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부 23권 - 1화 (454/513)

《454》2부 23권 - 1화

제1장. 조각조각 쪼개서 없애주마.

딸랑.

문에 달린 벨이 울렸고, 그 직후에 최치곤이 카페에 들어섰다.

“왔어요?”

이은주가 먼저 인사를 건넸고, 믹서기에 음료를 만들던 강성태가 반 박자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나 왔다.”

강성태를 향해 최치곤은 하얀색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최치곤 덕분에 월세를 해결하는 샌드위치 가게가 있으리라 확신할 정도로 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심한 날은 두 번씩, 그는 샌드위치를 사서 커피 알리고에 들어왔다.

최치곤에 대한 마음이 확신으로 바뀌어서일까, 아니면 매일 먹다 보니 중독되었을까?

스태프 전용이라고 찍힌 문을 열고 들어가며 눈을 찡긋하는 최치곤을 이은주가 세상 사랑스럽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한때는 누구보다 이성적이라고 생각했던 이은주였는데 지금은 최치곤이라는 콩깍지에 휩싸인 상태였다.

“은주 씨. 치곤이 거랑 커피 내려서 들어가세요.”

“제가 커피 내려드릴게요. 매니저님이 먼저 드세요.”

“샌드위치잖아요. 이제는 포장만 봐도 속이 거북해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얼굴로 강성태를 보았던 이은주가 커피를 내렸다. 언제부터인가 샌드위치를 먹을 때는 커피도 한 잔만 만들어서 최치곤과 함께 마신다.

“그럼 잠깐 들어갔다가 오겠습니다.”

커피가 담긴 머그잔 한 개를 담은 든 이은주가 스태프를 위한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기 직전에 고개 숙이는 이은주를 보며 강성태는 가볍게 웃었다.

4개월이 참 빠르게 지나갔다.

그 사이에 무엇보다 감사한 일은 최치곤과 유충일의 퇴원이었다.

병원을 나선 최치곤은 이은주와 함께 평택의 최재섭을 찾아가 함께 식사하고 돌아왔다.

그날 밤, 최재섭은 강성태에게 전화를 걸어 ‘이제는 원이 없다.’라거나, ‘정말 고맙다.’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었다.

그 외에도 신강남파는 안팎으로 체계를 확실하게 잡았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은선곤이 꾸린 회계팀이었다.

각 업장의 매출과 지출을 회계팀이 관리했는데 특히나 경비 부분에서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도록 철저히 신경 썼다.

물론, 관련 공무원들을 서운하게 대해서는 절대 영업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현장 관리자들의 항의가 대단했었다.

“그렇게밖에 운영할 수 없는 업장은 문을 닫아.”

강성태의 눈빛이 바뀌며 내던진 지시에 눌렸지만 말이다.

이병렬은 물론이고, 조태완까지 나서서 간곡하게 설득했고, 강성태가 반걸음 양보했다.

강성태는 먼저 JBC 회장 소신영과 이우섭에게 협조를 요청했고, 이어서 회계팀은 관리자의 수입을 늘려 그 안에서 경비를 처리하는 방식을 택했다.

세금을 곧이곧대로 내는 업장, 조직에 속한 덩치들 모두 통장에 월급이 입금되는 조직, 일반인을 상대로는 욕 한마디 하지 않는 조직, 신강남파가 만들어낸 세 가지 변화였다.

다음은 조태완이었다.

인력 회사의 대표가 된 조태완은 열정이 넘쳐흘렀다.

이제는 완연하게 배가 불러온 오세아와 태어날 아이를 위해서라도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조태완의 열정은 회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서울과 경기는 이병렬, 충청도와 호남은 박배근, 경상도와 부산은 이교창, 세 사람이 조직을 나눠 관리했는데 누가 뭐래도 신강남파의 서열 2위는 이병렬이었다.

사람 사는 일이었다.

당연하게 몇 차례 다른 조직들과 충돌도 있었다.

