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4권 - 8화 (481/513)

《481》2부 24권 - 8화

요코하마 익스프레스의 창고에 들어선 야마다 코신은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기 위해 이를 악물며 고개를 비틀었다.

승용차로 들이받은 거로도 모자라 얼마나 두들기고 짓밟았는지 멕시코 남자들은 그야말로 너덜너덜한 상태로 죽어 있었다.

그냥 죽이기나 했나.

칼질은 칼질대로 해놔서 시체를 돌려준다는 협상은 아예 생각조차 못 할 지경이었다.

“이런 돌대가리 새끼들아!”

현장 확인과 뒷수습을 위해 달려온 야마다 코신의 고함에 주변에 서 있던 야쿠자들이 고개를 떨궜다.

분통을 터트렸으나 너덜너덜해진 멕시코 남자들이 살아날 리는 없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이렇게 만들어놓은 변명거리라도 찾아야 했다.

“이놈들이 가진 무기는?”

“없었습니다.”

“뭐?”

멍한 눈으로 바라보는 그를 향해 야쿠자 한 놈이 계면쩍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영어로 떠들면서 팔을 내밀기에 권총을 들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놈이고 저놈이고 팔을 뻗기에 일단 승용차로 들이받았습니다.”

“혹시 멈추라고 손을 든 거 아니냐?”

“그랬던 거 같습니다.”

이것들이 사람 새끼들인가?

이렇게 속 끓이느니 장식용으로 달아놓은 대가리에 방아쇠를 당겨버리고 죄를 물어서 죽였다는 핑계라도 만들어?

독한 생각을 떠올렸던 야마다 코신은 숨을 한 번 내쉬는 거로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 오해해서 차로 들이받았다고 치자. 그럼 거기에서 멈춰야지 왜 이렇게 짓이겨 놨어?”

“아카시 마오를 빼돌린 놈들이라 뭔가 함정을 판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질문을 던졌는데 자꾸만 헛소리를 하길래….”

“영어로 떠들어서 못 알아들었다며?”

“헛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끄응.”

불쑥 권총을 뽑아서 방아쇠를 당기고 싶은 욕망을 야마다 코신은 악착같이 참아냈다.

“창고에 살아있는 놈들이 있었잖아? 그놈들한테 물어보기라도 했어야지!”

“마지막에 칼질을 한 건 창고에 있던 아이들입니다.”

차라리 울고 싶다는 생각에 야마다 코신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말을 들어보니까 멕시코 놈들이 가장 설쳤답니다. 우리 쪽 인원을 가장 많이 살해한 놈들도 멕시코 놈들이었다고 했습니다. 죽은 동료의 복수라며 칼을 뽑는데 말리지 못했습니다.”

내내 분통을 터트리던 야마다 코신은 그나마 작은 핑계를 얻었다는 심정으로 죽은 멕시코 놈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놈들이 그랬다는 거지? 그런데 왜 여기 남아 있었던 거지?”

“저희도 이놈들이 함정을 파놓고 창고를 지키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차로 들이받았던 겁니다. 권총 솜씨가 대단하고, 훈련받은 놈들처럼 움직였다는 말을 듣고 난 뒤라서 일단 들이받고 생각하자 싶었습니다.”

이거 봐?

야마다 코신은 권총을 뽑지 않은 자신의 인내력에 감사했다.

진짜 뭔가 있었나?

바다와 창고 앞으로 연결된 도로를 향해 시선을 주었던 야다마 코신은 다시 야쿠자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건 그렇고. 이놈들이 왜 여기 있었는지는 알아봤냐? 함정이라도 찾은 거 있냐고?”

“여기 와서 들은 이야기인데 내분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마지막에 멕시코 놈들 절반이 마오를 데리고 보트를 타고 도주했고, 이놈들은 강성태가 권총을 겨눠서 막았답니다. 그런 뒤에 승합차를 타고 그대로 가버렸다고 들었습니다.”

“그걸 본 놈이 있어?”

