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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4권 - 16화 (489/513)

《489》2부 24권 - 16화

제7장. 말려도 안 들을 거지?

창으로 화사한 햇살이 들어오는 아침이었다.

투룸 빌라의 안쪽 방 침대에 누운 강성태는 식은땀에 흠뻑 젖어서 일어나지 못했다.

투두두둑! 투두둑! 투두두둑!

낮게 깔리는 AK 소총의 총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퍼버버벅. 퍼버벅. 퍼버버벅!

회백색 담벼락이 고통에 가득한 비명을 지르며 터져나갔다.

담벼락에 등을 돌린 자세로 내려앉은 강성태는 소총을 앞으로 들고서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괜찮아?”

“후! 후!”

질문을 받은 영국인 용병 스미스가 연신 거친 숨을 내뿜었다.

“스미스! 헤이!”

강성태가 악을 쓰다시피 부르자 스미스가 커다란 머리통을 돌렸다.

“뒤로 가! 가 있어!”

그는 망설이고 있었다.

스페인어 ‘마초’에서 나왔다는 마초맨 기질을 자랑하는 놈답게 덥수룩한 수염과 굵은 팔뚝, 넓은 어깨를 자랑하는 그가 겁에 질린 눈으로 가쁜 숨을 연달아 내쉬며 강성태를 바라보았다.

철컥.

LAMG 소총의 방아쇠에 검지를 건 강성태는 회백색 벽에 기대 상체를 세웠다.

힐끔 내다봤을 뿐이었다.

투두두둑! 퍼버버벅! 투둑! 퍼벅!

그런데도 연달아 날아온 총알이 의지하던 벽을 사정없이 터트렸다.

“스미스! 더 늦으면 장담 못 해!”

별명이 ‘마초맨’이었을 정도로 거침없던 영국인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움을 드러내지 않았던 그가 가장 의지하던 동료의 몸뚱이가 산산이 터져나간 이후로 입스에 걸린 사람처럼 꼼짝 못 한 채 가쁜 숨만 내쉬었다.

잘게 부서진 동료의 잔해가 그의 얼굴과 온몸을 뒤덮었던 게 원인이었겠지만, 그렇더라도 하룻밤 사이에 저렇게 됐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울 정도였다.

강성태는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

장숙경, 김민정, 최치곤, 김민재, 김진규, 보고 싶은 사람의 얼굴이 순서대로 텁텁한 느낌의 하늘을 스쳐 지났다.

투두두둑! 투두두둑!

지금 건 달려들기 전에 날린 위협 사격이었다.

이제 지옥이 시작될 테고, 어쩌면 강성태의 길지 않았던 삶이 이곳에서 끝날지 모른다.

그 직후였다.

세상이 온통 암흑에 휩싸이더니 곧바로 거대한 구덩이에 빠지는 듯 몸이 가라앉았다.

강성태는 하얀 셔츠에 깔끔한 블랙 정장 차림이었다.

왼편 가슴과 발목에 권총을 걸었고, 밖에서는 알아볼 수 없도록 등 허리에 쿠크리를 거꾸로 세워 묶었다.

양손을 앞으로 잡고서 건물 바깥을 내다보는 강성태의 왼편 복도에서 지금보다 훨씬 젊은 곤잘레스 이두안이 걸어 나왔다.

그가 세 걸음 앞으로 다가오는 순간, 강성태는 건물을 나서 승용차로 향했다.

강성태가 조수석 앞에 서자 승용차에서 기다리던 또 다른 경호원이 뒷문을 열었고, 빨려들 듯 곤잘레스 이두안이 뒷좌석에 몸을 넣었다.

승용차는 천천히 출발했다.

강성태는 조수석 천장에 손을 올린 채 속도에 맞춰 움직였다.

정문이 나왔고, 저격 위험 지역을 벗어나기 무섭게 강성태는 조수석 문을 열고 안쪽으로 뛰어들었다.

도로로 나선 직후였다.

아이스크림을 파는 이동용 차량이 왼편에서 튀어나왔다.

