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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3권 - 13화 (466/513)

《466》2부 23권 - 13화

엘리베이터 상단의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수록 묘한 흥분과 설렘이 강성태의 주변을 휩쓸었다.

때앵.

마침내 1층에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양쪽으로 문이 열리면서 가장 먼저 보인 건 중앙에 둘, 그 뒤로 셋, 그렇게 두 줄로 선 다섯 명의 여자들이었다.

숫자 패드가 붙은 왼편에 호텔 직원이 서 있었고, 가장 안쪽 벽을 타고 9층에서 함께 내려온 덩치 셋이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여자들 탓에 상체를 깊게 숙이지 못한 덩치들이 어색한 태도로 강성태에게 인사했다.

이거 봐?

강성태는 앞에 서 있는 여자 두 명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강성태가 서 있는 걸 보며 놀라기는 했지만, 여차하면 여기에서 끝장을 보겠다는 강단과 독기를 지닌 눈빛이었다.

“뭐 하자는 거야? 경찰을 불러줘?”

“가짜 여권이던데 그래도 되겠어?”

닫히려는 엘리베이터 문에 팔을 뻗은 강성태는 당차게 나온 여자를 향해 비슷한 느낌으로 질문을 던졌다.

“별걸 다 아네? 그래서 어쩌자고?”

단발머리, 투피스, 세련된 화장, 겉모습만 보면 이제 막 경력을 쌓아가는 전문직 여성이라고 판단할 만한 모습이었다.

눈과 눈이 마주친 상태였다.

“아저씨. 내려.”

그 상태에서 또다시 가장 앞에 있던 여자가 호텔 직원을 향해 말을 던졌다.

“뭐 해? 내리라니까.”

솔직히 호텔 직원은 여자들을 지킬 의무가 없었다. 거기에 여자들이 먼저 내리라고 독촉하는 상황이어서 버틸 이유마저 사라져버렸다.

여자의 독촉을 받은 호텔 직원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벽을 타고 움직였다.

“자신 있으면 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붙어보자는 의미였다.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며 여자의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칼잡이라고 들었다.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다섯 명이 칼을 휘두르면 강성태는 몰라도 다른 덩치들이 위험할 수 있었다.

“자신 없어? 그럼 손 좀 치우지?”

그렇다고 이곳에서 그냥 내보내면 또다시 지루한 추적을 시작해야 했다. 당장 날이 밝으면 일본에 가야 하는데 말이다.

“고룡동 지하에 차 있어?”

“지하 3층에 있습니다, 형님.”

답을 들은 강성태는 여자들을 바라보는 자세로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섰다.

“형님 모시고, 지하 3층으로 갈 거니까 그 앞에 차 대라고 해.”

“예, 형님.”

그 뒤에 덩치들에게 지시한 고룡동과 유충일이 강성태의 좌우를 받치듯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상체를 돌린 고룡동이 ‘B3’이라고 찍힌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며 부드럽게 아래로 내려갔다.

그 직후였다.

“나 참.”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불평을 털어놓은 여자가 고개를 뒤로 돌려 동료들을 찾았다.

여자라고 방심하면 죽는다.

어설프게 대해도 위험했다.

“고룡동. 마음 독하게 먹어.”

“예? 형님?”

강성태의 지시가 떨어진 다음이었다.

뒤를 돌아보았던 여자가 시선을 떨군 뒤에 치마 오른쪽을 허리까지 들어 올렸다.

매혹적인 허벅지, 그리고 준비하지 않았다면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을 정도로 앙증맞은 속옷이 삽시간에 드러났다.

‘젠장!’

실제로 유충일과 고룡동은 물론이고, 9층에서 함께 내려온 덩치들 세 명 모두 여자의 다리와 안이 비치는 속옷에 시선을 빼앗기고 말았다.

“고룡동!”

강성태가 고룡동을 나직하게 부르는 것과 동시에,

쉬익!

오른쪽 허벅지 위쪽에서 한 뼘 길이의 칼날을 뽑아 든 여자가 강성태를 향해 팔을 휘둘렀다.

터억! 턱!

강성태가 여자의 손목을 밀쳐내는 순간,

퍽! 퍼윽! 퍼억!

