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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22권 - 14화 (447/513)

《447》2부 22권 - 14화

제5장. 알아볼 것도 없어.

아직 신강남파 강성태를 무식하기만 한 깡패 두목으로 대하는 인간들이 있다는 게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질 짓거리였다.

볼링장과 포장마차를 향해 걸으며 강성태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통화버튼을 누르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 뭘 도와드리면 될까, 미스터 강?

섭충명의 최후를 듣고 난 뒤부터 경쾌하게 바뀐 바르지오 만시니의 음성이 건너왔다.

“차량 번호를 알려줄 테니까 조사를 부탁해.”

강성태는 조금 전 일을 설명하고 차량 번호를 불러주었다.

- 미스터 강의 활약에 마음을 빼앗긴 여성일지도 모르니 반드시 찾아주지.

“여유를 가지는 게 나쁘진 않은데 이제 겨우 마카오 회의를 끝냈다. 우리를 노릴 적들이 많으니까 너무 쉽게 풀어지지는 말자.”

- 오케이. 제대로 알아봐 주지.

강성태가 건넨 경고를 바르지오가 순순히 받아들이며 통화를 마쳤다.

신월동 나이트까지 고작 15분 거리였다.

택시를 잡은 강성태는 일부러 나이트 앞쪽 큰길에서 내려 입구까지 걸었다.

“오셨습니까, 형님?”

나이트 입구를 지키던 덩치 다섯 명이 강성태를 향해 깊숙하게 상체를 숙였다. 마카오에서처럼 이런 인사를 없애고 싶었다. 그러나 멕시코 진출과 같이 계기가 필요한 일이라 당장 강요하기는 어려웠다.

덩치 두 명의 안내를 받으며 강성태는 나이트 계단을 내려갔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둑한 조명에 의지한 무대와 깨끗하게 정돈된 테이블 위에 일정하게 놓인 붉은색 등들이 곧 있을 밤을 기다리고 있었다.

영업 전에 웨이터들의 모임인 모양이었다.

서열에 따른 것처럼 홀에 서 있던 웨이터들이 강성태를 보고는 급하게 고개를 숙였다.

인사하는 걸 뭐라 하기는 어려웠다.

무시하기도 그렇고.

강성태는 가볍게 고개 숙여 인사를 받아주고는 통로를 따라 사무실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형님?”

안쪽 기다란 소파에 앉아있던 김진용과 조봉진이 반갑게 일어나 고개 숙였고, 반 박자쯤 늦게 이병렬이 몸을 일으켰다.

“저녁 먹고 온다며?”

테이블에 올려진 육개장 그릇이 거의 비워진 걸 보면 이병렬은 이제 막 식사를 마친 모양이었다.

“이모네 집에서 먹고 온 거야. 아직 남은 거 같은데 얼른 마저 먹어.”

“우리도 뭐 마실까 고민하던 중이었어. 앉아.”

어떤 의미로 이병렬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을 만큼 충직한 면이 있었는데 지금이 꼭 그런 경우였다.

셋이서 식사를 한다면 상석에 이병렬이 앉는 게 가장 편안하고 현명한 방법이었다. 그래야 중앙에 이병렬, 왼편에 김진용, 오른쪽에 조봉진, 이렇게 세모꼴로 앉게 돼서 더 식사하기 오붓하고 편했을 테고.

그런데도 강성태가 올 거라는 생각에 기다란 상석을 비워두고 소파 왼편에 이병렬, 맞은편에 김진용과 조봉진이 앉아서 식사했다.

“오다가 날아가는 새 고추를 봤어? 뭘 혼자 그렇게 웃어?”

이런 면만 아니면 더 좋았겠지만, 사람이 어디 장점만 있겠나.

“커피 좋지?”

강성태가 고개를 끄덕이자 조봉진이 급하게 밖으로 나갔다.

“앉아.”

“아닙니다, 형님.”

“앉으라고.”

강성태가 재차 권하고 이병렬이 고개를 끄덕인 뒤였다.

