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3권 - 7화 (460/513)

《460》2부 23권 - 7화

‘KN 용역’ 사무실을 나선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주차장으로 움직였다.

“어차피 퇴근 시간이라 길이 많이 막힐 테니까 저녁 먹고 가자.”

“그럼 육개장 먹어야지. 봉진아? 대나무집 알지?”

“알고 있습니다, 형님.”

조봉진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올랐다.

대형승용차 특유의 미끄러지는 듯한 승차감 덕분에 피곤한 건 없었는데 퇴근 시간의 강남답게 속도를 내지는 못했다.

정신없는 하루였다.

아르윈과 키란, 필리핀 조직원들을 부산으로 보냈고, 이종환이 대림동 식구들과 함께 삼합회 칼잡이들을 찾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이병렬도 아는 사실들이었다.

강성태는 그가 모르는 일들, 로페즈 니에토를 통해 가페와 카르텔 조직원을 달구고 있는 내용을 달리는 승용차 안에서 들려주었다.

“내가 보스의 적이 아닌 게 정말 다행인 거지.”

질렸다는 투로 고개를 저은 이병렬이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일본은 언제 갈 거야?”

“멕시코에서 출발한 가페와 카르텔 조직원들이 일본에 도착하는 때에 맞춰서 넘어가야지.”

그런가 했던 이병렬이 뭔가 마뜩잖은 게 있다는 듯 아랫입술을 내밀었다.

“안 선생이 위험하다는데 강남에서 이러고 있으니 보스도 참 갑갑하겠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했으니까 밥 먹고 보스는 우선 병원으로 가.”

‘오다 주웠다.’ 하며 툭 던지는 선물처럼 등받이에 기댄 이병렬이 앞을 본 상태에서 건넨 권유였다.

“칼잡이들도 생각이 있겠지. 강남에 나와 신강남파 넘버 투가 있는데 굳이 신월동 숙소 식구들이 잔뜩 깔린 병원을 노리겠냐?”

이건 무슨 소리야?

등받이에 기대고 있던 이병렬이 강성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둘이 조봉진만 데리고 밥 먹으러 가잖아. 거기에 태완이 형님과 노익이 형님이 설렁설렁 다니고. 강남에 죽치며 기회를 노리는 게 훨씬 좋지 않겠어?”

“그래서 저녁 먹고 가자고 했구나?”

“태완이 형님이 저렇게 미끼 노릇을 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냥 있으면 이상하잖아?”

“염병. 뒤통수 뻑뻑한 육개장 먹게 생겼네!”

툴툴댔지만, 원래 기질대로 이병렬은 오히려 반기는 얼굴이었다.

“씨발 새끼들이 우리를 노려야 하는데?”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 차 안에서 이병렬이 혼잣말처럼 내놓은 바람이었다.

“그나저나 삼합회 새끼들을 잡을 수 있을까?”

“잡히면 좋고, 아니어도 크게 나쁠 건 없어. 우리 쪽 누구도 다치지만 않는다면.”

상체를 세운 이병렬이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일본에 갈 때까지는 여유가 있다. 그 안에 칼잡이 놈들이 눈치만 살피며 아무런 짓도 못 하거나 우리한테 잡히면 야쿠자들이 서운하지 않겠어?”

“그건 그러네.”

이병렬이 혼잣말처럼 대꾸를 내놓았을 때 신호를 받은 승용차가 움직였다.

좌회전 직후에 바로 오른쪽 골목으로 방향을 튼 조봉진은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식당 주차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디에서 칼이 날아들든 간에 밥 먹고 생각하자.”

자주 왔던 집인 모양으로 이병렬은 거침이 없었다.

그가 즐겨 다니던 육개장집을 다 헤아리면 전부 몇 곳이나 될까?

문을 열어줄 생각인지 조봉진이 급하게 내렸지만, 강성태는 기다리지 않고 뒷문을 열어 밖으로 나섰다.

주차장 안쪽에 있는 현관으로 향할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지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잠시만.”

강성태는 주차장 한쪽에 늘어놓은 화분 근처로 움직여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로페즈 니에토입니다. 미스터 강이 동의하시면 가페 대원 열 명과 카르텔 조직원 열다섯 명이 출발하겠답니다.

하나는 됐다. 완벽하게.

덕분에 부산에 간 아르윈과 키란의 부담도 줄일 수 있겠다.

