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9》2부 24권 - 6화
일본에서의 상황을 총괄하는 코렌은 강성태와 아르윈 일행을 태우고 무섭게 달렸다.
큰 도로에서 벗어난 외진 지역이었다.
건물 네 동이 가로로 길게 늘어선 형태의 빌라였는데, 외부 조명을 모두 꺼두었고, 창마저 두꺼운 커튼으로 막았는지, 주변은 온통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코렌은 두 번째 건물 앞에 승합차를 세웠다.
철컥. 철컥.
어둠 속에서 튀어나온 필리핀 조직원들이 권총을 대놓고 겨누는 것으로 봐서 건물 네 동을 모두 사용하는 모양이었다.
“부상자를 안으로 옮겨.”
코렌이 지시하자 권총을 내린 필리핀 조직원들이 승합차에 달려들어 다친 사람들을 옮겼다.
고룡동과 이병렬은 어디에 있지?
급한 환자를 옮기느라 분주한 필리핀 조직원에게서 잠시 떨어진 강성태가 주변을 돌아볼 때였다.
“형님?”
현관에서 나온 김대진이 강성태를 찾았다.
머리와 목덜미, 팔에 거즈와 붕대를 감은 김대진은 오셨냐는 인사조차 잊은 얼굴로 강성태를 찾았다.
“형님이….”
‘찾으십니다.’라는 말을 김대진은 차마 잇지 못했다.
강성태를 혼자 두면 안 된다고 외치던 고룡동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 씰룩이는 볼, 김대진을 확인한 강성태는 현관을 향해 곧장 걸음을 옮겼다.
“오셨습니까, 형님?”
강성태가 들어서자 거실에 서 있던 광주 식구 두 명이 상체를 숙였다. 두 명 모두 붕대를 감았는데 급한 치료인 만큼 모두 피가 배어 나와 있었다.
강성태는 거실을 가로질러 열린 방으로 들어갔다.
병실인가 싶을 정도로 안쪽 방은 그 어떤 가구도 없이 병원용 침대 하나, 그리고 여러 가지 의료용 기계, 치료에 사용하는 의약품 선반이 전부였다.
침대에 누운 고룡동은 블랑카라는 야쿠자의 업장에서 나올 때와는 확실히 달랐다.
“오셨습니까? 형님?”
침대에 붙어있던 덩치가 인사하고는 뒤로 물러났다.
고룡동에게 연결된 링거줄에 혈액과 하얗고 노란 약물이 방울방울 떨어지고 있었다.
강성태가 다가갔을 때, 고룡동은 꺽꺽대는 힘겨운 소리를 내며 억지로 숨을 쉬고 있었다.
강성태의 인기척을 알아챈 모양이었다.
고룡동이 초점 없는 눈을 돌렸다.
“아버지.”
그러고는 엉뚱한 호칭으로 강성태를 불렀다.
강성태는 오른손을 뻗어 고룡동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나, 아버지 다 용서했습니다.”
이럴 때는 뭐라 해야 할까.
초점 잃은 고룡동을 향해 강성태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우리 큰형님이 가르쳐주셨습니다. 나 같은 놈도요. 바른 형님 만나면 마카오에 가서 중국 놈들과 싸우고, 일본에 가서 야쿠자 놈들과 싸우고, 그렇게 사람들 지킬 수 있다고요.”
잘했다는 듯, 칭찬처럼, 강성태는 얹고 있던 오른손을 움직여 고룡동의 머리를 천천히 쓸어주었다.
“성태 큰형님께 인사드리지 못하는 게 너무 억울합니다.”
“괜찮아. 다 알 거다.”
“동생들 부탁드린다고. 끝까지 모시지 못해서 죄송하다는 말씀도 전해야 하는데….”
“그것도 내가 전해주마.”
김대진과 거실에 있던 광주 동생들이 강성태의 뒤에서 이를 악물며 바라보는 앞이었다.