“밟아!”

운전기사에게 지시한 강성태는 가슴에 두었던 권총을 꺼냈다.

부으으응! 끼이이익!

속도를 높인 승용차가 급하게 방향을 틀면서 타이어 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또다시 어둠이 밀려왔다.

이번에는 익숙한 승용차 안이었다.

부모님의 사고가 일어나기 직전에 평화롭던 순간이었다.

지긋지긋하다, 진짜!

의지로 된다면 이 지긋지긋한 꿈에서 깨어나고 싶었다.

강성태가 이를 악무는 순간이었다.

“성태 씨? 성태 씨?”

걱정 가득한 음성이 들리는 것과 동시에 지금껏 강성태를 짓눌렀던 어둠이 바람결에 퍼지는 안개처럼 흩어졌다.

강성태는 힘겹게 눈을 떴다.

“정신이 들어요?”

안다미였다.

수술이 밀려서 꼼짝 못 한다던 안다미가 침대 옆에 앉아 강성태의 이마에 손을 올리고 있었다.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뱉어냈다.

안다미의 음성에 깨어나 그녀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살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몸과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로 심한 상태면 병원에 있어야지, 왜 집에서 이러고 있어요? 잠깐만요.”

몸을 일으킨 안다미는 방을 나섰다가 작은 대야를 들고 들어왔다.

“유 원장님이 퇴원해도 된다고 했어요?”

물수건으로 얼굴과 목덜미를 닦아준 안다미가 어쩌지 못하겠다는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몇 시인가요?”

“8시 30분이요. 전화해도 안 받길래 치곤 씨한테 물어봤어요. 집에 있을 거라고 해서 와봤고요.”

안다미의 답이 떨어진 다음이었다.

디지털 도어록의 입력음이 울리더니 누군가 급하게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성태야? 다미 씨?”

신발을 확인했는지 최치곤은 거실에서 부를 뿐,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치곤 씨! 들어오세요!”

“실례합니다.”

최치곤이 사람 다 됐다.

빼꼼 고개를 들이밀었던 최치곤이 강성태를 보고는 빠르게 침대로 다가왔다.

“왜 이래?”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서는 최치곤을 향해 강성태는 옅게 웃었다.

“너도 진짜 대단하다. 그렇게 앓을 정도로 지쳤으면서 어제 그렇게 무리했던 거야? 아침은?”

“내가 와서 겨우 깼어요. 가서 죽 사오려고 하는데 치곤 씨가 잠깐 여기 있어 줄래요?”

“배달시키면 되지 그걸 뭘 직접 갑니까?”

“이 아침에 배달되는 곳이 어디 있어요? 병원 근처에 죽집이 있으니까 얼른 다녀올게요.”

“그럼 위치만 알려줘요. 내가 다녀올 테니까.”

안다미에게 위치를 전해 들은 최치곤이 밖으로 나갔다.

“끄응.”

“뭐해요? 그냥 누워 있어요.”

“이럴 때 누워 있으면 진짜 못 움직입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얼굴로 바라보는 안다미 앞에서 강성태는 악착같이 몸을 세워 앉았고, 이어서 다리를 내려 침대에서 일어났다.

“다미 씨. 잠시만 거실에 계세요.”

옷을 갈아입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안다미가 거실로 나섰다.

그 직후였다.

강성태는 양팔을 머리 높이로 든 뒤에 몸을 한껏 뒤로 젖혔다.

‘끄으.’

생살이 찢어지는 듯한 고통이 온몸에서 달려들더니 곧바로 묶어놓은 것처럼 갑갑하던 몸이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이를 악물며 서너 번 더 몸을 뒤틀었던 강성태는 안다미가 가져다 놓은 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고서 거실로 향했다.

뭐지?

조금은 개운해진 강성태의 얼굴을 안다미가 의아한 눈으로 살폈다.

“커피 드실래요?”

“진짜 커피를 마시려고요?”

“버릇이 돼서요.”

강성태의 움직임을 지켜보던 안다미가 고개를 갸웃했다.