“목표와 도주 방법은?”

- 아카시 마오를 구출해 한국으로 밀항, 한국에서 멕시코로 향하는 방법이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제안을 건네고 답이 올 때까지 27분 걸렸습니다.

답이 올 때까지 27분, 카르텔 조직원이 합류한다는 내용으로 봐서 욕심이 목에 차오른 가페가 바쁘게 움직인다는 건 의심할 바 없었다.

“그들이 아카시 마오를 데려가는 조건이지?”

- 잔금을 위한 보증으로 멕시코에 데려가자고 설득했습니다. 오히려 가페는 한국에서 미스터 강이 그 여자를 강제로 탈취할까 봐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거 말고도 일본에 도착하기 전에 계약금 지급을 요구했습니다.

이 정도면 깔끔한 일 처리였다.

“통장 번호를 받아. 일본행 비행기에 탑승한 걸 확인한 뒤에 입금하겠다. 나 역시 아카시 조직의 재산을 멕시코에서 현금화할 생각이라, 마오를 한국에 두는 게 더 위험하다고 전해. 그 정도면 설득하겠지?”

- 알겠습니다. 통화한 후에 출발 시각과 비행편, 통장 번호를 받아서 알려드리겠습니다.

어둠이 내리는 저녁, 식당 주차장 한쪽에서 능숙한 영국식 영어로 통화하고 있어서 모르는 사람이 보기엔 저녁을 먹기 위해 왔다가 급하게 파트너와 통화하는 사업가의 모습이었다.

통화 도중에 삼합회 칼잡이들이 달려들지 않을지 주변을 날카롭게 살피는 동작과 거칠게 생긴 이병렬, ‘깡패입니다.’ 하는 생김새의 조봉진만 아니라면 말이다.

통화를 마친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쥔 채로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우리 요구대로 멕시코에서 출발한단다.”

“보스의 손아귀에 걸렸는데 그 돌대가리 새끼들이 별수 있겠어? 그럼 우리는 언제 일본으로 출발해?”

“내일 밤쯤?”

“좋네, 씨발.”

더할 수 없이 만족한 심정을 이병렬이 특유의 거친 욕설로 완벽하게 표현했다.

관동 연합의 중간 간부, 사카구치 소우타?

식당 현관을 들어서며 강성태는 차갑게 웃었다.

**

신강남파, 야쿠자, 삼합회의 칼잡이, 세 곳 모두 물가에 가만히 서서 한 방을 노리는 왜가리가 된 심정이었다.

기회만 잡으면, 번개처럼 고개를 처박아 뾰족하고 긴 부리로 물고기를 잡아 올린다.

한 방이면 승기를 잡는다.

어느 쪽이 왜가리가 되고, 어느 편이 부리에 잡힌 물고기가 돼 비참한 몸부림으로 퍼덕일지는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이 밤에 신강남파가 삼합회의 칼잡이를 찾아내느냐, 아니면 그들의 칼에 쓰러지느냐의 대결.

부산이라는 신강남파의 구역에서 대놓고 강성태를 협박하는 야쿠자들을 언제까지 지켜볼 것이냐는 상황이 밤이 깊어질수록 팽팽한 긴장감을 사방에 뿌렸다.

여등조는 이종환의 심복이었다.

대림동 숙소는 강성태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생활이 달랐다.

대림동을 기반으로 고리대금, 마작판 하우스를 운영해 벌어들인 돈이 모두 채대룡의 노름과 유흥비로 탕진되던 시절은 지금 생각해도 양아치, 그 자체였다.

특히, 안중에서 올라오는 광룡 패거리들의 요구에 채대룡이 고개 숙이는 바람에 완전히 광룡의 하부 조직처럼 돌아가기도 했었다.

유충일이 그랬던 것처럼 그나마 중심을 잡아준 게 이종환이었다. 그 뒤로는 말하면 입 아픈 일들이 주르륵 있었고, 그 결과로 대림동과 대림동 숙소는 이전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세상이 되었다.

누구보다 강성태를 존경하고 따르는 이종환, 그가 테이블에 양손을 짚고서 부탁한 일이었다.

부산 HK 맨션, 부천의 중고차 매장, 인천 부천 연합과의 월미도 싸움까지 모두 뛰었던 여등조 역시 높게는 강성태, 가까이는 이종환을 진심으로 따랐다.

