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3》2부 24권 - 10화
조태완은 ‘KN용역’을 통해 훈련하던 덩치들을 소집했다.
다른 사람 아닌 조태완이 일본에 갈 덩치를 소집한 상황이었었다.
일본 관동 연합의 대가리 오다 스미야기와 백여 명이 넘는 요코하마 조직의 조직원들이 죽고 다쳤다는 말이 태풍처럼 떠돌았고, 이어서 고룡동과 필리핀 조직원들이 희생됐다는 말이 뒤따랐다.
점심을 넘겨서는 우선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이 일본에서 한국으로 출발했다는 소식도 들어왔다.
그 직후에 희생된 고룡동과 필리핀 조직원, 그리고 부상자들을 지키기 위해 강성태와 아르윈, 키란, 김대진이 남았다는 소문이 휘몰아쳤다.
호남은 아예 뒤집혔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용동이 형님 복수를 하러 일본에 갈 식구들을 뽑는단다.”
말이 돌기 무섭게 여권을 소지한 덩치들이 서울로 달렸고, 그렇지 못한 덩치들은 속성으로 여권을 만들 방법을 찾겠다며 백방으로 뛰었다.
호남이 뒤집힌 만큼 충청도와 경상도, 부산도 들썩였다.
“이 씨발 새끼들! 지난번에 횟집에서 깨졌던 새끼들 찾아서 동생들 보내! 그리고 여권 가지고 있는 동생들 모조리 불러. 바로 서울로 출발한다!”
이교창의 지시를 받은 덩치들이 바쁘게 움직였다.
야쿠자 놈들이 우리 식구, 그중에서도 누구보다 궂은일에 앞장섰던 고룡동이를 깼다고?
게다가 희생된 그를 지키기 위해 상처투성이인 강성태가 외롭게 일본에 남았고?
독이 오른 덩치들이 날뛰는 만큼, 신강남파를 제외한 다른 조직들은 엄한 불똥이 튀지 않도록 숨을 죽였다.
솔직히 달랑 40여 명이 일본에 날아가서 관동 연합의 우두머리를 깨고, 백여 명이 넘는 야쿠자 조직원을 무너트렸다는 말을 그대로 믿기는 어려웠다.
그렇더라도 소나기는 피하랬다.
조태완이 직접 나선 상황에 괜히 껍죽대다가는 살려달라는 말도 못 하고 두들겨 맞을 일이고, 어디 가서 동정조차 못 받을 행동이었다.
“몇 시에 출발입니까, 형님?”
- 듣기로는 밤 10시라는데 오후에 보스와 다시 통화하고 정확하게 알려주마.
“형님! 광주 식구들이야 당연하지만, 이번만큼은 남은 자리를 저랑 우리 부산 동생들한테도 주셔야 합니다, 형님!”
- 알았다니까 그러네. 일단 감정 가라앉히고 냉정하게 준비해.
“감사합니다, 형님.”
이교창이 거듭 박노익에게 다짐받으면서 부산 전체에 팽팽한 긴장이 감돌았다.
**
접이식 의자를 가져다 앉은 유충일은 양팔을 무릎에 걸친 자세로 고개마저 떨궈서 마치 교무실에서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처럼 보였다.
“예, 형님. 우선 태완이 형님과 통화하시는 게 먼저인 거 같습니다, 형님.”
그의 뒤에서 조성호가 연달아 걸려오는 전화를 바삐 받았다.
“신도시 쪽 숙소는 다시 내려가는 한이 있더라도 우선 출발하신다고 하셨습니다, 형님. 예. 그럼 저녁에 뵙겠습니다, 형님.”
광주에서 출발하는 숙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대신 받았던 조성호가 스마트폰을 내리고는 얌전히 유충일의 뒤를 지켰다.
책상 한 개와 작은 소파, 원탁 테이블, 그리고 바깥에 한 칸짜리 싱크대와 커피 테이블 정도가 전부인 사무실이었다.
클럽 근처에 있는 이 사무실을 원래는 없애려고 했는데 은선곤이 회계를 총괄하면서 서류 작성과 보고를 위해 남겨두었다.
조성호의 통화를 모두 들었을 텐데도 유충일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낮이었다.
의자에 앉아 고개를 떨군 유충일, 그 뒤에서 스마트폰을 든 조성호, 두 사람은 한참 동안 말없이 시간을 보냈다.
