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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3권 - 10화 (463/513)

《463》2부 23권 - 10화

제4장. 모두 뒈지는 거라고. 알았냐?

할머니 횟집은 광안리 해안가 도로에 있었다.

도로에 차를 세운 아르윈은 키란과 단둘이 내려 횟집을 확인했다.

눈을 파고드는 하얀 전구를 앞세운 횟집의 오른쪽에는 여러 종류의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수족관이 놓였고, 왼편은 내부가 훤히 보이는 거대한 유리였다.

유리를 통해 보이는 횟집 내부는 유독 머리칼이 얇은 일본인 특유의 머리 모양과 커다란 셔츠 카라를 재킷 바깥으로 내놓는 야쿠자 복장의 남자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하얀 종이를 깔아놓은 상을 연달아 붙여놓았다.

회, 각종 밑반찬, 술, 푸짐하게 차린 상에 둘러앉은 남자들은 뻔히 들여다보이는 창 안에서 비웃는 듯한 미소를 그려내곤 했다.

더는 확인할 바 없이 아르윈이 찾는 야쿠자들이었다.

“가자.”

“예, 형님.”

아르윈은 뒤따라 선 승용차와 승합차에 손을 흔들었다.

모두 스물일곱 명이었다.

우르르 차에서 내리는 모양새가 이상하다고 여긴 모양이었다.

‘저것들은 뭐야?’

횟집 안에 앉은 야쿠자들의 시선이 달려들었는데, 그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투로 아르윈은 키란, 조직원들과 함께 할머니 횟집 안으로 들어갔다.

도로를 타고 늘어선 게 모두 횟집이었다.

한가한 가게들이 많은데 굳이 서른에 가까운 숫자의 야쿠자들이 차지한 횟집으로 들어선 상황이었다.

야쿠자 놈들의 표정이 한순간 딱딱하게 굳었는데 아르윈은 물론이고, 키란과 조직원들은 정말이지 태평했다.

입구부터 주방으로 통하는 통로가 가운데 있고 왼편을 야쿠자들이 차지하고 있어서 반대편의 테이블은 텅텅 비어 있었다.

일본말로 떠드는 야쿠자들을 받은 이후에 필리핀과 네팔까지, 다국적 손님을 상대해야 하는 여주인이 근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르윈 일행을 맞이했다.

척 보기에도 어쩐지 깡패 냄새가 풀풀 나는 게 불안한 생각이 올라온 눈치였다.

“어서 오세요.”

여주인의 인사는 키란을 향해 나왔다.

워낙 한국인과 외모가 비슷한 데다, 유독 순박한 눈매가 그녀에게 위안이 되어서 그런 모양이었다.

“저쪽 자리 붙여서 함께 앉아도 되지요?”

“어마나? 저 양반들도 그러더니 우리말을 잘하시네. 자리는 상관없는데 영업이 열두 시까지예요. 괜찮겠어요?”

“얼른 먹고 가면 되지요.”

능숙한 우리말을 구사하는 아르윈 덕분에 한결 얼굴이 편안해진 여주인이 안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여기 상 붙여드리고 얼른 준비 좀 해줘.”

“상은 우리가 알아서 붙일 테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회 뭐 있어요?”

“저기 메뉴판에 있는 거 중에 오징어 빼고는 다 돼요.”

이것들은 뭐지?

야쿠자 놈들이 의아하고 궁금한 눈으로 주문하는 아르윈과 함께 들어온 키란, 필리핀 조직원들을 살폈다.

아르윈은 누가 봐도 깡패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함께 들어온 키란은 순둥이 모양새였고, 또 필리핀 조직원들은 눈빛 사나운 놈과 주점에서 서빙하게 생긴 놈이 뒤섞여 있어서 정체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아르윈은 대놓고 야쿠자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자리 배치에서 상석은 정해져 있어서 가로로 길게 붙인 테이블의 한중간에 앉아 눈매를 더럽게 찌푸린 놈이 대가리였다.

있는 대로 눈썹과 눈 끝을 치켜세운 사카구치 소우타를 빤히 바라보던 아르윈은 시선을 내려 상을 천천히 돌아보았다.