곱창 가게 맞은편은 편의점이었다.

편의점 앞 테라스에 놓인 테이블에 여등조는 맥주를 한 캔 앞에 두고 스마트폰 게임에 열중했다.

왼손과 오른손 엄지를 빠르게 누르다가, “에이, 씨….”라며 짜증을 뱉어내는 여등조는 운동복 바지에 면티, 싸구려 점퍼를 입어서 누가 봐도 근처에서 나와 시간 보내는 놈팡이였다.

삼합회 칼잡이를 잡고 싶다는 그의 간절한 바람이 통했을까?

놈팡이 짓을 한 지 40분 만에 여등조는 식당 안에 있는 여자 손님 다섯을 눈에 담았다.

미묘하게 다른 젓가락질, 어색하게 만드는 쌈, 음식을 입에 넣을 때 왼손의 움직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곱창을 뒤집거나 집을 때의 동작이 어색했다.

여기까지는 너무 과하게 생각하나 싶었다. 그러나 술을 받던 여자 한 명이 오른손의 검지와 중지, 약지로 테이블을 두드렸다가 얼른 손을 아래로 내리는 모습을 본 순간, 여등조는 이를 질끈 깨물었다.

‘저것들만 있을 리는 없는데?’

게임을 바쁘게 하면서도 여등조는 가자미가 된 심정으로 눈알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틀어 여자들을 지켜보았다.

여자 한 명이 뭔가 생각난 표정으로 스마트폰을 들어 전화했는데 그 모습에서는 이상한 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뒤였다.

여등조의 뒤편에서 나타난 남자 다섯이 편의점 테라스 아래에 놓아둔 쓰레기통으로 걸어가 담배를 물었다.

액정에 올려놓은 게임을 확인한 놈들이었다.

별것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는지 놈들은 순간순간 가게를 바라보았다.

두 놈은 정장 바지, 세 놈은 청바지, 여기까지는 괜찮다.

문제는 상의가 전부 펑퍼짐한 점퍼와 재킷이라는 점이었다. 마치 연장을 품은 놈들처럼 말이다.

“아, 씨발, 진짜!”

게임에서 져 짜증이 잔뜩 난다는 투로 욕을 뱉은 여등조는 스마트폰을 테이블에 툭 내려놓고 맥주캔을 들어 시원하게 서너 모금을 마셨다.

‘저 새끼 뭐지?’

힐끔 날아드는 놈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것처럼 고개를 떨군 여등조는 다시 스마트폰을 들었다.

[전화해주십시오.]

게임을 다시 시작한다는 투로 문자를 보낸 여등조는 이어서 게임을 켜놓고 시작을 기다렸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아, 오늘 왜 이러냐? 짜증 나게?”

인상을 있는 대로 찌푸린 여등조는 다섯 놈이 들을 수 있도록 대놓고 툴툴거렸다.

“여보세요?”

여등조의 대꾸가 평소와 완벽하게 다르다는 걸 알아챈 모양이었다.

- 뭐냐?

이종환의 음성에 날이 바짝 서 있었다.

- 혹시 찾았냐?

아차차, 여등조는 왼손 엄지를 움직여 볼륨버튼을 빠르게 내렸다.

“그거 제가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요?”

- 확실해? 근처에 있어?

“예. 두 개 다 저한테 있는 거 같기는 한데요, 확인해 봐야겠는데요?”

- 너, 이 새끼? 진짜 잘했다! 정말 고맙다!

“확인해 봐야 안다니까요.”

‘저 새끼도 참 앞날 답답한 놈이네.’

여전히 툴툴대는 여등조를 담배 피우던 다섯 놈이 안 됐다는 얼굴로 힐끔 보았다.

- 어떻게 할까? 갈까? 아니면 시간을 줘?

“아, 차도 없는 제가 이 시간에 거기를 어떻게 가요? 정 급하시면 와서 확인해 보세요.”

- 그래? 알았다. 30분만 기다려!

통화를 마친 여등조는 스마트폰을 내린 뒤에 게임을 하려는 것처럼 옆으로 뉘여서 들었다.

[지금 태완이 형님이 일어서시면 위험합니다.]

게임을 설정하는 것처럼 보이느라 문자를 길게 쓰지 못했다.

게임 설정을 다시 하는 사이,

[알았다. 안심해.]

“에이, 그냥 오라니까!”