“동생들 꼭 좀 부탁드린다고….”
“걱정하지 않아도 된단다. 하지만 일어나서 직접 챙기라고 한다.”
강성태의 말이 끝난 뒤였다.
꺽꺽대는 소리를 내며 억지로 숨을 쉬던 고룡동이 더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처럼 편안한 얼굴로 바뀌었다. 그리고 더는 힘겹던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형님? 형니-임?”
한 걸음 뒤에서 고룡동을 불렀던 김대진이 고개를 떨구며 악착같이 울음을 삼켰다.
강성태는 잠시 그렇게 서서 삶을 마친 고룡동의 머리를 쓸어주었다.
“자신 있어?”
“모가지 콱 내놔부렀습니다.”
유충일의 복수를 하게 해달라며 HK 맨션 앞에서 뛰어나왔던 모습이 아직 생생했다.
그날의 햇살, 파란 하늘과 구름, 비릿한 바다 냄새와 마굴처럼 우뚝 선 HK 맨션까지 선명한데 고룡동은 일본의 요코하마 어딘가에서 삶을 마쳤다.
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광주 동생들이 고룡동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도록 자리를 비켜주는 게 도리였다.
급격하게 식어가는 체온만큼 고룡동의 얼굴이 하얗게 변하고 있었다.
강성태는 몸을 돌렸다.
아직 피에 전 옷을 갈아입지도 못했고, 상처도 그대로였다.
“치료받으십시오, 형님.”
억지로 강성태에게 말을 건넨 김대진이 울음 가득한 눈으로 강성태에게 권유했다.
인사하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 인사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열 명이었던 광주 식구 중 강성태 앞에 서 있는 인원이 네 명밖에 되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다섯 명은 고룡동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할 정도로 위독하다는 의미였다.
김대진을 바라보던 강성태는 무겁게 걸음을 옮겼다.
“형님! 제대로 모시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형니-임!”
피를 쏟듯 비통하게 고룡동을 부르는 김대진의 울음을 뒤로하고 강성태는 거실을 지나 현관을 나섰다.
팔에 걸린 쿠크리가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아르윈은?”
“첫 번째 건물에 있습니다.”
일본의 가디언스파를 관리하는 코렌이 공손하게 강성태에게 답을 내놓았다.
“필리핀 조직원들의 희생은?”
“세 명입니다.”
차마 전하고 싶지 않은 답을 내놓았다는 투로 코렌이 고개를 떨궜다.
“위태로운 조직원은?”
“다섯 명입니다.”
고개를 들어 답을 내놓은 그가 강성태를 힘겹게 바라보았다.
“여기 남는 조직원들의 안전은 문제없나?”
“지금 계신 빌라가 이쪽 국회의원 소유입니다. 필리핀 보스께서 비용은 신경 쓰지 말라고 하셔서 나름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한국으로 가셔도 이쪽 조직은 크게 문제없을 겁니다.”
볼을 씰룩인 강성태는 어둠 속에서 한숨을 나직하게 내쉬었다.
멀리서 요코하마의 마천루들이 화려한 불빛으로 밤을 밀쳐내는 바람에 빌라가 더욱 어둡게 느껴지는 밤이었다.
“이병렬은?”
“세 번째 빌라입니다, 치료부터 받으셔야 하지 않습니까?”
굳이 코렌이 말하지 않아도 강성태의 상처는 가볍지 않았다. 하지만, 이병렬의 상태를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
강성태가 걸음을 옮기자 코렌이 뒤따라 움직였다.
세 번째 빌라 역시 내부 구조는 두 번째와 같았다.
거실을 지키던 필리핀 조직원들이 강성태를 보고는 고개를 숙인 뒤에 뒤로 물러났다.
강성태는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
“형님?”