당시에 가장 독하게 달려 나간 건 뜻밖에도 퇴원한 유충일과 마카오에 다녀온 고룡동이 이끄는 호남의 숙소였다.

그쯤부터였다.

차라리 경찰서를 들이받으면 받았지, 신강남파 업장이나 행사장에서는 헛짓하지 말라는 말과 함께 염라대왕의 뺨을 갈기는 한이 있더라도 강성태는 건드리지 말라는 말이 떠돌았다.

이병렬은 업장을 관리하고, 회계팀의 보고를 받느라 바빴고, 김진용은 엔터테인먼트 회사 블라이스를 챙기느라 분주했다.

아르윈은 여전히 신월동 오거리 앞에서 자신의 업장을 관리했다.

그는 또 누구보다 살뜰하게 키란을 챙겼다.

키란이 그 짧은 시간에 원어민에 가까운 우리말을 구사하게 된 건 아르윈의 보살핌과 배려 덕분이었다.

아르윈의 부인 또한, 키란을 자주 불러 밥을 먹였는데, 네팔에 있는 키란의 어머니를 위한 선물도 살뜰하게 챙겨서 우편으로 보내주곤 했다.

사람의 감정은 비슷해서 이제 키란은 아르윈의 부인을 ‘형수님’이라 부르며 따랐다.

그렇게 일을 나눠준 강성태는 두 달 전부터 카페에 나와 신강남파 이전처럼 매니저 일을 하며 지냈다.

조직의 일을 의논하기 위해서는 카페를 방문하지 말 것, 혹시라도 정말 커피 생각이 나서 오는 거라면 절대 정장을 걸치지 말 것, 강성태가 카페에 돌아오며 요구한 두 가지였다.

가끔 이병렬이 방문해 2층에 있는 사무실에 있다가 가곤 했고, 곤잘레스 이두안이나 조태완, 박노익은 강성태가 강남으로 움직여 얼굴을 보았다.

아무리 편하게 오라고 해도 강성태 앞에 진바지에 면티를 입고 나타날 조직원은 없어서 커피알리고에는 덩치가 드나들지 않았다.

유일한 한 사람, 최치곤만이 진바지에 면티, 운동복, 간혹 정장 차림으로 카페에 드나들었다.

딸랑.

한가하게 책을 읽던 강성태는 문이 열리는 소리에 시선을 들었다.

“어서 오세요, 커피알리고입니다.”

오십 대 중반의 남자 두 명이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

“드시고 가시나요?”

“응.”

짧게 답한 왼쪽 남자가 카드를 내밀었다.

“카드 받았습니다.”

강성태는 아메리카노 두 잔 금액을 결제한 뒤에 카드와 영수증을 내밀었다.

“음료가 준비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카드를 돌려받은 남자 둘이 창가로 움직였다.

한동안 강성태가 자리를 비운 탓에 여학생 손님들이 거의 끊겨서 오후는 한적했다.

머그잔 두 개를 쟁반에 올린 강성태는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두 잔 나왔습니다.”라며 손님을 찾았다.

“맛있게 드세요.”

커피를 건넨 강성태는 다시 자리에 앉아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강성태가 외친 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이은주가 밖으로 나왔는데 강성태는 고개를 저어서 그녀를 스태프용 방으로 다시 들여보냈다.

이 정도의 배려?

이은주가 받아들이지 않아서 그렇지, 한 달 정도 휴가도 제안했었다.

강성태가 없는 동안 살뜰하게 커피알리고를 지켜준 일에 대한 고마움도 있었고, 무엇보다 사경을 헤매던 최치곤을 붙잡아준 점에 대한 감사함이 컸다.

강성태가 5분쯤 책을 읽었을 때였다.

우우웅.

스마트폰이 짧게 울었다.

커피알리고에 있는 강성태에게 신강남파의 일로 연락하려면 전화를 걸고 말지 문자를 사용하지는 않는다.

