들 전부 공구리 쳐서 바다에 던져!”
“예, 형님.”
이교창이 지시를 내리자 주변을 지키던 덩치들이 위협적인 대답과 함께 상체를 깊게 숙였다.
뭐가 이렇게 흘러?
놀라 고개를 든 사카구치 소우타의 시선 앞에서 이교창은 더 볼 일 없다는 투로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어떻게 견딘 삶인데?
일본에 돌아가 명예 회복할 기회를 잡는 건 관두고라도, 짬뽕과 군만두나 먹다가 죽는 일만은 벗어나야 할 때였다.
이교창이 떠나면 끝이다.
“형님!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제가 용서를 빌 기회를 한 번만 주십시오, 형님!”
“기회? 이런 씨발 새끼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서는 사카구치 소우타의 가슴을 이교창이 세차게 걷어찼다.
“커흑!”
콰작! 콱! 콰작!
“아흑! 악! 크흑! 형님! 용서를 빌 기회를 한 번만! 한 번만 주십시오!”
거친 발길질이 잠시 그친 순간에 사카구치 소우타는 이교창의 발목을 양팔로 안고서 애절하게 매달렸다.
아르윈과 횟집에서 치고받았던 성격이 남았다면 이렇게 매달릴 바에야 죽음을 택했겠지만, 오다 스미야기의 죽음과 관동 연합 오야붕들의 사죄가 그나마 지녔던 야쿠자의 자존심을 모두 흩트려놓았다.
또 하나, 강한 자에게 숙이는 속성 탓도 있었다.
관동 연합 오야붕들마저 모조리 고개 숙인 강성태, 그 절대자를 두려워하는 건 결코 부끄러운 행동이 아니었다.
“후!”
비굴할 정도로 매달리는 사카구치 소우타를 보며 이교창은 한숨을 크게 뱉었다.
이래서 강성태가 관동 연합 대가리들의 사죄를 받았을까.
아랫놈들의 기를 아예 부러트리려고?
“형님! 용서를 받을 기회를 주십시오!”
“늦었어, 이 새끼야! 지금 멕시코 쪽에서 이백 명 가까운 숫자가 일본으로 향할 준비 중이라고.”
발목을 안고 매달리던 사카구치 소우타가 놀란 눈으로 고개를 들었다.
“카르텔이라고 들어는 봤냐? 그놈들은 일본에서 모조리 죽어도 상관없단다. 아냐?”
“알고 있습니다, 형님!”
“그 인간들이 우리 성태 큰형님 지시로 일본으로 향하는 거라고, 이 개새끼야! 아예 관동 연합 씨를 말리시겠다고 이를 가셨다니까!”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지 알려주시면 제가 오야붕들께 연락해서 풀겠습니다, 형님! 제가 공을 세울 기회를 주시면 죽어서도 잊지 않겠습니다, 형님!”
“개새끼가 말은?”
카르텔이 준비 중이라는 말을 듣고 난 사카구치 소우타는 죽어도 놓을 수 없다는 투로 이교창의 발목을 더욱 세차게 붙들고 있었다.
“놔!”
“형님?”
“알았으니까 놓으라고!”
품었던 이교창의 발목을 놓으면서도 사카구치 소우타는 여차하면 다시 붙들려는 놈처럼 눈치를 살폈다.
입맛을 다신 이교창은 의자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는 심오한 표정으로 사카구치 소우타를 노려보았다.
“때리다가 정든 건 이 새끼가 처음이네, 씨발.”
잠시 고민하던 이교창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큰형님께 따귀 맞을 각오로 한 번은 연락해 주는데 허튼소리 지껄이면 바로 울대를 끊어버릴 거니까 알아서 해.”
사카구치 소우타에게 말을 던진 이교창이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연장 꺼내 놓고 있다가 내가 말하면 저 새끼 울대 끊어.”
“예, 형님.”