강성태가 돌아온 게 반갑고, 한편으로는 이병렬이 염려되는 얼굴로 침대 곁에 있던 키란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까스로 이어지는 숨소리, 감은 눈, 상처투성이로 부은 얼굴, 고룡동을 떠나보낼 때의 장면이 데자뷔처럼 다시 펼쳐진 느낌이었다.
강성태는 키란이 비켜준 자리에 앉았다.
“가서 치료하고 와.”
“형님?”
강성태가 올 때까지 우직하게 이병렬을 지키던 키란이었다. 그런 그를 향해 강성태가 고개를 돌렸다.
우는 것처럼 보였을까?
아니면 무너지기 직전의 모습이라 그랬을까?
울음을 꿀꺽 삼킨 키란이 “치료하고 오겠습니다.” 하고서 몸을 돌렸다.
강성태는 이병렬에게 고개를 돌렸다.
“병렬아.”
그리고는 힘겨운 숨소리가 유일하게 살아있다는 증거인 이병렬을 나직하게 불렀다.
“도와주라.”
다른 말 필요 없었다.
“지금은 정말 네가 필요해. 배울 것도 있고, 의지할 사람도 있어야 해. 그냥 다른 이유 다 집어치우고 네가 있어야 내가 견딜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니까 일어나주라.”
강성태가 말을 마쳤을 때였다.
첫 번째 빌라에 들어갔던 아르윈이 현관으로 들어섰다. 총에 맞았던 어깨는 그대로인데 대신 목에 건 보조대에 왼팔을 건 모습이었다.
“조직원들 모두 치료 중입니다.”
보고를 위해 왔던 모양이었다. 상황을 전했던 아르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을 이었다.
“치료하십시오, 형님.”
“병렬이가 일어나면 하자. 필리핀 조직원의 희생이 있었다고 들었다. 위독한 조직원도 있고.”
볼을 씰룩인 아르윈이 고개를 떨궜다.
차마 “그렇습니다.”라는 답이 나오지 않는 모양이었다.
“필리핀 보스에게 전화해줄 수 있나?”
강성태의 질문을 받은 아르윈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강성태의 눈을 들여다본 다음이었다.
고개를 짧게 숙였던 아르윈이 스마트폰을 꺼내 오른손만으로 번호를 찾아 통화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였다.
“아르윈입니다. 한국의 보스께서 통화를 원하십니다. 지금 제가 모시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영어로 오간 대화였다.
그 뒤에 아르윈이 공손한 태도로 강성태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여보세요? 강성태입니다.”
- 가디언스파를 맡은 리베라트입니다, 보스. 전화로 인사드려 죄송합니다.
관록이 느껴지는 쇳소리였다. 마치 필리핀에 이병렬이 있다면 바로 이런 느낌이지 싶었다.
- 말씀하신 사업가는 제가 데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처리할까요?
강성태가 전화한 이유를 오해한 모양이었다.
“그 사람은 뒤에 처리하기로 하고 부탁이 하나 있어서 연락을 요청했습니다.”
- 말씀하십시오, 보스.
멈칫했던 필리핀 가디언스파의 보스 리베라트가 강성태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일본에서 희생된 아르윈의 동생들이 있습니다.”
- 흐음.
“우선 한 사람당 우리 돈으로 5억 원을 보낼 테니 가족에게 그대로 전해주고, 그들 가족 중에 원하는 사람이 있거나 추천하는 사람이 있다면, 한 명 정도는 멕시코 근로자로 파견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십시오.”
지켜보던 아르윈이 따귀를 맞은 얼굴로 강성태를 보고 있었다. 그런 뒤에 눈시울이 왈칵 붉어진 채로 자꾸만 볼을 씰룩였다.
- 보스? 그렇게 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제가 알아서….
“나를 믿고 따라주던 내 식구이기도 합니다. 이번은 제 말을 들어주시고 나중에 좀 더 보상할 방법이 있는지 아르윈과 다시 의논하겠습니다. 일본에서 수고해준 코렌과 가디언스 조직원, 그리고 보스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합니다.”