그나마 안다미가 문자를 할까, 대개는 엉뚱한 광고가 전부였다. 게다가 스마트폰이 알려준 문자에는 확실히 처음 보는 번호가 찍혀 있었다.

그렇더라도 확인은 해야 하니까.

엄지를 움직여 읽던 책을 닫은 강성태는 문자를 택했다.

화면이 한 번 튄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고개를 삐딱하게 틀며 액정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이었다.

Y자 형태로 팔이 묶인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피투성이라 얼굴을 당장 확인하기는 어려웠는데 목선과 불룩 나온 가슴, 상체와 허리로 이어지는 선을 보면 확실히 여자였다.

절대 안다미는 아니었다.

그렇더라도 만에 하나라는 게 있으니까.

만약 안다미를 이렇게 만든 거라면 관련된 놈들은 숫자가 백이든, 천이든, 모조리 목을 자른 뒤에 물고기 밥으로 던져준다.

독한 생각을 떠올린 강성태는 엄지와 검지로 사진을 확대했다.

‘염병.’

다른 말 없이 바로 욕이 바로 떠올랐다.

피를 흠뻑 뒤집어쓴 상태에서 퉁퉁 부은 눈두덩을 억지로 들고 있는 여자는 분명 아카시 마오였다.

코는 비틀어졌고, 볼은 찢어졌으며, 입술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커다랗게 부풀어 뒤틀려 있었다.

한마디로 죽기 직전까지 무자비하게 얻어맞은 몰골이었다.

관동 연합에 죽게 될 거라고 말했었다.

혹시라도 살아서 한국에 온다면 조직원으로 받아달라고 귀신 분장처럼 하얗게 얼굴을 칠하고 고개를 조아렸었다.

달랑 사진 한 장만 왔기 때문에 누가 보낸 건지, 의도가 뭔지는 당장 알 길이 없었다.

설마하니 우리가 이렇게 때렸으니까 경찰에 신고하라는 요구는 아닐 테고?

“후-.”

강성태가 나직하게 한숨을 뱉어냈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이번에는 문자를 보낸 번호를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무시할까 싶었는데, 받을 때까지 전화하면 오히려 귀찮을 수 있었다.

일단 받아준다.

강성태는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 사진은 확인했나?

있는 대로 내리깐 삼십 대 남자의 음성이었다.

도대체 이런 식으로 전화하는 놈들은 왜, 늘, 항상, 먼저 자기소개를 하지 않을까?

“나하고 상관없는 일인데 굳이 사진을 보낼 필요가 있나?”

- 그렇게 말하면 마오가 많이 힘들어져.

진실을 말했는데 엉뚱한 대꾸가 넘어왔다.

“원하는 걸 말해.”

- 아카시 마오가 너에게 넘긴 서류.

강성태는 고개를 돌려 커피알리고의 유리문 쪽을 바라보았다.

받은 게 있었나?

서류라면 그날 아침에 거실 바닥에 던진 게 전부인데?

“뭔가 오해가 있나 본데 나는 받은 서류가 없어.”

- 신강남파 보스라는 사람이 이런 식으로 나오면 실망이 커.

“실망인지, 실수인지, 나중에 확인하기로 하고, 나는 받은 서류가 없다니까.”

- 마오의 시체를 보고 싶다면 원하는 대로 해주지.

“흉한 걸 굳이 보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러니까 남은 건 너희끼리 알아서 하고 다시는 연락하지 마.”

말을 마친 강성태는 바로 종료버튼을 눌렀다.

흉한 사진과 되지도 않는 협박 통화를 하고 나서인지, 이상하게 커피가 당겼다.

커피를 내리며 강성태는 문자로 보았던 사진과 통화 내용을 되새겼다.

아카시 마오가 장난삼아 험한 사진을 연출해서 강성태에게 보낸 게 아니라면 관동 연합인가 하는 놈들에게 붙들린 게 분명했다.