“성호야.”
“예, 형님.”
마침내 숨을 길게 내쉬었던 유충일이 조성호를 불렀다.
“용동 형님 말이다. 외롭게 자라셨다고 들었다. 그래서인지 이따금 전화하셔서 뜬금없이 고기하고 술 사주셨고, 일어서는 길에는 지갑을 뒤집어서 안에 있는 돈을 모두 내 손에 쥐여주셨었다.”
울컥, 올라온 감정을 누르려는 모양이었다.
고통스러운 사람처럼 얼굴에 힘을 담뿍 주었던 유충일이 다시 말을 이었다.
“힘들 때면 삼겹살 사 먹으라고, 혹시 숙소 동생이 우울해 하면 그놈 데려가서 삼겹살 사 먹이라고, 깡패로 살지만, 양아치는 되지 말라고.”
끝내 울음이 터졌는지 입술을 앙다문 유충일이 고개를 좀 더 떨궜다. 그런 뒤에 경련처럼 고개와 등을 떨었다.
그의 정장 바지와 다리 사이의 의자 쿠션에 닭똥 같은 눈물이 후두둑, 떨어진 다음이었다.
숨을 들이마신 유충일이 손바닥으로 눈가와 얼굴을 닦았다.
“해드린 게 없는데 나를 그렇게 예뻐라 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가 우울한 얼굴을 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불러서 삼겹살 사주시고, 가는 길에 지갑 털어주신 거지.”
말을 마친 유충일이 흐느끼듯 다시 눈물을 쏟아냈다.
“네가 클럽 맡았을 때도 전화 드렸었는데 성태 큰형님을 진짜 존경한다고, 정말 집안 형님 같다고 하셨는데….”
하아, 하는 숨을 내쉰 유충일이 붉어진 눈에 독기를 가득 채우고서 고개를 들었다.
“너까지 자리 비우는 건 성태 큰형님이 맡겨주신 일을 소홀히 하는 짓이다.”
“형니-임?”
“내가 클럽 맡아서 죄송하다고 했더니 업장 관리는 네가 더 잘할 거라고, 성태 형님 실망하시지 않게 게으름 피우지 말라고 당부하셨었다. 그런 용동이 형님의 당부를 어기는 것도 사람이 할 짓이 아니다.”
말을 마친 유충일이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천천히 돌아섰다.
붉어진 눈에 눈물이 흥건했고, 볼과 턱이 흠뻑 젖은 유충일이 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나선 유충일에게 어떻게 더 매달리겠나.
그렇다고 유충일 홀로 일본에 간다는 걸 그냥 지켜볼 수도 없어서 조성호는 납으로 된 모자를 뒤집어쓴 사람처럼 고개를 떨궜다.
“성호야?”
“다녀…오십시오, 형님. 클럽은…, 제가 지키겠습니다.”
결국, 조성호는 어쩔 수 없이 유충일의 뜻을 받았다.
안타깝고, 분하고, 걱정된 심정에 고개를 떨군 조성호 역시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
네 명의 오야붕이 가로로 앉았고, 창호 문 한 칸 너머의 다다미에 야마다 코신이 무릎을 꿇고 앉았다.
다시 창호 문을 지난 칸부터 좌우로 오십 명씩, 모두 백 명의 야쿠자 조직원들이 벽에 붙다시피 앉았는데 무거운 침묵이 물안개처럼 다다미 위를 맴돌아서 당장은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야마다 코신은 아침부터 창고와 병원을 확인했고, 이어서 사카구치 소우타와 통화했으며, 마지막으로 강성태를 만났다.
그는 보고 듣고, 확인한 내용을 네 명의 오야붕에게 전했다.
늘 발아래로 보던 한국이었다.
강남 삼대장을 비롯해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 어느 한 곳 야쿠자의 이름에 대항하는 인물이나 조직은 없었다.
차웅진 같은 사업가마저 충성하는 모습에 익숙하던 네 명의 오야붕과 야쿠자 조직원들에게 강성태는 사실 하늘에서 뚝 떨어졌다고 할 만큼 말이 안 되는 인물이었다.
느닷없이 나타나더니 강남을 움켜쥐었고, 호남과 충청도, 부산, 인천, 경기도 일원을 깡그리 두들겨 신강남파의 그늘로 욱여넣었다.
