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3권 - 15화 (468/513)

《468》2부 23권 - 15화

제6장.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정도의 성공이나 성취를 이뤘다면 당연히 박수받을 수 있다. 얻은 것에 감사하고, 그 성취를 올바르게 사용한다면 말이다.

‘나는 이렇게 해냈는데 너는 못 했잖아’에서 시작해 ‘그것도 못 하는 놈들이’로 달려가서, ‘억울하면 너도 성공하든가’나 ‘능력도 없는 것들이’까지 간다면, 그는 이미 성공이나 성취에 잡아먹힌 한 명의 괴물과 다를 바 없다.

강남 호텔로 달려가며 연순동은 강성태를 떠올렸다.

얼굴은커녕 강성태라는 이름만 떠올려도 먼저 볼이 얼얼하고, 이어서 이가 욱신거리며, 마지막으로 기절하는 순간의 그 더러운 느낌이 생생하게 연순동을 휘감았다.

재단 지분을 빼앗긴 장인 이학의는 꼬장꼬장하던 눈동자에서 생기가 사라져 몇 달 사이에 폭삭 늙었다.

이학의만 그런 게 아니라 그의 마누라 역시 사람을 피하기 시작했고, 우울증이 심해져서 집안이 마치 거대한 늪처럼 변해 버렸다.

좌절한 이학의나 우울증에 빠진 마누라에게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감정도 있었다.

깡패 하나 어쩌지 못하는 게 검사라고.

너 같은 인간을 남편이라고 받든 내가 미친 년이지, 혹은 너 같은 놈을 후원했던 내가 속 빠진 인간이지, 하는 원망의 눈빛과 표정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연순동은 고강준 고검장을 거스를 방법이 없었다. 만약 고강준의 미움을 사서 지방으로 날아가면 이학의는 그를 아예 사람 취급도 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둠을 견디면 새벽이 온다지 않던가.

이를 악물며 참고 참았던 연순동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역시나 이학의를 통해 알고 지냈던 곳에서 손을 내밀었는데 연순동을 선택한 이유가 우습게도 강성태와의 악연 때문이었다.

더 이상 고강준에게 충성하지 않아도 되는 자리, 그리고 강성태를 마음껏 조사할 수 있는 권한, 급하게 달려온 연락에 담긴 보상은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공사를 확보하게 되면 성공 보수마저 주겠단다.

중국 정부와 삼합회, 거기에 일본의 정치권과 야쿠자가 함께 움직인다고 들었다.

영상을 확보해서 보내주면 중국과 일본에서 동시에 보도를 내보내서 한국의 치안과 해당 중국인의 안전을 외교 문제로 키우겠노라는 계획이었다.

‘너는 이제 뒈졌어, 이 깡패 새끼야.’

아무리 강성태가 설쳐도 중국이 적당히 편집한 영상을 내놓으며 외교적으로 압박하면 처벌을 피할 길은 없었다.

연순동은 그동안의 인내를 하늘이 보상해주는 듯한 짜릿하고 벅찬 감동에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호텔에서 확보한 영상만 해도 그렇다.

고강준에게 가져가면 또다시 검은 머리는 키우는 게 아니라는 둥, 자신을 밟고 위로 가려는 거냐는 둥, 온갖 질책이 떨어질 게 분명했다.

물론 고강준도 분명 타격을 받게 되겠다.

검찰이 같은 식구인 고강준을 절대 처벌하지는 않겠지만, 그 역시 강성태와 연관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힘을 잃을 가능성이 높았다.

사이다가 드럼통째 머리 위에서 쏟아지는 듯한 짜릿함에 연순동은 주먹을 움켜쥐었다.

조금만 더 쾌감을 느끼게 두었으면 좋았겠지만, 그의 감정을 모르는 계장이 승용차를 호텔 앞에 세웠다.

“주차장에 들어가지 말고 앞에서 기다려요.”

“예, 검사님.”

짧게 지시한 연순동은 은은한 불빛을 품은 로비를 향해 걸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기다렸다는 듯 세 명의 남자가 다가왔다.

눈빛과 행동은 사나웠는데 세련된 머리 스타일, 깔끔한 정장, 벨트와 구두까지, 확실히 강성태가 데리고 다니는 깡패 새끼들과는 다르게 강남 스타일이라고 할 만큼 세련된 모습이었다.

