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7》2부 24권 - 4화
시작은 역시 고룡동이었다.
70명이라고 여겼는데 주방인지, 아니면 안쪽에 공간이 더 있었는지, 그쪽 통로에서 30명이 무슨 일인가 하는 얼굴로 뛰어나왔다.
고작 열 명이라니?
같잖았던 모양이었다.
앞서서 다가왔던 놈이 거친 말을 뱉으며 들고 있던 잔을 집어 던졌다.
“이 개새끼야!”
상체를 틀어 잔을 피한 고룡동은 후욱, 놈을 향해 달려들었다.
푹. 푹푹. 푹.
망설임 없는 칼질이었다.
“빠가야로!”
곧바로 고룡동도 아는 욕설이 터졌고, 이어서 병, 잔, 테이블, 심지어 의자까지 날아들었다.
“입구를 지켜! 한 새끼도 못 나가게 막아!”
달려드는 야쿠자들을 향해 칼을 휘두른 고룡동이 날아드는 병과 컵을 피해 상체를 이리저리 휘저은 직후였다.
“형니-임!”
쉐에엑! 쉑! 쉐엑!
왼편에서 느닷없이 일본도가 떨어져 내렸다.
“코로시테!”
‘죽여!’라는 고함이 터진 다음이었다.
일본도, 곤봉, 대걸레 자루, 두 뼘 길이의 칼을 든 야쿠자 놈들이 고룡동과 동생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었다.
고룡동을 지키겠다며 옆에서 회칼을 뻗었던 동생의 배를 일본도가 깊게 파고들었다.
“아윽!”
“뒤로 나와!”
비명을 지른 동생을 돕기 위해 나선 또 다른 동생, 찌릿하고 후끈한 통증과 함께 어깨와 팔뚝, 옆구리를 파고드는 야쿠자들의 칼, 얼굴과 목덜미, 손에 끈적하게 달라붙는 핏물, 고룡동은 그 안에서 미치광이처럼 칼을 휘둘렀다.
끔찍하고 힘겨운 시간이 흐른 뒤였다.
“허억. 헉. 허억.”
문을 막아선 고룡동은 시선을 돌려 뼈가 보일 정도로 갈라진 오른손 팔뚝을 내려다보았다. 덜덜덜, 피에 담뿍 젖은 그의 오른손과 쥐고 있는 회칼이 애처롭게 떨리고 있었다.
“끄으.”
문 옆에 기댄 광주 동생 둘은 신음을 토해내는 와중에도 회칼로 바닥을 짚어가며 일어서려 버둥대고 있었다.
고룡동과 광주 식구들만 당한 건 아니었다.
바닥에 쓰러져 움직이지 않는 야쿠자 놈들만 사십여 명쯤 되고, 또 구석에 처박혀 낑낑대는 놈이 열 명쯤 돼서 놈들은 아예 질린 얼굴이었다.
“씨발. 고작 절반 잡고서 이 꼴이라니….”
“죄송합니다, 형님.”
한 살 아래 동생이 회칼 든 오른손으로 왼쪽 어깨를 감싼 채 힘겹게 내놓은 사죄였다.
고작 열 명에서 제대로 서 있는 건 여섯 명 정도였다.
여기에서 한 번 더 붙으면 죽는 일만 남는다.
“대진아. 동생들 데리고 나가.”
“차라리 빳다 치십시오, 형님.”
한 살 아래 동생인 김대진이 고룡동의 지시를 다부지게 받았다.
“다친 놈들하고 해서 아래 다섯 명만 내보내겠습니다, 형님.”
그런 뒤에 지시를 거부한 게 미안했던 것처럼 나직하게 생각을 내놓았다.
힐끔 시선을 돌린 옆에서 김대진은 왼쪽 어깨를 감싼 채 상처받은 늑대처럼 야쿠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후회 안 할래?”
“아따, 형님. 갑자기 겁나게 다정하십니다?”
“이런 개….”
욕을 하려던 고룡동은 턱없이 웃음이 터졌다. 그리고는 상처가 울려서 인상을 버럭 찌푸렸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던 모양이었다.
