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3권 - 5화 (458/513)

《458》2부 23권 - 5화

조태완의 멕시코 동행이 결정 나면서 잠시 틈이 있었다.

“부산은 어떻게 할 생각이냐, 동생?”

당황한 심정을 수습하기 위한 것처럼 박노익이 실질적인 문제를 꺼내놓았다.

“두 가지를 먼저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멕시코의 가페를 끌어들이려고 한다는 점입니다. 비밀로 하라고 했지만, 이 말은 반드시 카르텔과 야쿠자에게 들어갑니다.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그렇습니다.”

“그럼 아예 야쿠자에서 알려주는 꼴 아니야?”

“대신, 아카시 마오나 아카시 조직원 두 명을 살려둘 확률이 높아집니다.”

“허어.”

예상하지 못했던 강성태의 설명에 박노익이 탄식을 터트렸다.

“그렇게 된다면 부산에 있는 놈들도 오늘 밤 안에 가페의 움직임에 대해 알게 될 거란 점입니다.”

“고작 해봐야 32명이 부산에서 뭘 어떻게 하겠어?”

“아카시 미키야토와 차웅진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그 어떤 조직보다 확실하게 아는 야쿠자가 32명만 달랑 부산에 보냈습니다. 노익이 형님 말씀대로 설쳐봐야 얻을 게 없는데 말입니다.”

“그럼 동생은 놈들이 대로변에서 칼질을 해서라도 문제를 일으킬 거라고 생각하는 거냐? 우리를 전부 교도소에 보내려고?”

“그놈들은 제게 사진을 보내서 다미 씨를 협박했습니다. 제 주변 사람을 노린다는 투로 말도 했고요.”

“그러지 말고 알아듣기 쉽게 말 좀 해 봐.”

내내 입을 다물고 듣고 있던 조태완이 갑갑한 표정으로 설명을 재촉했다.

“이번에 들어온 야쿠자는 부산에 32명이 전부입니다. 제가 확인하기 전에 부산 이교창이 알아봤을 정도로 대놓고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제게 협박 전화를 한 놈까지 함께였습니다. 우리 시선을 그리 끌려고 했던 겁니다.”

갑자기 화제가 튀었다.

뭔가 있는데?

강성태의 말이 끝나는 것과 동시에 듣고 있던 세 사람이 눈가를 좁혔다.

“우리처럼 놈들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그게 누군데?”

당장 떠오르는 조직이나 사람이 없는지, 고개를 갸웃했던 박노익이 이병렬을 돌아보았다.

“짐작 가는 곳은 삼합회밖에 없습니다, 형님.”

“삼합회? 그놈들은 이미 깨져서…?”

이게 맞아? 진짜 그래?

혼잣말로 이병렬의 답을 받았던 박노익이 화들짝 놀란 얼굴로 강성태를 돌아보았다.

“홍콩과 마카오에서 개망신을 당한 데다, 아카시 미키야토가 사살된 자리에 삼합회의 부산주가 있었습니다. 그 정도면 삼합회가 이를 갈 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놈들도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다고? 지금 어디에 있는데?”

“사진을 보낼 정도로 제 주변 사람을 노리는 놈들이 있습니다. 이번에 들어온 야쿠자 32명은 모두 그대로 부산에 있는데 말입니다.”

“이런 개자식들이?”

대강이나마 상황을 이해한 모양으로 박노익이 상체를 천천히 세웠다.

“그러니까 우리 시선을 붙잡아두려고 야쿠자 놈들이 부산에서 설쳤고, 놈들을 상대하는 사이에 삼합회 놈들이 동생 주변 사람을 노렸다는 거 아냐?”

“제 주변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면 뼈아픈 후회를 남길 수 있습니다. 다미 씨 사진을 보내서 우리 식구들이 전부 병원에 집중하게 만든 뒤에 태완이 형님이나 노익이 형님, 병렬이의 주변을 노릴 수도 있습니다.”

“아! 정말 어렵다!”

상장사 인수 일을 한다는 박노익마저 머리 아프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으니 조태완은 말할 것 없었다.