“실례하겠습니다, 형님.”

김진용이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김진용과 조봉진, 두 사람이 강성태에게 정말 식구처럼 다가왔다. 그리고 이런 순간에는 불현듯 서달수의 얼굴이 떠올랐다가 아련한 아픔을 남기고 멀어지곤 했다.

좀 더 능력이 있었다면 서달수나 김정훈을 그렇게 쉽게 보내지 않았을 텐데, 다른 일만 없다면 이대로 조봉진까지 넷이서 또 한 번 시원하게 마셨으면 좋겠다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커피 마시고 바로 출발할 거야?”

“그전에 알고 있었으면 하는 게 있는데.”

강성태는 빌라 앞에서 보았던 승용차에 관해 이병렬에게 들려주었다.

“뭐 하는 년인데 보스에게 시비를 걸었지? 야! 혹시 여자가 보스인 조직이 있냐?”

“그런 말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형님.”

“혹시 전에 그 뭐냐, 저기, 그 왜 여자 검사 있었잖아?”

“강선영?”

“그래! 그 여자처럼 어디 다른 부서의 검사가 아닐까?”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차만 그런 게 아니라 전체적으로 조금 화려한 느낌이었거든. 거기에 눈빛이나 표정만 봐서는 우리 쪽 사람이지 싶었고.”

강성태의 설명을 들은 이병렬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게 제발 동생들 좀 데리고 다녀. 그럴 때 따라가 보라고 보내놓으면 얼마나 좋아?”

“바르지오에게 조사해보라고 했으니까 곧 답이 있을 거야.”

강성태가 답을 한 뒤에 노크 소리가 들렸고, 조봉진이 쟁반에 커피를 가져왔다.

“커피 드십시오, 형님.”

조봉진이 찻잔을 놓아줄 때였다.

우우우웅. 우우우웅.

바르지오 만시니의 이름을 액정에 올린 스마트폰이 몸을 떨었다. ‘이렇게나 빨리?’ 싶을 정도로 빠른 연락이어서 다른 일이 생겼나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여보세요?”

- 말했던 차량 번호 알아봤는데 조금은 어처구니없는 내용이다, 미스터 강.

바르지오가 영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스피커폰으로 함께 듣고 싶은 시작이었다.

“무슨 일인데 그래?”

- 아카시 마오라고 마카오에서 미스터 강이 사살한 아카시 미키야토의 딸이다. 마오라는 이름의 뜻이 진실한 벚꽃이라고 해서 변치 않는 야쿠자의 의지를 계승하라는 의미로 아카시 미키야토가 직접 지었다는 일화도 있어.

내용을 들은 강성태는 기가 막힌 웃음을 툭 터트렸다.

누군가 했더니 죽은 야쿠자 회장의 딸이었단다.

아직 대한민국을 우습게 여기는 게 같잖기도 했고, 분한 마음에 달려와서 한다는 짓이 강성태를 따라다니다가 대놓고 노려보는 철없는 행동이라는 게 어처구니없기도 했다.

뭔데 그래?

이병렬과 김진용, 뒤에 선 조봉진이 궁금한 얼굴로 바라보는 앞이었다.

“혹시 한국인 중에 협조한 인간이 있는지도 알아볼 수 있을까? 우리나라 폭력조직이 가세한 건지 알아봐 주면 더 좋고.”

- 알아볼 것도 없어. 미스터 강이 알려준 승용차를 렌트한 사람 정보를 가지고 있으니까, 이름과 연락처를 문자로 보내주지.

“마오인가 하는 여자가 묵는 호텔은?”

- 그랜드 서울 호텔, 일본에서 함께 온 남자 세 명이 옆 방에서 묵고 있으니까 참고해. 함께 온 남자들 신상과 호텔의 객실 번호도 알려주지.

강성태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자정 근처에 그들의 위치를 파악해서 알려 줘.”

강성태의 요청이 건너가고 나서 바르지오의 가벼운 웃음이 먼저 넘어왔다.