“예. 30분 전에 요코하마 병원으로 옮겨서 그곳에 있습니다.”

강성태가 이놈들에게 권총을 겨눴다면 정말 마지막 순간에 내분이 있었다는 건데?

뭐라고 해도 확인하지 않고는 함부로 보고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요코하마 병원에 가 볼 테니까 소문나지 않게 정리해.”

“알겠습니다.”

짧게 지시한 야마다 코신이 타고 왔던 승용차를 향해 몸을 돌릴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의 스마트폰이 다급하게 울었다.

“여보세요?”

- 사카구치 소우타입니다.

“어떻게 됐어?”

- 조태완이 단칼에 거절했습니다.

“뭐라고 했길래 우리가 보내 준다는 조건을 거절해?”

- 제가 전화하기 전에 이미 출국을 보장하겠다는 조직들의 연락이 있었답니다. 도쿄를 먹게 도와주는 조건이었답니다.

“하아.”

삼각별 승용차 앞에 선 야마다 코신은 뒷문을 열고 기다리는 야쿠자을 외면하듯 몸을 틀었다.

- 그거 말고도 조태완의 분위기가 예상 밖이었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 이상하리만치 독이 올라있는 느낌이었습니다. 심지어 강성태를 건드리면 직접 조직원들을 끌고 와서 도쿄 전쟁을 벌이겠다고 했습니다.

“이런 개자식이 야쿠자를 뭐로 보고”

거친 욕을 뱉었지만, 야다마 코신은 다른 말을 내놓지 못했다.

관동 연합을 짓밟고 도쿄의 주인이 될 수만 있다면, 야다마 코신이라도 강성태에게 손을 내밀 정도로 매력적인 유혹이었다.

가뜩이나 관동 연합에 속한 세 개 조직이 서로 벼르는 참이었다. 연합이 부러진 지금 신강남파가 외부 조직과 손을 잡고 달려든다면 도쿄 전쟁이 다시 벌어진다는 표현도 과장은 아니었다.

“일단 기다리고 있어.”

- 알겠습니다.

통화를 마친 야마다 코신은 조직원이 열어주는 승용차의 뒷좌석에 몸을 넣었다.

**

오전 8시가 넘어서 강성태는 조태완의 전화를 받았다.

조태완은 먼저 구마오 조직의 김강조, 이어서 사카구치 소우타와의 통화 내용을 자세하게 전해주었다.

- 야쿠자 놈들은 장관이나 국회의원에게 줄을 대서 고리대금업, 임대업, 매춘, 마약으로 편하게 먹고 살아왔다. 충돌이 생겨도 정치인에게 중재를 요청하는 편이고. 그래서 이런 상황에 대처하는 게 엉성해. 당황해서 어쩔 줄 모른다고 보면 맞아.

야쿠자의 습성을 알려준 조태완이 멈칫한 뒤에 다시 말을 이었다.

- 다친 아이들이 많으니까 나라도 동생들 데리고 갈까?

이 질문을 망설였던 모양이었다.

정작 죽고 죽일 때는 빠져있다가 뒤늦게 공치사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염려한 눈치였다.

“움직일 수 있는 인원은 오전 10시에 공항으로 출발할 겁니다.”

- 뭐?

“부상 때문에 움직이지 못하는 인원하고 저, 아르윈, 김대진은 남을 겁니다.”

-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숫자를 불려도 모자랄 판국에 어쩌려고? 흥분해서 그러지는 않을 테고, 도대체 무슨 일이야?

갑갑해 하는 조태완의 감정이 고스란히 담긴 질문이었다.

“은선곤 대표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아마 지금 강명그룹 전용기에 탑승해서 일본으로 오고 있을 겁니다.”

- 허!

“그 비행기에 움직일 수 있는 식구들 먼저 보내는 겁니다.”

- 그럼 보스는 언제 오려고? 병렬이랑 위독하다면서?

“원래는 함께 갈 생각이었는데 어젯밤에 멕시코 카르텔을 버려두었기 때문에 잠시 이곳에 더 있어야 합니다. 안전은 크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강성태에 대한 믿음이 있는 조태완이었다.

