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1》2부 22권 - 18화
김민정이 근무하는 지구대에 도착한 다음이었다.
강성태는 시간을 확인하고 잠시 망설였다.
시간이 남았다고 해도 자칫 대화가 길어지면 아무래도 자정까지 병원에 도착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미리 연락해 두는 게 도리였다.
안다미야 당연히 서운하겠지만, 가족이라고 생각했고, 특히 강성태의 처지를 누구보다 속 깊게 이해해주던 김민정의 충격을 이해해주고 최선을 다해 설득하는 건 당연한 도리였다.
승용차 안에서 강성태는 먼저 안다미의 번호를 눌렀다.
퇴근이 가까웠으니 먼저 전화를 해 보고 안 되면 문자를 남길 생각이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신호음이 세 번 울린 뒤였다.
- 성태 씨? 벌써 도착했어요?
가슴에 걸릴 정도로 반기는 안다미의 대꾸가 건너왔다.
“다미 씨. 정말 미안합니다. 그런데….”
강성태는 지금 상황을 솔직하게 설명했다.
- 어차피 한 번은 거쳐야 할 일이었잖아요? 아빠도 그러셨는데요, 뭐. 일단 민정 씨 만나고 있어요. 내가 끝나는 대로 전화할게요. 아, 참. 성태 씨?
통화의 마지막에서 안다미가 강성태를 불렀다.
- 누구라도 믿었던 가족이 폭력조직에 몸담았다면 충격을 받아요. 특히 민정 씨는 성태 씨를 친오빠 이상으로 따랐고, 지금은 경찰로 근무 중이잖아요. 뭐라고 하든 절대 화내거나 서운해하지 말아요.
“이해해줘서 고맙습니다.”
- 밤 길어요. 우리 사랑은 그것보다 더 진할 거고요.
이런 상황에서 저런 소리를 하는 배포가 부러울 정도로 안다미의 마지막 말은 당찼다. 통화를 마치면서 스피커폰을 사용하지 않은 게 참 잘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다미 씨에게 양해 구했으니까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게. 이만 들어가.”
“참 곤란하네, 그거. 혹시 아까 일본 년이 또 지랄할지 몰라. 조심하고, 나는 진용이한테 가 있을 테니까 일 생기면 주저하지 말고 전화 주라.”
문의 손잡이를 잡았던 강성태는 생각난 것처럼 이병렬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봉진이가 인사 못 하게 잡아줘.”
“알았어.”
조용하게 떠나라고 당부한 강성태는 그 길로 차에서 내렸다. 그런 뒤에 출발하라고 손짓을 건넸다. 신호를 받은 승용차가 묵직하게 출발해서 강성태의 곁을 스쳐 지나갔다.
김민정에게 솔직하게 털어놓자.
그래도 용납하지 못해서 이모 장숙경에게 말한다면 가족들 모두에게 지난 일들을 역시나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감정을 가라앉힌 강성태는 지구대의 문을 향해 걸었다.
강성태를 알아보았다는 선배 경찰들이 지나친 반응을 보이지 않았으면 싶었다.
늘, 항상, 짠 것처럼, 사람 일이란 생각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자리에 앉은 김민정이 강성태를 향해 시선을 줄 거란 기대 따위 애초에 용납하지 않겠다는 듯 절반 위쪽이 들여다보이는 지구대 안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강성태는 서둘러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경찰이면 다냐고, 이 씨발!”
씨름 선수인가 싶을 정도로 체격이 좋은 스물 후반의 남자 셋이 난동을 부리고 있었다.
나이 든 경찰 셋과 젊은 경찰 한 명, 김민정이 달려들어 제압하려고 애쓰고 있었는데 역부족이었다.
‘오빠?’
김민정이 막 들어선 강성태를 향해 짧은 시선을 던지는 순간이었다.
“에이, 씨발!”
붙들렸던 팔을 거칠게 휘두른 덩치가 손아귀를 둥그렇게 말아서 김민정의 목을 거세게 때렸다.
“컥!”