사실 한국의 조직이 하나로 뭉치는 건 야쿠자 입장에서 오히려 반가운 일이었다. 막말로 이놈 저놈 상대할 필요 없이 신강남파 강성태만 관리하면 그만이니 야쿠자 입장에서도 그편이 훨씬 반가웠다.
그런데 이 미친 인간은 마약, 고리대금업을 틀어막더니 그에 항거하는 삼합회와 야쿠자들을 모조리 쫓아냈다.
압권은 마카오 회의였다.
그 엄청난 능력이라니.
더 놀라운 건 멕시코 신도시 건설을 따낸 한국의 컨소시엄 대표 은선곤이 강성태를 보스로 모신다는 점이었다.
오늘만 해도 그렇다.
한국의 그룹들이 만든 컨소시엄 대표 은선곤이 보란 듯이 강명그룹의 전용기를 타고 와서 신강남파 조직원들을 데려갔다.
그래놓고는 밤에 다시 온단다.
부산에 있는 사카구치 소우타의 보고만이 아니라, 평소 알고 지내던 이들을 통해 확인한 내용 역시 신강남파가 일본으로 향할 준비를 하는 것만은 분명하다는 내용이었다.
강성태의 부상, 고룡동의 사망을 복수하겠다며 눈이 시뻘겋게 변해 있다는 말도 들었다.
세상에, 자기들이 달려와서 백 명 넘게 죽여놓고는 고작 신강남파 한 명, 필리핀 조직원 셋 죽은 걸 내세워 복수한다며 달려오다니.
‘졌다.’
이바라기를 장악한 사사키 조직의 오야붕 기무라 쿠니오키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물밑에서 수장 자리를 놓고 치열하게 눈치를 살피던 관동 연합이 뜻밖에도 빠르게 상황을 수습한 건, 모두 그가 상상 이상의 능력을 발휘한 덕분이었다.
관방장관을 통해 총리에게까지 연줄이 닿은 그를 이길 유일한 사람이 요코하마 조직이었는데 이번 사건으로 완전히 무너져 버려서 더는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길고 무거운 침묵 속에서 기무라 쿠니오키는 어떤 방법이 가장 현명한 선택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고심했다.
지금의 길고 무거운 침묵은 그가 아직 결정을 내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강남파 강성태.’
기무라 쿠니오키는 들었던 내용을 떠올렸고, 현재 상황을 냉정하게 되짚었다.
누가 뭐래도 한국의 신강남파에게 실력과 기백, 독기, 근성에서 깨끗하게 진 싸움이었다.
아카시 조직의 재산을 핑계로 싸움을 건 쪽이 관동 연합이라서 명분마저 강성태에게 있었다.
야마다 코신의 보고와 강성태의 움직임, 카르텔과 함께 멕시코로 향한다는 아카시 마오, 정황과 증거를 보면 확실히 강성태는 아카시 조직의 재산에 관심이 없을뿐더러, 실제로 결정적인 서류도 지니지 않은 게 분명했다.
여기까지는 지난 일이라고 친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감당해야 할 상황이었다.
정말 기무라 쿠니오키를 갑갑하게 하는 건, 지금 전해 들은 강성태의 행동과 주장이 모두 사실로 확인됐다는 점이었다.
컨소시엄 대표 은선곤이 강명그룹 전용기로 날아와 조직원들을 태우고 돌아간 것을 보면 더는 의심할 여지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카시 마오가 카르텔과 함께 관동에 돌아오는 것 역시 앞으로 벌어질 일이라고 받아들여야 한다.
돈이 된다면 사람도 태워죽일 정도로 악독하게 구는 놈들이 멕시코 카르텔이었다.
단속이나 언론 따위 신경도 안 쓰고 총질해댈 놈들과 관동에서 전쟁이 벌어지면, 야쿠자들은 몰락할 수밖에 없었다.
카르텔을 물리쳐도 언론의 보도와 경찰의 단속에 무너질 테고, 지면 지는 대로 모조리 카르텔이 내민 총구 앞에 시체로 변하고 끝난다.
“강성태를 직접 보겠다. 차를 준비해.”
“하이!”
오랜 침묵을 깨며 기무라 쿠니오키가 지시를 내리자, 줄줄이 늘어선 끝에서 야쿠자 한 놈이 고개를 깊게 숙였다.