알지 못했던 은선곤의 움직임을 알았고, 거기에 강성태가 차분하게 계획을 내놓자 뭔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 뭘 믿고 그러는 건데? 내가 모르는 뭔가가 더 있어?

“야쿠자는 우리가 버려둔 놈들이 카르텔이라는 사실을 아직 모를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되겠지만, 아카시 마오를 데려간 멕시코 가페 대원들이 부산에 도착하는 내일 새벽은 지나야 합니다.”

강성태가 전한 설명을 이해하기 위해서인지 조태완은 잠자코 듣고만 있었다.

“야쿠자 놈들이 카르텔 조직원을 모조리 죽였을 겁니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나올 거라고 보십니까?”

- 살려뒀을 수도 있잖아?

“사카구치 소우타가 서로의 지역을 개방하자는 제안을 하면서 제 안전을 거론했다고 하셨습니다. 남겨둔 놈들을 살려뒀다면 그들을 인질 삼아 협상하려고 했을 겁니다.”

- 후우.

질렸다는 듯한 조태완의 숨소리가 먼저 넘어왔다.

- 지금 통화한 거로 그런 계산을 한 게 맞아? 다른 사람한테 들은 건 없고?

“통화한 건 형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 허어, 그것참. 내가 배운 게 없어서 무식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머리는 좀 굴린다고 여겼는데 이건 뭐.

그가 삼킨 뒷말 정도는 굳이 듣지 않아도 충분히 짐작할 수준이었다.

“구마오처럼 도쿄를 노리는 조직, 관동 연합의 대가리 자리를 노리는 기존의 조직 셋, 이놈들은 절대 우리에게 달려들지 못합니다.”

- 힘든 건 아는데 이왕 말 나온 김에 왜 그렇게 확신하는지도 설명해 주면 안 될까?

“무엇보다 신강남파 40여 명으로 관동 연합의 대가리 오다 스미야기가 죽었고, 요코하마가 무너졌습니다. 그 바람에 도쿄를 놓고 물밑에서 바쁘게 움직이고요. 이 상황에서 우리를 건드렸다가 형님이 진짜 수백 명을 데리고 들어온다면 놈들은 절대 감당하지 못합니다.”

- 그렇구나! 내가 진짜 구마오나 이바라기, 야마나시, 군마의 조직 중 한 곳과 손을 잡는다고 가정하면 정말 함부로 달려들지 못하겠구나! 고작 40명으로 밀고 들어간 게 있으니 나 역시 얼마든지 그럴 거라고 믿을 테고.

이제야 눈이 밝아진 사람처럼 조태완이 감탄을 내놓았다.

“그런 점에서 오전에 통화를 정말 잘해주셨습니다.”

기가 막힌 심정이 오롯이 느껴지는 조태완의 웃음이 넘어왔다.

- 그럼 보스는 언제 오나?

“고룡동과 희생된 필리핀 조직원이 있습니다. 거기에 침대로 움직여야 할 식구들도 많습니다. 낮에는 보는 눈이 많아서 야간이나 새벽에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해서 돌아갈 생각입니다.”

- 자가용 비행기를 이렇게 사용하는 조직이 있을까?

“카르텔은 개조한 장갑차도 가지고 있습니다.”

- 그것참.

이후로 몇 가지 더 의논한 조태완은 갑갑함이 어느 정도 풀린 눈치였다.

“부탁이 한 가지 있습니다. 통화를 마치면 신강남파가 은밀하게 비상을 건 것처럼 움직여 주십시오. 오후 늦게나 새벽에 이쪽으로 넘어올 것처럼 보이면 가장 효과적입니다.”

- 이건 알아듣겠네. 놈들의 정보망과 사카구치 소우타가 알게 되는 게 가장 효과적이겠지?

“감사합니다.”

- 몸 챙겨. 제발 부탁이다.

그렇게 강성태는 통화를 마쳤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가 식탁에 스마트폰을 내려놓았을 때였다.