뒤에 서 있던 세 명의 여자가 팔꿈치를 돌려 벽을 타고 서 있던 덩치 셋의 명치를 세차게 찍었다.

“커흑!”

가슴을 움켜쥔 덩치 셋이 상체를 앞으로 숙일 때,

휙! 퍼윽! 퍽!

검지와 중지를 뾰족하게 세운 주먹에 목젖을 얻어맞은 고룡동이 엘리베이터 문에 기대듯 뒤로 밀렸다.

아직 네 명의 여자는 칼을 뽑지 못했다.

어떡해서든 칼날을 해결하고 뒤에 있는 여자들을 해치워야 하는데 앞쪽 공간이 워낙 좁았고, 달려드는 여자의 칼질이 정말이지 만만치 않았다.

타악! 턱! 터억!

강성태가 칼날을 막아내지 못하면 아직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고룡동은 피할 장소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멀쩡한 유충일이 주먹을 뻗어대며 뒤편에 있는 세 명의 여자들이 칼을 뽑지 못하게 막아준 게 큰 힘이 되었다.

느닷없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벌어진 난투극이었다.

턱! 터억! 터덕! 터억!

칼을 든 여자의 오른손, 뾰족하게 만든 왼손이 강성태의 양팔과 쉴 새 없이 맞붙었다가 떨어지고 있었다.

콰직!

그사이 잘 버티던 유충일이 턱을 제대로 얻어맞았다.

이대로 두면 나머지 넷이 칼을 뽑아 들 테고, 그 뒤는 상상하기조차 싫은 결과를 받아들 게 뻔했다.

칼을 든 여자가 지휘자였다.

이 여자만 해결하면 나머지는 그럭저럭 해결할 만했다.

쉐엑! 휙!

강성태는 날아드는 칼날을 왼쪽 팔뚝으로 밀어 올리며 상체를 뒤로 빼냈다.

콰직.

왼쪽 팔뚝에 더러운 통증이 올라온 직후에 여자의 뾰족한 주먹이 옆구리에 세차게 박혔다.

‘끄응!’

여기까지.

옆구리를 내준 대신 강성태는 있는 힘껏 오른손 주먹을 내질렀다.

쩌어어어억!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 섬뜩한 소리가 울렸고, 이어서 고개가 뒤로 홱 젖혀졌던 여자가 뻣뻣하게 뒤로 넘어갔다.

겨우 잡은 기회였다.

쩌어억! 쩌어어억!

강성태는 뒤에 있는 여자 둘의 얼굴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넣었다.

쩌어어어억!

또다시 한 명의 얼굴에 주먹을 꽂아 넣은 강성태는 마지막 남은 여자를 향해 곧바로 주먹을 뻗었다.

터억. 짜각!

마지막 여자는 왼팔로 강성태의 손목을 밀쳐낸 데다 상체를 비틀어서 주먹마저 피할 정도로 움직임이 날카로웠다.

“이런 씨발!”

강성태의 주먹을 막아낸 마지막 여자를 향해 고룡동이 와락 달려들었다.

퍽! 퍼윽! 퍽! 퍽! 퍼으윽!

여자는 정교하게, 고룡동은 우직하고 무식하게, 삽시간에 눈가와 코, 입술이 터졌고, 그 바람에 두 사람 모두 얼굴이 벌겋게 변했다.

“이야!”

콰작! 콰작! 콰작! 콰작!

다행히 이번은 무식한 고룡동의 승리였다.

마지막에 고함을 버럭 지른 고룡동이 여자의 코와 입, 턱에 연달아 주먹을 꽂아 넣으며 엘리베이터 안에서의 싸움이 끝났다.

고룡동의 주먹에 얻어맞은 여자가 엘리베이터 벽에 기댔다가 아래로 흐르듯 바닥에 주저앉았고, 이어서 옆으로 축 늘어졌다.

“후.”

이것들이 진짜였다.

편의점 앞에서 잡은 다섯 놈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날카롭고,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단 있는 몸놀림과 동작이어서 만약 곱창집에서 여자들이 먼저 설쳤다면 조태완을 지킬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였다.

때앵.

지하 3층에서 문이 열리자 연락받고 기다리던 덩치들이 앞을 막고 서 있었다.

“안녕하…?”