저렇게 맞으면 당장 숨이 막히고, 이어서 견디기 어려운 고통이 올라온다. 대뜸 앞으로 움직인 강성태는 넘어지는 김민정을 안듯이 받았다.
“괜찮아. 숨을 천천히 쉬어. 괜찮을 거야.”
이 순간, 이미 이성이 반쯤 날아갔고,
“넌 뭐야!”
왼팔로 나이 든 경찰의 멱살을 움켜쥔 덩치가 강성태를 향해 오른손을 뻗는 순간에 강성태의 이성이 완전히 지구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쩌어어어억!
한 방이었다. 그런데 강성태의 주먹이 덩치의 얼굴에 꽂힌 직후에 ‘얼음!’ 하고 외친 것처럼 지구대에서 발악하던 나머지 두 놈과 경찰들이 동작을 멈춘 채 강성태를 멍하니 보았다.
“이 개새끼가 누굴 때려?”
강성태는 흐물거리는 놈에게 다가가 왼손을 둥그렇게 말아서 목을 움켜쥐었다.
“끄윽.”
다리가 풀려 흐물흐물한 상태였다. 당연하게 기절해야 할 상태였는데 강성태의 손아귀 힘에 놀란 것처럼 놈은 게슴츠레한 눈을 악착같이 뜨고 있었다.
“오빠! 안 돼! 하지 마!”
“너 뭐야? 깡패야?”
“아니…. 그게…. 끄윽.”
“왜 신성하게 근무하는 경찰을 때려, 이 개새끼야!”
쩌어어어억! 콰등! 철퍼덕!
강성태의 두 번째 주먹을 얻어맞은 놈이 데스크에 걸렸다가 로프의 반동에 튕겨 나온 것처럼 처참하게 앞으로 엎어졌다.
남은 두 놈을 향해 강성태가 고개를 돌린 다음이었다.
“저기, 혹시 강성태 형님 아니십니까?”
덩치 하나가 얼른 손을 내려놓고 공손하게 물었고,
“강성태? 신강남파 그 강성태?”
나이 든 경찰이 놀란 얼굴로 강성태와 김민정을 번갈아 보았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형님. 청주 파라다이스 식구 조용배입니다, 형님.”
“인사? 내 여동생을 때려놓고 인사?”
“예? 형님?”
“여동생?”
또다시 덩치와 나이 든 간부의 반응이 연달아 나왔다.
“오빠, 진짜 왜 이래?”
“저 새끼가 널 때렸잖아! 그걸 그냥 보고 있어?”
두 놈을 향해 움직이는 강성태를 이번에는 김민정이 앞으로 돌아와 안듯이 말렸다.
“오빠, 제발! 정신 좀 차려!”
“널 때렸다고!”
“오빠, 나 경찰이야! 이건 내 일이고! 그러니까 제발 그만! 응? 오빠? 오빠, 내 얼굴 좀 봐. 나 민정이. 오빠 여동생 김민정.”
양손을 올려 볼을 잡는 김민정의 손길에 튀어 나갔던 이성이 반쯤 돌아왔다.
“오빠?”
“알았어.”
“정말 괜찮은 거지?”
김민정의 눈을 똑바로 본 상태에서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매달리는 김민정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목은 괜찮아?”
“나는 괜찮아, 오빠. 이제 정신 좀 들어?”
적막한 가운데 강성태와 김민정의 대화가 오갔고, 이어서 경찰 무전기의 띠루룩, 하는 소리와 음어가 연달아 있었다.
강성태는 시선을 돌려 얌전하게 손을 앞으로 잡고 있는 덩치 둘을 돌아보았다.
“파라다이스파라고 했지? 내일 내려갈 테니까 가서 그렇게 말하고, 준비 철저하게 하고 있어.”
“저분이 여동생분인 줄 정말 몰랐습니다, 형님. 그리고 형님을 바로 몰라뵙고 손을 쓴 건 연장을 주신데도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형님.”