“형님.”

키란이 급하게 주방으로 들어왔다.

“병렬이 형님이 일어났습니다. 형님 어디 계신지 물었습니다.”

급해서 그런지 뭔가 어색한 우리말이 나왔으나 알아듣는 데는 전혀 지장 없었다.

스마트폰을 집어 든 강성태는 거실을 거쳐 방으로 들어갔다.

눈가에서 관자놀이로 길게 눈물 자국이 남은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나마 새벽보다는 숨소리가 많이 편안하게 들렸다.

“여기가 어디야?”

잠시 깨어나서 울었던 일을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요코하마 창고에서 좀 떨어진 곳에 있는 빌라. 이곳 국회의원이 주선해 준 곳이라 당분간은 안전할 거란다. 그 양반이 의사 두 명하고 간호사까지 연결해줘서 치료받은 거고.”

눈을 돌린 이병렬은 강성태를 따라 방에 들어온 김대진을 보고는 눈가를 좁혔다. 그런 뒤에 답을 원하는 시선으로 강성태를 찾았다.

답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침묵하는 강성태와 고개를 떨구는 김대진을 보며 이병렬은 고룡동의 희생을 짐작한 눈치였다.

“이 새끼고, 저 새끼고, 요란하게 쓸고 다니다가 훌쩍, 훌쩍 잘도 떠나네. 정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새끼들.”

입술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해 웅얼거리는 듯한 투로 이병렬이 타박을 쏟아냈다.

“한국에는 언제 갈 거야?”

그런 뒤에 그가 나직하게 질문을 던졌다.

움직이기 어려운 이병렬은 놔두고, 강성태만이라도 먼저 일본을 빠져나가라는 당부처럼 들리는 질문이었다.

아르윈과 키란, 김대진이 함께 듣는 자리였다.

강성태는 조태완과의 대화를 천천히 풀어놓았다.

“씨발. 야쿠자 새끼들도 팔자 졸라리 꼬인 거지. 어쩌다가 우리 보스를 건드려서 도쿄가 맛있는 고깃덩이가 됐냐?”

그나마 이병렬은 조태완보다 빠르게 돌아가는 상황을 받아들였다.

웅얼거리는 했지만, 내내 대화를 나누던 이병렬이 약 기운을 더는 견디지 못한 것처럼 눈을 끔벅이더니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솔직히 말하면, 눈을 감는 순간에 강성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러나 편안해진 이병렬의 숨소리를 듣고 나자 그나마 마음이 놓였다.

강성태는 뒤를 향해 몸을 돌렸다.

“계획은 다 들었지? 가서 은선곤과 함께 한국으로 돌아갈 인원을 추려. 코렌에게 부탁해서 공항까지 갈 승합차도 준비시키고.”

“알겠습니다, 형님.”

아르윈과 김대진이 붕대투성이인 몸으로 인사하고는 방을 나섰다.

두 사람이 나간 뒤였다.

“야쿠자들이 온다는데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정말이지 순박한 얼굴로 키란이 질문을 건넸다.

속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판국에 먹는 걸 챙기는 거로 오해할 수 있겠다. 하지만, 야쿠자와 언제 붙을지 모르는 상황을 생각해서 배를 채워두자는 다부진 의도였다.

용병 때 익힌 삶의 한 모습이었다.

키란에게서 충고를 들은 듯한 심정에 강성태는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해야 할 일이 남았다.

이곳에 온 목적을 이뤄야 고룡동과 필리핀 조직원들의 희생이 헛된 죽음으로 끝나지 않는다.

“키란. 나가서 코렌에게 샌드위치라도 함께 먹을 수 있는지 알아봐.”

“알겠습니다.”

명령을 받은 대원처럼 답한 키란이 방을 나섰다.

그의 몸에 감긴 붕대, 그 위로 배어 나온 피, 고룡동과 필리핀 조직원들의 희생, 중상자, 완벽하게 전쟁터 한복판에 들어선 느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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