인사를 하려고 했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엘리베이터 바닥에 널브러진 여자 다섯과 안쪽 벽에 기대 끙끙대는 덩치들을 보며 당황한 눈치였다.

“차 어디 있어?”

“바로 앞에 있습니다, 형님.”

“얼른 실어. 여자라고 쉽게 생각하지 말고 반드시 팔과 다리 묶어!”

강성태의 지시를 받은 덩치들이 우르르 달려들어서 여자를 붙들었고, 9층에서 함께 내려왔던 덩치 두 명이 거들었다.

“아후.”

고룡동과 명치를 얻어맞은 덩치 한 명은 이제야 숨을 쉴 수 있는 모양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구부러진 통로를 지나면 바로 주차장이었다.

덩치들이 승합차에 여자들을 모두 태운 다음이었다.

“괜찮으십니까, 형님?”

왼쪽 팔뚝을 감싸고 있는 강성태에게 고룡동이 다가왔다.

“차는?”

“앞에 승용차입니다, 형님.”

승합차 앞에 세워둔 승용차였다.

강성태를 위해 문을 열어준 고룡동이 덩치들에게 따라오라는 손짓을 던진 뒤에 조수석에 앉았다.

“영등포 공장으로 가.”

“예, 형님.”

빙빙 도는 주차장 출구를 따라 달린 승용차가 호텔 밖으로 나설 때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여자들 잡았다. 막 호텔을 나와서 영등포 공장으로 가는 길인데 지금 어디야?”

- 그래? 지금 올림픽 도로니까 중간에서 방향 바꿀게. 그년들 객실에 들어갔다면서 어떻게 잡았냐?

“바르지오가 도와줬어. 자세한 건 가서 이야기해.”

이병렬과 통화를 짧게 마친 강성태는 곧바로 최치곤의 번호를 눌렀다.

- 여보세요? 자정이 넘었는데 언제 와? 이러다가 다미 씨 먼저 나오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치곤아. 삼합회에서 보낸 칼잡이는 여자들이 진짜다. 그러니까 혹시 수상한 여자들이 보이면 조심해.”

- 뭐? 그게 무슨 소리야?

“남자 놈들은 별거 없이 칼만 들고 설치는 거고, 진짜는 여자들이라고. 나도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생각하면 돼.”

강성태가 전하는 경고를 받아들이느라 잠깐 틈이 필요했던 모양이었다.

- 그럼 어떻게 하냐? 응급실이야 다미 씨 이름 팔아서 들어갈 수 있는데, 여자 화장실이나 탈의실에는 우리가 들어갈 방법이 없잖아?

“오늘 수술이 잡혀서 언제 끝날지 모른다고 하더라. 어차피 응급실에 들어가려면 입구에서 걸리니까 너는 경비원 있는 앞에 있어. 부탁한다.”

- 알았어. 혹시 다쳤냐?

“괜찮아. 다른 곳에 연락할 게 있어서 조금 뒤에 다시 전화할게.”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린 뒤에 오른손으로 왼쪽 팔뚝을 꾹 눌렀다.

“형님.”

조수석에 앉은 고룡동이 상체를 돌리고는 계면쩍은 얼굴로 하얀 수건을 내밀었다.

수건을 받은 강성태는 왼쪽 팔뚝에 걸고 팽팽하게 당겼다.

급한 대로 묶기에는 수건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하필 하얀색이어서 팔뚝에 감기 무섭게 붉은 피가 번져 올라왔다.

“죄송합니다, 형님.”

풀 죽은 고룡동의 사과를 강성태는 가벼운 웃음으로 받았다.

“멕시코에 가기 전에 좋은 경험한 거지. 오늘은 치마를 걷어 올린 거로 끝났지만, 그쪽은 아예 무릎에 앉아서 입술을 내밀거나, 가슴을 드러내고 다가와 목에 총구를 들이대.”

“많이 배웠습니다, 형님.”

“충일이가 승합차에 타고 있어?”

“예, 형님.”

“전화해서 팔과 다리 묶는 거 다시 확인해. 조금이라도 틈을 주면 누가 죽을지 몰라.”

지시를 받은 고룡동이 스마트폰을 꺼내는 걸 보며 강성태는 뒤를 돌아보았다.