- 어쩐지 아카시 조직이 오래가지 못할 거란 예상이 불쑥 드는군. 알았다, 미스터 강. 움직임이야 스마트폰을 확인하면 되고, 호텔 CCTV를 연결해 놓았으니까 원할 때 아무 때고 앞에 말한 내용을 문자로 보내주지.

통화는 그렇게 끝났다.

우우웅. 우우웅.

두 개의 문자가 들어오는 사이, 강성태는 바르지오가 알려주었던 내용을 이병렬과 김진용, 조봉진에게 그대로 들려주었다.

“이런 개 같은 년이? 아버지도 머리통이 날아가 뒈지는 판국에 어딜 와서 설쳐? 호텔이 어디라고 했어?”

“흥분할 거 없고. 우선….”

강성태는 바르지오가 보내준 문자를 열었다.

“장기봉이라고 전화번호랑 주소 줄 테니까 이 인간이 깡패인지 알아봐 줘.”

“장기봉? 부산 장기봉 아니야?”

“주소는 부산 맞아.”

이병렬이 제대로 잡았다는 투로 잔인하게 웃었다.

“양아치 새끼. 예전부터 일본 놈들하고 사업 연결해준답시고 껄떡거리더니 아직 그 짓 하고 있었나 보네. 진용아. 렌트까지 했을 정도면 운전도 이 새끼가 했을 확률이 높으니까 알아보고, 서울에 있으면 기봉이, 이 개새끼 달아와.”

“예, 형님.”

이병렬이 독한 지시를 내렸는데 강성태는 말리지 않았다.

“이따가 자정이나 내일 아침에 여기 호텔에 찾아갈 거거든. 같이 가자?”

“같이 안 가면? 나 빼놓으려고 그랬어? 가! 가서 이 쌍년 달아서 묻어버리자. 에이, 시간도 그런데 치곤이 아버지를 내일 찾아가는 게 어때?”

이병렬은 마음이 급한 눈치였다.

“시간은 넉넉해. 보도를 보셨다면 지금쯤 속이 까맣게 타셨을 텐데 바쁠까 봐 연락도 안 하시는 걸 거고. 아버지 먼저 찾아뵈려고 치곤이한테도 안 간 건데 그건 도리가 아닌 거 같다.”

“그렇기는 하네.”

고맙게도 이병렬은 강성태의 뜻을 바로 받아주었다.

“그럼 얼른 출발하자.”

“어딜?”

“어디기는 어디야? 평택이지. 자정쯤에 의사 선생 만날 거라며? 평택에 다녀와서 호텔까지 들르려면 바빠. 그러니까 지금 출발하자고.”

급하게 서두른 이병렬이 말릴 틈도 없이 몸을 세웠다.

“봉진아. 차 준비해.”

“예, 형님.”

“진용이 너는 평택 다녀오는 동안, 기봉이, 그 개새끼 달아놓고.”

“알겠습니다, 형님.”

쇳소리를 섞은 답을 내놓으며 김진용이 상체를 숙였다.

**

이교창은 당연히 보도를 보았다.

꼬마로 시작해 온갖 행사에 병풍 섰고, 연장질하는 싸움에 나서며 이름을 알렸다. 이십 대 후반에 한 번, 삼십 대 초반에 또 한 번, 교도소에 들어가 별을 두 개나 달며 전국 조폭들과 인사도 나눴다.

깡패는 그렇게 성장하다가 스폰서 잡아서 굵직한 건수 무는 게 성공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이교창에게 신강남파는 확실히 이전에 알고 있던 깡패 조직이 아니었다.

월급을 주는 깡패라니?

그것만 해도 기가 막히는데 마약 틀어막고, 고리대금업을 막았다. 그것뿐이냐, 삼합회와 야쿠자를 개 패듯 두들겨서 내쫓았다.

고개가 절로 저어질 일을 강성태는 눈 하나 깜짝 않고 밀어붙였다. 그리고는 마카오의 경호를 맡아 한 사람당 일억 원을 지급해주었다.