“우리도 저 정도로 주세요.”

“똑같이 드릴까?”

“숫자도 비슷하니 좋네요. 복잡하게 이거저거 고르다가 시간 보내기 아까우니까 되는 대로 바로 주셔.”

“술은?”

“일단 앉은 다음에 시킬 테니까 회부터 주세요.”

다국적 손님이 다들 우리말을 잘해, 비싼 회를 가리지 않고 주문해, 오십 후반의 여주인이 뒤늦게 입을 귀에 걸고 주방으로 향했다.

상을 붙였고, 하얀 종이를 깔았으며, 물컵에 물을 따르고, 또 수저, 소주잔, 맥주잔을 준비했으며, 초고추장, 간장을 두 칸짜리 앞접시에 담느라 잠시 분주했다.

그 뒤에는 호박찜, 메추리알, 당근과 오이, 고추, 마늘 따위의 기본 찬이 나오느라 어수선한 시간을 보냈다.

아르윈은 키란과 함께 테이블 중간에 벽을 등지고 앉았다.

원했든, 원치 않았든, 가운데 있는 통로를 두고 아르윈과 사카구치 소우타가 마주 보는 모양새였다.

고추냉이를 떠서 초장과 간장에 넣은 아르윈이 젓가락을 움직이자 지금껏 지켜만 보던 야쿠자들이 한두 놈씩 일본말로 떠들기 시작했다.

“술 마실 사람?”

“성태 형님 스타일로 폭탄주 한 잔씩 하면 어떻겠습니까, 형님?”

사카구치 소우타는 우리말을 능숙하게 구사한다.

안 들으려고 해도 아르윈 일행이 신경을 긁는 만큼 사소한 말 한마디가 쏙쏙 귀에 들어왔다.

“오랜만에 마음에 드는 소리 하네. 가서 맥주하고 소주 가져와.”

웃으며 지시하는 아르윈을 맞은편에서 벽을 등지고 앉은 사카구치 소우타가 삐딱하게 바라보았다.

분명 ‘성태 형님’이라고 했었다.

느닷없이 부산 깡패들이 사라지더니 고작 한다는 짓이 동남아 출신 양아치들을 보내는 거였나?

하는 짓이라고는?

필리핀 놈들을 보낸 것부터 속에서 소위 ‘끌탕’이 일어나는데, 거기에 야쿠자를 우습게 보는 듯한 필리핀 양아치 새끼들을 보자 사카구치 소우타는 견디기 어려울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다.

“비겁한 새끼.”

아르윈이 들으란 듯이 사카구치 소우타가 욕을 뱉어낸 직후였다.

웃으며 조직원을 바라보던 아르윈이 대번에 표정을 가라앉히며 고개를 돌렸다.

‘필리핀 거지새끼들이 죽고 싶나?’

자존심이 있는 대로 상한 사카구치 소우타,

‘입을 찢어줄까?’

밀리지 않는 아르윈의 시선이 중앙 통로 위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삽시간에 내려앉은 침묵이 팔을 길게 뻗어 양쪽 벽에 매달렸던 긴장을 팽팽하게 당기는 느낌이었다.

“내가 아르윈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신강남파 식구들이 나서지 않는다고 내 이름과 여기 동생들 다 걸고 약속한다. 그러니까 붙을 자신 있으면 나서고, 아니면 얌전히 대가리 숙이고 회나 처먹어.”

쇳소리가 진한 아르윈의 음성이 따귀를 때리듯 사카구치 소우타를 향해 달려갔다.

사카구치 소우타는 그저 “비겁한 새끼.”라는 욕만 했다.

그 대상이 강성태라고 말하지 않았고, 아르윈을 향해 뱉은 욕도 아니었다.

‘너에게 한 말이 아니다.’

그 한마디면 아르윈이 지나치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 꼴로 끝날 텐데 사카구치 소우타는 변명을 내놓지 않았다.

묵직한 정적이 흐를 때 아르윈은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렸다.

커다란 쟁반을 든 중년 여자 직원 두 명이 긴장된 상황에 놀라 주방 앞에서 눈치만 살피고 있어서였다.