강성태의 말이 건너가고 나서 뜨거운 숨소리가 스마트폰을 타고 먼저 건너왔다.
- 진심으로 보스의 결정에 존경을 표합니다. 반드시 보스의 뜻대로 처리하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언제고 아르윈을 통해 말씀해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아르윈에게 스마트폰을 돌려주었다.
“아르윈입니다. 예. 옆에서 듣고 있었습니다. 염려하지 마십시오.”
아마도 강성태를 잘 모시라는 당부를 받은 게 아닌가 싶은 대화를 끝으로 아르윈이 통화를 마쳤다.
현관문이 열렸다.
얼마나 서둘렀는지 그야말로 흐르던 피를 닦고 빨간약만 바른 수준의 키란이 거실로 들어서고 있었다. 그 탓인지 갈아입은 옷 곳곳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다.
강성태의 말을 어길 수는 없고, 그렇다고 혼자 치료받을 마음도 없고, 키란의 선택은 적당한 소독과 옷을 갈아입는 방법이었나 보다.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키란의 눈시울 역시 붉었다.
아마도 아르윈과 함께 지낼 때 친해졌던 필리핀 조직원들의 죽음을 확인한 모양이었다.
힘겹게 침대에 누운 이병렬, 그 앞에 앉은 강성태, 그리고 뒤를 지키듯 버티고 선 아르윈과 키란, 병실에서 들리는 건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이병렬의 숨소리가 전부였다.
‘제발!’
이제는 키란처럼 기도할 시간이 아닌가 싶었다.
쿠크리를 지니지 않았고, 구르카 용병은 아니었지만, 비겁하지 않았으니 강성태가 갈 자리가 있다면 대신 이병렬을 그곳에 넣어달라고.
이병렬을 대신해서 강성태가 얼마든지 지옥에 떨어지겠다고.
언제 끊어질지 모를 숨소리를 지키듯 이병렬을 바라볼 때였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젠장! 염병할!
마음대로 해!
이제부터 내가 얼마나 독해지는지 보여줄 테니까!
야쿠자? 삼합회?
닥치는 대로 모조리 죽여서….
강성태가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거짓말처럼 눈을 뜬 이병렬이 눈만 돌려 강성태를 보았다.
무의식 상태에서 눈물을 흘린 게 아니라 이병렬은 진짜 울고 있었다.
“달수, 이 개새끼가….”
피눈물이었다.
상처에서 나온 피가 섞여 실제로 붉은 것도 있지만, 심장에서 올라온 그의 아픔이 눈물에 배어난 느낌도 있었다.
“이 개새끼가 나한테 절을 하더라.”
강성태의 눈을 본 이병렬이 울음을 삼키려 애썼다.
“내가 미안하다고, 앞으로 함께 있겠다고 했더니 그 거친 바닥에 냅다 엎드려서 보스에게 가라고 애원하더라고. 내가 그 새끼 두고 왔어. 안아주지도 못했어.”
차라리 서럽게 울었다면 이렇게까지 아파 보이지 않았을 텐데 이병렬은 심장에 칼이 박힌 사람처럼 견디기 어려운 아픔을 토해냈다.
조직원을 잃은 아르윈이 고개를 떨구며 울음을 삼켰고, 눈시울이 붉게 물든 키란이 강성태의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몇 번이나 힘겹게 울음을 삼켰던 이병렬이 “후우-.” 하는 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에 그는 아직 눈물이 그득한 눈으로 다시 강성태를 찾았다.
“왜 여태 치료도 안 했어?”
돌아왔다, 이병렬이.
억지로 만든 독한 눈빛과 나무라는 태도, 강성태는 슬프게 웃었다.
“얼른 가서 치료해. 보스가 그러고 있으면 동생들이 어떻게 치료를 받아?”
다부지게 말을 하고 싶었던 모양인데 이병렬의 음성에는 특유의 독기 대신 울음이 가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