“간단하게 생각하시는 게 좋습니다. 우리가 부산에 집중하는 사이 삼합회가 뒤를 노리는 거라고 보십시오. 그래야 홍콩이나 마카오에서 당한 복수가 됩니다. 또, 일을 저지르고 중국으로 돌아가 있으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도 별로 없습니다.”

냉정하게 답한 강성태는 조태완과 박노익, 이병렬을 차례대로 돌아보았다.

그게 그렇게 되나?

잠시 허공을 바라보았던 조태완이 ‘그럼 상대해 주면 되지.’ 하는 눈매로 고개를 끄덕였다.

“가볍게 생각하시면 곤란합니다. 지금처럼 홀가분하게 다니는 사이에 중국 칼잡이들 열 명이 달려들면 두 분 형님의 안전도 장담하지 못합니다. 게다가 외출하는 사모님을 노린다면 그건 답도 없습니다.”

“뭐? 누굴 노려?”

배가 살포시 나온 오세아를 떠올렸는지 조태완의 눈꼬리가 당장에 치솟았다.

“신강남파 전체가 중국으로 가서 싸울 것도 아니고, 그래놓고 가 버리면 정말 갚아 줄 방법이 없겠네. 우리가 전부 중국으로 갈 수 있다고 해도, 지역마다 그 틈을 노리고 들고 일어날 놈들도 있을 거고.”

이제야 지금껏 나눈 대화를 박노익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어떻게 할 거야?”

계속해서 오세아가 떠오르는지 조태완이 볼을 씰룩였다.

“중국에서 건너온 삼합회 칼잡이들이 있다고 해도, 밀입국이면 당장 찾기도 어렵습니다. 우선 지켜야 할 대상을 정해 조금 떨어진 곳에 식구들을 깔겠습니다. 다음은 삼합회 놈들이 만족할 만한 우리 쪽 식구가 일부러 틈을 만들까 합니다.”

“미끼로 내놓자는 거지? 누구?”

강성태는 말없이 조태완을 바라보았다.

이건 또 뭐야?

박노익과 이병렬이 번갈아 고개를 돌려 강성태와 조태완을 바라보는 앞이었다.

“나? 나로 되겠어?”

“제가 생각할 때 삼합회 놈들의 첫 번째 목표는 다미 씨, 아니라면 사모님일 확률이 높습니다. 그럴 바엔 형님이 잠시 틈을 보여주십시오.”

“그래? 어떻게 하면 되는데?”

“도와주시겠습니까? 사모님께 싫은 소리를 들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싫은 소리가 문제야? 말만 해. 그 개새끼들이 달려들면 목을 물어뜯어서라도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까.”

조태완의 반응을 확인한 강성태는 나직하게 나머지 계획을 털어놓았다.

“그 새끼들이 미끼를 물까?”

혼잣말처럼 질문을 던졌던 이병렬이 아차 하는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죄송합니다, 형님. 형님을 말씀드린 게 아니라 보스의 계획대로 움직일지, 그걸 말한 겁니다.”

“내가 미끼를 하기로 했는데 뭐? 쓸데없는 걱정하지 말고, 그 새끼들만 잡아. 알았냐?”

“맡겨주십시오, 형님.”

조태완의 요구에 이병렬이 다부지게 답을 내놓았다.

**

사카구치 소우타는 특유의 더러운 인상을 만들어 내며 스마트폰의 번호를 눌렀다.

“사카구치 소우타입니다.”

강성태에게 했던 우리말처럼 전혀 흠잡을 데 없는 일본어였다.

- 강성태가 멕시코와 손잡을 생각으로 보인다. 가페라는 멕시코 특수 부대가 카르텔에게, 다시 카르텔이 삼합회를 통해 확인해달라고 했다는데, 아카시 마오를 우리가 데리고 있는지, 강성태가 실제로 재산을 소유했는지를 물었다.

“그 정도라면 놈이 아카시 조직의 재산이 손에 있다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확실히 한국 놈들은 신의란 게 없어. 아카시 미키야토의 재산을 쥐고 있다면, 절반쯤 내놓을 테니 마오를 돌려달라는 말 정도는 해야 도리일 텐데 말이다.