“얼른 주세요.”

여차하면 대뜸 일어나 건너편으로 뛰어갈 거 같던 아르윈이 사람 좋은 얼굴로 직원 아주머니들을 대했다.

“그냥 주세요.”

급한 걸음으로 다가온 아주머니의 쟁반을 필리핀 조직원들이 받아든 직후였다.

“어이? 강성태가 보냈나?”

사카구치 소우타가 질문을 던졌고,

타악.

“말조심해! 큰형님 이름 함부로 부르다가 입이 두 배로 커지는 수가 있어!”

아르윈이 들고 있던 젓가락을 사정없이 내려놓았다.

눈썹 문신했고, 위아래로 형님, 동생, 부르며 지내는 데다, 떼로 몰려다니는 한국 아줌마는 무섭다. 겁도 없다.

“아, 진짜 왜들 이래요? 남 장사하는 집에 와서?”

보다 못한 여주인이 주방에서 나와 양쪽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면서 다시금 내려앉던 긴장이 문 바깥으로 급하게 튀어 나갔다.

“신강남파에서 한 명도 안 나온다고 다짐까지 하는데 나서지도 못해. 겁이 나서 술도 못 마셔. 그래놓고 전화로 누가 죽느니 사느니, 아효. 아주머니를 봐서 내가 한 번 참는다.”

신강남파라고?

주방에서 나온 바람에 이제야 ‘신강남파’라는 이름을 제대로 들은 여주인이 목을 움츠리며 주방으로 얼른 들어갔다.

“이왕 부산에 온 거니까 굵직하게 썬 회나 처먹고, 얌전히 돌아가.”

시원시원하게 말을 던진 아르윈이 왼편에 앉은 조직원에게 시선을 던졌다.

“뭐 하냐? 폭탄주 말아.”

아르윈의 지시가 떨어지자 조직원 서너 명이 앞에 모아놓은 맥주잔에 소주와 맥주를 따랐다.

“여기 있습니다, 형님.”

“일본 놈들 없는 세상을 위해 다 같이 마시자. 자!”

아르윈이 잔을 내밀자 키란과 조직원들이 비슷하게 잔을 들었고, 동시에 마셨다.

“아, 씨발. 속이 다 후련하네.”

방금 비운 잔을 내려다본 아르윈이 맞은 편으로 시선을 들었다.

‘해볼래?’

아르윈의 시선에 담긴 감정이 소리친 것만큼이나 확실하게 사카구치 소우타를 향하고 있었다.

빠직, 그 직후에 사카구치 소우타의 이마에서 핏줄이 굵게 올라와 꿈틀댔다.

**

고룡동은 헬멧을 뒤집어쓰고 택시 뒤를 따랐다.

삼합회 칼잡이라고 들었다.

평생 택시에서 살 거 아니면, 어디고 잠을 자러 들어가든가, 아니면 도와줄 놈을 찾아가게 마련이었다.

신호에 걸린 택시가 멈추자 고룡동은 승용차 사이로 들어가 바로 옆에 섰다. 그런 뒤에 택시 안의 여자를 향해 헬멧을 쓴 고개를 돌리고, 헬멧에 달린 커다란 고글을 위로 들었다.

가게를 나온 여자들이 뿔뿔이 흩어졌고, 그중 투피스를 입은 여자를 따르는 참이었다.

여자는 독한 눈매를 돌려 고룡동을 마주 보았다.

“센 척은? 씨발.”

지금 보이는 고룡동의 눈빛과 웃음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뭔가 하고 고개를 돌렸던 택시 기사가 얼른 앞으로 시선을 가져갔다.

설마 대로변에서 무슨 짓을 할까 싶었던 모양이었다.

여자는 아예 뒷좌석의 창문을 내렸다.

“나 혼자니까 적당히 하고 도와줄 새끼들 불러.”

“개새끼.”

“욕도 잘하네?”

독한 여자의 거친 대꾸에도 고룡동은 화를 내지 않았다.