“안에서 뭐하고 나온 거예요?”

“전에 용병 생활할 때와 경호원 시절의 꿈에 시달리는 바람에 그렇지, 몸이 아픈 건 아닙니다.”

“진짜요?”

“마지막이 진짜 악몽이었거든요. 사고 나던 순간의 꿈이요. 지하차도에 들어가기 직전에 다미 씨가 깨워준 거고요.”

주전자를 가스레인지에 올린 강성태는 이어서 커피를 준비했다.

“상처는 어떻게 된 거예요?”

어쩐지 날이 선 안다미의 질문이 날아든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내가 한 번 살려줬다, 하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울었다.

“잠시만요.”

강성태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 옆에 두었던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 아르윈입니다, 형님. 급한 연락이 있어서 일찍 전화 드렸습니다.

“뭔데?”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귀에 댄 채로 거실로 나섰다.

- 필리핀에서 온 연락입니다. 김삼문이라는 사람이 형님에 대해 알게 된 모양입니다. 큰돈을 송금한 뒤에 살려달라며 매달리니까 지키던 놈들이 형님 허락이 없으면 안 된다고 나불거렸답니다.

그 인간 참.

강성태는 대답을 하지 않은 채 물이 끓는 주전자를 들어 커피 거름망 위에 부었다.

- 그 바람에 이모부님과 형님께 빌 기회를 달라고 매달린답니다. 필리핀의 보스는 지금이라도 처리해 버리는 게 어떠냐고 하시는데 뭐라고 해도 형님께서 일단 두라셔서 그 뒤로 더는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한국으로 보내 줄 수 있는지 확인하고 연락해 줄 수 있을까?”

- 알겠습니다, 형님. 필리핀의 보스께서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는 말을 꼭 전하라며 수차례 당부하셨습니다.

“지금까지 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한다고 전해줘.”

- 예, 형님.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세 개의 머그잔에 커피를 따라서 그중 두 개를 식탁으로 옮겼다.

적당히 넘어갔으면 싶었는데 아직 안다미는 상처가 생긴 이유를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

“멕시코 공사를 앞두고 일본 야쿠자들이 삼합회의 칼잡이를 고용했었습니다. 다미 씨, 은선곤 대표, 멕시코 파견 직원의 훈련을 맡은 조태완 고문, 세 사람을 노렸고요.”

그런 일이 있었어요?

왜 내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거죠?

혼자서 이리저리 뛰었을 강성태가 안쓰러웠는지 안다미의 눈빛과 표정에 안쓰러운 감정이 올라왔다.

“그 외에 무너진 야쿠자 조직의 재산을 내놓으라고 요구했습니다.”

“성태 씨가 그들의 재산을 가지고 있었어요?”

“나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성태 씨를 힘들게 할까요?’

안다미의 눈이 그렇게 묻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에서의 일은 잘 처리됐어요?”

“멕시코 공사를 하는 동안, 다미 씨를 더 위협하지는 않을 정도로요.”

강성태가 답을 한 다음이었다.

“내 남자 힘들어서 어떻게 하지?”

자리에서 일어난 안다미가 식탁을 돌아와서 의자에 앉은 강성태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안았다.

식은땀을 흘려 미안하기는 했지만, 오늘 하루는 이렇게 지냈으면 싶을 정도로 안다미의 품은 따뜻했다.

강성태는 손을 들어 안다미의 허리에 얹었다.

“잠깐은 성태 씨가 차라리 경찰이 되면 어떨까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우리나라에 성태 씨 같은 경찰 한 명이 있으면 어떨까 싶어서요. 로스쿨 나와서 변호사를 해도 괜찮을 거 같았고요.”

강성태의 머리를 쓸어내리며 안다미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법이나 변호사가 없어서 남순이와 내 친구가 고통에 시달렸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어요. 성태 씨가 구해준 커피숍 여주인도 그렇고요.”

땀 냄새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다미가 강성태의 머리를 꼭 안아주었다.