확인하기도 싫다는 듯 여등조는 액정 위쪽에 뜬 문자를 엄지로 넘겨버렸다.

이쯤에서 다리도 꽈주고.

“크흑, 퉤!”

놈팡이 스타일로 테이블 아래로 침도 뱉었다.

**

연기가 자욱한 가게 안은 술기운에 높아진 목소리가 가득해서 조태완이 목청을 높여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일찍 시작했다.

덕분에 남들이 보기에 술도 불콰하게 올랐고, 오늘 밤에 뭘 하려는지 충분히 알아들을 정도로 떠들었다.

일어날까 하는 참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재킷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낸 조태완은 묘한 눈매로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이종환입니다, 형님. 듣기만 하십시오.

“내가 언제 시간 가려서 들어갔어? 곱창 좀 먹는데 왜 이렇게 보채?”

- 그쪽을 지키는 동생 연락받고 가는 중입니다. 지금 일어나시면 위험하다고 차라리 좀 더 계시는 게 더 좋겠답니다, 형님.

“아, 진짜, 이 씨…!”

산전수전 다 겪으며 살아온 조태완의 연기력은 발군이었다.

“알았으니까 끊어!”

- 형님, 일어나시면 안 됩니다! 금방 도착합니다!

“알았다고!”

스마트폰을 내린 조태완은 오른손 검지로 종료버튼을 빠르게 눌렀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이 액정을 못 보게 얼른 재킷 주머니에 넣었다.

“염병. 괜히 곱창 이야기를 했네, 쯧! 야! 모둠으로 5인분만 주문해서 맛있게 구워.”

“예, 형님.”

김석문이 얼른 일어나 주방 쪽으로 움직였다.

“형수님입니까?”

“꼴에 애 가졌다고 곱창 좀 포장해 주면 안 되냐고 묻는다. 나 원. 조태완이 완전히 찌그러졌다.”

“보기 좋으신데요.”

“차라리 잘 됐지. 저거 구워서 애들 편에 먼저 보내고 아예 홀가분하게 소국이 업장에 들르면 되겠다.”

다른 말을 하지 말란 투로 조태완이 인상을 확 찌푸리자 박노익은 애꿎은 곱창만 젓가락으로 뒤집었다.

**

느긋한 식사가 필요한 저녁이었다.

육개장을 시키겠다는 이병렬을 잠시 말린 강성태는 차돌박이를 주문해 푸짐하게 먹었다.

“급할 거 없다. 시간 끌수록 좋으니까 먹고 싶은 만큼 먹어.”

강성태의 권유, 이병렬의 고갯짓을 본 조봉진이 있는 힘껏 달려들어서 차돌박이 13인분 중 8인분을 뱃속에 넣었다.

육개장까지 먹고 난 조봉진이 처음이지 싶을 정도로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먹어야 만족하는 덩치가 평소에 육개장 한 그릇으로 끝내야 했으니 그동안 얼마나 배가 고팠을까?

앞으로 좀 더 신경 써줘야겠다는 다짐이 올라오는 순간이었다.

식사를 마친 강성태는 이병렬과 함께 종이컵을 들고 식당 주차장의 한쪽으로 움직였다.

“고기 잘 먹고 뭐냐, 이게? 카페로 가. 내가 산다니까 그래.”

“이 커피가 어때서?”

식당 계산대 옆에 있는 자판기에서 뽑은 커피였다.

“보스야 뭘 들고 있어도 광고처럼 보이지. 여기 봉진이는 아냐. 봐! 저 새끼 완전히 공짜 커피 들고 행복해하는 놈 꼴이잖아.”

느닷없이 가난하지만, 행복한 사람이 된 조봉진이 죄를 지은 것처럼 고개를 숙일 때였다.

“전화나 한 통 하고 가자.”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바르지오에게 전화할 생각이었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그러나 마치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처럼 손에 든 스마트폰이 울었다.

“여보세요?”

- 이종환입니다, 형님. 태완이 형님 계시는 식당 앞에 수상한 놈들이 있다고 해서 달려가는 길입니다!

이종환의 음성은 급했다.

“장소만 알려줘.”

고갯짓으로 차를 가리킨 강성태는 쓰레기통으로 사용하는 항아리에 종이컵을 던졌다.

조봉진이 급하게 뛰었고, 이병렬이 이가 드러날 정도로 잔인한 미소를 그려내며 몸을 돌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