이교창의 뒤에 있던 세 명이 살벌한 눈매로 재킷에서 회칼을 꺼냈다.
팽팽한 긴장 속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이교창은 번호와 스피커폰 버튼을 연달아 눌렀다.
신호음이 두 번쯤 울린 뒤였다.
- 여보세요?
강성태의 음성이 나직하게 연회장에 울렸다.
“이교창입니다, 형님. 제가 형님께 맞을 각오로 전화 드렸습니다, 형님. 여기 사카구치 소우타란 놈이 형님께 먼저 용서를 빌고 일본에 전화해서 일을 풀어보겠답니다, 형님.”
강성태에게 말이라도 해볼 생각으로 상체를 기울였던 사카구치 소우타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뒤로 뺐다.
이교창의 뒤에 있던 세 명 중 한 명이 물러나라는 투로 회칼을 저었기 때문이었다.
- 흠.
강성태의 한숨이 먼저 건너왔다.
제발, 제발, 고개를 숙인 사카구치 소우타가 간절하게 강성태의 답을 기다릴 때였다.
- 앞에 있으면 바꿔 봐.
“감사합니다, 형님.”
고개까지 숙여 가며 답한 이교창이 얼른 말하라는 투로 사카구치 소우타 앞에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사카구치 소우타입니다.”
이교창이 가슴만 걷어찬 덕분에 사카구치 소우타는 그나마 말이라도 편하게 하고 있었다.
“제가 부족해서 무슨 일로 분노하셨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말씀해 주시면 일본에 전화해서 어떡해서든 일을 풀겠습니다.”
사카구치 소우타의 청이 넘어간 뒤였다.
- 연백국이라고 알지?
화를 누른 강성태의 답이 건너왔다.
“알고 있습니다.”
- 연백국의 일본 측 이사장이 오다 스미야기였었다. 그가 죽었으니까 지금은 기무라 쿠니오키일 테고. 그것도 알지?
“예!”
- 한국의 연백국 회원들이 나서서 멕시코 공사를 중단시키고, 국회의 특검을 이용해 신강남파와 우리를 도와주었던 분들을 조사해서 교도소에 넣겠단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뭐야, 진짜 이런 일 때문이었어?
이 개새끼들이 진짜 뒈지고 싶어 환장을 했나?
함께 통화를 듣고 있던 이교창의 눈이 희번덕거린 직후였다.
- 기무라 쿠니오키가 뒤에서 작업한 모양인데 내가 그 대가로 아예 관동 연합의 씨를 말려주마. 이교창에게 말해서 전화를 하게 해줄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하고 있으라고 해.
“제가 전화해서 들어본 뒤에 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형님!”
- 사카구치?
“예! 예, 형님!”
- 카르텔 조직원들이 모조리 죽고 나면 다음은 가페에서 훈련받은 대원들을 보내 주마. 너희는 멕시코 공사가 그들에게 얼마나 큰 수입인지 모르고 있어. 아카시 마오의 재산을 얻어먹을 욕심에 하루라도 빨리 관동으로 넘어가고 싶은 인간들이라는 것도.
얼이 빠진 사카구치 소우타가 대꾸조차 못 할 때였다.
- 한국의 연백국은 내가 알아서 한다. 그 뒤에 내가 직접 또 넘어가 주마.
차가운 강성태의 음성이 넘어왔다.
- 이교창?
“예, 형님.”
- 일본에 전화 한 통은 하게 해 줘. 그런 뒤에 알아서 처리해.
“감사합니다, 형님. 들어가십시오, 형님.”
통화를 마친 이교창의 눈이 하얗게 뒤집혀 있었다.
“이런 씨발 새끼들이? 뒤에서 우리 형님과 조직을 노리고 있었어?”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전화 한 통만 하면 다 밝혀질 일입니다.”
다급하게 내뱉은 사카구치 소우타의 말에 이교창은 이를 바드득 악물었다.
“여기에서 내가 들을 수 있게 통화해. 딱 한 통이다.”