“연순동 검사님이십니까?”

주변을 돌아본 연순동은 답을 하지 않은 채 앞에 있는 남자에게 시선을 주었다.

“모시겠습니다.”

“당신들 누구 심부름으로 나를 찾는 거지?”

그래도 검사인 연순동은 돌다리를 두들겨보는 심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저는 모시는 분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습니다. 혹시 못 미더우시면 전화하셔서 확인해주십시오.”

역시, 한국 깡패 새끼들은 절대 이런 세련된 모습을 보이지 못한다.

“앞장서.”

연순동이 말을 뱉자 앞에 선 남자가 깍듯하게 고개를 숙인 뒤에 몸을 돌렸다. 마치 클럽에서 최고급 VIP 손님을 모시는 듯한 태도여서 연순동의 마음에 쏙 들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객실에 들어선 연순동은 또다시 놀랐다.

중국인인가 싶은 동양인 남자 두 명이야 그렇다고 쳐도, 각이 제대로 잡힌 외국인 남자 셋이 연순동을 맞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익숙하지 않은 동작으로 상체를 굽혀 건네는 인사가 조금이나마 남아 있던 연순동의 불안함을 깨끗하게 씻어내렸다.

이런 존경 어린 태도가 바로 부장검사를 대하는 일반인의 자세여야 하지 않는가 말이다.

물론 편안하게 차려입은 복장이 거슬리기는 했는데 그건 서양 경호원이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것이리라 이해하고 넘어갔다.

“차를 드시겠습니까?”

“이사장님은 어디 계시지?”

“잠시 옆에 있는 객실에 계십니다. 미팅이 끝나시는 대로 바로 오실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연순동은 확인처럼 뒤를 돌아보았다.

함께 객실로 올라왔던 남자 셋 중 두 명이 손을 앞으로 잡은 채 문 앞을 지키고 있었다.

“뭐 시원한 게 있나?”

“준비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연순동은 스위트룸 거실의 상석에 앉았다.

기다리던 외국인 남자 셋, 객실 안에 있던 남자 둘은 앉을 생각을 못 하고 그를 경호하듯 서 있었다.

‘그래. 이게 맞지.’

연순동은 흡족한 심정으로 소파의 팔걸이에 손을 얹었다.

**

날다시피 달린 유충일이 호텔 앞에 차를 세웠다.

연순동을 객실로 데려다 놨다는 조성호의 문자를 받았는데도 강성태는 마음이 급했다. 무엇보다 연순동이 엉뚱한 곳에 전화하거나 혹은 그의 연락을 기다릴 이사장이라는 인간의 연락이 있을지 몰라서였다.

차가 멈추기 무섭게 내린 강성태가 곧장 호텔 입구로 움직였고, 뒤따른 덩치들에게 차를 맡긴 유충일이 급하게 뒤따랐다.

“오셨습니까, 형님?”

조성호와 함께 일하는 광주 덩치 두 명이 고개를 숙이며 강성태를 맞았다. 고개를 끄덕여준 강성태는 곧장 엘리베이터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조성호도 어려운 판에 직계 선배인 유충일에 강성태까지 움직이는 상황이어서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덩치 둘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평소 고룡동이 광주에서 성태 큰형님께 실수하는 놈이 나오면 사지를 끊어버린다며 벼른 것도 한몫한 느낌이었다.

긴장한 덩치 두 명과 달리 부드럽게 움직인 엘리베이터가 12층에 멈췄다.

유충일이 고갯짓을 던지자 강성태의 앞을 급하게 달려간 덩치가 1206호의 벨을 눌렀다.

문을 연 건 조성호였다.

“오셨습니까, 형님?”

상체를 깊숙하게 숙인 조성호의 등 위로 거실 안쪽이 보였고, 소파에 앉아 고개를 이쪽으로 돌린 연순동의 얼굴이 강성태의 눈에 들어왔다.

조성호의 곁에서 문을 지키던 덩치 둘, 다시 거실에 있던 덩치 두 명이 서열에 따라 차례대로 고개 숙일 때, 연순동은 저승사자를 만난 사람처럼 얼이 완전히 빠진 얼굴이었다.

강성태는 곧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때까지 연순동의 한쪽에 서 있던 로페즈와 대원 두 명에게 시선을 주었다.