“여기 한국이다. 삼합회고 야쿠자고, 우리 땅에서 헛짓거리하면 모두 뒈지는 거라고. 알았냐?”

고룡동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호가 바뀌어서 택시가 앞으로 달렸다.

헬멧에 달린 고글을 내린 고룡동은 지구 끝까지라도 함께 달릴 사람처럼 오토바이의 레버를 당겼다.

**

이병렬과 헤어진 강성태는 강남역에 있는 그룹 컨소시엄 사무실을 찾았다.

강남역 코너에 있는 15층짜리 건물의 10층부터 15층까지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대표는 은선곤이었다.

강성태가 건물 로비에 들어섰을 때였다.

“회장님.”

안경을 쓴 은선곤이 다가와 공손하게 고개를 숙였다.

“대표가 이렇게 나와도 돼?”

“회장님만큼은 제가 직접 모시고 싶었습니다. 저녁은 드셨습니까?”

“병렬이랑.”

“육개장 드셨습니까?”

덜컥, 질문해 놓고 웃긴 모양이었다.

고개를 끄덕인 강성태를 보며 은선곤이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

“이쪽입니다.”

은선곤은 강성태를 엘리베이터로 안내했다.

그의 위치를 아는 모양으로 건물 데스크에 있어야 할 경비와 비서실 소속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 직원 두 명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녁은?”

“도시락 먹었습니다.”

강성태의 질문에 은선곤이 공손하게 답했다.

늦은 시간인데도 네 칸으로 구성된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대화 내용을 들은 경비는 강성태를 그룹의 높은 사람으로 오해한 눈치였고, 다른 칸의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며 지나치는 이들은 연예인이 방문했나 하는 호기심 가득한 시선을 던지며 지나갔다.

엘리베이터를 이용해 15층에 도착한 은선곤은 널따란 사무실을 지나 곧장 가장 안쪽의 대표이사실로 향했다.

그리 넓지 않은 대표이사실은 책상과 책장, 소파로 소박하게 꾸며놓았는데 다른 건 몰라도 강남역 사거리가 훤히 내다보이는 전망만큼은 곤잘레스 이두안의 집무실보다 훌륭한 느낌이었다.

“앉으십시오, 회장님.”

“고마워.”

둥그런 탁자에 1인용 소파를 둘러놓아서 상석을 따지지 않아도 되는 게 편했다. 아마도 상석을 만들지 않으려는 생각 깊은 은선곤의 선택이지 싶었다.

잠시 근황을 묻는 사이 비서실 직원이 향이 좋은 커피를 놓아주었다.

“부탁할 게 있어서 왔는데.”

강성태는 야쿠자의 협박과 삼합회 칼잡이의 일을 전혀 모르는 은선곤에게 곱창집에서 벌어졌던 일까지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죄송합니다, 회장님, 바쁘다는 핑계로 주변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은 대표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대신 멕시코에서 출발하는 사람들의 탑승 여부를 확인한 뒤에 그들이 지정하는 통장으로 입금을 해주었으면 싶은데?”

“통장 번호를 주시면 탑승을 확인하는 대로 입금하겠습니다.”

은선곤의 시원시원한 답이 있었다.

“근로자 지정은 언제쯤 가능하지?”

“KN 용역에서 선발한 직원이 있다면 내일이라도 가능합니다.”

“필리핀 근로자는?”

“마찬가지로 내일이라도 회사를 지정해 주시면 협조공문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지금껏 보내지 않은 이유가 있나?”

“회장님께 필요한 순간이 있으리라고 판단해서 기다리던 중입니다.”

막힘 없고, 따르는 사람의 성향, 결정 방식을 모두 헤아린 대답이었다. 바로 이런 모습 때문에 정세원이 은선곤을 밀어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했다.

절대 빈틈이 없는 사람을 곁에 둔 1인자의 질투와 두려움, 더구나 그 사람이 배다른 형제라면 더더욱 정세원은 감당하기 어려웠겠다.

“내일 내가 일본으로 갈 생각인데 도움이 필요해.”

“말씀하십시오.”

여차하면 함께 일본에 가겠다는 듯 다부지게 답한 은선곤이 강성태의 지시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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