지시를 내린 이교창은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야! 일본말 누가 하지?”
“제가 합니다, 형님.”
“그럼 이 새끼 전화기 주고, 너는 무슨 말을 하는지 함께 들어. 중간에 허튼짓하는 느낌이면 바로 말하고.”
“예, 형님.”
고개를 깊게 숙인 덩치가 사카구치 소우타에게 스마트폰을 전해주기 위해서 움직일 때였다.
“연장 이리 줘.”
손을 내민 이교창이 뒤에 있던 덩치에게서 회칼을 받았다.
여차하면 직접 울대를 끊어버리겠다는 눈빛과 태도였다.
**
강성태는 칠곡 휴게소에서 차를 멈추게 한 뒤에 최치곤과 함께 커피와 호두과자를 사서 벤치에 앉았다.
“궁금한 게 있는데….”
호두과자를 입에 넣은 최치곤의 질문에 강성태는 고개만 돌렸다.
“중간 간부라는 놈 잡도리할 거 없이 기무라인가 하는 새끼한테 직접 전화하는 게 낫지 않냐? 괜히 전화하게 했다가 관동 연합인지 뭐니 하는 새끼들이 도망치면 일만 꼬이는 거 아냐?”
“아카시 마오 때문에 도망가지도 못해.”
“그 여자가 밀고 들어갈까 봐?”
강성태는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넓은 주차장 한쪽에 고속버스 한 대가 멈추더니 승객들이 줄줄이 내리고 있었다.
“야쿠자는 정관계에 도움 없이는 존재하기 어려운 구조더라고. 우리만 밀고 들어간다면 네 말대로 놈들이 피할 수 있겠지. 하지만 아카시 마오를 앞세우면 이야기가 달라.”
“그 여자도 실 끊어진 연 아니냐?”
“국회의원, 깡패, 하다못해 가게까지, 일본은 자식에게 물려줘. 아카시 마오가 아무리 망가졌어도 아카시 조직과 연결되었던 정관계 사람들까지 죽은 건 아니고.”
커피를 마신 강성태는 다시 말을 이었다.
“관동 연합 대가리들이 모두 도망간 상태에서 아카시가 돈을 뿌리기 시작하면 그때는 돌아오기도 힘들어져.”
“그것참.”
호두과자의 얇은 포장지를 벗긴 최치곤이 입에 넣고는 우물우물 씹었다.
“아! 그럼 사카구치라는 새끼한테 전화하게 한 건?”
한발 늦게 궁금했던 점이 다시 생각났는지 커피를 마시려던 최치곤이 또다시 질문을 내놓았다.
“내가 전화해서 카르텔이나 가페를 보내겠다며 떠들면 놈들이 조건을 제시할 여지가 생기거든. 그런데 이미 지시 내렸다, 너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죽는다, 이런 내용을 사카구치에게서 전해 들으면 조건을 걸 여유가 없지.”
“오!”
“하나 더. 내가 일본에 데려간 숫자가 40명이었다. 그놈들이 볼 때, 눈이 뒤집힌 나는 협상 따위 없이 일단 밀고 들어가는 무식한 인간이지. 그런데 내가 전화해서 죽인다고 떠들면 무슨 생각을 할까?”
“뭔가 얻고 싶은 거라고 생각하겠구나?”
그걸 알았어?
강성태의 웃음을 알아챈 최치곤이 장난스럽게 눈을 흘겼다. 그리고는 호두과자를 꺼내 얇은 포장을 벗겼다.
“우리 멋진 서방님. 소녀가 드리는 호두과자 드세요.”
“아, 진짜!”
고속버스에서 내렸던 사람 중 몇 명이 호두과자를 내미는 인상 더러운 최치곤과 상처 가득한 연예인 스타일의 강성태가 외면하는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힐끔거렸다.
최치곤이 호두과자를 입에 넣은 직후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몸을 떨었다.
처음 보는 국제전화 번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