“돈이라면 민족이나 가족도 팔아먹는 족속들입니다.”

말뿐만이 아니라 사카구치 소우타는 대놓고 역겹다는 표정을 지었다.

- 그쪽은 어떠냐? 이상 없겠지?

“말씀드린 대로 내일 다시 연락하기로 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덕분에 강성태가 멕시코에 연락했다는 사실도 알았고, 또 삼합회가 기회를 만들 시간적 여유도 얻었습니다. 반드시 성과를 보여드리겠습니다,”

사카구치 소우타가 믿음직스럽게 답을 한 다음이었다.

- 삼합회는 멕시코에서 의사들을 빼앗길 때 한 번, 홍콩과 마카오에서 또 한 번, 개망신을 당했지. 우리는 삼합회가 강성태의 목을 딸 수 있도록 싸움만 붙이면 된다. 너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 점을 명심하도록.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겠습니다.”

- 그렇지. 그게 바로 우리 야쿠자의 기백이지!

“감사합니다.”

그가 고개를 깍듯하게 숙이며 통화가 끝났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사카구치 소우타는 창 아래로 펼쳐진 부산의 밤을 내려다보았다.

“와라, 강성태. 오면 오는 대로, 숨으면 숨는 대로, 죽음보다 더한 고통에 빠져 날뛰게 해주마. 내 앞에 무릎 꿇고 스스로 배를 가를 때까지다. 그 뒤에 네놈이 움켜쥐고 있는 우리 재산을 되찾아 가겠다.”

혼잣말을 마친 그는 강성태를 떠올리며 비릿한 미소를 입 끝에 걸었다.

**

이교창은 자세한 내막을 알지 못했다.

다만, 느닷없이 부산에 들어왔던 야쿠자 놈들이 맛집 탐방을 하듯이 밥을 처먹고, 관광객처럼 쇼핑한 뒤에 얌전히 호텔에 처박혀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게 알았다.

박노익에게서 놓치는 일 없이 지켜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그런데 이건 뭐 따라붙을 것도 없이 워낙 대놓고 돌아다니는 터라 놓치는 게 이상할 지경이었다.

서울에서는 병원을 지킨다며 비상도 걸린 모양인데, 아직까지 다른 지시는 없고, 심지어 건드리지 말라는 말만 있었다.

뭐지, 이 새끼들은?

왜 부산에 처 와서 저 지랄들이지?

관계가 좋을 때야 야쿠자 놈들이 미리 연락하고 들어와서 함께 술도 마시고 했지만, 불과 수개월 전에 아카시 조직, 차웅진과의 싸움이 있었던 지금이야 남의 구역에 함부로 들어온 꼴이었다.

이 정도면 시비 한두 번 털어서 고개 숙이는 꼴을 보든가, 대가리 쳐들고 달려들면 밟아주는 게 이 바닥 생리인 건데, 어쩌지 못하는 이교창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이러다가 놈들이 그냥 돌아가면 괜히 부산 이교창이 야쿠자에게 눌렸다는 소리를 듣는다.

분명 뭔가 있는데?

이럴 때 공을 세워서 박노익의 체면을 살려주고 싶다는 생각에 이교창이 머리를 팽팽 돌릴 때였다.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덩치가 들어왔다.

“뭐야? 어떻게 하고 있어?”

“이 새끼들이, 형님. 낙곱새하고 소주 주문해서 저녁 먹습니다, 형님.”

“뭐? 몇 놈이나?”

“고제 호텔에 있던 열 놈은 낙곱새를 먹고, 형님. 나머지 열 놈은 조개구이, 또 나머지는 횟집에 들어갔습니다.”

“이 개새끼들이 진짜? 사람 약 올리는 것도 아니고?”

“보기에는 정말 약 올리는 거 같습니다, 형님.”

뭐라는 거야?

이교창은 짜증 묻은 얼굴로 덩치에게 시선을 주었다.