그놈들이 찾는 서류가 뭔지는 모르겠는데 강성태에게 건네줬다는 답을 했을 테고.

갓 내린 커피를 마시며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국제전화 번호가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이동전화의 번호였다.

바르지오 만시니에게 부탁하면 전화했던 놈의 현재 위치와 신상, 소속 정도는 곧바로 알게 된다.

4개월 전에 기가 막힌 아침 식사를 청해 사람을 기운 빠지게 하더니, 죽기 직전까지 강성태에게 짐을 떠넘긴 모양새였다.

아카시 마오의 일에 나설 필요가 있을까?

아무리 무시하려 해도 처참하게 당한 사진과 살려달라며 엎드렸던 사람의 최후를 본 듯한 느낌이 영 좋지는 않았다.

커피를 한 모금 더 마신 강성태가 자리에 앉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식구들의 목숨을 담보로 야쿠자들의 싸움에 말려들 이유는 없었다. 가장 현명한 판단이기도 했다.

강성태가 마음을 다졌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또다시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짜증이 확 올라온 상태에서 번호를 확인했는데 액정에 올라온 건 박노익의 이름이었다.

“강성태입니다.”

- 통화 좀 되나?

박노익의 음성이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 부산에 야쿠자 놈들이 들어온 거 같다는 연락이 있었어. 일단 교창이한테 알아보라고는 했는데, 아무래도 동생에게는 알려두는 게 좋을 거 같아서 전화했다.

“왜 왔는지 혹시 짐작하시는 일이 있습니까?”

- 평소라면 워낙 가까우니까 기분전환이나 쇼핑을 하러 오기도 했었지. 다만, 최근 분위기에서 관광이나 쇼핑을 올 거 같지는 않으니까 아카시 조직 말고 다른 쪽에서 힘을 과시하려고 공연히 들른 걸 수는 있겠지.

박노익의 말을 들으며 강성태는 조금 전에 봤던 사진을 떠올렸다. 손님들이 많은 카페에서, 그것도 주문대 앞에서 하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제가 5분쯤 뒤에 전화 드려도 되겠습니까?”

- 동생이 편할 때 아무 때나 괜찮아. 그럼 전화 줘.

강성태는 박노익에게 양해를 구한 뒤에 통화를 마쳤다.

평소에 샌드위치를 먹느라 보낸 시간을 생각하면 이은주가 나올 때가 되었다. 그러니 지금은 이은주를 불러 주문대를 부탁할 생각이었다.

강성태가 자리에서 일어난 직후였다.

거짓말처럼 문이 열리고 머그잔을 든 이은주가 밖으로 나왔다.

“은주 씨. 잠깐만 2층에 다녀올게요.”

“혹시 기다리셨던 거예요? 부르시죠.”

“그건 아니고 전화 한 통 하고 싶어서요.”

뒤따라 나온 최치곤이 빤히 지켜보는 앞에서 오간 대화였다.

‘2층에 갈 거야?’

그의 시선을 향해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최치곤이 먼저 카페의 유리문을 향해 움직였다.

둘이서 카페를 나와 오른편에 있는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갔다.

이은주 덕분에 안은 여전히 깔끔하고 단정했다.

“먼저 통화부터 하고.”

자리에 앉은 강성태는 문자로 받았던 사진을 박노익에게 전했다. 그런 뒤에 사진을 다시 최치곤에게 보여 주었다.

“뭐냐, 이건?”

“아카시 마오라고 기억해? 아침 먹자고 불렀다던 여자.”

“그 여자가 왜 이러고 있어? 혹시 네가 시켰냐?”

이놈은 병원에서 독한 주사를 많이 맞는 바람에 지능이 떨어진 게 아닐까?

최치곤의 질문이 떨어진 다음이었다.

강성태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박노익인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스마트폰의 액정에 올라온 번호는 문자와 지니지도 않은 서류를 내놓으라던 바로 그 번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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