승합차 운전자와 조수석에 앉은 덩치가 똑바로 상체를 세우고 있는 거로 봐서 염려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은 모양이었다.

“성태 형님께서 말씀하신 거니까 특히 조심해. 그럴 게 아니라 아예 모가지를 발로 밟고 있어. 그래.”

잔인하게 들리는 지시를 내린 고룡동이 스마트폰을 내리고는 다시 상체를 돌렸다.

“팔하고 다리를 뒤로 돌려서 한꺼번에 묶고 다시 의자에 걸었답니다, 형님.”

말대로라면 닭을 잡아 묶어놓은 꼴이었는데 여자가 아니라 몸이 날랜 삼합회 칼잡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적당한 조치였다.

자정이 훌쩍 넘어가서 어느 도로든 차들이 빠르게 달리고 있었다.

한 가지만 더 확인하면 깔끔하게 끝날 텐데.

오른편에 놓인 한강을 바라보던 강성태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 여보세요? 재미 좀 봤어?

“덕분에 손에 넣었지. 혹시 이 여자들이 한국에서 연락한 번호가 있는지 알아봐 줄 수 있어?”

- 위조 여권인지 입국 기록이 없어서 그런데 그 여자들이 가진 전화번호를 더 얻을 수 있어?

“30분쯤 뒤에 알려줄게.”

- 오케이.

뜨거운 오븐에서 갓 나온 모차렐라 치즈처럼 금방 끝날 것 같은 삼합회의 칼잡이 처리가 이상스레 늘어지고 있었다.

당장 날이 밝으면 일본으로 향해야 하는데 말이다.

부산주 섭충명이라는 놈을 죽였는데도 삼합회는 한국을 포기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오늘처럼 기회만 된다면 삼합회 조직원들을 보내 기회를 엿보는 걸 테고.

올림픽 도로를 벗어나 커다랗게 방향을 튼 승용차가 영등포 로터리로 움직였다.

야쿠자와 카르텔만 싸우게 하려던 싸움에 삼합회를 끼워 넣어야 할까?

그랬다가 잘못되면 시에라마드레 산맥에서 진짜 전쟁이 벌어질 텐데?

전쟁은 두렵지 않다.

다만, 경험 없는 고룡동 같은 식구들이 얼마나 죽을지, 그런 무게가 커다란 돌처럼 강성태의 어깨에 매달렸다.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영등포 로터리를 돈 승용차가 공장이 있는 골목에 들어섰다.

골목 안쪽에 라이트를 끈 승용차와 승합차가 보였고, 그 주변으로 실루엣만 보이는 덩치들이 쭉 서 있었다.

승용차는 공장 앞에 세워진 차들 바로 앞에 멈췄다.

라이트 불빛 속에서 이병렬이 걸어왔고, 그보다 빠르게 다가온 덩치가 강성태가 앉은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덩치가 인사할 때, 조수석에서 내린 고룡동이 이병렬에게 상체를 숙였고, 이어서 승합차에서 달려온 유충일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뭐야? 여자들이라고 하지 않았어?”

강성태의 팔뚝을 내려다보았던 이병렬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고, 답을 요구하는 것처럼 고룡동에게 시선을 주었다.

“엘리베이터를 탔는데, 형님. 느닷없이 치마 안에서 칼을 빼는 겁니다. 그걸 성태 형님께서 전부 상대하셨습니다, 형님.”

짧지만 제대로 된 설명이었다. 그런데도 강성태를 돌아본 이병렬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년들 어디 있어?”

“승합차에 있습니다, 형님.”

고룡동의 답을 들은 이병렬이 뒤로 시선을 돌렸다.

“야! 가서 그년들 얼른 공장 안에 넣어. 무서운 년들이라니까 방심했다가 당하는 일 없도록 정신 똑바로 차려. 그리고 너는 차에 있는 구급상자 좀 가져와.”

“예, 형님.”

지시를 내린 이병렬이 다시 시선을 가져왔다.

“들어가서 팔부터 치료하자.”

장난처럼 고개를 젓기는 했지만, 강성태의 상처를 보고 나자 분통이 터진 모양이었다.

덩치 두 명이 들고 오는 삼합회 칼잡이 여자를 바라보는 이병렬의 눈이 독하게 변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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