“끄응.”
주저앉아 있던 두 놈이 옆에 있는 동료에게 팔을 뻗고는 악착같이 몸을 일으켰다.
“형님들 이대로 두고 가면, 형님. 충일이 형님이 우리 전부 산에 묻어버리실 겁니다. 이왕 이렇게 됐는데 함께 가시지요, 형님?”
뒤를 돌아보았던 고룡동은 어쩌지 못한 얼굴로 아프게 웃었다.
몸을 억지로 세운 동생의 눈을 보았다.
아마 저 자리에 고룡동이 있어도 같은 생각, 같은 각오로 물러나지 않았을 게 분명했다.
“고맙다야.”
손을 떨면서도 밀리지 않는 고룡동과 그를 지키려는 듯 악착같이 몸을 세우는 광주 식구들을 보며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나니오 복같테 시데룬다!”
중앙에 선 놈이 독하게 고함을 질렀다.
‘뭘 멍청히 있는 거야!’ 정도의 느낌이었다. 실제로 그 고함이 떨어지기 무섭게 야쿠자들이 고룡동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 씨발 새끼들아!”
쉑! 피잇! 푹푹. 푸욱. 푹푹푹.
둥글게 문을 둘러싸고 있어서 뒤를 걱정할 건 없었다.
대신 불쑥 날아온 야쿠자의 손이 고룡동이나 곁을 지키는 동생을 당기기 위해 멱살, 혹은 팔을 낚아챘다.
야쿠자의 손길에 붙잡힌 동생을 돕던 고룡동과 김대진의 몸뚱이를 날카로운 칼이 가르고 빠져나갔다.
푸욱.
“끄으-으!”
야쿠자의 칼에 옆구리를 찔린 동생이 몸을 꺾는 순간, 고룡동은 훅, 상체를 비틀었다.
“으아아아-!”
푹! 푹푹! 푸욱!
고함을 지르며 회칼을 연속해서 꽂아 넣은 고룡동은 그사이 어깨에 칼을 맞았다.
“이 씨벌 새끼야!”
고룡동은 칼을 박은 놈을 향해 몸을 돌렸다.
콰악! 푹! 푸욱! 푹!
목덜미, 옆구리에 연달아 회칼을 쑤셔 넣는 고룡동에게 질렸다는 듯 야쿠자 놈들이 주춤대며 뒤로 물러났다.
“허억. 헉.”
억지로 버티려고 했었다.
그런데 야쿠자 놈들이 물러나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아래로 무너졌다.
꼴사납게 주저앉지 않으려고 고룡동은 왼손바닥과 회칼로 바닥을 짚으며 마치 앞으로 달려 나가려는 100미터 선수처럼 앞을 노려보았다.
‘아버지.’
왜 그랬을까?
고룡동은 흐릿해지는 시선으로 매일 술에 절어 어린 자신을 묶어놓고 혁대로 때리던 아버지를 떠올렸다.
술에 취한 모습으로 길에서 쓰러져 죽었다는 말은 장례가 끝나고 두 달쯤 뒤에 들었다.
남들은 사랑받기 위해서라던데 고룡동은 도대체 왜 태어난 걸까?
아버지에게 맞기 위해서였을까?
아니면 그런 환경에서 자란 남자아이가 얼마나 독한 놈이 되는지를 사회에 알려주기 위해서?
“끄으.”
흐릿해진 눈을 끔벅이며 고룡동은 몸을 세웠다.
왜 태어났는지에 대한 답을 오늘 얻은 느낌이었다.
신강남파 보스 강성태 말이다.
판검사마저 이 엿 같고 더러운 놈들이 널린 이 개 같은 세상에서, 깨끗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 나선 조직의 보스를 만났다.
아버지. 나요.
좋은 보스 만나서 마약 막았고요. 삼합회 놈들 밀어냈고요. 지랄 떠는 일본 놈들하고 붙었습니다.
아버지가 독하게 키워서요.
오늘 성태 형님 말씀 따를 수 있었던 거로 나는 아버지 다 용서할랍니다.