사과를 내놓은 덩치 둘이 어처구니없게도 지구대 바닥에 냅다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는 처절해 보일 정도로 고개를 조아렸다.
“서울에 모처럼 올라와서, 형님. 기분 좀 내는데 업소 주인이 하도 꼬장꼬장하게 나오는 바람에 눈이 뒤집혔었습니다, 형님. 어떤 벌이든 받겠습니다. 그러니까 청주만큼은 용서해주십시오, 형님.”
강성태는 꿇고 앉아 죄를 토해내는 덩치들에게서 시선을 들었다.
“노래방에서 아가씨 불렀는데 2차가 안 된다니까 기물 파손하고 주인 폭행했습니다.”
강성태의 시선을 받은 나이 든 간부가 고자질하는 아이처럼 덩치들의 죄를 알려주었다.
“부순 거 전부 배상하고, 주인이 원하는 대로 합의하겠습니다, 형님. 그리고 무조건 경찰이 요구하는 대로 다 진술해서 어떤 벌이든 달게 처벌받겠습니다. 저희 셋을 어떻게 하셔도 좋으니까 청주만큼은 한 번만 용서해주십시오, 형님.”
원하는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잠시 김민정을 불러내서 조용하게 마주 앉아 사정을 설명하려던 거였는데 일이 참 이상하게 꼬였다.
이것들을 어쩌지? 이 상황은 또 어떻게 하고?
막막한 건 강성태만이 아니었다.
김민정, 그 외에 경찰들이 어쩌지, 하는 얼굴로 쓰러진 덩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직후였다.
지구대 문이 열리고,
“밀지 마, 이 씨…!”
수갑을 찬 남자 하나가 맞잡은 손을 뒤로 휘두르며 안으로 밀려 들어왔다.
사십 중반의 남자였다.
거칠게 안으로 들어온 그는 바닥에 쓰러진 덩치, 무릎 꿇은 둘을 보았다가 슬며시 고개를 뒤로 돌렸다.
‘이거 뭐요?’
‘우린들 알겠소?’
그를 밀고 들어온 경찰 두 명 역시 황당한 얼굴로 지구대 안을 둘러보았다.
그래도 연륜은 어디 가는 게 아닌지 가장 나이 많아 보이는 경찰이 나섰다.
“뭐야?”
“주취 폭력입니다. 포장마차에서 요금 가지고 싸웠고요. 조금 있다가 포장마차 주인이 와서 진술서 쓸 겁니다.”
데려온 경찰에게서 설명을 들은 나이 많은 경찰이 고개를 돌렸다.
“이쪽으로 와서 앉아요.”
“어?”
반항해볼까 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무릎 꿇은 덩치 둘이 그를 향해 워낙 사납게 눈알을 부라리자 좌우를 돌아본 남자가 입맛을 다시며 가리키는 곳으로 걸었다.
“일어나.”
“용서해주십시오, 형님. 시키시는 건 뭐든 달게 받겠습니다.”
직전까지 사십 대 남자에게 눈알을 부라리던 덩치 둘이 세상 얌전한 표정으로 강성태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이게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새로 들어온 남자와 경찰 둘이 흥미진진한, 그리고 들어설 때보다 더욱 황당한 얼굴로 안을 돌아보았다.
“저기, 지구대 안에서 일어난 일이고, 여기 쓰러진 사람도 있으니까 이쯤에서 노래방 주인하고 합의하는 선에 없던 거로 넘어가면 어떻습니까?”
나이 많은 경찰이 강성태를 다독이듯 나섰다.
“당신들 말이야? 지금 약속한 대로 합의하고 진술서 확실하게 쓸 거지?”
“형님께서 용서하시지 않아도 합의하고 진술서는 무조건 말씀드린 대로 하겠습니다.”
이어서 나이 많은 경찰이 분위기를 잡아주자 기다렸다는 듯 덩치 둘이 온순한 표정으로 답을 내놓았다.
‘저분이 검사나 판사요?’
뒤늦게 들어온 남자가 눈치를 살폈는데 당장 답을 줄 사람은 없었다.