TV에도 나왔다. 폭력조직원들이. 그것도 경호원이라며 당당하게,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말이다.

보도에 나온 멕시코 공사를 한국의 그룹 컨소시엄이 맡았다는데 그곳의 대표는 또 은선곤이었다. 강성태에게 고개 숙이는 그 은선곤.

이제 멕시코의 신도시를 장악하기 위해 간다는 강성태의 계획을 의심하는 덩치는 신강남파에 없다. 심지어 이교창도 멕시코에 가서 제대로 한몫하고 싶다는 욕심을 품었을 정도였다.

지이이잉. 지이이잉.

그런 이교창의 스마트폰에 강성태의 이름이 올라왔다.

나이? 깡패 경력?

염병하는 소리 한다.

이교창은 자리에서 일어나 공손한 태도로 강성태의 전화를 받았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이교창입니다, 형님.”

- 바쁠 텐데 통화 괜찮아?

“말씀하십시오, 형님.”

이어진 통화에서 강성태는 아카시 마오의 일과 장기봉을 찾아낸 과정을 들려주었다.

- 장기봉의 근거지가 부산이라는데 그 인간하고 함께 움직인 놈들이 있는지 알아봐. 이런 식으로 삼합회나 야쿠자에게 빌붙어서 이익을 얻는 놈들이 하나둘 생기면 겨우 막아놓은 둑이 터져.

“알겠습니다, 형님. 장기봉이랑 함께 있던 놈들 싹 추려서 정리한 뒤에 보고 올리겠습니다, 형님. 다른 건 또 없으십니까, 형님?”

- 늘 고마워.

이거 봐, 이거.

이런 식으로 가슴에 박히게 고마움을 표시하는 보스가 이전에 한 명이라도 있었냐고.

“부산은 안심하십시오, 형님. 정리되는 대로 보고 드리겠습니다.”

- 수고해.

“들어가십시오, 형님.”

상체를 숙여 인사한 이교창은 스마트폰을 내려다보며 나직하게 숨을 내쉬었다.

TV에 나온 이병렬과 유섭우, 고룡동, 그 외에 신강남파 식구들은 모두 번쩍번쩍, 빛을 발하는 느낌이었다.

그건 그거고.

장기봉, 이 개새끼가 이교창의 얼굴에 침을 뱉자는 것도 아닐 텐데, 야쿠자랑 쑥덕거려서 보스를 노려? 그것도 부산 바닥에서 깡패라는 명함 달고 살아가는 새끼가?

뜨거운 숨을 내쉰 이교창은 목을 좌우로 꺾으며 스마트폰의 번호를 찾았다.

- 이상렬입니다, 형님.

“장기봉이 알지?”

- 서면 장기봉이 말씀하십니까, 형님?

“그래. 그 개새끼가 나 모르게 야쿠자 계집애랑 쑥덕거려서 우리 보스를 노렸단다.”

- 예? 형님?

이상렬이 역시 화들짝 놀라는 반응이었다.

“그 새끼, 그거, 서면 식구지?”

- 예, 형님.

“내가 직접 갈 거니까 애들 조용하게 불러서 연장 채워.”

- 형님? 서면 식구 잡는데 형님까지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형님?

“야, 이 새끼야? 보스를 노렸다잖아! 우리 보스를! 그런 새끼를 잡는데 내가 어떻게 그냥 자리에 있어?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애들 모은 뒤에 준비 끝나면 말해. 연장들 전부 채우고.”

- 알겠습니다, 형님.

통화를 마친 이교창은 인상을 찌푸리며 창가로 움직였다.

부산의 밤은 고요했다.

적어도 창을 통해 보이는 밤은 그랬다.

“이런 씨발 새끼가 부산에서 주접을 떨었다 이거지? 아, 씨발! 졸라 자존심 상하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밤과 달리 이교창은 태풍처럼 거친 욕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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