신강남파 보스 강성태를 만나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람들 지켜내는 데 한칼 휘둘렀다면, 고룡동도 태어난 값어치는 한 게 아닐까?
아버지, 다음에 태어나시면요.
좋은 부모 밑에서 진짜 사랑받으며 한번 사시오.
돌아가시기 전에 따듯한 밥 한 그릇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아버지랑 나랑 그런 복은 없었나 봅니다.
흐릿한 시선 속에서 야쿠자들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었다.
이번에 붙으면 끝이다.
아무리 독기를 짜내도 더는 버틸 힘이 없었다.
‘성태 형님. 제가 부족해서 더는 어쩌지 못합니다. 죄송합니다, 형님.’
저놈들을 다 밀어내지 못한 게 미안해서 고룡동은 속으로 사죄를 내놓았다.
꽈악, 그리고는 오른손에 쥔 회칼을 다부지게 잡았다.
와라. 절대 혼자 안 죽을라니까!
고룡동이 남은 힘을 다해 이를 악물었을 때였다.
콰응! 콰앙! 콰으응!
대강 걸어놓은 문을 누군가 거세게 들이받았다.
야쿠자들이 지원 온 건가?
콰드드등!
야쿠자들이 반가운 얼굴로 바라보는 뒤편에서 작은 고리가 뜯겨나가며 문이 열렸다.
고룡동이 뒤를 돌아보았을 때, 열린 문 사이로 달랑 한 명이 들어오고 있었다.
고룡동은 눈만 껌벅였다.
“고생했다. 잘했어.”
“형님…?”
멍하니 부르는 고룡동을 향해 왼손을 뻗은 강성태가 그의 눈을 뒤덮은 핏물을 엄지로 쓱 문질렀다.
“너희가 여기를 막아준 덕분에 오다 스미야기 목을 갈랐다.”
“예? 형님?”
“관동 연합 대가리 목을 갈랐다고.”
왜 그런지 일본에 온 목적을 달성했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고룡동은 왈칵 눈물이 올라왔다.
“밖에 승합차가 기다린다. 나가서 왼쪽에 두 대. 얼른 식구들 챙겨서 내려가.”
“형님 혼자 계시면 안 됩니다, 형님!”
강성태는 대답 대신 핏물에 전 왼쪽 팔뚝에서 쿠크리를 다부지게 뽑았다.
전설에서 나오는 용사처럼 보였다.
“지금까지 해준 거로 충분해. 내가 뒤를 맡을 테니까 승합차까지만 움직여. 나도 함께 갈 거다.”
오다 스미야기의 목을 갈랐다는 소식, 그래서 더 싸울 이유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더욱이 강성태가 보스의 얼굴로 물러나라는 지시를 내리는 상황이었다.
“야! 형님 모셔! 저기 막내랑 등에 업고, 내려가서 왼쪽에 승합차에 타!”
김대진이 빠르게 지시하고는 강성태의 곁에 섰다.
강성태가 힐끔 돌아보자 김대진이 짧게 고개를 숙였다.
“큰형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럼 한 걸음 물러나서 뒤로 돌아오는 놈이 있으면 밀어내.”
“감사합니다, 형님.”
광주 식구들이 고룡동을 부축했고, 쓰러진 식구들을 등에 업었다.
“놓으라고! 형님이 혼자 계시잖아!”
강성태는 고룡동을 부축한 광주 식구들을 향해 고개로 밖을 가리켰다.
“먼저 가겠습니다, 형님.”
광주 식구들이 물러날 때였다.
“난시테루!”
고함과 함께 야쿠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카각! 서거-억! 서걱! 서거-억!
칼을 휘감은 강성태는 앞에 있는 두 놈의 허벅지를 깊게 갈랐고, 이어서 몸을 세우며 옆에서 일본도를 쳐든 놈의 목 아래를 길게 그었다.
쉑! 카가각! 쉑! 쩌어어억! 쩌억! 서거-억!
떼로 달려들었지만, 야쿠자들은 강성태를 어쩌지 못했다.