“저나 동생들을 빤히 바라본 뒤에 자기들끼리 속닥거리며 웃는 게 그랬습니다,”

“알았으니까 가보고, 급한 일이 생기면 이리 올 거 없이 전화부터 해.”

답답한 심정을 한숨에 털어낸 이교창이 덩치를 내보냈다.

달려가서 확 밟아버려?

감정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까 했던 이교창은 바로 고개를 저었다.

강성태는 야쿠자 32명에게 기가 꺾일 보스가 아니었다.

막말로 승합차에 피투성이가 된 야쿠자 놈들을 싣고 왔던 보스가 고작 32명이 무서워서 지켜보라고 했을 리도 없었다.

‘개새끼들. 어디 보자.’

강성태라면 분명 생각이 있을 테고, 휘몰아치기 시작하면 저놈들 모두 피범벅이 돼서 애처로운 눈빛을 할 게 틀림없었다.

이교창은 참 오랜만에 피가 바글바글 끓었다.

관리하는 구역을 침범당한 늑대쯤 될까, 그의 눈이 그 정도의 독기를 품고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책상에 올려둔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액정에서 박노익의 이름을 확인한 이교창은 급하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이교창입니다, 형님.”

- 고생 많지? 놈들은 어쩌고 있냐?

기다리던 연락이었다.

덩치나 인상에 어울리지 않게 이교창은 뭔가 일러바치는 학생처럼 조금 전에 들었던 내용을 박노익에게 고스란히 전했다.

“마음 같으면 달려가서 두들겨버리고 싶은데 형님 말씀 생각해서 참고 있었습니다, 형님.”

- 그건 잘했다. 그럼 이제부터 놈들 지켜보던 동생들 다 돌아오라고 해.

“예? 형님?”

이게 뭔 소리야?

통화하던 이교창이 고개를 비틀 정도로 이해하기 어려운 지시였다.

- 두들길 때 가장 앞에 부산 이교창이 있을 거니까 그렇게 믿고 동생들 불러들이라고.

박노익의 음성에 쇳소리가 묻어 달려왔다.

이전에 HK 맨션 앞에서 이교창에게 마지막 권유를 전할 때처럼 말이다.

확실한 계획이 섰다는 의미였다. 이건.

“알겠습니다, 형님. 그럼 동생들 전부 물리겠습니다.”

- 그래. 믿는다.

“예, 형님.”

통화를 마친 이교창은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는 뜨거운 숨을 푹, 내쉬었다. 오늘 밤늦게 인지, 내일 새벽일지는 모르지만. 한판 붙을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이 개새끼들. 부산을 만만하게 봐?”

혼잣말을 뱉은 이교창은 강성태를 떠올렸다.

믿고 기다리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산의 전설 조강치를 깨부순 강성태가 절대 꼬리를 말지 않으리란 믿음이 바탕에 깔려서 나오는 판단이었다.

**

아르윈은 키란과 함께 돼지갈비를 배불리 먹었다.

종교니 뭐니 있는 거 같던데 키란은 가리는 음식이 없었고, 최근에는 마침내 숯불에 구운 돼지갈비의 매력에 흠뻑 빠져 다른 메뉴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는 지경이었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배불리 먹은 다음이었다.

식당의 테이블에 올려둔 아르윈의 전화가 울렸다.

“예, 형님. 아르윈입니다.”

요 근래 이런 식으로 전화를 받은 적이 없어서 키란이 의아하고 궁금한 눈으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아르윈은 슬쩍 키란에게 시선을 주었다.

“지금 앞에 있습니다. 예. 예. 알겠습니다, 형님.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통화는 길지 않았다.

스마트폰을 내려놓은 아르윈은 궁금해하는 키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성태 형님이시다. 너랑 함께 움직이라고 하신다. 힘들 수 있다고 하시더라.”

“쿠크리를 가져가야 합니까?”

“성태 형님이 부르시는데 그냥 가려고 했어?”

오래 기다렸었다.

돼지갈비보다 더 입에 맞는 메뉴를 찾아낸 사람처럼 키란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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