“도와줘서 고마워.”

“이 정도야 어려울 건 없습니다. 날이 밝으면 일본에 가는 건 확실합니까?”

“이 일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일본에 갔더라면 위험했을 거다. 운이 좋았다고 생각하면 돼.”

강성태의 답을 들은 로페즈가 ‘뭐 이런 인간 때문에?’라는 느낌으로 아직 정신이 나가 있는 듯한 연순동을 내려다보았다.

“보기 흉한 모습이 있을 텐데 안에 들어가 있지?”

“잠이 깬 데다 혹시 도울 일이 있을지 모르잖습니까?”

어쩐지 친숙해졌다는 느낌을 강하게 풍기는 로페즈의 대꾸였다.

편할 대로 하라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여준 강성태는 연순동을 향해 돌아섰다.

“왜 그랬어?”

“예?”

“뺨에서 멍이 사라지니까 미치게 가려웠어?”

뺨, 그리고 멍이라는 두 단어를 들은 연순동의 얼굴과 눈에 잠시 밀려나 있던 공포가 삽시간에 피어올랐다.

서 있는 강성태가 상석의 1인용 소파에 앉아 있는 연순동을 내려다보는 상황이었다.

“그게….”

연순동이 입을 여는 순간이었다.

짜아아아아악!

강성태가 있는 힘껏 휘두른 손바닥이 연순동의 왼쪽 뺨을 거칠게 휘감았다.

상체가 홱 넘어갔던 연순동이 완벽하게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세웠는데 그와 동시에 코에서 피가 주르륵 흘러내렸다.

검사랍시고, 고고한 척, 잘난 척은 더럽게 하더니 일본 야쿠자들이 주는 돈에 팔려서 한국 그룹들이 얻은 공사를 중국에 넘겨주려고 음모를 꾸며?

그것도 현직 부장검사가 그런 놈들을 위해 자정 넘어 호텔에 달려왔고?

강성태는 놈의 가슴을 구둣발 바닥으로 세차게 밀었다.

콰악! 콰다당!

소파와 함께 뒤로 넘어간 연순동이 버둥대며 문을 향해 일어섰다가 고개를 좌우로 꺾는 유충일을 보고는 화들짝 시선을 강성태에게 돌렸다.

“내가 한 게 아닙니다!”

“영상을 확보한 건 너 맞잖아?”

“그건…?”

앞으로 걸어간 강성태는 상체를 기울여 연순동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상처를 꿰매지 않은 탓에 왼쪽 팔에 감아놓은 붕대에 피가 붉게 올라와 있었다. 그 모습이 연순동에게 더 큰 공포를 주는 눈치였다.

강성태는 연순동의 멱살을 위로 들어 올렸다.

“다 말하겠습니다! 뭐든! 다 말합니다!”

“정말이지?”

“예! 뭐든 있는 대로 진실만을 말하겠습니다!”

“진짜, 마음 약해지게. 원래는 따귀 스무 대를 때리고 시작하려고 했거든. 다 말한다고 했으니까.”

연순동의 얼굴에 한 줄기 희망이 비치는 순간이었다.

“열 대만 하자.”

그거나, 그거나!

연순동의 눈과 표정이 항변했으나 강성태의 결정은 변하지 않았다.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악!

조용한 객실에 따귀 때리는 소리가 일정하게 울렸다.

마침내 열 대를 채운 강성태는 다리가 풀린 연순동의 멱살을 앞으로 뿌렸다.

철퍼덕.

바닥에 모로 자빠진 그의 코와 입술, 그리고 퉁퉁 부은 데다 잘게 찢어진 그의 왼쪽 뺨에서 흥건하게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야쿠자 돈에 홀려 삼합회의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대한민국 부장검사라니.

쓰러진 모습이 비참하기는 했지만, 손톱 끝만의 동정도 생기지 않았다.

“계속 그러고 있을래?”

강성태의 성격을 알아서인지 한 마디 경고에 연순동이 비척거리며 상체를 세웠다.

“거기 의자 좀 가져와.”

“예, 형님.”

거실 안에 있던 덩치가 작은 탁자 앞에 있던 의자 두 개를 가져왔다.

“앉아.”

쓰러진 소파를 덩치가 한쪽으로 치우는 사이 강성태가 먼저 의자에 앉았고, 이어서 연순동이 조신한 태도로 맞은편에 자리했다.