“모처럼 찾아주셨는데 험한 일 당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렇더라도 이렇게 해결됐으니까 우리 오빠분은 김 순경이랑 나가서 차라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
“경위님?”
“됐어. 이 정도로 도와주셨으니까 우리가 차를 대접하는 게 도리인데 여기 이 양반들 조서도 받아야 하고, 새로운 피의자도 왔고 김 순경이 나가서 시간 보내는 게 맞아.”
앞으로 나선 경찰은 아예 한쪽 팔은 김민정, 나머지 팔은 강성태에게 걸고 조심스럽게 문을 향해 움직였다.
어차피 지구대에 더 있어 봐야 덩치 두 놈이 고개 조아리는 꼴 외에는 당장 볼 게 없는 상황이었다.
“잠시만요.”
나이 든 경찰에게 양해를 구한 김민정이 데스크 너머에 팔을 뻗어 스마트폰을 챙긴 뒤에 강성태에게 다가왔다.
“그럼 30분만 있다가 올게요.”
“30분이 뭐야?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충분히 있다가 와. 거기 김 경장하고, 이 순경이 지원 근무 좀 해주고. 괜찮지?”
“예. 저희가 지원 근무 서겠습니다.”
나이 든 경찰의 행동을 보고 짐작한 게 있는지 뒤늦게 들어온 경찰 둘이 씩씩하게 답도 주었다.
“다음에 다시 와서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니 우리한테 무슨 인사를 하실 게 있어요? 그런 말씀 마시고, 우리 김 순경 보고 싶으시면 언제고 편하게, 그저 우리 집이다 생각하시고 들러주세요.”
부담스러울 정도로 공손한 태도를 보인 나이 든 경찰이 문까지 함께 움직인 뒤에 고개까지 숙여 가며 인사했다.
밖으로 나오자 지구대의 간판 불이 강성태와 김민정, 두 사람을 선명하게 비춰주었다.
“오빠는? 아무리 화가 나도 그렇지, 지구대 안에서 사람을 그렇게 때리냐?”
“미안하다.”
늘 그랬던 것처럼 건넨 사과였다. 그런데 그 직후에 김민정의 눈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왜 그래?”
“오빠가 나한테 미안할 게 뭐 있어? 왜 맨날 민재 오빠랑 나한테 양보만 해?”
“뭐?”
“민재 오빠가 전화해서 온 거 아냐? 내가 걸려서?”
확실히 김민정은 날카롭다.
멍하니 있는 강성태를 보며 김민정이 아프게 웃었다.
“바보 오빠야. 이런 사람이 어떻게 깡패 두목이 됐지?”
김민정이 툴툴거릴 때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손에 들고 있던 그녀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잠깐만.’
눈짓을 건넨 김민정이 통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언니? 네. 네?”
전화를 받았던 김민정이 강성태를 힐끔 보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함께 있어요. 지구대 앞에요. 네. 그럼 앞에서 기다릴게요. 네. 조금 뒤에 봬요.”
통화는 길지 않았다.
“언니도 불렀어?”
“누구?”
“다미 언니. 지금 지구대 앞에 거의 왔다는데? 5분쯤 걸린다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지구대 안에서 파라다이스파 덩치들을 만난 이후로 생각대로 되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오빠. 진짜 궁금해서 그런데 두 개만 답해줘. 외국에 있을 때 진짜 뭐 했던 거야? 거기서 갱단 뭐 그런 거 했었어?”
김민정을 바라보던 강성태는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구르카 용병으로 영국에서 근무했었고, 그 뒤에는 레드워터라는 용병 회사에서 있었어. 마지막은 멕시코에서 곤잘레스 이두안 회장 경호원으로 일했고.”
왜 그랬을까?
강성태의 답을 들은 김민정이 입술을 길게 늘이며 나오려는 울음을 억지로 참았다.
“그랬구나. 그래서 그렇게 혼자 서 있었구나.”
강성태는 이해하지 못하는 김민정의 혼잣말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