그 직후였다.
“오야붕! 강성태를 만나시겠다는 뜻을 재고해 주십시오!”
야마다 코신이 상체를 앞으로 기울이며 기무라 쿠니오키를 만류했다.
“그는 쉽게 대화에 응할 인물이 아닙니다. 또한, 뒤가 없는 사람처럼 막무가내입니다. 그를 보시겠다면 제가 먼저 가서 뜻을 전하고 자리를 마련할 테니 그 뒤에 움직이시면 어떻겠습니까?”
눈가를 좁힌 기무라 쿠니오키가 불편한 기색으로 엎드려 있는 야마다 코신의 뒤통수와 등을 내려다보았다.
듣기 좋게 표현했지만, 자칫하다가는 강성태에게 개망신을 당할 수 있다는 뜻이어서 쉽게 답을 내놓지도 못했다.
‘평화가 너무 길었어.’
사업체라는 명분과 정치권이 만들어준 온실 속에서 지내는 사이, 잡초처럼 악착같던 야쿠자 특유의 근성과 기합이 사라져버렸다.
한국, 중국, 동남아시아로 세력을 넓힐 때도 피보다는 돈을 뿌려 버릇했으니 어느 틈에 야쿠자들의 무기가 권총이나 칼에서 지폐로 바뀐 느낌이었다.
“아카시 마오가 멕시코의 카르텔과 넘어온다면 우리 중에 그들을 물리칠 조직이 있나?”
기무라 쿠니오키가 목 저 아래에서부터 튀어나온 듯한 묵직한 저음으로 질문을 던졌다.
“신강남파 열 명에게 블랑카를 지키던 백 명이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그곳에서 죽어 나간 놈들만 사십 명이 넘어. 창고에서는 필리핀과 카르텔에게 일방적으로 당했다. 심지어 지게차에 깔려 죽은 놈만 열 명이 넘는다.”
기무라 쿠니오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질책이라고 여긴 야마다 코신과 줄줄이 늘어선 야쿠자들이 고개와 상체를 앞으로 깊게 숙였다.
기무라 쿠니오키는 볼을 씰룩였다.
상체를 숙여 죄를 청하는 조직원들의 모습이 보기에는 좋았지만, 어쩐지 가시마저 모조리 손질해서 화병에 꽂아놓은 꽃처럼 보였기 때문이었다.
“오다 스미야기는 고작 세 명에게 당했다. 그곳에서 죽은 놈들이 또 오십 명이 넘는다. 심지어 그곳에는 신강남파의 보스라는 강성태가 직접 뛰어들었다. 가장 위험한 장소인데도 말이다.”
숨을 한 번 고른 기무라 쿠니오키는 눈매를 매섭게 하고서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는 오늘 그에게 고개 숙인다.”
“오야붕?”
좌우에 앉은 세 명이 돌아보았는데 기무라 쿠니오키는 예상했었던 듯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그에게 도움을 청할 테니 멕시코에 가서 아카시 마오와 카르텔을 상대하며 뼈를 깎는 심정으로 배워. 왜 강성태가 그리 강한지, 또 어떻게 신강남파가 저토록 강한 기합과 근성을 갖췄는지를 말이다.”
줄줄이 상체를 숙인 야쿠자들을 돌아본 그가 비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우리 일본은 아시아에 있으나 유럽에 속할 정도로 뛰어나다고 자부한다. 이런 영광을 차지하기까지 우리 선조는 끊임없이 서양인들에게 고개 숙였다. 이번에는 우리 차례다. 지금은 철저하게 숙이고 배운다. 신강남파와 강성태를 우리 아래 꿇릴 때까지다.”
말을 마친 그가 시선을 들었다.
“차를 준비해. 내가 먼저 만나고 난 이후에 여기 오야붕들이 들어와 그에게 도게자를 올린다. 지금부터 심장에 비수를 하나씩 품어. 그래서 실력이 쌓이면 그 비수를 꺼내 강성태의 심장에 꽂아. 그게 진정한 야쿠자의 기백이고, 근성이다.”
기무라 쿠니오키의 지시가 떨어진 직후였다.
“명심하겠습니다! 오야붕!”
상체를 숙이고 있던 야쿠자 조직원들이 단단한 음성으로 함께 답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