“이렇게 힘들 때 곁에 있어 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안다미가 강성태를 꼭 안아줄 때였다.

아쉽게도 바깥에서 급하게 걷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디지털 도어록을 누르는 소리가 들렸고, 안다미가 자리로 돌아가 앉는 순간에 문이 열렸다.

“어? 너, 그러고 있어도 돼?”

“커피 타 놨어. 얼른 와 앉아.”

다급하게 계단을 뛰어 올라온 모양인지 최치곤의 볼이 붉게 물들어 있었다.

좋았던 분위기가 아쉽기는 했지만, 진심을 다해 죽집에 다녀온 친구의 성의에 감사해야 할 때였다.

“너 진짜 괜찮냐?”

“커피 마시잖아. 앉아. 같이 먹자.”

“나는 죽으로 아침 안 돼. 가서 밥 먹고 씻을 테니까 혹시 일 생기면 전화해. 아니다. 그러지 말고 오늘 하루 쉬자.”

강성태의 권유에도 최치곤은 몸을 돌렸다.

안다미에게 건네는 존댓말, 자리를 피해 주는 센스, 이은주와 교제하면서 생긴 변화인지는 몰라도 뻔뻔한 맛이 사라진 최치곤은 어쩐지 발톱을 곱게 손질한 곰을 보는 느낌이었다.

“나 때문에 그런 거면 여기 있어요. 9시 20분까지 병원에 가야 해요.”

신발을 신던 곰이 안다미를 돌아보았다.

“진짜 가야 해서 그래요. 그러니까 치곤 씨가 여기 있어요.”

재차 건넨 안다미의 권유에 최치곤이 식탁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셋이서 식탁에 앉아 죽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수술 스케줄이 줄줄이 밀려서 정말 짬이 안 났는데 오늘은 아침에 잠깐 여유가 났어요. 몇 달만 이해해줘요.”

“나는 괜찮으니까 내 걱정하지 말고 다미 씨 건강 상하지 않게 신경 쓰세요.”

“진짜 멕시코에 병원 만들어요. 안 그러면 우리 평생 이렇게 살지 몰라요.”

농담 반, 진담 반의 당부를 전한 안다미가 빌라를 나섰다.

포장 용기를 치운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식어 버린 커피를 마시며 김삼문에 관한 이야기를 최치곤에게 들려주었다.

“그것참. 반성하겠다니까 묘하게 걸리네. 그래놓고 또 잔머리를 굴리면 어떻게 하지?”

고개를 갸웃했던 최치곤이 바로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가져왔다.

“혹시 한국에 오게 되면 나랑 딱 이틀만 있게 해주라. 사과하는 거 확인한다는 명분 정도면 좋잖아?”

“생각해 보자.”

강성태의 답을 들은 최치곤이 아쉬운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얼른 들어가 한숨 더 자.”

“부산에 가봐야 해.”

“부산에는 왜?”

“아카시 마오를 만나야 하거든.”

“야! 그냥 하루 쉬어.”

“연백국 회원이라는 놈들이 자기들 조사하는 거 알게 되면 진짜 힘들어져. 할 거면 제대로 하고 쉬자.”

고개를 기울인 최치곤이 심오한 표정으로 강성태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계획이 섰냐?”

“대강. 그래서 빨리 만나봐야 하는 거고.”

“말려도 안 들을 거지?”

픽 웃는 강성태를 보며 최치곤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차는? 차라도 좀 좋은 거 타고 가자. 너 외부 활동할 때 타던 차 어디에 뒀어?”

“봉진이가 관리했으니까 내가 전화해 볼게.”

“알았다. 그럼 옷 갈아입고 올 테니까 혹시 차를 찾으러 가야 되면 전화해. 내가 바로 가서 가져올게.”

말을 마친 최치곤은 바로 빌라를 나섰다.

연백국 회원들?

김삼문은 최소한 사과라도 했다.

너희는 어떻게 나올래?

창을 돌아본 강성태는 픽 웃었다.

어쩐지 결과가 빤히 보이는 것 같아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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