물론 강성태의 팔뚝과 어깨에 야쿠자의 칼이 스치고 지나갔지만, 상대방은 쿠크리의 휘어진 날에 목이 갈라지고 가슴이 하얗게 벌어지며 널브러지고 있었다.
쩌억! 쩌어억!
강성태의 주먹에 맞은 두 놈이 흐물대다가, 서걱, 하는 소리와 함께 목이 갈라졌다.
푹! 푹푹! 푸욱!
강성태의 뒤에 선 김대진은 옆으로 돌아오는 놈들을 사정없이 칼로 찔렀다.
어깨와 팔뚝에 칼을 맞았는데 지금은 통증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부산에서도 이랬었다.
앞장선 강성태를 따르는 동안 HK 맨션에서 기다리던 그 지독한 조강치파 덩치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았었다.
서거-억!
“끄으윽!”
목과 가슴, 허벅지에서 뿜어진 피를 맞으면서도 강성태는 물러나지 않았다.
“형님! 다 탔습니다!”
그때 문 바깥에서 동생의 고함이 들렸다.
카가각! 서걱! 피잇! 핏핏!
강성태도 그 고함을 들었는지 뒤로 조금씩 물러나고 있었다.
놓치지 말라는 듯, 야쿠자 놈들이 고함을 버럭버럭 지르며 달려들었는데 강성태를 넘지 못했다.
“나가!”
쩌억! 쩌어어억! 서거-억!
문까지 물러난 강성태가 고함을 지른 뒤에 주먹과 쿠크리를 연달아 휘둘렀다.
몸을 돌린 김대진은 쩔뚝이는 걸음으로 문을 나섰다.
승합차 한 대가 입구를 틀어막듯 서 있었고, 필리핀 조직원이 문을 잡은 채 안타깝고 다급한 눈으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큰형님! 나오십시오!”
김대진이 핏물이 튈 정도로 요란하게 불렀는데 안쪽에서 고함과 비명이 터질 뿐, 강성태는 나오지 않았다.
아차 싶은 김대진이 다시 문을 향해 걸음을 내디디는 순간이었다.
쩌어억! 쩌억!
강성태의 주먹에 얻어맞은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멀찍이서 지나가던 사람들이 고함에 놀란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앞이었다.
머리부터 핏물을 뒤집어쓴 듯한 강성태가 김대진을 향해 달려왔다.
‘형님?’
몸을 돌린 김대진이 쩔뚝이는 걸음으로 승합차를 향해 달렸고, 그 바로 뒤에서 강성태가 뛰었다.
“들어가! 얼른!”
강성태의 고함에 기다리던 필리핀 조직원이 피하듯 승합차 안으로 뛰어들었다.
“코로시테!”
그 직후에 둑이 터진 것처럼 입구에서 야쿠자들이 달려 나왔다.
쩌억! 서거-억! 서걱!
강성태는 가장 앞에 있던 세 놈을 단숨에 해결하고 훅, 승합차를 향해 몸을 던졌다.
부으으응!
급하게 출발하는 승합차의 사이드미러와 문틀을 잡고서 두 놈이 함께 뛰었다.
쩌어억!
문틀을 잡았던 놈이 강성태의 주먹에 얻어맞고 도로 바깥으로 나뒹굴 때, 뒤편에서 던진 칼들이 승합차의 뒷부분을 요란하게 때렸다.
끼이이익!
사이드미러를 붙들고 악착같이 달리던 놈은 방향을 트는 순간, 도로에 나뒹굴었다.
“허윽. 헉. 허억.”
급하게 올라타서 의자에 앉지도 못했다.
바닥에 주저앉아 의자에 팔을 걸친 김대진은 거친 숨을 토해내며 시선을 강성태에게 돌렸다.
존경심을 넘어 두려울 정도로 강한 남자였다. 강성태는.
지금도 그렇다.
“아르윈은?”
“아직 연락이 없습니다, 보스.”
필리핀 조직원이 건네준 수건으로 얼굴을 닦은 강성태는 고통 따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아르윈을 염려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