“영상 내놔.”

요구가 떨어지기 무섭게 연순동은 오른손을 재킷 주머니에 넣어서 비싸 보이는 USB를 내놓았다.

“이것 말고 더 없어? 나오면 진짜 서로 불편해져.”

“없습니다.”

“이걸 누구에게 전하려고 했어?”

연순동이 마른침을 삼켰다. 강성태가 두려워서 말하기는 해야겠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따귀가 부족했지?”

강성태가 독한 마음을 먹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이 울었다.

바쁠 땐 따귀 때리는 일쯤 잠시 미뤄도 괜찮겠다.

“여보세요?”

- 미스터 강. 커넥션이 워낙 복잡해서 시간이 잠깐 걸렸어. 찾아낸 과정은 나중에 하기로 하고, 엘리베이터 영상을 확보한 남자가 걸었던 번호와 통화 내역을 확인해봤거든. 연백국이라는 모임의 이사장 나채상, 참고로 연백국은 일본을 상징하는 하얀 국화를 사랑한다는 의미이고.

차웅진이 그렇더니 왜 자꾸 바르지오에게 부끄러운 모습이 드러나게 되는지, 강성태는 씁쓸한 심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 설립 목적은 한일 우호 증진인데 일왕 생일 축하 행사 추진, 국회의원, 교수, 사업가들의 연구비 및 정치 후원, 사업자금 지원 등을 주로 하더군.

“그게 어떻게 삼합회와 연결된 건지는 알아봤어?”

- 연백국이라는 단체의 일본 측 이사장이 오다 스미야기인데 그가 바로 관동 연합의 수장이다.

이제야 강성태는 눈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느낌이었다.

물론 바르지오에게서 이런 설명을 듣는다는 점과 부장검사가 직접 개입되었다는 사실이 주는 수치스러움은 이루 말할 길 없는데 덕분에 일본 야쿠자가 멕시코로 향할 수밖에 없는 확실한 방아쇠 하나를 얻었다는 이득도 있었다.

“호텔 영상은?”

- 다행히 엘리베이터부터 지하주차장 장면까지 더 복사한 흔적은 없었다. 지금은 내가 화끈한 영상으로 바꿔놨고.

그 와중에 영국식 영어를 능숙하게 말하는 강성태를 연순동이 힐끔 바라보았다.

“바르지오. 부탁이 또 하나 있는데.”

- 오다 스미야기의 위치를 알아봐 달라는 거지?

“일이 너무 많아서 미안하다.”

- 미스터 강. 그는 누가 뭐래도 일본 관동 연합의 수장이다. 이름만 듣고 쉽게 달려가서 상대할 급이 아냐. 그러지 말고 준비를 좀 더 한 뒤에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어? 후폭풍도 생각해야지.

“내가 원하는 게 그 후폭풍이거든.”

강성태의 답이 건너간 뒤에 나직한 바르지오의 한숨이 먼저 넘어왔다.

- 아침까지면 되겠지?

“부탁한다.”

- 오케이.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잠시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지 않았다.

뻑뻑한 침묵이 방 안을 휘감은 다음이었다.

“유충일.”

“예, 형님.”

강성태의 음성에 담긴 무거움을 또렷하게 알아챈 유충일이 긴장한 얼굴로 답을 내놓았다.

“이 인간 안산 공장으로 데려가. 그래서 우리 방식대로 처리해.”

“알겠습니다, 형님.”

강성태가 말한 방식이 어떤 건지 연순동이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그런데도 그는 죽음을 직감한 모양이었다.

“내가 대한민국 검사야! 나를 어떻게 하려고?”

죽음을 앞둔 사람이 보이는 두 가지 중 하나, 체념 대신 연순동은 발악을 선택한 것으로 보였다.

“그 잘난 대한민국 검사라는 인간이 일본 놈들의 돈에 혼을 팔고, 죽어라 달려들어서 손에 쥔 공사를 중국 놈들에게 넘기겠다며 앞잡이 짓을 해?”

짜아아아아악! 콰다당!

지금껏 그 어떤 순간보다 강하게 휘두른 따귀였다.

이가 몇 개는 부러졌겠구나 싶은 직후에 따귀를 얻어맞은 연순동이 의자와 함께 요란하게 바닥에 처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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